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47)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47화(47/82)
오이디푸스의 비극 – (2)
“저런… 아레스의 저주 때문에 한 필멸자가 고통받는구나…”
머릿속, 아니 대지에서부터 들려오는 듯한 노파의 목소리.
설마 신인가?! 그를 벌하기 위해 신이 말을 거는 것인가?
“누구십니까! 저를 조롱하고 벌하시기 위해 나타난 신이십니까!”
오이디푸스는 저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듯한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잠깐의 정적 후, 그에게 들려오는 부드러운 속삭임.
“무언가 오해를 하고 있구나. 나는 네 인생을 망쳐 놓은 올림포스 신 따위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과 적대하는 사이지.”
“적대하는 사이라고요…?”
인간으로서는 아득한,저 높은 존재에게서 들리는 목소리.
흥분을 가라앉히며 숨을 몰아쉬는 오이디푸스의 귀에 신의 음성이 휘몰아친다.
“테베의 시조, 카드모스가 아레스의 자식인 드라콘을 죽인 일로 불행의 저주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
“저주… 말입니까? 설마 대를 이어 전해져오는…?”
“너에겐 어떠한 잘못도 없다. 모든 것은 올림포스 신들 때문이지.”
오이디푸스의 눈이 점점 기이하게 충혈되기 시작했다.
대지로부터 이상한 기운이 흘러나와 그에게 광기를 불어넣고 판단을 어렵게 만든다.
“그들만 없었다면 네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흐.. 흐으으…”
미칠듯한 자괴감에 몸부림치던 그에게 계시를 내려주는 듯한 한마디.
점차 아파오던 머리가 편안해지고 사고가 단순해진다.
그래… 그 말이 맞다.
저주받을 신들만 없었다면…
이 모든 것이 오이디푸스, 그의 탓이 아니라 신들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이제야 올바른 길을 찾았구나. 나, 가이아의 축복을 너에게 선사하마.”
테베에 있는 증오스러운 올림포스 신들의 신전을 모조리 치우는 것.
* * *
왕궁으로 돌아온 오이디푸스 왕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예언자를 쫒아내는 것이였다.
예언자의 말은 오직 오이디푸스만이 들었으니 추방하고 나서 나중에 죽여버린다면 비밀은 지켜지리라.
“감히 왕에게 허언을 고한 죄로 당신을 추방하겠다. 당장 테베에서 떠나라!”
“…알겠습니다.”
“폐하, 하지만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듣기 싫다! 경비병! 이자를 데리고 나가도록!”
예언자에게 정중하게 예를 갖춰 모셔오라고 했을 때와 달리,
완전히 바뀐 태도로 그를 쫒아내는 오이디푸스 왕의 모습에 모두가 당황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였다.
“병력을 불러모아라, 내가 직접 그들을 이끌것이다.”
“폐하, 군사들은 어인 일로…”
“테베에 역병이 도는 이유는 광기의 신과 저승의 신의 신전이 있기 때문이니 도시 외곽에 지어진 신전을 없애버릴 생각이오!”
이에 모든 신하들이 당황하며 오이디푸스를 말렸다.
디오니소스 신의 심기를 거스른 펜테우스 왕이 어떻게 죽었는지 잊어버린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하물며 이번에는 저승을 다스리는 플루토의 신전까지 건드린다니,
스핑크스로부터 테베를 구한 지혜로운 왕이 미쳐버리기라도 한 것인가?
“폐하, 조금만 진정하시고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신전을 공격했다가는 신의 분노가 테베에 향할 것입니다!”
“플루토께서는 저승을 다스리시지만 자비의 신이시기도 합니다. 제발 다시 옳은 결정을…”
“예언자에게서 무엇을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역병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을 위하던 성군의 변화.
그의 말대로 신전을 공격하면 자칫 테베가 멸망할 수도 있었기에 모두 필사적으로 그를 설득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지나치게 완강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모두 닥쳐라! 테베에 일어난 역병은 신의 탓이니, 그들의 신전을 부수고 없앤다면 병마가 물러갈 것이다!”
왕의 일갈에 신하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들의 얼굴에 낭패감이 깃들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곧 명령을 받은 병력이 왕궁으로 소집되자 오이디푸스가 직접 칼을 빼들고 외쳤다.
충혈된 눈과 기이하게 흥분한 모습은 누가 봐도 정상적이지 않았다.
“지금부터 우리는 디오니소스의 신전으로 향한다! 역병을 퍼뜨린 신들의 신전을 부숴버리자!”
갑작스럽게 돌변한 왕의 명령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테베의 병사들.
그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차 퍼져나간다.
“폐하께서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것이지?”
“펜테우스 왕의 비극이 다시 일어나는 건가…”
“디오니소스 신과 싸우시겠다니?!”
“역병이 왜 디오니소스 신의 탓이야…?”
당연하게도 병사들을 이끌던 장군 역시 왕에게 탄원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충언을 올리기 위해 걸어오는 지휘관과 왕의 눈이 마주쳤다.
“폐하, 정말로 신전을 공격하실 생각입니까? 신의 분노를 산다면…”
“시끄럽다! 올림포스 신은 저 구름 위에 있지만, 나는 지금 너희들의 앞에 있다!”
“커억!”
푸확-
오이디푸스 왕이 장군의 목을 단번에 베어버렸다.
붉은 피가 뿌려지고 좌중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평소 그 자신이 총애하던 자를 죽여버린 것은 둘째치고…
왕이 가볍게 휘두른 검에 사람의 몸이 세로로 갈라졌기 때문에.
“감히 내 말에 반대하는 자가 또 있느냐?”
명백하게 인간을 벗어난 완력.
지혜로웠던 왕이 무언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모두가 깨달았다.
* * *
디오니소스의 신전은 때아닌 방문객을 마주했다.
흉흉한 무기를 든 병사들이 불안한 눈으로 신전을 포위한 것.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신전 안에 있는 자들을 모두 끌어내 옥에 가둬라! 반항하는 자는 베어버려도 좋다!”
오이디푸스 왕이 앞장서 신의 사제를 위협했다.
그의 휘하 병사들 역시 잔뜩 찜찜한 얼굴로 신도들에게 창을 겨눴다.
“이게 맞는 일인지 모르겠네..”
“조용히 해..! 폐하의 칼날에 죽고 싶은 거냐고.”
“으으… 우린 신벌을 받을 거야.”
그러나 병사들의 사기는 저조했다.
신전을 공격한다는 미친 짓거리를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인간은 없었으니까.
“당장 신도들을 포박해라! 물러나는 자가 있다면 베어버리겠다!”
디오니소스 신은 보이지 않지만, 왕의 칼날은 가깝다.
서슬퍼런 왕의 일갈에 침울한 얼굴의 병사들이 신도들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거대한 표범이 나타나 병사들을 물어뜯기 전까지는,
카르르릉!
“으아악!”
“신벌, 신벌이다!”
보통의 표범보다 몇 배는 더 거대한 신수가 나타나 인간의 목덜미를 노리기 시작하자 오이디푸스 왕이 나섰다.
“비켜라! 이따위 신수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거대한 발을 가지고 있는 그가 앞으로 걸어나오자…
표범 역시 디오니소스의 신도들을 위협한 원흉을 알아보는 듯 사납게 달려들었다.
크르르! 하악!
카앙-
오이디푸스의 검이 번뜩이며 표범의 발톱을 쳐낸다.
영웅과 신수의 싸움은 평범한 사람들의 정신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하압!”
테베를 구한 영웅이자 왕에게 걸맞는 보검이 공기를 찢고 가른다.
신수 역시 민첩하게 공격을 피했지만…
“흐흐.. 잡았다. 이놈.”
크르르릉!
오이디푸스는 검을 버리고 맨손으로 표범의 목을 틀어쥐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불가능할 일.
그러나 가이아에게서 받은 힘은 그의 육체를 영웅의 반열로 올려놓았고,
결국 신수의 목을 졸라 죽이기에 이르렀다.
쿠웅!
“미.. 미친..!”
“폐하께서 신수를 맨손으로 이기셨다…?!”
“모두 똑똑히 보았느냐! 디오니소스의 신수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신전에 불을 질러라!”
근육질의 팔에 핏줄이 돋은 채로 포효하는 오이디푸스 왕.
모든 병사들이 그를 두려워하며 신전에 불을 질렀다.
“이게.. 맞을까…”
“조용히 하라니까…! 지금 당장 폐하께 죽고 싶어?”
타오르는 신전을 보며 웃는 오이디푸스 왕의 뒤편,
그가 던져놓은 표범 시체의 눈에 서서히 빛이 들어왔다.
“어.. 어! 저기!”
“분명 죽었는데…?”
쓰러진 표범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오이디푸스 왕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피로 붉게 물든 짐승의 입에서 나오는 건 인간의 말.
“지금 테베의 왕이 네놈이냐?”
짐승의 울부짖음일까, 광기의 속삭임일까.
표범에게서 낮게 울리는 목소리에 인간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감히 내 신전을 이런 꼴로 만들어? 너는 결코 편히 죽지 못할 것이다…”
신수에 잠시 깃든 디오니소스의 원독어린 말이 끝나고 표범은 다시 움직임을 멈췄다.
오이디푸스의 운명은 이제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나 그는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퉤! 신이라고 해도 고작 짐승을 보낼 뿐이구나!”
죽은 신수에게 침을 뱉으며 서슴없이 모독하는 그의 모습에서,
현명하게 스핑크스를 물리쳤던 지혜로운 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믿고 있던 신수가 죽었으니 저주를 내리겠다고 협박하는 것이 전부인가?! 그런데 어쩌나! 내 삶 자체가 저주인 것을!”
오이디푸스가 하늘을 향해 포효한다.
붉어진 그의 눈과 얼굴이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일으켜 병사들이 뒤로 물러난다.
불태워진 디오니소스의 신전이 눈에 띄지만,
병사들은 일단 더 이상의 신성모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작게 안도하고 있었다.
일단 돌아가면 디오니소스께 용서를 바라는 기도를 올리겠다고 생각하는 병사들.
그러나…
곧 그들의 귀에 들리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
“다음은 하데스의 신전을 불태워 버리겠다! 모두 날 따르라!”
뭐라고? 누구의 신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