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38)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38화(38/82)
우당탕탕 저승의 이야기 – (3)
“카론 영감님, 그래도 전보다는 노를 덜 저으셔도 될테니…”
“크흑. 자네가 뭘 아나! 어차피 이전에도 권능으로 이동해서 노는 얼마 젓지 않아도 되었네, 중요한 건 내가 이 아케론 강에서 필멸자 놈들이나 태우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사실이지! 배가 스스로 나아갈 수 있는 장치도 있으면서 왜 내가 계속 노를 저어야 하는 건…”
평소 영혼을 실어 나르는 일이 많이 힘드셨구나.
이 저승 밑바닥 일이 다 그렇긴 하지.
“그래도 타나토스 신보다는 낫지 않으십니까. 기운 내시지요.”
“전혀 위로가 되지 않네만…”
아케론 강의 뱃사공, 아니 선장 카론은 새롭게 장만한 배 위에서 노를 젓게 되었다.
거대한 배의 크기에 맞게 그의 노 역시도 길게 변했다.
“이승에 영향력을 행사해 죽은 자의 입에 물리는 동전을 조금 늘려 보겠습니다.”
“…돈은 필요 없으니 쉬게만 해주게.”
그래도 내 신전의 사제를 통해서 말이라도 해놓자.
망자의 가족이 아무리 가난해도, 장례식에 가는 조문객들이 조금씩이라도 보태면 카론의 주머니도 두둑해지겠지.
나중에는 이게 조의금… 부의금이라고 알려지려나.
“올라타라, 이것들아! 아케론 강 너머로 데려다주마!”
영혼들을 실은 배가 카론의 노질에 의해 다시금 멀어진다.
배 밑바닥에 자동 모터도 만들었지만 저승의 법칙이 이러하니 카론은 계속해서 노를 저어야 할 운명.
“하데스. 제 얘기는 안 들리세요..? 이제 슬슬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한쪽에서 영혼들을 통제하던 아프로디테가 이쪽으로 다가와 내 가슴팍에 손을 올린다.
사랑의 여신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유혹한다.
음, 치워라.
“그것보다 네가 저승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온 망자가 있는데.”
“네? 저를 만나고 싶어하는 영혼이요?”
의아한 표정을 짓는 아프로디테와 잠시 기다리자,
아케론 강 반대편에 영혼들을 내려주고 온 카론의 배에서 한 남성이 나온다.
그는 아프로디테를 보자마자 급하게 달려와 엎드렸다.
“아.. 너는 분명 기억에 있던 인간인데.”
“아프로디테 여신이시여… 당신의 은혜를, 은총을, 자비를 받은 저 피그말리온이 감사 인사를 올리나이다.”
그 남성의 이름은 피그말리온(Pygmalion).
아프로디테의 은혜로 자신이 만든 조각상과 결혼할 수 있게 된 세계 최고의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조각상을 만들 때보다 진지한 얼굴로 아프로디테 여신의 앞에서 예를 갖췄다.
필멸자가 내비치는 진심에 미와 사랑의 여신도 자세를 바로잡았다.
아프로디테 여신이 신도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는다.
피그말리온은 감격한 듯 몸을 더욱 낮췄다.
“조각상을 만들고 내게 기도를 올리던 키프로스 섬의 조각가구나.”
“예! 여신님의 축복 덕분에 사랑하는 아내와 여한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내가 생명을 불어넣어준 그 여인과.. 죽을 때까지 진심이였던 그 지고지순한 사랑은 잘 보았다.”
한낱 조각상이 아닌, 여인이라고 칭하는 어투에 조각사가 몸을 떤다.
“이 모든 것이 여신님의 은혜, 제 사랑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만큼 네가 절실하게 사랑을 갈구하였기에 보답을 받은 것이라 생각해라.”
나는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조용히 있었다.
지금의 아프로디테는 미의 여신이 아닌, 사랑의 여신다운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있었기에.
* * *
눈물까지 흘리며 감사인사를 표하던 피그말리온이 돌아갔다.
그러고 보니 그녀에게 궁금했던 것이 있었는데..
“그때, 무슨 생각으로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었지?”
“아~ 그때요?”
아프로디테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고민하는 모습도 아름다운 여신의 자태가 아케론 강에 비쳤다.
곧 여신이 장난스런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필멸자들의 불가능한 염원을 이루게 해주고, 간절한 기도에 응답해주는 것이야말로 신이 아니겠어요?”
불가능한 염원과 간절한 기도라.
우리 신들은 영원을 살아가지만 감정이 무뎌지거나 기계처럼 맡은 일만을 반복하지는 않는다.
형성된 성격을 유지한다고 해야 할까? 인간성을 가진 인격신들이라고 해야 맞을까.
그렇기 때문에 제우스의 강간 사건이나 파에톤과 헬리오스의 비극,
신들의 반란이나 타나토스의 파업 등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뭐, 사실 따지자면 그냥 변덕이랄까요. 설마 인간이 제 마음을 움직일 줄은…”
간혹 이런 미담도 생겨나는 것이겠지.
그렇게 혼자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아프로디테가 날카로운 눈길로 나를 째려본다.
“그건 그렇고, 제가 아까부터 물었잖아요. 이제 슬슬 저랑 함께…”
“아, 뜨거운 시간을 좋아하면퓌리플레게톤강으로 배정해줄 수도 있다.”
“아니! 왜 제가 저승에서 일을 해야하는데요!”
“…? 저승에 오고 싶어 했지 않았나.”
미의 여신의 표정이 마구 구겨지고 역정을 낸다.
“그러니까! 제 말뜻은 그게 아니잖아요! 저랑 함께 즐거운 시간을…!”
“피그말리온도 만나고, 여기서 일하는 것도 꽤 즐겁지 않았…”
“아아악! 저, 저는 그냥 돌아갈래요!”
뭣. 돌아간다고? 어림도 없지.
이미 제우스한테 원하는 신을 데려가도 좋다고 허가도 받았겠다.
너는 여기서 좀 더 일을 해야 한다.
“참고로 너를 데려오는 건 제우스도 허락했다.”
“네…?!”
“타나토스 건으로 항의해서 올림포스의 신 몇몇을 파견받기로 했거든.”
제우스가 자신을 팔아넘겼다는 소식을 들은 아프로디테의 표정이 멍해진다.
자신에게 일어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하는 모습이다.
“그렇게 되었으니 아케론 강에서 망자들을 잘 부탁한다.”
“하.. 하데스!”
아케론 강에서 열심히 고생해주는 아프로디테.
그녀 덕분에 저승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 내게도 체감이 된다.
카론이 빠르게 영혼을 인계받자 타나토스의 업무 효율도 향상되고,
시름의 강 코퀴토스에 빠르게 도달하는 영혼이 늘어 결론적으로 저승의 모든 신들에게 여유가 생겼다.
심지어 종종 죽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난동을 부리는 자들이 줄어들…
“하데스으으! 제가 기대한 건 이런 게 아니었다고요!”
* * *
아무튼 아케론 강에서 수고하는 아프로디테를 격려해준 다음,
저승의 성채로 돌아와 옥좌에 기대고 머리를 젖혔다.
최근 들어 너무 많은 사건이 터졌어..
그래도 저승에 아프로디테 여신이 도와주고 있으니까 당분간은 시간이…
포옥.
옥좌 뒤에서 느껴지던 기척이 슬며시 다가와 나를 껴안는다.
부드러운 은발의 머릿결, 고운 손길.
“레테 여신님, 레테 강에 있는 망자들 통솔을 어떻게 되어가…”
“제 권속에게 맡겼어요.”
“그럼 이번에 새로 뽑은 시종들의 선별은…”
“그런거는 생각하지 마요.”
작디작은 여신의 손길이 내 시야를 살포시 덮길래 그냥 눈을 감았다.
편하게 젖힌 머리로부터 푹신한 어딘가에 닿는 느낌이.. 음.
옥좌 뒤에서 나를 껴안는 레테 여신에게서 벗어나 앉으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저기..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시는데요…
“제우스나 포세이돈은 하데스처럼 업무량이 많지 않던데요.”
“…저승의 특성 때문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하늘과 온 세계를 지배하는 제우스가 제일 바쁠지도 모르겠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신들에게 업무를 분담했다.
태양과 바람, 자연과 대지, 예술과 광기…
기가스의 위협이나 전쟁 같은 큰 사건을 제외하고는 다른 올림포스 신들 선에서 처리된다.
광활한 바다와 물을 지배하는 포세이돈 역시,
수많은 바다의 요정, 네레이스들과 신수(神獸)들에게 대부분의 일을 맡긴다.
사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바닷속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사건이 아니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해저에 지진이 일어나든.. 바닷속에서 상어가 물고기를 잡아먹든,
이 모든 일이 자연스러운 죽음이고, 생태계의 순환이기 때문에.
하지만 내가 있는 저승은 조금 다르다.
바로 그 순환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조정하는 위치.
저승에 오는 영혼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새로 태어나는 생명들에게 영혼을 배정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저승의 공간이 모자라거나 포화가 일어나면, 죽은 망자들을 받기가 힘들어진다.
저승에서 죄에 대한 판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세계의 법도가 바로 서지 않는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문제는…
“모든 신들이 너무나도 바쁩니다. 당장 카론이나 타나토스만 봐도…”
“하기야 그렇죠…”
올림포스와 다르게 업무 분담의 효과가 크지 않다…!
한가한 신들이 거의 없는데 대체 어떻게 일을 나눠주나.
그렇다고 모두가 꺼려하는 복수의 여신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고.
“제 힘으로 머리라도 맑게 해드릴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레테 여신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속삭인다.
그녀의 망각의 권능이라면 피로를 잠시 잊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겠지.
머리에 있는 불필요한 기억을 잠깐 덜어준다고 해야 하나…
쪽.
…?!
이마에 닿는 부드러운 감촉도 잠시,
그곳에서부터 머리가 맑아지며 정신적인 피로가 녹아내린다.
아니, 그보다 방금 제 이마에 입술을…
“쉿. 아..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쉬세요.”
감고 있던 눈을 떠보니 은발과 대비되는 새빨개진 여신의 얼굴이 보인다.
건드리면 터질 것만 같이 달아오른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럴까요.”
내 얼굴 또한,레테 여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