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31)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31화(31/82)
시시포… 타나토스의 이야기 – (2)
요즘 들어서 스틱스 여신님이 나를 슬슬 피하신다.
아무래도 저번에 그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 것이 원인인 것 같은데.
아무렇지도 않게 저승의 일을 도와주시면서도 대화가 계속 이어지다 보면…
“그.. 그럼 저는 잠시 강을 보러!”
“아…”
점차 귀, 목덜미, 얼굴 순서대로 붉어지면서 슬며시 떠난다.
잡아보려고 시도한 적? 당연히 있었다.
“스틱스 여신님 잠시 이야기 좀…”
“꺄아아악!”
“아…”
마치 제우스에게서 도망치는 처녀처럼 질주하길래 어쩔 수 없었다.
그럼 이제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조금 떨어진 모퉁이에서 시선이 느껴져 바라보면 어째선지 죽은 눈을 하고 있는 레테 여신이 보인다.
“하데스으…”
최근처럼 그 멍한 눈동자가 그렇게 무섭게 느껴진 적도 없었다.
어쩐지 나를 무언으로 책망하는 듯해 피부가 따끔거리는 것 같다.
최근 관계가 이상한 것 같아 멍하니 양피지를 쳐다보고 있는데,
한 영혼이 다급한 얼굴로 다가온다.
“하데스 님!”
“…?”
“저승에 영혼들이 며칠째 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이놈의 저승이 평화로울 리가 있나.
나는 급하게 저승의 회의를 소집했다.
다른 신들도 죽음이 없어진 사태에 대해 보고를 받았는지 빠르게 도착했다.
“갑자기 얼마 전부터 저승에 오는 영혼들이 사라졌습니다!”
“아예 타나토스께서 보이지 않으십니다!”
죽음 그 자체가 의인화된 타나토스 신.
영혼을 저승으로 데려오는 것은 그의 업무다.
그런데 그는 제우스가 불러달라고 해서 올림포스로 보냈는데?
무슨 중죄인이 어쩌구 하길래 일단 저승으로 그 영혼을 데려와 심판하려고 그를 보냈다.
근데 아직까지 저승에 돌아오지 않았단 말인가?
저승의 신들도 명백하게 이상함을 느꼈는지 심각한 얼굴로 의견을 내고 있었다.
지금만큼은 레테 여신이나 스틱스 여신도 진지한 표정.
“그 중죄인을 잡아오다가 기가스라도 만난 것 같은데?”
“죽음과 삶의 순환을 깨뜨리려면 타나토스 님을 붙잡아 두는 것이 빠른 방법이긴 하죠.”
“티폰과 같은 괴물의 소행이 아닐까요?”
카드모스가 테베 근처에서 보았다는 기가스들도 그렇고,
가이아가 티폰의 뒤를 이은 새로운 괴물을 만들어내 타나토스를 습격할 수 있다.
타나토스 신은 강력한 신격이지만 무적은 아니다.
충분히 괴물들에게 당하거나 붙잡혀 있을 수 있다는 것.
“일단… 올림포스에 연락하고 지상의 상황을 수습합시다.”
죽음을 관장하는 타나토스가 없으니 다른 신들이 더 고생할 수밖에 없다.
지금 이승의 상황은 그야말로 난장판.
“으아아악! 죽은 닭이 살아서 움직인다!”
“소 머리를 잘랐는데 몸통이 살아있잖아!”
“젠장! 왜 안 죽는 것이냐, 이놈!”
“그러는 네놈이야말로 머리에 칼을 꽂아넣고도 살아있잖은가!”
일단 일부 죽음을 담당하는 모로스 & 케레스 신이 최대한 바쁘게 움직여 영혼들을 수확하고,
죽었어야 할 생명들에게는 휘프노스 신이 긴 잠에 빠뜨려 시간을 벌고,
올림포스로 연락해 타나토스의 행방을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젠장! 타나토스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냐!”
“그동안의 일이 힘들어 어딘가에서 쉬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 없네! 자네는 타나토스가 며칠 동안이나 쉬는 걸 본 적이 있나?”
“하기야, 단 한번도 없었지!”
* * *
한편, 이곳은 올림포스.
이곳 역시도 저승에 못지않게 비상이 걸린 상황이였다.
지상의 생명들이 죽음을 맞이하지 않자, 수많은 신들이 최고신 제우스에게 성토했다.
“아버지! 전쟁터에서 인간들이 죽지 않고 있습니다!”
“그게… 이러면 자연 속에서 생명의 순환이..”
“저승의 하데스 님께서 강력하게 항의하셨습니다. 타나토스 신의 행방을…”
“아니, 타나토스는 반신반인 한 놈을 잡으러 갔을 텐데…?”
그러나 최고신 제우스 역시 이 상황에 대해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그가 종종 의견을 물어보던 아테나는 잠시 볼일이 있어 자리를 비웠기에 회의에서 빠진 상황.
“겨우 그놈 따위가 어떻게 타나토스를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제우스가 본 시시포스는 잔머리나 뛰어나 보였지, 특별한 힘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제우스에게 확신을 갖게 해주는 자연의 신, 판의 한마디.
“제우스님… 혹시 티폰 같은 괴물이라던가… 기가스에게 기습당한 것은 아닐깝쇼…?”
“그 말에도 일리가 있구나, 필시 시시포스를 잡으러 가다가 당한 것이 틀림없다!”
충분히 타당성이 있는 말이라고 판단한 제우스는 곧장 아레스를 불렀다.
전쟁의 신이라면 타나토스를 이긴 괴물에게도 문제 없을 터.
“아레스! 저번에 날 구하기 위해 검을 휘둘렀을 때와 같은 그 용맹을 다시 보여줄 때가 왔다!”
“오오! 제 활약을 들으셨군요, 아버지!”
“아마 괘씸한 인간 놈을 잡으러 가는 길에 괴물에게 당한 것이 틀림없다. 네가 타나토스를 구출하고 저 인간에게 죽음을 알려줘라!”
“알겠습니다! 저만 믿어주십시오!”
아레스는 전의를 다지며 흉폭한 미소를 지었다.
타나토스를 이길 정도면 분명 티폰의 핏줄이거나 기가스가 틀림없었다.
그는 티폰과의 짜릿했던 전쟁을 생각하며 갑주를 챙겨입고,
저번에 반란이 끝난 뒤, 헤파이스토스가 새로 만들어준 명검을 꺼내들었다.
타나토스를 습격한 괴물(?)은 전쟁의 신에게 패배하리라.
* * *
아레스는 자신의 전차를 몰고 기세등등하게 코린토스로 도착했다.
타나토스의 흔적이 여기서 끊겼다길래 조사를 해볼 생각.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그가 괴물에게 끌려간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낀 아레스는 제우스가 말한 인간, 시시포스의 왕궁으로 들어갔다.
타나토스의 원래 목표였던 그 인간을 심문해 검은 날개의 신을 보지 못했냐고 따질 셈.
그리고 그놈은 왕이기도 하니까 근처에 나타났을 괴물의 흔적 역시도 찾을 수 있겠지.
“침입자다! 창을 찔러!”
“웬 놈이냐! 여긴 왕궁이다!”
아레스는 자신을 포위한 코린토스의 병사들을 슥 둘러보았다.
특별한 무구를 갖춘 자, 없음.
신이나 영웅, 없음.
그에게 위협이 될만한 괴물, 없음.
음,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군.
전쟁의 신은 그냥 모든 것을 무시하고 왕궁의 심처로 발을 옮겼다.
불쌍한 병사들이 창칼을 들이밀지만 신(神), 그것도 올림포스 12주신에게 상처를 입힐 수는 없었다.
“으아악! 막아아!”
“아.. 아니! 창이 부러지잖아!”
“칼도 안 통한다! 도망쳐어!!”
인간들이 뭐라고 떠들지만 그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왕인 시시포스를 찾았다.
왕궁 깊은 곳, 아래로 조금 더 내려가 본다면…
옳거니, 화려한 옷과 왕관, 몽둥이를 들고 기습하는 이 놈이다.
반신반인으로 보이는 놈이 나무 몽둥이를 휘두르며 뭐라고 떠든다.
“날 죽이려 제우스가 보냈구나! 하지만 이 박달나무…”
그 순간, 왕궁 깊숙한 곳까지 도달한 아레스의 감각에 무언가 걸린다.
머리에 휘둘러지는 몽둥이 따위는 무시하고 신력을 펼쳐 감각을 더 넓혔다.
지하, 지하에서 느껴지는 이 힘은 분명 죽음의 기운.
콰직. 후두둑.
“무.. 무슨! 머리를 맞췄는데 몽둥이가 부숴져?”
죄를 지었다는 이 인간은 이제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지하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타나토스가 움직인다면 시시포스는 알아서 저승으로 잡혀갈 터.
아레스는 한달음에 달려가 지하실로 향하는 문을 열어젖혔다.
어째서 지하에서 타나토스의 힘이 느껴지는 것인지, 괴물에게 부상당해 있기라도 한건가?
드르렁- 크허어-
지하실 아래로 내려간 아레스의 눈에 보인 것은…
자신을 묶은 밧줄을 가볍게 끊어버리고 대(大)자로 뻗어서 자고 있는 검은 날개의 노신(老神)이였다.
매우 편안한 잠을 자는 듯, 잠결에 코골이를 하며 한 손으로 배를 긁던 타나토스가 눈을 뜨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아레스와 눈이 마주쳤다.
* * *
아레스는 난폭하고 단순무식한 면도 있지만,
그건 난폭한 전쟁을 상징하는 신격 때문이지 그 자신은 그렇게 멍청하지 않았다.
항상 아테나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이 일상이지만, 그것은 상대가 지혜의 여신이기 때문.
전쟁의 신의 머릿속에서 저번 대홍수 때,
아테나의 계략에 빠져 저승에서 일했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젠장! 이 빌어먹을 영혼들은 뭐가 이렇게…”
“허억… 아레스인가?! 저기 영혼들 줄 맞추는 것 좀 도와주게!”
“오늘도 내 날개의 깃털이 점점 빠지는군… 이것이 탈모, 아니 탈우(
脫羽
)인가?”
타나토스는 수많은 분신들을 이승으로 파견해 밤낮없이 일하고 있었다.
저승을 통틀어, 아니 전 세계에서 그보다 바쁜 신은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것도 잠시도 쉬지 않고 힘겹게 일하는 타나토스.
아레스가 만약 그의 입장이였다면 휴식이 정말 간절했을 것이다.
심증이 더해졌고, 거기에 더해 점차 맞춰지는 물증.
1. 타나토스는 밧줄을 풀고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2. 휘프노스의 권능과 같은 외부적인 요인에 의한 잠이 아니라, 그냥 휴식을 취하는 모습.
3. 근처에 타나토스를 이길 만한 괴물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4. 타나토스의 몸에서 느껴지는 힘도 그대로, 약화된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점차 얼굴이 썩어들어가는 아레스의 눈치를 살피던 타나토스가 잔뜩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레스인가?! 내가 방심해서 인간놈에게 당한 걸 구하러 와줬구만!”
“하아…”
일단 입가에 흐르는 침이나 닦고 거짓말을 하십시오, 타나토스.
아레스는 조용히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