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3)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3화(3/82)
저승의 이야기 – (2)
쿠구구…
이 정도면 얼추 다 만들었다.
아무것도 없던 저승은 내 의지에 따라 공간이 비틀어지고 확장되어 이전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힙스터 감성, 아니 저승 감성에 따르면 마치 칠흑 같은 검은 성이 내 눈동자에 비쳤다.
지하에서 차고 넘치는 금속으로 만든 강철의 성채.
이건 강철이 아닌가? 내 힘이 잔뜩 들어간 금속은 어쩐지 창백해지고 뭔가 싸늘한 한기를 내뿜는 것 같았다.
딱 보아도 평범한 금속이 아닌 것처럼 기이한 광택을 내뿜는 성벽, 이 정도면 흑요석 성채라고 불러야 하려나.
끼이이..
슬쩍 턱짓을 하자 성문이 자연스럽게 열린다.
사실 자연스럽지는 않았다. 방금 만들었는데 뭐가 이렇게 뻑뻑해.
그리고 문 열리는 소리가 꼭 귀신 소리 같잖아.
거대한 성채 안으로 들어가면서 보이는 대로 이곳저곳을 추가로 손봤다.
바닥에 널린 모래라던지 힘조절을 잘못해 비틀어진 부분 등.
한참을 손보고 있는데 마침 저승에 손님이 왔다.
“하데스.”
터벅터벅 이쪽으로 걸어오는 건 외눈박이에 굳센 인상의 근육질 남신.
아니, 퀴클롭스다.
나와 제우스, 포세이돈에게 무기를 만들어준 퀴클롭스 세 형제 중 하나인 아르게스(벼락).
그가 나를 보러 이 어두운 저승까지 무슨 일로 온 거지?
“다행히도 잘 찾아왔군. 데메테르가 위치를 알려준 덕분에…”
퀴클롭스들은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천공의 신 우라노스의 자식들.
신들의 계보로 따지자면 우리보다 배분이 높다.
그런데 그들 삼형제는 이제부터 한 섬에서 유유자적 살아간다고 했지 않았었나.
이 어두침침한 지하에까지 올 필요는 없을 텐데.. 설마 죽어서 저승으로 온 것일까?
퀴클롭스들은 이상하게도 격도 높고 강력한 신이지만 우리와 다르게 죽음이란 것이 존재한다.
고로 내 왕국의 저승 입주민 1호가 퀴클롭스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 그쪽을 죽인 겁니까? 제우스 그 망나니 놈입니까?”
당장 신들의 왕 자리를 걸고 형제 대전을 시작하려던 찰나, 그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농담도 원, 우리는 대장장이지만 이런 건물을 짓는 데에도 약간의 조예가 있네. 포세이돈과 제우스도 이런 궁전을 짓는다길래 우리 형제들이 하나씩 붙었지.”
오오.. 아낌없이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퍼주는 봉사의 신 퀴클롭스들이시여.
나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그를 숭배했다.
“그래도 많은 기대는 하지 말아줬으면 하구만. 나는 건축의 신격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퀴클롭스 삼형제는 그들의 아버지가 가진 천공의 신격을 일부 나눠받았다.
천둥과 번개, 벼락은 대장장이 일과는 관련이 없는데 어떻게 뛰어난 실력을 기른 건지 참..
그가 방금 만든 궁전을 휘휘 둘러보며 이곳저곳을 지적해 주었다.
과연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대한 전문가의 조언이 함께해서 그런지 궁전은 빠르게 변화해갔다.
“그리고 내가 만들어준 퀴네에를 잘 사용하고 있는 건 좋지만 관리도 잘 해줬으면 좋겠네. 이래뵈도 깔끔한 걸 좋아하는 아이니..”
한쪽 구석에 걸어 놓은 나의 투명 투구, 퀴네에를 만지작거리며 살펴보는 퀴클롭스.
참고로 삼형제 중 아르게스가 내 투구를 만들어준 장본인이였다.
왜 구태여 투명 투구를 만들었냐고 물어봤을 때 돌아온 답변은 가관이였지.
내 성격에 맞게 음침해보이는 병기를 만들었다나 뭐라나..
“…쯧. 내 말 듣고 있나? 그리고 투구의 머리 부분부터 콧잔등까지 쓸어주는 것도 좋아하니까..”
그건 에고 소드, 아니 에고 투구가 아닙니다만?
만드신 본인이 더 잘 알텐데 왜 자꾸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대장장이만의 감성일지도.
그러고 보니 항상 느끼던 건데. 포세이돈이나 제우스는 무기인데 왜 나만 방어구요.
나도 간지나는 무기 좀 휘둘러보고 싶었는데 고작 은신 투구라니 조금 그렇..
“쓰읍! 고작 투구라니! 온 세상에게서 숨을 수도 있는 내 혼신의 역작인 퀴네에가 뭐가 어때서 말인가?”
이런, 또 내가 생각을 입으로 말했나.
콧김을 내뿜으며 씩씩대는 퀴클롭스를 일단 진정시켰다.
물론 전쟁 당시 이 투구의 위력은 잘 느꼈다. 무려 우리 아버지인 크로노스 신마저 나를 찾을 수 없었으니까.
“누가 만들었는데 당연하지. 내가 저걸 만드느라 얼마나…”
하지만 그래도 무기가 좋은데요.
“어허! 이제는 주신이나 되는 자가 자꾸 보채지 말게! 자네 무기를 만들어주려면 포세이돈이랑 제우스 것도 만들어줘야 한단 말일세!”
* * *
이참에 무기도 하나 받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하기야 그의 입장에서는 내 무기를 만들어주면 포세이돈이나 제우스 것도 만들어줘야 하니까 어쩔 수가 없겠지.
아르게스는 내가 만든 저승을 몇 바퀴 둘러본 뒤에서야 만족스럽게 웃으며 이곳을 떠났다.
건축의 신이 아니니 많은 기대는 하지 말아달라면서 정작 내 궁전을 싸그리 바꿔놓고 떠난 아르게스의 뒷모습에 입맛을 다셨다.
“하데스. 제우스의 벼락이나 포세이돈의 트리아이나가 탐나시나요?”
저승을 떠나는 아르게스를 나와 함께 배웅해주던 스틱스 씨가 속삭였다.
당연히 탐나기는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나중에 퀴클롭스 삼형제가 살아간다던 섬으로 몰래 찾아가던가 그렇게 하면 만들어주려나.
“신들이 하는 맹세의 증거인 스틱스 강 밑바닥에 가라앉히고 힘을 불어넣는다면 당신이 쓸만한 무기가 탄생할지도 모르죠. 어떠신가요?”
이 제안은 좀 놀라웠다.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겁니까? 무기를 만드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대장장이도 아니시면서 왜..?
스틱스 여신에게 이유를 질문하자 그녀가 고개를 돌리고 수줍은 듯이 말했다.
“그.. 러면 이제 빚은 없는 겁니다?”
그러고보니 그녀가 빚이라고 생각할 일이 하나 있긴 있었다. 전쟁 때 수많은 티탄들에게 둘러싸여 어디론가 끌려갈 뻔하던 스틱스를 구해준 적이 있긴 했지.
“퀴클롭스가 적당히 만든 청동검에 당신의 힘을 불어넣고 제게 건네주세요. 다 되면 가져다 드릴게요.”
기억을 더듬어 내가 사용하던 청동검을 스틱스 여신에게 주었다. 그녀는 내 애병을 들고 순식간에 깊은 강 아래로 내려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퀴클롭스들은 벼락과 삼지창, 투구만을 만든 것이 아니였다.
그들은 다른 신들이 사용할 무기와 방어구도 만들어주었고 수많은 ‘실패작’들을 양산했다.
그것들이 실패작이라는 것에는 우리 중 아무도 동의하지 않았지만 뛰어난 실력을 가진 퀴클롭스들은 매의 눈으로 흠결을 지적했다.
“이 정도면 뛰어난 무기 같은데?”
“무슨 소리, 자네들의 권능을 담기에 이 무기는 너무 약해. 크로노스의 낫에 부딪히면 며칠 싸우다 부러지고 말 거야.”
“그럼 이 보호대는 왜 실패작이라는 거죠?”
“저걸 입고 한번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져보게, 흠집이 하나 생겨있을걸?”
우리 아버지, 크로노스의 낫은 할머니 가이아가 아다마스(다이아몬드)로 만들어낸 세계 최고의 무기.
그런 것과 싸워도 며칠 뒤에 부러질 정도라니 너무 눈이 높은게 아닌가 싶지만 그들은 결국 해냈다.
크로노스의 대낫에 버금가거나 조금 못 미치는 것을 무려 세 개나 만들다니.
그날로 일진일퇴를 반복하던 전세가 역전되어 우리가 승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적당히 만든 실패작 중 하나가 내가 방금 스틱스에게 건네 준 청동 칼이였다.
* * *
드높은 하늘의 태양신, 헬리오스의 말들이 태양 마차를 끌고 세계의 끝에서부터 끝으로 수십 번 이동했을 때,
드디어 스틱스가 저승의 성채로 내 검을 가지고 왔다.
“다 완성되었는데 한번 휘둘러 보시겠어요?”
저승의 신에 걸맞게 새까맣게 물든 한손검.
내 힘을 받아 스틱스 강의 밑바닥에서 버틴 청동검은 마치 새롭게 태어난 듯 했다.
코등이가 없이 오직 날만이 존재하는 칼날을 손으로 쓱 흩어보자 검이 주인을 알아보듯 작게 떨렸다.
“어머?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 만들어졌나봐요.”
올림포스 산의 정상 언저리에 자라는 특별한 떡갈나무로 만들어진 손잡이의 독특한 감촉이 내 손을 붙들어놓는다.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무게와 착 달라붙는 느낌.
휘익-
좌에서 우로, 저승의 공기를 가르며 나아가는 칼날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시험삼아 명품 중의 명품, 퀴네에를 바닥에 놓고 검날을 내리쳐보자 반발력으로 불똥이 튀었다.
카캉!
“하데스! 그.. 그 귀한 투구에 칼을! 왜 거기에 시험하는거에요!”
하지만 내가 가진 제일 단단한 물건이 퀴네에니까 성능 시험을 여기다 할 수밖에..
“하아… 역시 올림포스 신들은 다들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퀴네에는 대충 옆에 놓고 면밀하게 검날을 검사했다.
어딘가 흠집이 났거나 망가진 구석, 없음.
칼날과 손잡이의 연결, 훌륭함.
막강한 신력 투과성, 완벽.
전력을 다한 신의 권능에는 이 칼날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손에 힘을 집중해 칼의 옆면을 내리쳐보려던 찰나, 스틱스 씨가 날 말렸다.
“아아악! 그러지 마세요! 저희 아이가 망가져버려요!”
아이?
“핫..?! 이.. 이건 퀴클롭스들이 자신의 역작을 아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나온..”
“아이 좋네요. 그럼 이름은 스틱스 검인걸로.”
“으으.. 그렇다고 제 이름을 그대로 붙이다니..”
양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뭐라 중얼거리는 스틱스 여신을 놔두고 검을 허리에 찼다.
좋아, 네 이름은 이제 스틱스(진)검이다.
“스틱스는 저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