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35)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35화(35/82)
오토스와 에피알테스의 이야기 – (3)
자신들을 오토스랑 에피알테스라고 소개한 거인들을 잠시 손봐주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내게 주먹이 날아오는 건 적당히 피해주고, 진정 좀 하라고 팔에 따끔한 바이던트를 꽂아주고…
“아아악!”
“오토스!”
이쯤에서 적당히 신력을 끌어내 위압해주면…
오토스라고 하는 거인의 몸이 굳고, 눈에는 공포감이 깃든다.
제법 강하지만 전투 경험이 전혀 없는 게 빤히 보여.
“일단 너부터 감옥행이다.”
쓰러진 거인의 눈에 바이던트를 겨눈다.
하지만 진짜 노리는 부위는 발목.
오른손으로는 눈에다 바이던트를 찌르는 시늉을 하고,
왼손으로 조용히 허리춤의 스틱스 검을 뽑아 오토스의 발목을 베려던 찰나,
“잠깐! 잠시만 기다려주게, 하데스 형님!”
“제우스?”
어느새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온 제우스가 날 부르는 목소리.
그는 바람을 눈치챈 헤라에게 머리칼이 뜯겼는지 머리에서 이코르가 흐르고 있었다.
빠진 머리카락을 다시 주섬주섬 꽂아넣는 제우스의 모습은 참으로 우스꽝스러웠다.
그러나 입가에 띤 미소는 결코 우스워 보이지 않았다.
일단 제우스가 무슨 생각이 있어보이니 바이던트를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이런 거인들쯤이야 언제든지 다시 제압할 수 있기도 하고…
“으으…”
내가 조금 물러나자 두 거인들이 몸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미 공포가 깃든 눈과 작게 떨리는 손가락이 그들의 심정을 나타낸다.
피를 흘리는 거인들을 힐끗 바라본 제우스가 날카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흠. 흠. 올림포스에 온 귀한 손님들인데 잘 대접해야지.”
종종 제우스가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는 이들에게 내비치는 진심.
“그래, 헤라와 아르테미스를 받으러 왔다고?”
저 미소와 가라앉은 눈에서 싸늘한 살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오토스와 에피알테스, 두 형제는 눈치채지 못했다.
보아하니 나이는 어리고 힘만 강한 애송이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어째서 제우스의 파격적인 제안에도 다른 신들이 반발하지 않는지 알아챌 수 없었다.
“맞다! 제우스 님, 우리는 아르테미스와 헤라를 아내로 맞이하기로 스틱스 강에 맹세했다!”
“빨리 우리에게 둘을 넘겨라!”
둘다 멍청해 보이지만 방금 내가 공격했던 오토스라는 쪽이 아주 살짝, 눈치가 더 있네.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지만, 대체 어떻게 하면 방금 내 창에 잔뜩 찔리고도 저런 말이 나오는거지?
방금 나는 오토스와 에피알테스 형제를 제압해 저승의 감옥으로 끌고 가려 했었다.
예언에서 말했듯이 그들을 죽일 수 없기도 하고, 내가 아는 익숙한 신력의 느낌도 들었으니까.
그걸 제우스가 모를 리는 없겠지, 하지만 날 말린 이유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기 위해서가 아니야.
감히 자신과 올림포스에 도전한 이들을…
“아아, 물론 그대들 같은 영웅호걸에게는 헤라와 아르테미스가 아깝지 않지!”
“정말인가? 하.. 하지만 여기 하데스 님은…”
“하데스 형님께서는 잠시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야, 하하하!”
아예 죽여버리기 위해서지.
* * *
“지금 당장이라도 헤라와 아르테미스를 넘겨주고는 싶지만…”
“싶지만..?”
“그들은 이 자리에 없네.”
자신들이 아내로 점찍은 두 여신이 이 자리에 없다는 소리를 들은 거인들이 화를 낸다.
아마 제우스가 어디론가 빼돌렸거나 잠시 숨어있으라고 했을지도.
“뭐야?! 제우스 님! 우릴 속인 건가?”
에피알테스라는 거인이 얼굴을 구기며 소리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우스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달랜다.
“아르테미스는 낙소스(Naxos) 섬에서 중요한 일을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 없네.”
“무슨 중요한 일을 말하는 건가?”
“기가스라는 괴물을 탐색하는 일이지, 하반신이 뱀이고 상반신은 인간의 형태를 한 강력한 괴물들이네. 아마 자네들도 상대하기 어려울걸?”
아르테미스는 실제로 연회장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럼 정말로 낙소스 섬에서 기가스의 흔적이 발견된 걸까.
“그런데 여태까지 오지 않는 것을 보아하니 그 괴물들에게 붙잡혀 포로가 된 모양이야, 으음.. 용맹한 맹자(猛者)들이 나서주면 좋겠지만..”
“아르테미스가 붙잡혀?! 그럼 제우스 님! 우리가 그 기가스라는 놈들을 죽이고 아르테미스를 구해온다면…”
“오, 그렇게만 해준다면 올림포스에서 동반으로 결혼식을 열 수 있도록 허락하지!”
이럴 속셈이였나, 제우스.
분명 제우스의 말에는 허점이 너무 많다.
은근히 그들을 부추기는 어조, 괴물들을 잡아야 결혼을 허락한다는 조건, 헤라의 위치에 대해서는 두루뭉실하게 넘어가버리는 대답.
하지만 두 거인 형제는 전혀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다.
어리고 경험이 적은 거인들인 탓도 있겠지만,
제우스의 바로 옆에서 설득의 여신, 페이토(Peitho)가 은은하게 힘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
신들의 왕이 대충 내뱉는 허점 투성이의 말들이 묘한 설득력을 가지고 거인들의 생각을 어지럽힌다.
“그럼 어서 출발해주게! 더 늦으면 아르테미스가 기가스들에게 당할지도 모르니!”
“아.. 알았다! 약속은 꼭 지켜라 제우스 님!”
“낙소스 섬이라는 곳이 어디지?”
그렇게 두 멍청이들은 제우스의 말에 넘어가 올림포스에서 내려갔다.
차라리 아까 제압되어 저승의 감옥에 갇히는 것이 나았을 텐데.
이제는 숨길 필요도 없다는 듯,
올림포스에서 내려가는 거인들을 싸늘한 눈초리로 바라보던 제우스가 입을 열었다.
신들의 왕이 표정을 풀고 넥타르가 담긴 술잔을 높게 들어올리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다.
“잠시 무뢰배들이 나타났으나, 내가 직접 처리할테니 모든 신들은 걱정하지 말고 계속 연회를 즐겨 주시오!”
“오오… 알겠습니다!”
“올림포스에 도전한 이들의 결말은 뻔하지.”
“낙소스 섬이라고? 그곳이 놈들의 무덤이겠군.”
“놈들의 마지막 행운은 아까 하데스 님에게 제압되는 것이였는데 말이야. 하하하!”
“예언에도 허점이 얼마나 많은데.. 쯧쯧.”
제우스의 말이 끝나자 아폴론이 연주하는 부드러운 리라 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9명의 무사이 여신들이 예술혼을 발휘하고 디오니소스가 포도주를 만들어 신들에게 나눠준다.
“오.. 이게 바로 그 포도주라는 것이군요.”
“감사히 받겠습니다, 디오니소스 님.”
이제 올림포스 신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술잔을 기울이고 암브로시아를 먹기 시작하고,
청동 항아리를 가볍게 부수고 나온 아레스가 귀한 항아리를 부쉈다며 투덜거린다.
나는 바로 제우스에게 향했다.
* * *
“제우스. 낙소스 섬에 기가스가 발견되었나?”
“아, 형님은 아직 모르시겠군. 얼마 전에 헬리오스가 태양 마차를 몰다가 놈들의 흔적을 발견했어.”
기가스들은 대지모신 가이아가 만든 괴물들.
땅에 몸이 닿아있으면 강해지고, 엄청난 재생력을 얻는다.
때문에 육지에 계속 붙어있어야 하는 놈들이 하필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섬에서 발견된다?
이건 분명 가이아의 함정.
경솔한 올림포스 신들이 섬으로 내려가 기가스들을 수색하길 기다리고 있겠지.
“섬에 놈들이 침투했다고? 바다에 있는 포세이돈의 권속들을 속아넘기고?”
“기가스들이 우리의 전력을 깎기 위한 함정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어.”
내 질문에 그의 고개가 양 옆으로 저어진다.
기가스들이 섬에 침투해 수작을 부리는 것을… 일부러 적당히 속아줬구나.
언제든지 섬을 통째로 가라앉히거나 없애버릴 수 있으니 가이아와 기가스들이 어떤 함정을 준비하는지 확인할 생각이였나.
기가스들은 분명 신족이지만 불사성도 없고 괴물의 속성이 더 강해,
놈들을 죽일 수 있을지는 직접 봐야 알겠지만…
“거기서 거인들이 죽지 않아도 문제없어, 내 아들 디오니소스가 있으니까.”
“광기에 빠뜨려 서로를 죽이게 만든다?”
“흐. 감히 내게 도전한 놈들은 살려둘 수 없지.”
그래.. 어쩐지 내가 제압해서 저승으로 끌고 가려는 걸 말린다 싶었다.
힘만 세고 멍청한 거인들을 이용할 방법이 있었으니 그랬겠지.
제우스가 그들을 제압하려던 나를 말릴 때 대충 눈치챘지만 굳이 나서서 반대하지는 않았다.
이미 결혼한 신들의 여왕과 스틱스 강에 처녀를 맹세한 여신을 힘으로 취하려는 것은 분명 올림포스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일.
정의가 아닌, 힘의 다툼이였기 때문에 거인들이 죽어서 저승에 온다면 그리 좋은 대접은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어느 신의 자식들 같더라고.”
“중요한 건 감히 이 제우스에게 도전했다는 사실이지. 놈들은 거기서 처참하게 죽을 거야.”
만약 광기의 신 디오니소스가 그들의 정신을 뒤흔드는데 실패해도 제우스가 생각한 방법은 또 있겠지.
짐승으로 변이한 구름을 보내 서로에게 창을 던지도록 유도한다던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매혹한다던가.
“기가스가 준비한 함정도 확인하고, 골칫덩어리도 치워버리는 좋은 방법이지.”
“물론 그렇긴 한데…”
“슬슬 놈들이 낙소스 섬으로 걸어들어가는군. 디오니소스! 혹시 모르니까 너도 준비해라.”
이럴 때는 신들의 왕답게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제우스지만…
저번에 시시포스 건도 그렇고, 대체 왜 여자 문제만 엮이면 하반신으로 생각을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