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41)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41화(41/82)
불길한 징조 – (3)
거대한 뱀의 하반신, 아름다운 인간 여성의 상반신인 괴물,
그러나 그 몸에 들어간 자의 정체는 시간과 농경의 신 크로노스.
“왜, 내가 이승에 나올 줄 몰랐더냐?”
“정확히는 가이아 님… 가이아가 당신을 불러낼 줄 몰랐다는 것이 정확하겠죠.”
“으하하하! 어머니가 얼마나 애가 타셨으면 나를 불렀을까?”
크로노스의 웃음에 따라 주변의 시간이 제멋대로 흐른다.
1세대 티탄 신족의 신력이 방출되며 주변의 풍경을 마구 일그러뜨린다.
빌어먹을 가이아.
인간들 수십을 희생해 불러내려던 것이 크로노스였습니까?
당신의 자식인 티탄들이 타르타로스에 들어간 것이 그리도 싫었습니까?
그래도 가이아가 숨겨둔 비수를 지금이라도 눈치챌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만약 의식을 무시하고 에키드나를 죽였다면…
올림포스는 먼 훗날, 어딘가에서 힘을 회복한 크로노스와 마주쳤을지도.
“가이아는 당신과 우릴 싸우게 만들 생각인데, 실컷 이용당하다가 다시 타르타로스에 처박힐 생각입니까.”
“이승의 공기를 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보상이다. 크하하!”
타르타로스에 오래 갇혀서 쇠약해진 크로노스라도 그는 시간의 신격이자, 티탄.
한때 세계의 패권을 쥔 주신이였으며 우리에게도 위협이 된다.
그러나 타르타로스의 신격을 이승으로 끌어오는데 필요한 조건은…
수십의 인간 제물,가이아 님의 막대한 신력, 빙의할 몸뚱이와 기이한 의식진.
신들의 감시를 피해 여러 번 달성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이승의 풍경을 실컷 보고 가시죠. 어차피 이제부터는 나올 기회가 없을 테니까.”
“아직도 눈치채지 못했느냐? 나는 점점 이 몸에 적응하고 있다.”
괴물의 육체에 빙의해 신력을 끌어올리는 크로노스의 기세가 점차 강해진다.
몽둥이를 들고 나를 경계하던엥켈라도스 역시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그쪽만 시간을 끌고 있던 건 아닙니다.”
“뭐라고?!”
그렇게 기세를 끌어올리면
저 하늘 위의 태양이 눈치채지 않겠습니까?
콰아아아아아앙!!!
산을 통째로 뚫고 들어온 강렬한 빛줄기가 그들을 타격했다.
그러나 공격의 여파는정확히 내 앞에서멈췄다.
후두둑. 툭.
어두웠던 동굴이 통째로 날아가며 환한 햇살이 모두를 비춘다.
산의 일부를 없애버리는 강력한 공격, 방금 발산된 크로노스의 힘을 포착해 그들만을 타격하는 정확성.
구름 위에서 아폴론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활을 잡고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가 입을 열자 사방에 웅장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필멸자들아, 모두 눈을 감고 하늘을 쳐다보지 말아라. 내 본신을 본다면 타버릴 테니까!”
인간이 모든 힘을 드러낸 신의 본체를 직시한다면 죽어버린다.
제우스의 모습을 목격하고 죽은 디오니소스의 모친, 세멜레가 그 예시.
그에게서 엄청난 열기와 광채가 퍼져나오고 필멸자들은 두려워하며 고개를 조아린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신이거나 티탄, 신과 대적하는 괴물들.
모두가 똑바로 아폴론의 본체를 바라보았다.
몸을 털고 일어나는 기가스와 아폴론의 공격을 막은 크로노스가 인상을 찌푸린다.
“후우~! 처음 뵙겠습니다. 할아버지!”
“늦었다. 아폴론.”
“태양이라… 헬리오스가 생각나는군. 제우스 놈의 아들인가?”
“크로노스 님! 저놈은 태양의 신, 아폴론입니다!”
* * *
티폰과의 전투에서 보여줬던 진심전력을 끌어올린 아폴론이 하계로 내려온다.
태양의 환한 빛줄기가 반쯤 뭉게진 산을 더욱 밝히며 그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스틱스 여신님의 연락을 받고 달려왔습니다! 큰아버지, 아니 지금은 고모님이라 불러드려야 할까요? 하하!”
“헛소리는 나중에 해라.”
바닥에 쓰러진 인간들의 시체를 본 태양의 신이 유쾌한 농을 던지지만,
동시에 이성의 신이기도 한 그의 눈가는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아폴론이 냉소를 지으며 다시 활시위에 태양의 빛을 머금게 하고,
하데스 역시 검은 어둠으로 이루어진 창을 형성해 크로노스에게 달려들었다.
“하데스! 이 아비에게 또다시 덤벼들다니,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패륜적인 자식이구나!”
“자기 자식을 처먹는 당신이 할 소리는 아니다!”
뱀의 하반신을 가진 괴물에게 빙의한 크로노스가 손을 휘젓자 시간이 느려진다.
달려들던 하데스의 움직임이 둔화되고 권능의 충돌로 스파크가 발생했다.
카가가강! 파지직!
저승의 군주와 시간의 주인,
두 불멸자의 대립으로 이미 반파된 산의 붕괴가 가속화되기 시작한다.
근처의 나무나 물고기, 생명들이 순식간에 노화하거나 검은 기운에 침습당해 죽어나간다.
“그 껄끄럽던 퀴네에도 없이 나와 대적해 보려고?”
“내가 타르타로스에서 썩어가던 구시대의 유물 따위에게 질 것 같나?”
그러나 신격의 충돌은 이곳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크하아아압!아-폴론! 나는엥켈라도스라고 한다!”
크로노스에게 방해되지 않게 조금 떨어진 장소로 이동한 엥켈라도스가 몸집을 키운다.
그가 괴성을 내지르자 안그래도 거대했던 거구가 더욱 불어나고 흉폭성이 증가한다.
이윽고 뱀의 하반신을 움직여 아폴론에게 달려드니,
그 공격은 웬만한 신들도 한 수 물려줄 수밖에 없는 괴물의 일격이였다.
슈욱- 치이이익!
이에 따른 아폴론의 대응은 정면으로 맞서는 것.
궁술의 신이기도 한 그의 활에서 빗살과도 같이 쏘아지는 태양의 화살이 괴물을 저지한다.
“괴물 따위가 신의 위광에 미칠 수는 없다. 네 주제를 알고 엎드려라.”
기가스의 팔에 화살이 여럿 꽂히며 살을 태우는 냄새가 진동했다.
허나 그것도 잠시, 빠르게 재생한 괴물이 다시 돌진하여 신에게 억센 주먹을 휘두른다.
쿠궁! 콰아앙!
티탄과 신, 괴물까지 끼어든 전투의 여파로 산이 무너지고,
근처의 도시인 테베에도 영향이 미치기 시작했다.
쿠드드드… 쿠우웅!
테베에서 평화로운 생활을 영위하던 인간들은 천지를 울리는 굉음과 진동을 느끼고 공포에 떨었다.
도시가 지진으로 흔들리고 건물들이 무너지는 끔찍한 상황.
공기를 타고 전해지는 살의.
신이 주변에 강림해 싸운다는 두려움.
사람들에게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혼란.
“땅이 흔들리잖아!”
“아폴론 신께서 아까 강림하셔서 말씀하신거 못 들었어?”
“당장 고개 숙이고 집으로 들어가자고!”
“디오니소스시여! 도와주십시오!”
그래도 테베에 널리 퍼진 디오니소스의 신수인 표범이 나타나 신도들을 실어 나르거나,
여러 신들이 인간들을 조금씩 도와줌으로서 공황의 수준까지는 오지 않았다.
“표범… 디오니소스께서 이쪽을 보고 계신다!”
“나중에 신전에 가서 제물이라도 바쳐야겠어.”
“제우스 님…”
인간들은 각자 믿는 신격의 신전이나 집안으로 들어가 기도를 올렸다.
제발 구름 위의 신들께서 노여움을 거두시기를 기원하며.
* * *
휘오오오오-
빌어먹을 나의 아버지, 크로노스는 강하다.
티타노마키아 당시 수많은 티탄 신족이 우리 편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저승에 내려가 퀴네에를 챙겨와야 하지 않겠느냐?”
“당신이야말로 스퀴테가 없으니 힘을 못 쓰는군.”
퀴클롭스가 만들어준 3신기와헤카톤케이레스들의 지원을 받기 전까지는 이길 수 없었던 신.
그것도 우리 중 여럿이 합공해야만 격퇴할 수 있었다.
지금 날아오는 묵직한 일격도 그 편린이겠지.
전쟁 때도 겪어본, 시간을 조종하는 힘을 전력으로 발휘해 대상을 뒤흔드는 권능.
투욱. 툭.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며 시간이 제멋대로 돌아간다.
크로노스의 비웃음이 느려진 세상에 서서히 울려퍼진다…
내 아들아
너는
여전히
나를 이길 수 없…
느려진 시간 속에서 크로노스가 빙의한 에키드나의 손톱이 날아오는 게 보인다.
괴물의 입으로 회심의 미소를 띠고 손을 휘두르는 크로노스.
날카롭고 흉측한 발톱이 코앞까지 다가왔지만…
터억.
먹물처럼 검은 신력으로 뒤덮인 손을 움직여 손목을 잡았다.
허공이 깨져나가며 시간의 흐름이 원래대로 돌아온다.
“무슨…!”
나도, 크로노스도 전력을 낼 수 없는 불완전한 상태.
하지만 그는 타르타로스에서 너무나도 오랫동안 쉬었다.
신이 스틱스 강의 맹세를 어긴 대가는 1년 간의 가사상태와 9년간의 회의 참여 불가.
불멸자의 감각으로는 찰나의 시간에 불과하지만 모두가 이 맹세를 두려워하는 까닭은 간단하다.
단 10년이라도 자신의 영역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 큰 손실을 보게 되기 때문에.
모든 신격은 자신이 맡은 영역이 중요할수록 더 강해진다.
3주신이저승과 바다, 하늘을관장하는 신인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
지금은 세계의 패권이 올림포스 신들에게 있는 까닭 때문에 티탄 신족들은 대부분 약화되었다.
같은 태양신이여도 아폴론이 헬리오스보다 강한 이유.
그러니 패배한 티탄 신족인데다 타르타로스에 오랫동안 있었던 크로노스의 힘은 어떨까?
푸욱!
“크헉!”
정답은 ‘매우 약해졌다’다
시간이라는 영역은 굉장히 중요하고 필수적인 세계의 요소.
그러나 우리에게 패배한 시점부터 크로노스의 힘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물론 그 약화된 힘으로도 올림포스 12신에 버금가지만…
“나는 지하 세계의 왕이다. 퇴물 따위에게는 지지 않아.”
“이.. 이 놈이…!”
주변을 마구 뒤틀던 시간의 흐름 정도는 내 힘으로 돌파할 수 있었다.
가슴팍에 손을 꿰뚫은 채로 도발하자 눈에 핏발이 선 채로 날 노려보는 크로노스.
“이제 산책은 여기까지입니다. 타르타로스로 꺼지시죠.”
“이따위… 몸만 아니였다면…!”
불규칙한 시간의 움직임으로 가득 찼던 눈동자에서 빛이 꺼져간다.
이승에 강림했던 시간의 티탄은,
저승의 군주에 의해 타르타로스로 송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