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37)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37화(37/82)
우당탕탕 저승의 이야기 – (2)
쩌적- 콰지지직!
카론의 나룻배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반으로 갈라지는 소리.
아니, 부숴지는 소리.
우리 신들은 인간들과 다르게 빠른 반사신경을 가진 초월자들.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기민하게 움직였다.
카론이 급하게 오토스와 에피알테스의 영혼들을 밀쳐내며 강변으로 몸을 던진다.
아케론 강은 저승의 영역권, 내가 강물을 조종해 가라앉는 난파선을 끌어올린다.
쿠쿵. 쿵.
“허억… 이런 미친!”
“수천 년 동안 단 한번도 부서진 적이 없던 나룻배가…”
“…?!”
여기까지가오토스와 에피알테스의 영혼이 강물에 빠지지 않은 이유였다.
카론 영감님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입을 벌린다.
아프로디테도 말로만 듣던 카론의 나룻배가 부서지는 걸 보고 놀란 모양.
“저거 신물 아니였나요…?”
“아니, 아예 이렇게 박살이 날 줄은…”
“짐작 가는 일이라도 있습니까? 저번에 뭔가 실수를 하셨다던가…”
저 두 영혼이 아무리 무겁다고는 해도 카론의 나룻배는 신물(神物).
카론의 권능이 배의 무게를 줄이고, 강에서의 이동을 보조하는 등 여러 기능이 달려있다.
통상적으로는 아무리 많은 영혼이 올라타도 결코 부서질 이유가 없을 텐데…
“저번 대홍수 때부터 살짝 삐걱거리더니 결국은 이렇게 되었군.”
“대홍수 때부터요? 제게 미리 말씀하셨으면 조치를 취해드렸을 텐데요…”
“…? 바빠 죽겠는데 어떻게 성채까지 가서 말을 하나?”
하기야, 그 오랜 시간 동안 나룻배를 움직였는데 여태까지 멀쩡한 것도 신기하긴 하다.
아무리 신의 권능이니 뭐니 해도 너무 오랫동안 혹사를 시켰나.
“하긴 저승이 만들어진 이래로, 수많은 영혼들이 나룻배에 올라탓으니까요. 망가질 만도…”
“쯧… 필멸자들이 사소한 일로도 자꾸 죽어나가는 탓이야.”
아예 박살이 나버린 나룻배의 흔적과 자신의 노를 바라보며 말하는 카론.
그의 얼굴에서 허망함이 묻어나왔다.
“젠장! 이게 무슨 일인가! 하데스!”
“보다시피 카론의 나룻배가 이 모양이 되었습니다. 타나토스.”
이승으로 수많은 분신을 파견해 조종하던 타나토스가 나타났다.
아마 아케론 강에서 수많은 영혼이 정체된 사태 때문에 항의하러 온 것 같았다.
아케론 강을 건너지 못하고 점차 늘어만 가는 영혼들 역시 단체로 혼란을 호소했다.
우리들을 발견하고는 수근거림이 더욱 심해지는 망자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헉.. 프.. 플루토 신?!”
“설마.. 신전의 신상과 똑같아.. 아프로디테 님?”
“카론 님의 나룻배가 왜…?”
죽어서 타나토스의 인도를 받아 저승으로 내려왔더니.
타고 가야 할 나룻배는 부서져 있고, 뱃사공 카론은 노를 들고 멍하니 있었고,
타나토스에 나, 아프로디테까지 마주한 영혼들은 넋이 나간 얼굴을 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제우스시여…”
* * *
일단 빨리 수습해야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저번처럼 세계의 순환이 또 깨지게 된다.
“아프로디테, 지금부터 오는 망자들을 모조리 매혹해서 질서정연하게 세워라.”
“예..? 아 예..”
“타나토스! 스틱스 강 근처에 빠진 망자들을 건지기 위한 작은 배가 있을 겁니다, 그걸 가지고 와주세요.”
“이런 젠장! 알겠네!”
“타나토스가 배를 가지고 오면 아케론 강 너머로 망자들을 실어나를 수 있겠죠, 카론?”
“할 수는 있지만 배의 속도나 내구성도 내 나룻배와는 많이…”
“일단 그렇게 해주시죠. 빨리 새 배를 만들어 이곳으로 보내겠습니다!”
젠장, 이놈의 저승은 하루가 멀다하고 사고가 터지는군.
“하데스! 망자들이 갑자기 오다가 마는데 대체…”
“스틱스 여신님! 카론의 나룻배가 부서졌습니다!”
망자들이 갑자기 오지 않는 사태에 당황해 달려오는 스틱스 여신.
그녀에게 급하게 상황을 설명하자 역시 타나토스와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리가요! 그 나룻배는 오랜 세월에도 흠집 하나 나지 않았던…”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 부서질 만도 합니다!”
“…?!”
곧 스틱스 여신의 권속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타나토스의 분신들과 함께 배를 운반하는 것을 보고,
급하게 저승의 집무실로 돌아와 일을 수습했다.
“하데스 님! 혹시 저번처럼 타나토스 신께서…”
“그게 아니라 이번에는 카론의 나룻배가 부서져서 그런 것이니 빨리 업무나 보게.”
“네…?!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올림포스에 연락해 내가 헤파이스토스를 급히 찾는다고 전해라!”
이참에 카론의 나룻배를 새로 개조해야겠다.
다시는 이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더 크고 더 튼튼하게 만들어야겠다.
퀴클롭스를 아득히 뛰어넘는 세계 최고의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스가 직접 만든다면 이런 일이 없겠지.
그래도 대장장이 신을 보조해 줄 만한 자들이 더 있다면…
이왕 만들거, 제대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
“다이달로스(Daedalus), 그리고 피그말리온(Pygmalion)도 불러라. 므네모시네 여신님께 들러 그들의 기억을 회복시키고 오도록.”
“알겠습니다!”
이승에서 온갖 파란만장한 삶을 살던 이들도, 결국에는 모두 저승에 오게 된다.
다이달로스는 저승의 심판관인 미노스 왕과 같은 시대를 살던 최고의 건축가이자 발명가.
그리고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만든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 조각가이다.
놀랍게도 사랑에 빠진 조각상과 결혼까지 했다는데…
아프로디테가 피그말리온이 만든 조각상을 실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프로디테가 네가 만든 조각상을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예, 제가 제물을 바치고 기도를 드리자 응답해 주셨습니다!”
“어쩐지 저승의 명부에 조각상이…”
사람이 된 조각상이 저승의 백성으로 왔을 때는제법 당황했었지.
* * *
그렇게 그리스 최고의 건축가, 조각가, 대장장이가 모두 저승의 성채에 모였다.
이유는 카론에게 새로운 배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허억… 헤파이스토스 신과 함께 작업을 할 수 있다니 정말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다이달로스라고? 네 이름은 나도 많이 들어보았다.”
“저는 조각가인데.. 혹시 선수상을 만드시려는 겁니까?”
피그말리온의 말이 맞다.
이왕 나룻배가 부서진 이상, 카론에게 제대로 된 배를 만들어 주려고 한다.
당연히 뱃머리에 카론의 모습을 한 선수상도 있어야 하고.
“하데스 큰아버지, 혹시 금속으로 배를 만드는 것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금속? 그게 가능할까?”
“예, 어차피 움직이는 것은 권능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내구성을 확보하기…”
“내부 설계는…”
하늘과 우주에도 진출했던 내 전생이라면 모를까,
아무리 대장장이 신이라고 해도 기술력에는 한계가 있으니금속으로 만든 배가 잘 움직일 것 같지는 않지만…
신화의 시대이기에 부족한 부분은 초자연적인 힘으로 메꾸면 가능하다.
그리고 저승에서는 나무가 자라지 않지만 금속은 차고 넘치니 괜찮을지도?
“어디 한번 해보도록. 필요한 재료는 얼마든지 지원해주겠다.”
“그럼 큰아버지! 이 세계 최고의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스만 믿어 주십시오!”
대장장이 신이 호탕하게 웃으며 근육질의 가슴을 두드린다.
옆의 다이달로스도 해볼 만하다는 표정으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저승에서 때아닌 배 건조 작업이 시작되었다.
카앙! 캉!
“이게 지하 깊은 곳에서만 난다는 그 금속인가?”
“이제부터 아케론 강에 이게 돌아다닌다는 말이지?”
“그쪽은 조금만 옆으로 돌리게.”
“금속으로 만든 배라니, 저승에 이런 것이 생길 줄은…”
수많은 저승의 기술자, 대장장이 및 일꾼들이 달려들어 지시에 따라 자재를 옮기고 있었다.
한쪽에는 죄를 짓고 노역을 하는 자들이 무거운 금속을 옮기고 있었고,
헤파이스토스와 다이달로스가 바삐 돌아다니며 지시를 내리는 중이였다.
“씁. 카론 님의 탈모를 어떻게 해야 웅장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냥 풍성하게 만들면…”
그리스 최고의 조각가인 피그말리온이 카론의 모습을 본뜬 선수상을 만드는 모습도 보였다.
카론의 모습을 피그말리온이 조각하면, 신의 권능을 불어넣어 뱃머리에 놓을 생각이였다.
카론의 배를 만드는 작업은 빠르게 끝났다.
대장장이 신의 지휘, 다이달로스의 설계, 지치지 않는 영혼 일꾼들이 힘을 합쳤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카론도 만족하겠지?”
“말씀하신대로 배의 아랫부분에 여러 장치를 해놓아 물살을 밀어내도록…”
나는 영혼 수십 명이 올라타도 멀쩡할 것 같은 거대한 배를 바라보았다.
온갖 금속으로 만들어졌고, 내가 헤파이스토스에게 요청한 대로 물살을 자연스럽게 밀어내는 장치가 부착되었으며,
거기에 신의 권능과 카론의 모습을 한 선수상까지.
“포세이돈이 탐낼 것만 같네.”
카론의 초라한 나룻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 * *
저승의 입구 근처, 아케론 강.
급하게 영혼들을 실어 나르던 카론,
그리고 난동부리는 영혼들을 통제하던 아프로디테가 우릴 반긴다.
“아니… 이제부터 이걸로 영혼들을 나르란 말인가?!”
“하데스, 저는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요?”
아프로디테는 모르겠고.. 일단 웅장한 배를 바라보는 카론 영감님이 보인다.
그가 배 위로 올라타더니 이것저것 만져보며 감탄한다.
“오오! 물살을 헤치는 권능도 있구만, 이거라면 더 이상 노를 젓지 않아도…”
“아, 아케론 강의 법칙 때문에.. ‘노를 젓는 행위’자체는 계속 해주셔야 합니다.”
잠시 밝아졌던 카론의 얼굴이 다시 거무죽죽하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