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32)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32화(32/82)
시시포… 타나토스의 이야기 – (3)
아레스는 잠에서 깬 타나토스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당장 저승으로 달려왔고…
하데스에게 모든 사실을 그대로 일러바쳤다.
“하데스 큰아버지! 지금 타나토스 신이 뭘 하고 있는지…”
“…?”
타나토스를 쓰러뜨린 강력한 괴물과의 싸움을 기대했던 아레스는 마치 장난감을 뺏긴 어린아이마냥 씩씩댔다.
그렇게 모든 사태를 파악한 저승의 신들은 분개했다.
“뭐라고? 그럼 이 사태가 전부…”
“시시포스라는 그 인간은 또 뭐야?”
“이런 젠장! 타나토스가 잠을 자고 있었단 말인가?!”
“아레스님, 혹시 거짓말을 하시는 건…”
“스틱스 강에 맹세코 이 아레스가 한 말은 모두 사실입니다!!!”
그렇게 저승의 신들 일부는 뒤늦게 시시포스를 저승으로 데려오는 타나토스를 습격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저승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밧줄로 묶었다.
“어억! 휘프노스, 왜 이러는가! 스틱스 자네도!”
“네가 일을 내팽겨치고 잠이나 자는 동안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나 하나!”
“아레스의 말을 듣자하니 코까지 골고 있었다면서요!”
그렇게 타나토스는 포박되어 두 신의 삼엄한 감시를 받으며 죄인처럼 끌려왔다.
물론 시시포스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넋이 나가 제 발로 걸어오더라.
“아니… 어어… 아…?”
잠시 동안 일을 내팽겨친 타나토스를 환영하는 것은 오직 단 하나,
“크윽… 잠시 동안 잘 쉬었건만… 이제는 다시 노를 저어야 하는 것인가…”
아케론 강의 뱃사공, 카론뿐이였다.
그렇게 되어 나, 하데스의 앞에 끌려온 타나토스와 시시포스.
타나토스는 분노한 신들로 인해 온몸이 밧줄로 묶여 있었고,
시시포스는 멍하니 무릎을 꿇은 채, 넋이 나간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니, 고작 며칠 동안 잠 좀 잤다고 이러기가 있나! 나는 딱 하루만 자고 일어나려 했네!”
정신이 나가버린 듯한 시시포스의 옆에서 당당하게 소리치는 타나토스.
내 머리가 메티스를 삼킨 제우스마냥 아파온다.
“영혼을 수확하는 일이 조금 많이… 힘드셨군요. 타나토스…”
“그렇지, 하데스 자네가 내 고충을 잘 알아주는구만! 나는 정말로 아주 잠깐만…”
그러자 내 옆에 도열한 다른 신들이 즉각 발작한다.
먼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죽음에 이르지 못한 생명들을 억지로 잠재우던 휘프노스.
“뭣이?! 아주 잠깐이라고? 어디서 그런 망발을 하는 건가, 타나토스!”
죽음의 신격이 일부 겹친다는 이유로 역시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고생한 모로스 & 케레스.
“타나토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세상의 순환을 며칠이나 깨뜨렸으면서 그런 소리를 해!”
밤낮으로 인간들의 꿈에 나타나 당분간 생명을 해치지 말라는 암시를 불어넣은 모르페우스.
“하데스님! 타나토스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와 내통을 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잠깐이라는 시간이…!”
그 외에도 수많은 신들과 관리들이 타나토스의 만행을 성토했다.
이미 제우스가 중죄인이라고 지목했던 시시포스는 아예 안중에도 없었다.
“이… 이 고얀 놈들이 뚫린 입이라고! 네놈들이 나처럼 일을 해봐라!”
“뭬야?! 나도 매일 생명들에게 잠을 나눠주느라 바쁘단 말이다!”
“저도 매일같이 분신을 파견해 꿈을 꾸게 만드느라 얼마나 힘든 줄 아십니까!”
“우리는 고생하지 않는 줄 아나요!”
“설마 저승에서 본인만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다.
저승의 모든 신들은 항상 죽어라 일하는 상황.
최고 결정권자인 하데스마저도 아주 가끔씩만 여유가 생긴다.
제일 바쁜 것은 물론 타나토스나 카론이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신들이 여유롭게 놀고 있는 것은 아니였다.
당장 모르페우스나 휘프노스만 봐도 밤만 되면 죽어라 분신들을 조종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타나토스가 업무를 며칠이나 유기했으니…
저승에 속한 여러 신들은 평소 하던 일의 수십 배를 처리해야만 했었다.
* * *
나는 손을 내저어 모두를 조용히 시킨 다음 입을 열었다.
그동안 시시포스를 이용해 업무를 내팽겨친 타나토스에 대한 처벌을 정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 처벌을 좀 결정해야…”
“타르타로스!”
휘프노스가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며 소리친다.
그는 잠을 나눠주는 신이지만, 정작 본인은 며칠동안 한숨도 자지 못했다.
“당장 타르타로스로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음, 순환을 깨뜨리려 한 죄는 크지. 하데스가 정당한 판결을 내리…”
눈 밑에서 거무스름한 암운이 돌고 있는 케레스 & 모로스가 말했다.
그들은 급하게 영혼을 수확하느라 며칠동안 아예 이승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냥 타르타로스로 보내기엔 처벌이 약한 것 같으니까 산 위에서 떨어지는 돌을 계속 올려놓는 형벌은 어떨까요?”
“모르페우스! 거 말 잘했다!”
“역시 꿈의 신이라 그런지 상상력이 아주 풍부하군!”
“타르타로스! 타르타로스로!”
모르페우스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미친 소리를 늘어놓았다.
아마도 타나토스와 달리 본인은 쉬지 못한 것에 대해 강한 억하심정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미친 놈들이! 네놈들이 내 입장이 되어 본다면 쉬지 않을 것 같나!”
“기회가 왔다고 냅다 잠이나 자는 네놈보다는…”
“타나토스! 변명하지 말고 처벌을 받아들이게!”
“타나토스를 타르타로스로!”
나는 저승이 점점 난장판이 되어가는 것 같자 머리를 짚으며 조용히 읊조렸다.
목소리에 신력을 담아 신들에게 다 들리도록…
“그래서 타나토스를 타르타로스에 보낸다고 가정하면, 누가 이제부터 영혼을 수확할 겁니까?”
아, 조용해졌다.
미처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듯이 조용해지는 신들.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본다.
“아무래도 죽음은 곧 깊은 잠이 아니겠나? 휘프노스가…”
“케레스, 네가 관장하는 파멸적인 죽음이 아무래도…”
“으음. 그건 차차 생각해봐야…”
이럴 줄 알았다.
다들 자신의 업무가 더 이상 늘어나는 것은 반기지 않는 눈치.
이제야 내 생각을 말할 수 있겠네.
“타나토스는 타르타로스로 보낼 수 없습니다… 불만이 있는 신격은 대신 영혼을 수확하겠다는 것으로 알아듣죠.”
“커흠. 흠. 운이 좋군, 타나토스.”
“어쩔 수 없구만…”
“허어… 잘못을 저지른 자가 처벌을 제대로 받지 못하다니, 정의의 여신 디케(Dike)가 통탄할 노릇…”
“흥…!”
“대신 타나토스 신은 추가로 며칠동안 노역형을 해야 합니다. 거기에 인간들의 제물도 당분간 받지 못하며…”
저승에서 제일 바쁜 타나토스의 고된 업무량, 태초부터 존재한 노신의 체면 등을 고려하면…
대충 이런저런 처벌을 더하면 되려나.
몸을 묶은 밧줄을 풀고 주섬주섬 일어나는 타나토스의 얼굴이 구겨진다.
이제 자신에게는 더 이상 휴가가 없을 것이라는 걸 깨달은 모양.
“그리고 제가 여러분들께 신경을 많이 써드리지 못했던 점이 있으니, 올림포스에 주기적으로 지원을 요청해서…”
“그런데 하데스, 저 인간은 어떻게 할 건가요?”
조용히 인상을 찌푸리던 스틱스 여신이 시시포스를 가리킨다.
* * *
나는 제우스가 타나토스를 파견해 잡아가려고 한 인간, 시시포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이마는 땀으로 흥건했으며 정신이 반쯤 나간 것처럼 보였다.
“어디 보자 네 죄는…”
“허억..”
“그리 겁먹지 마라, 너를 옹호하는 탄원서가 있으니.”
나는 손을 뻗어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가 전해준 양피지 두루마리를 집어들었다.
얼마 전, 강의 신 아소포스가 저승에 전해달라고 한 탄원서.
이 두루마리 양피지를 옆에 있는 저승의 세 심판관 중 하나, 미노스에게 내밀었다.
그가 천천히 내용을 살펴보고 읽기 시작한다.
“그럼 읽겠습니다. 인간 시시포스가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저승의 군주에게 올리는…”
강의 신이 내게 보낸 문서의 내용.
그것은 자신의 딸인 아이기나가 제우스에게 당한 일과 시시포스에 대한 감사가 적혀있었다.
또한 시시포스가 제우스에게 보복당할 것을 걱정하는 내용도.
“…따라서 그에게 약간의 선처와 자비를 간원하는 바입니다.”
미노스가 탄원서 낭독을 끝마치자 근처 신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든다.
“하아… 또 제우스 님이..?”
“이번에는 강의 신이 피해를 보았나…”
“거짓일 수도 있으니 므네모시네 여신님께 확인을 맡기는 것은 어떠한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곧 기억의 여신이 시시포스의 기억을 읽어들이고 내게 전해줬다.
“그럼 판결을 내리겠다.”
시시포스가 약간의 희망이 보이는 얼굴로 이쪽을 올려다본다.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기습한 죄와 그로 인해 세계의 순환을 깨뜨린 것은 틀림없는 중죄.”
지만…
“그러나 정해진 수명보다 타나토스가 빨리 찾아간 이유는 네 잘못이 아니였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강간이 들키자 화를 내며 타나토스를 보낸 제우스 때문.
그래도 시시포스의 잘못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알아본 바로는 아내가 장례식을 치르지 않았다며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생각.
하지만 이 역시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가 머리를 흝어보고 내게 알려주었다.
인간이 신을 속이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장례식을 이용해 내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의도는 잘못이 맞지만… 이승의 코린토스 백성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더군, 나름 성군이라 불릴 만해. 그리고 정말 큰 죄는…”
“…커흠흠!”
나는 뻔뻔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신을 슬쩍 째려보았다.
며칠 동안 이승에서 푹 쉬다 온 타나토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한다.
“…애초에 타나토스 신이 너를 이용하려는 생각이 없었고, 네가 저승에 끌려왔다면 여기 있는 미노스가 무죄 판결을 내렸을 것이다.”
“그.. 그렇다면!”
옆에 있는 미노스가 어색한 미소를 띄우며 “그… 사실 제우스 님과 엮인 일이라면 조금.. 으흠…”
이라고 말하지만 일단 무시했다.
“그러므로 네가 이승에서 천수를 다 누리고 저승으로 올 때 다시 죄를 심판하겠다.”
“…..! 감사..! 감사합니다! 플루토시여!”
시시포스가 살았다는 얼굴로 엎드린 채 연신 감사인사를 한다.
그래도 저승에서의 기억은 전부 까먹겠지만.
망각의 여신, 레테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시시포스의 뒤로 다가간다.
그와 함께 발현되는 망각의 권능.
시시포스는 저승에서 겪은 모든 기억을 잊어먹을 것이다.
“어…? 어어…”
“아, 참고로 그때는 스스로 쓰러진 타나토스를 감금한 죄까지 묻겠다.”
눈빛이 혼탁해지며 기억을 잃어가는 시시포스를 보며 말을 끝마쳤다.
타나토스가 일부러 시시포스를 이용한 것은 맞지만, 왕궁의 지하실에 그를 묶어놓은 벌을 따로 받아야 한다.
그가 정해진 수명이 다해 저승으로 온다면…
수십, 수백년 동안은 파에톤과 함께 저승 외곽에서 일할지도 모르겠다.
“모르페우스, 올림포스에 전령을 보내 이리스를 저승으로 불러달라 하도록.”
“예?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를 왜..”
뭐? 중죄인이 있으니 타나토스를 파견해 달라?
“내가 직접 제우스한테 항의하러 가겠다.”
지랄하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