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30)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30화(30/82)
시시포… 타나토스의 이야기 – (1)
평화로운 이승.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Aeolus)와 에나레테라는 인간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반인 시시포스(Sisyphus).
코린토스를 건립한 시시포스 왕은 평소 교활하고 꾀가 많았다.
시시포스의 지혜를 잘 보여주는 일화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전령과 도둑의 신 헤르메스의 아들인 아우톨리코스라는 반신과의 일화에서 잘 나타난다.
평소 헤르메스에게서 부여받은 능력으로 들키지 않게 도둑질을 하던 아우톨리코스.
그에게 소를 도둑맞은 시시포스는…
“여기 보면 소의 발굽 아래에 내 이름이 새겨져 있잖은가, 이건 내 소가 맞고 너는 도둑질을 한 것이지.”
“시.. 시끄럽다! 네 놈들의 부하가 몰래 새겨놓은 것이 아닌가!”
미리 소의 발굽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놓음으로서 아우톨리코스의 도둑질을 간파하는 데 성공했다.
아우톨리코스는 부여받은 능력으로 도둑질한 소의 성별과 색을 미리 바꿔놓았지만 명확한 증거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런 자신의 꾀와 지혜를 믿은 시시포스 국왕은 한가지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데…
“강의 신 아소포스가 맞소?”
“코린토스의 왕이 내게 무슨 일이냐?”
“나는 당신의 딸, 아이기나가 어디로 실종되었는지 그 행방을 알고 있소.”
“뭣이? 내 딸이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다고?”
“코린토스를 위해 맑은 샘물을 내어 준다면 말해주겠소.”
자신만만한 시시포스에게 설득된강의 신, 아소포스.
그는 실종된 자신의 딸을 찾기 위해서 가벼운 손짓으로 맑은 샘물을 도시로 흐르게 만들어주었다.
“당신의 딸은 제우스가 납치했소.”
“이… 이런 빌어먹을! 그게 정말이냐!”
“사실이오, 이쪽 산길을 따라가면 제우스와 당신의 딸을 볼 수 있을 것이오.”
그렇게 강의 신은 황급히 시시포스가 알려준 길로 움직였다.
그리고 곧…
“아… 아버지… 흐윽…”
“제우스 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으아아아!!!”
“크흠흠. 나는 이만 돌아가보겠네.”
그의 딸, 아이기나를 강제로 강간해버린 제우스와 슬피 우는 아이기나를 볼 수 있었다.
도망치는 제우스를 발견하고 화를 내 보았지만 이미 늦은 상황.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였다.
제우스가 시시포스의 행동을 알아차린 것.
당연하게도 제우스는 적반하장으로 불같이 화를 냈다.
“감히 인간 따위가 신들의 일에 끼어들어! 하데스 형님께 중죄인이 있으니 타나토스를 파견해달라 전해라!”
신들의 왕이 이 모양이니, 오늘도 올림포스의 미래는 매우 어둡다…
* * *
이곳은 어두운 지하 세계.
언제나 이승으로 수많은 분신들을 보내 조종하느라 힘든 죽음의 신, 타나토스(Thanatos)가 있는 곳.
검은 날개와 나이 든 노인의 형상을 하고 있는 신은 때아닌 출장에 기뻐하고 있었다.
“타나토스. 제우스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어떤 중죄인을 저승으로 끌고 가달라는군요.”
“그 정도로 큰 죄를 지은 인간이 있나? 하데스.”
“글쎄요…? 일단 타나토스를 올림포스로 잠시 파견해달라 하니…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올림포스로? 얼마 만에 올림포스에 가보는 것인지, 정말 고맙네.”
“그래도 빠르게 복귀하셔야 합니다. 그 인간이 정말 죄를 지은 게 맞는 건지도…”
타나토스는 올림포스에 올라갈 일이 거의 없었다.
항상 바쁘기 때문에올림포스에 사는 신들의 연회에도 초대받지 못했으며,
그곳에 사는 이들은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불노불사의 신들이기 때문에 영혼을 수확하러 들를 일도 없다.
이것은 그의 고된 노동을 불쌍하게 여긴 하데스의 묵인 하에 이루어진 짧은 휴가,
잠시 올림포스로 가서 중죄인을 잡는 동안에는 쉴 수 있겠지.
간혹 자신을 안쓰럽게 쳐다보던 저승의 주인에게 마음속으로 감사를 표한 타나토스.
그는 분신이 아닌, 본체를 움직여 올림포스에 올라갔다.
“타나토스! 이제야 왔군, 바로 저 놈이다! 감히 인간주제에 신들의 일에 참견하는 것이 아니겠나!”
그리고 곧 하계에 손가락질을 하며 길길이 날뛰는 제우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인간이 신들의 일에 참견했다면…
뭐 제물이라도 빼돌렸거나 신들의 결정에 헛바람이라도 불어넣은 걸까.
일단 타나토스는 최고신 제우스의 말대로 그 인간을 살펴보았다.
유유자적하며 궁전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코린토스의 창립자, 시시포스 국왕이 거기 있었다.
“그런데 중죄라니 어떤…”
“아, 저 인간은 저도 좀 압니다. 타나토스.”
제우스에게 질문을 하려던 타나토스의 말이 옆에서 튀어나온 신의 말에 끊겼다.
카두케우스를 들고 있는 신들의 전령, 헤르메스였다.
늘 쾌활한 기색이던 그는 오늘따라 불퉁한 얼굴을 하고 타나토스에게 말했다.
“자기 능력을 과신해 제 아들을 이겨먹더라고요. 제가 부여한 도둑질의 권능을… 쯧. 이번에도 뭔가 아버지의 심기를 거슬렀겠죠.”
전령신이 인간에게 보이는 불퉁한 태도에 타나토스는 적당히 납득했다.
뭐, 무슨 일이라도 저질렀겠지. 그리고 제우스가 말하는데 괘씸한 인간 하나 정도야.
어차피 저승으로 데려가면 하데스나 미노스 3형제가 알아서 판단할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타나토스는 그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유유히 코린토스 왕궁으로 날아갔다.
* * *
이곳은 코린토스 왕궁.
시시포스는 자신의 아내이자 왕비, 메로페에게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꺼냈다.
“분명히 제우스 신이 내게 앙심을 품고 타나토스를 보낼 것이오.”
“네…? 그.. 그럼 어쩌죠?”
“잘 들으시오, 부인. 만약 내가 죽어도 절대 장례를 치르지 마시오. 알겠소?”
그는 타나토스가 올 것을 예측하고 미리 준비하던 중이였다.
우선 아내에게 말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다음…
박달나무로 만든 큰 몽둥이를 들고 침실 뒤의 커튼에 숨어 타나토스를 기다리는 시시포스.
그리고 곧 죽음의 신, 타나토스가 시시포스를 저승으로 데려가기 위해 침실로 들어온다.
타나토스가 가까이 오면 때려눕히기 위해 몽둥이를 꽉 쥐는 시시포스.
그러나…
‘내 감각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심지어 고작 몽둥이로 날 쓰러뜨리겠다니 정신이 나가버린 놈인가?’
타나토스가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시시포스는 반신반인이긴 하지만 그 지혜와 꾀를 제외하면 별다른 힘은 없는 평범한 자.
반면 타나토스는 널리고 널린 하급신도 아닌, 무려 밤의 신인 닉스의 적자.
3주신, 하데스보다도 오래된 신이며 저승의 주인인 그에게 존중받는 노신(老神).
의인화된 죽음이자 강력한 손아귀 힘을 가지고 있는 타나토스는 멍청한 인간을 비웃었다.
터벅터벅.
타나토스는 자연스럽게 움직여 멍청한 인간의 침실 안으로 들어섰고,
때는 지금이라고 생각한 시시포스가 튀어나오며 냅다 박달나무 몽둥이를 휘둘렀다.
“타나토스! 드디어 나타났구나! 받아-”
부우웅-
영혼을 수확하는 높은 신격의 감각에는 너무나도 느리게 날아오는 몽둥이.
이를 악물고 신에게 몽둥이를 휘두르는 멍청한 인간을 본 타나토스가 슬쩍 비웃음을 흘리다가…
‘가만, 그냥 이 놈에게 얻어맞고 쓰러진다면 좀 더 쉴 수 있는 것 아닌가?’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죽음의 신, 타나토스는 닉스의 적자로 태어난 이래로 단 한번도 휴식을 취할 수 없었던 신.
이승에서 죽음은 항상 일어나기 때문에 그 역시도 매일 영혼을 데려와야만 했다.
지금 여기에 와 있는 그는 분신이 아닌 본체,
이 멍청한 놈에게 맞아 대충 쓰러지는 척을 한다면 쉴 수 있다.
하지만 정말로 업무를 잠시 쉬어도 가능할지 고민하는 그.
만약 자신이 영혼을 수확하는 일에 태만한다면 그 부담은 함께 고생하는 저승의 신들에게로 돌아간다.
‘하아… 그래, 내가 쉰다면 누가 이 일을 하겠는가. 저승의 노신(老神)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그런 그의 머릿속에서 자신과 함께 업무에 시달리던 수많은 동료 신들이 스쳐지나간다.
아무리 자신의 일이 힘들어도 다른 신들 역시…
“쯧쯧, 타나토스. 오늘도 영혼들을 수확하느라 고생하는군. 끌끌끌…”
우선… 인류를 쓸어버리는 대홍수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자신을 조금 도와줬지만,
막상 대홍수가 시작되자 위로하는 척하며 비웃던 휘프노스부터…
“우리는 타나토스가 아니라 참 다행이야, 모로스.”
“당연하지, 케레스.”
자기들도 죽음의 신인 주제에 관장하는 부분이 그보다는 작아서 상대적으로 편한 케레스와 모로스.
“타나토스 님. 항상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죽음의 신격이였다면…”
마지막으로 넉살좋게 다가와 실실 웃던 모르페우스 그놈까지!
그러고 보니 이 빌어먹을 놈들, 날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나마 자기 몸은 편하다고 날 비웃었지?
타나토스의 얼굴이 순식간에 흉신악살처럼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자기합리화.
저 놈도 반신반인이니까 대충 방심해서 당했다고 하면 되겠지.
조금만 쉬었다가 다시 일을 시작한다면 아무도 뭐라고 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 딱 하루만… 하루만 쉬는 거다! 하루만!
“커. 억!”
“-라! 어…?”
몽둥이가 타나토스의 머리에 닿기도 전에…
그가 매우 부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치면서 바닥에 쓰러진다.
당연하게도 졸지에 신을 쓰러뜨렸다는 악명(?)을 얻게 된 불쌍한 인간,
시시포스는 몽둥이를 휘두르던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뭐지?”
시시포스는 잠시 얼어붙어 그의 몽둥이와 쓰러진 타나토스를 번갈아가며 살피다가,
결국 찜찜한 얼굴로 타나토스를 묶어 지하실에 감금했다.
하지만 시시포스 왕은 이 행위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미처 알지 못했다.
죽음 그 자체가 의인화된 타나토스의 ‘본체’를 ‘감금’한다는 행위는 세계의 법칙에도 영향을 미치는 일.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날부터,
죽은 영혼들을 관리하는 저승의 업무에 비상이 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