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44)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44화(44/82)
신들의 외유 – (2)
잠시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며 나갔던 스틱스와 레테 여신이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복장이…
“스틱스 여신님, 그 키톤은… 헤카테 님이 축복하신 평온의 마법이 깃든 물건 아닙니까?”
“맞아요. 저번에 올림포스에 갔을 때 선물받은 옷이에요.”
가슴이 푹 파인 노출이 심한 키톤을 입고 온 스틱스 여신.
검은색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천이 여신의 미모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저도… 저는 어떤가요?
레테 여신 역시 허벅지 라인이 잘 드러나는 얇은 옷을 입고 슬며시 다가온다.
아니.. 저런 옷을 입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오늘처럼 하데스랑 나갈 때를 대비해서 아껴놓았어요. 저 잘했죠?”
“예… 오늘따라 아름다우시네요.”
평소 하고 다니던 무감정한 눈과는 다르게 배시시 미소짓는 그녀의 얼굴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렇게 두 여신과 홀린듯이 성채를 나섰다.
하지만 팔짱까지 끼고 달라붙는 건 조금 이르지 않을까요?
양쪽에서 그러시면 답답합니다..
“끼이잉! 낑!”
“오냐.”
성채의 입구를 지키는 케르베로스도 한번 쓰다듬어 주고,
망각의 강과 불길의 강, 시름의 강을 순서대로 지나 아케론 강까지 도착했다.
새롭게 탄생한 거대한 나룻배(?)를 몰던 카론이 우리를 보더니 그대로 굳었다.
나와 스틱스, 레테 여신의 얼굴을 두루 살피던 뱃사공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래서 누가 정실부인인가?”
“저요!”
“당연히.. 저죠…”
양 팔에 힘이 점점 힘이 들어가고 있어요.
점점 더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지기 시작하니 여기까지만…
“카론, 제발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말아주시죠…”
“어어.. 알겠네…”
그렇게 어찌어찌 이승으로 나왔다.
본신으로는 오랜만에 마주하는 맑은 공기와 따뜻한 햇살.
찌르르- 짹짹.
지하 세계에서는 느끼기 힘든 생명들의 울음소리와 자연의 생동감.
“에트나 산까지는 어떻게 가실 건가요?”
“저는 보통 전차를 이용합니다. 유령마들에게 늘 신세를 지고 있죠.”
당연하게도 죽음을 맞이해 저승에 오는 생명은 인간뿐만이 아니다.
온갖 동물이나 괴물들도 마찬가지.
손을 휘둘러 빈 공간에 반투명한 전차와 유령마를 불러냈다.
동공에서 푸른 불꽃이 타오르고 절대 지치지 않는 말들이 거친 울음소리를 내며 소환된다.
히이이잉-
전차 역시 헤파이스토스가 직접 만들어준 명품 중의 명품.
신물까지는 아니지만 굉장히 튼튼하다.
가볍게 마차에 올라타 고삐를 쥐지 않은 손을 내미니,
곧 여신들이 차례로 웃으며 내 손을 잡고 올라온다.
그런데… 슬쩍 보이는 레테 여신의 허리띠가 왠지 익숙한데…
자세히 살펴보려 했지만 스틱스 여신이 나를 재촉했다.
“빨리 출발해요! 하데스!”
고개를 끄덕이고 전차를 몰아 에트나 산으로 출발했다.
인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저승의 전차가 쾌속하게 움직인다.
* * *
에트나 산 인근.
눈이 쌓여 있는 정상 부근을 제외하면 어느 곳을 보아도 따뜻함이 물씬 느껴지는 풍경.
넓은 초원이 산 인근에 펼쳐져 있었고, 각종 동물들이 활기차게 돌아다닌다.
그러나 티폰의 몸뚱이가 산 밑에 묻혀있기에 잦은 지진이 일어나기도 하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승 구경도 할 겸, 종종 지상으로 나와 순찰을 돌기도 한다.
“여기 꼭 와보고 싶었어요. 올림포스의 여신들도 이곳에 종종 내려온다고 하더라고요.”
“마침 저기에 님프들도 있군요.”
전차를 잠시 멈추고 근처를 둘러보았다.
노출이 심한 키톤을 입은 아름다운 숲의 님프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꺄하하하!”
“코레(Kore)님! 같이 가요!”
“다음에는 숲으로 들어가보자!”
음… 그런데 저기 활기차게 뛰어다니는 금발 머리의 여신은 누구지?
내가 모르는 얼굴인 걸 보니까 새로 태어난 신인가.
다시 전차를 몰아 에트나 산 근처를 돌아보려던 찰나,
레테 여신이 옷자락을 슬며시 잡아당겨 나를 불렀다.
“하데스. 하데스.”
“왜 그러십니까?”
“저랑 스틱스는 여기서 잠시 내려주세요.”
“근처에서 잠깐만 구경 좀 하다 올게요. 저기 아는 님프도 보여서…”
“그럼 저는 산을 한 바퀴만 돌고 오겠습니다. 편히 둘러보시죠.”
아는 님프? 뭐 그럴 수도 있지.
여신들은 항상 저승에만 있다가 이승으로 나와서 그런지 들뜬 모습이다.
“금방 구경하고 올게요!”
“그럼 조금 있다가 다시 봐요..”
* * *
하데스의 전차에서 내린 여신들은 숲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는 여신들.
“여기서 만나기로 했지 않았나요?”
“아, 저기…”
곧 그녀들은 찾던 이를 발견한 듯 옅게 미소지으며 걸어갔다.
숲 한가운데에 아름다움 그 자체인 여신이 팔짱을 끼고 있었기에.
“아니, 진짜로 하데스랑 나온 거에요? 그 목석같은 남자와?”
“이게 다 아프로디테가 빌려준 허리띠 덕분이에요. 히…”
저승의 여신들이 찾던 이는 바로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그녀에게 다가간 레테 여신이 허리띠를 풀어 건넸다.
그것은 헤파이스토스가 직접 만든 유혹의 허리띠, 케스토스 히마스(Kestos Himas).
자신의 허리띠를 돌려받은 아프로디테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빌려준 허리띠가 효과가 있었다고요?”
“네! 어디 가자고 하면 항상 튕기던 하데스가 처음으로 저희랑 이승으로 나왔어요!”
“이게 다 아프로디테 여신 덕분이네요.”
활짝 웃는 여신들과 오히려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아프로디테.
“으으.. 제가 매고 있을 때는 시큰둥하니 별 관심도 없어보이더니..”
“…그런가요?오늘따라 더욱 상냥해지던데.”
“혹시 잘못 매고 가서 그런게 아닐까요…”
정말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두 여신을 본 아프로디테의 얼굴이 구겨진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는지 머리를 감싸며 소리치는 미의 여신.
“아니이! 그럴 리가 없잖아요! 이래 봬도 미와 사랑의 여신인데… 아악! 짜증나!”
잠시 씩씩대던 아프로디테가 뾰로퉁한 표정으로 다시 팔짱을 낀다.
그리고 구름을 불러 곧장 올림포스로 돌아가려던 그녀를 스틱스 여신이 부른다.
“저기.. 아프로디테.”
“왜요…?”
“그런데 아프로디테도 원래 하데스를 좋아했지 않았어요? 그런데 왜 저희에게 허리띠를 빌려줬나요.”
레테 여신도 궁금하다는 듯 아프로디테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하데스를 따라 저승에 내려왔다는 것은,
저승에서 일하는 신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자라도 여신에게 흑심이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사랑의 경쟁자에게 매혹의 허리띠를 빌려주었을까?
의문이 가득한 그녀들에게 피식 웃으며 답하는 아프로디테.
“제가 원한 건 그냥 하룻밤이였고,어차피 3주신 정도 되면 수많은 여자를 거느려도 이상하진 않잖아요?”
“그럼 포세이돈이나 제우스 님은…”
“별로 제 취향이 아니네요. 그리고 제우스 님은 헤라 여신님의 눈초리가 조금…”
납득이 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여신들을 바라보며 아프로디테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아름다움 그 자체인 미의 여신은 음흉한 얼굴마저도 매혹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일단 결혼을 해서 즐거움을 알아야만 다른 곳에도 눈길이 가지 않겠어요?”
“하데스는 불륜하는 여신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아악! 시끄러워요! 저도 원해서 헤파이스토스랑 결혼한 게 아닌데…”
그러나 레테 여신의 한마디에 곧바로 무너지는 표정.
이번에는 아프로디테가 저승의 여신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여러분이야말로 결혼은 부담스럽지 않아요? 저승의 군주와 결혼하면 그 많은 업무도 그렇고, 3주신의 부인이라는 무게감도..”
저승의 신, 하데스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3주신이라는 높은 신격, 음침하지만 잘생긴 얼굴, 형제들과 다른 선한 성품.
그러나 그의 정실 부인이 되는 것을 꺼려하는 여신들도 간혹 있었다.
큰 권리에는 큰 책임 역시 따르는 법.
올림포스가 아닌 어두운 저승에서 거주해야 한다는 것이나,
저승의 안주인으로서 관리해야 할 수많은 업무가 꺼려지기도 하기 때문에.
“저는 그런 건 상관하지 않아요.”
“지금도 어차피 업무가 많은데요…?”
그러나 망각의 여신과 스틱스 강의 주인은 그렇지 않았다.
질문을 던지자마자 조금도 고민하는 기색 없이 나오는 대답.
아프로디테는 잠시 피그말리온을 떠올렸다.
그 누구보다도 사랑에 진심이였던 인간, 사랑의 여신의 마음을 움직인 필멸자.
“…여신님의 축복 덕분에 사랑하는 아내와 여한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조각상에 내려준 축복을 받아 사랑을 이뤘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사랑의 여신임에도 원하는 사랑을 하지 못했다.
“오오.. 이리도 아름다울 수가, 당신은 나 포세이돈의 것이다!”
“포세이돈 큰아버지, 저에게 양보해 주십시오.”
“당신은 내가 보았던 그 누구보다도…”
“여신이시여. 당신의 미를 찬미하는 시를 지어 보았소.”
“그만, 그만!
이대로 가다가는 신들끼리 내분이 일어날 판이니,
아프로디테의 남편은 나 제우스가 정하겠소!”
너무나도 아름다워 모든 신들이 탐내던 미.
그 때문에 올림포스의 내분을 막기 위해 최고신 제우스가 억지로 정해준 남편.
“절름발이 헤파이스토스요? 왜 제가…”
“아버지, 이것은 너무하신 처사가..”
“예? 하지만…”
“아프로디테가 결정하라고 하는 것은…”
쿠르르릉! 콰광!
“더 이상의 반론은 받지 않겠다! 지금부터 미의 여신의 남편은 헤파이스토스요!”
그렇게 억지로 하게 된 결혼.
남편인 헤파이스토스는 그녀에게 최대한 잘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녀가 원하는 물건은 무엇이든지 만들어주고 마법의 허리끈인 케스토스 히마스도 선물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에게 도저히 정이 가지 않아 불륜을 저지르기 시작했고.
아레스와의 사이에서 조화의 여신, 하르모니아도 낳았고 많은 남신들과도 관계를 맺었다.
강압적으로 억압할수록 더욱 뜨겁게 타오르는 것이야말로 사랑.
사랑의 여신의 입가에 어쩐지 슬퍼보이는 미소가 감돌았다.
그녀는 처연한 눈초리로 사랑에 도전하는 두 여성을 향해 축복을 보냈다.
“…하기야 그런 것이 사랑이긴 하죠. 저 아프로디테가 여러분을 응원할 테니 잘 해보시던가요.”
그리고 이 시간, 하데스는…
“네 이름이 뭐라고?”
“저는 멘테(Menthe)라고 하는데요?”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한 님프를 만나 대화중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