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33)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33화(33/82)
오토스와 에피알테스의 이야기 – (1)
전령을 보낸지 얼마 되지 않아서, 곧 이리스가 도착했다.
“하데스께서 어쩐 일로 저를 찾으셨는…”
“올림포스로 향하는 통로를 열어라.”
“…알겠습니다.”
이리스의 손 끝에서부터 일곱 가지 빛무리가 흘러나온다.
곧 아름다운 무지개가 발생하며 공간과 공간을 잇는 통로가 개방되었다.
역시 먼 거리를 이동할 때는 이리스를 부르는 게 편하다니까.
샤아아-
통로를 넘자 공간이 뒤틀리며 구름으로 가득한 올림포스가 나타난다.
어디 보자… 제우스의 위치는…
“앗, 하데스 큰아버지?”
“아폴론.”
화려한 금발과 반짝이는 햇살과도 같은 눈동자를 한 내 조카, 아폴론이 근처에 있었다.
그는 오늘도 손에 리라를 들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오늘은 또 어쩐 일로 올림포스에 오셨습니까?”
“그건 알 필요 없고, 제우스는 어디 있지?”
“아, 아버지라면 아마 저쪽 연회장에 계실겁니다.”
오호, 연회라.
기껏 중죄인이니 뭐니 하길래 타나토스를 파견해줬더니 누명이였고,
본인의 강간으로 인해 벌어진 사태는 생각지도 않으면서 연회?
일단 연회장 안으로 들어가니 온갖 신들이 보인다.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마시며 놀고 있는 것이 딱 평소의 연회로군.
“어…? 하데스 님?”
“오늘 뭔가 기분이 좋아보이시지는 않는데…”
“오랜만에 올림포스에 오신 이유가..”
그리고 저기 황금 옥좌에 편하게 앉아 있는 신들의 왕이 있었다.
“타나토스가 잠을 자고 있었다고? 그는 그럴 신이 아니다. 네가 잘못 본 것은…”
“정말입니다, 아버지! 얼마나 편하게 누워 있던지 아주…”
방금 저승에도 왔다 간 아레스의 보고를 들으며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우스.
그의 얼굴에 불신이 가득하다.
터벅터벅.
제우스에게 똑바로 걸어가니 놈이 나를 보고 놀란 기색을 띤다.
“어? 하데스 형님이 올림포스에는 또 어쩐 일로…”
“아레스가 한 말은 전부 진실이다.”
“뭣이? 그럼 정말로 타나토스가 내 명령을 어기고…!”
제우스의 이마에 핏줄이 돋지만, 아직 내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네가 타나토스를 시켜 저승으로 데려가라고 한 그 인간 말인데.”
“시시포스 말이야?”
“대체 어떤 잘못을 저질렀기에 신들의 왕께서 직접 타나토스를 불러서 저승으로 보내려고 하신 것인지?”
“아.. 하하…”
제우스 놈이 뭔가를 눈치챈 듯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그래, 너도 알다시피 우리 저승에는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가 있다.
“하데스의 말대로, 시시포스라는 인간이 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랬나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암브로시아를 먹던 헤라가 다가온다.
신들의 여왕인 그녀의 얼굴에는 오직 궁금증만이 가득했다. 이 사태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못하는 모양.
너도 알 자격이 있으니 똑똑히 알려줘야겠지.
“음. 그건 제우스가 강간을…”
“아아! 크흠흠! 형님, 잠깐. 잠깐만!”
“씁! 당신은 조용히 해보세요! 그러니까 제우스가 뭐라고요?!”
놈이 당황한 듯 말을 돌리려고 하지만 어림없다.
헤라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제우스를 조용히 시켰거든.
왜 내가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지 알겠지?
네 업보를 돌려받아라, 제우스.
“헤라, 강의 신 아소포스를 알고 있지?”
“저도 들어본 신이네요.”
“그 딸을 제우스가 강간했고, 그 강간 사실을 아소포스에게 알려준 인간이 시시포스다.”
“…?!”
제우스가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헤라에게 붙잡혔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제우스가 자신이 강간한 걸 들키자 그걸 알려준 인간을 죽이려 했다…?”
“그렇지.”
헤라가 슬쩍 제우스를 째려보더니 다시 내게로 시선을 돌린다.
“거짓말은 아니겠죠?”
“므네모시네 여신의 도움을 받아 확인했다. 이 모든 것이 진실이라는 걸 스틱스 강에 맹세하지.”
“제… 제우스으으!!!”
헤라의 얼굴이 순식간에 악귀처럼 변했다.
신들의 여왕인 그녀는 가정과 결혼의 신.
당연하게도 강간이나 불륜 등의 행위는 그녀 입장에서 절대악이다.
“커험험!”
“이번에도 또 다른 여신을 강제로 건드리고도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았어요!”
“죽음의 신, 타나토스가 네 강간을 알려준 인간을 벌하는 짓이나 해야 하나?”
놈이 아무 말도 못하고 식은땀만 흘린다.
오호.. 눈 피하는 거 보게.
“아니, 형님 그.. 타나토스는 신들의 왕인 내 위엄을…”
“위엄이라고? 마음에만 들면 강제로 관계를 맺는 강간의 신에게도 위엄이 있었나?!”
제우스의 안색이 더욱 파래진다.
그도 그럴 것이 옆에서 헤라도 도끼눈을 뜨고 쉴 새 없이 떠들고 있었거든.
“당신은 항상 그런 식이죠. 레토고 에우로페고 인간 여성들이고 뭐고 얼굴만 예쁘장하면 눈이 돌아가서 달려드는데 이게 신들의 왕인지 불륜의 왕인지 알 수가 없네요. 당신이 오늘도 이리스에게 추파를 몇 번이나 던졌는지 제가 말해 볼까요! 그런데도 이번에는 강의 신의 딸을 강간해? 거기다 그걸 알려준 기특한 인간을 저승으로 보내요? 내가 하는 말 중에서 단 하나라도 틀린 말이 있다면 어디 한번 반박해 보…”
“으으.. 내.. 내가 잘못했소.”
네놈 입으로 잘못했다고 했겠다.
“그럼 내게 배상을 내놔라.”
“배.. 배상?”
“너 때문에 저승의 업무가 며칠간 바쁘다 못해 터져나갔으니 올림포스의 신들을 당분간 빌려가야겠다.”
제우스가 눈치를 보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린다.
그러더니 슬쩍 입을 여는 것이…
“흠. 흠. 물론. 형님이 원하는 대로 데려가도 좋아..”
“그리고 다시는 바쁜 신들을 네 멋대로 부려먹지 좀 말아라, 특히 이번처럼 쓸데없는 일에는 더더욱…”
안된다고 말했다면 놈의 그곳을 스퀴테로 잘라 버리는 게 어떨가 싶었지만..
그래도 일단 신들의 왕이기도 하고, 헤라한테도 시달리고 있으니 이쯤에서 넘어가주지.
“제우스! 나는 아직 이야기 안 끝났어요!”
“그것이.. 이번 일은..”
애초에 내가 여기까지 올라온 또다른 이유는 신들 몆몇을 저승으로 데려가기 위해서니까.
제우스에게 더 따지기보다는 빨리 저승으로 돌아가서 다시 업무를 봐야 한다.
어디보자, 누구를 데려가서 일을 시키지?
저승의 업무를 경험해본 아테나? 아니면 영혼들을 잘 통솔하던 아레스?
내 눈길이 옆으로 향했다.
멍하니 대화를 듣던 아레스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손사래를 내젓는다.
“허억…! 하데스 큰아버지, 저보다는 아테나를 데려가시는 게 더 좋으실 겁니다!”
“…타나토스 신의 만행을 저승에 바로 보고해준 공이 있으니 너는 빼주마.”
계속되는 헤라의 잔소리를 듣느라 귀에서 이코르가 흐르는 제우스를 뒤로 하고 연회장을 둘러보았다.
어디… 저승에 딱 어울리는 인재, 아니 신재(神材)가 없을까?
* * *
신들은 모든 감각이 인간보다 뛰어나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나누는 대화 정도는 신력으로 차단하지 않으면 아주 잘 들린다.
따라서…
“제우스 님이 또 누군가를 범하신 건가.”
“아니.. 아버지..”
“이번에는 아소포스의 딸이 희생되다니…”
제우스의 악명이 한층 더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
처녀신들이 한숨을 내쉬고, 이미 결혼한 여신들도 몸서리친다.
“그냥 나도 스틱스 강에 대고 처녀성을 맹세할까?”
“차라리 아테나 여신처럼…”
“제우스 님께서 강간과 불륜의 신격을 가지셨다는 소문이 사실이였나?”
이 와중에 혼자만 다른 반응을 보이는 한 여신.
“어머, 제우스 님은 제게 찾아오시지는 않으시고…”
온 세상의 미가 형상화한 듯한 아름다움.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다.
그녀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미소를 짓자 아레스의 얼굴이 풀리며 눈동자가 멍해진다.
그러다가 헤파이스토스에게 크게 다칠 일이 있을텐데.. 쯧쯧.
아프로디테가 구름 위를 가볍게 걸어와 신들을 둘러보던 내게 다가온다.
아니, 저 두통 유발 허리끈은 또 하고 왔네.
“하데스, 오늘 올림포스에 온 걸 보니 역시 저를 다시 만나고 싶었군요?”
“네 남편한테나 가라.”
사랑의 여신의 고운 이마가 살짝 찌푸려진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아름다움으로 승화한 여신은 내게 미소를 지어보인다.
“후후훗.. 언제까지 튕기실 건지는…”
“아프로디테, 너무 하데스를 곤란하게 하지는 마.”
“어머? 헤스티아 님?”
연회장 한쪽 구석에서 화로를 지키던 헤스티아가 슬며시 다가와 말한다.
“헤스티아 님은 스틱스 강에 처녀성을 지키기로 맹세하신게 아니였나요?”
“…? 그거랑 이게 무슨 상관이야.”
“남녀간에 자유로운 사랑을 막으려고 하는 것은 하나밖에 짐작가는 일이 없는데요?”
아프로디테가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헤스티아의 뒤로 돌아가 속삭인다.
저 음흉한 눈길은 사랑의 여신이 가지는 특징인가?
“핫! 하데스랑 나는 그런 사이가 아니야!”
“에이, 저에게만 슬쩍 말해주셔도 좋아요. 사랑 상담은 이 사랑의 여신에게~”
가만, 아프로디테의 매혹이 저승의 영혼들을 통솔하는 데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지 않을까?
* * *
“아프로디테.”
“네에~ 말씀하세요. 하데스.”
“혹시 저승으로 잠깐 올 생각은 없나?”
아프로디테가 활짝 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한다.
“아~ 그런 취향이셨네요. 진작 말씀하시지. 조용하고 은밀한 곳에서 보내는 시간도 나쁘지는 않아요.”
“그래서, 올 생각은?”
“그야 당연히 있죠!”
그 웃음에는 매혹적인 신력이 묻어나와 머리가 아프지만,
나 역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 정도면 저승에 오는 영혼들은 아주 정신을 차리지 못하겠군.
“어차피 미와 사랑의 여신이면 올림포스에서 따로 할 일도 없겠지?”
“그럼요! 당신과 뜨거운 하룻밤… 아니 뜨거운 며칠 밤낮도 보낼 수 있는걸요.”
그런 우리를 바라보던 헤스티아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결연한 표정을 짓는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다…
“하.. 하데스! 그러면 안 돼! 너한테는 레테랑 스틱스가…”
“아직 하데스랑 결혼도 하지 않은 여신들이잖아요? 제가 먼저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
“음. 즐거운 시간, 아주 좋은 말이지.”
네가 저승에 온다면 모두가 조금 더 즐겁게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뱃사공 카론이나 하급신들이 아주 좋아하겠군.
그렇게 아프로디테와 내가 서로를 바라보며 기대에 찬 미소를 보내고 있을 때,
올림포스 외곽에서 굉음이 들렸다.
쿵! 쿠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