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48)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48화(48/82)
오이디푸스의 비극 – (3)
“다음은 하데스의 신전을 불태워 버리겠다! 모두 날 따르라!”
병사들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디오니소스의 신전을 불태우는 것도 모자라 하데스 신전까지 공격한다고?
디오니소스는 올림포스 12신이자 광기의 신.
예전에 테베의 펜테우스 왕이 디오니소스의 심기를 거스른 일로 끔찍하게 죽었을 때,
어떤 이들은 펜테우스 왕을 동정하고 광기의 신에게 앙심을 품었다.
펜테우스 왕은 그저 술에 취해 치안을 어지럽히는 신도들을 잡아 가두었을 뿐이였지만,
그 대가로 미쳐버린 가족들에게 돌에 맞아 죽었기 때문에.
테베에서 디오니소스의 이름은 공포와 경외, 원망이 섞인 그 어딘가로 불린다.
심기를 거슬렀다고 한 나라의 왕을 죽이고 포도주의 광기를 퍼뜨리는 자비 없는 신이니 당연한 일.
“하지만 플루토 신께서는…”
“디오니소스 신전까지는 그러려니 했지만…”
“…도망칠까.”
하지만 테베에서 하데스의 이름은 디오니소스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저승과 자비, 부의 신.
생자들에게는 부의 축복과 시체 썩는 냄새를 막을 민트를 내려주고,
괴물에게 죽을 뻔한 사제의 몸에 강림해 구해줬다는 소문도 도는 선신.
그리고 그에게서 느껴지는 두려움은 디오니소스와 달리 원망 어린 공포가 아니였다.
조금 더 원초적인, 죽음 이후의 처벌에 대한 두려움.
지하세계의 제우스라 불릴 정도로 강력한 권위와 힘을 가진 저승의 군주.
“플루토 신전을 불태우면… 죽고 나서 타르타로스로 들어갈 텐데..”
“이게 제우스 님의 신전을 부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오이디푸스 왕께서는 죽음이 두렵지 않으신 건가?”
“뭣들 하느냐! 빨리 따라와라!”
보검을 병사들에게 겨누는 오이디푸스 왕.
그러나 아까와는 달리, 병사들은 움직일 수 없었다.
아무리 플루토께서 자비의 신이라고는 하시지만…
자신의 신전이 침범당했는데도 그냥 넘어간다면 그건 자비의 신이 아니라 머저리의 신.
모든 이들의 머릿속에 그가 내릴 수 있는 끔찍한 처벌이 떠올랐다.
“폐하! 제발 명을 거둬주소서! 그것은 벌집을 건드리는 행위입니다!”
“플루토 신전에는 다른 신들의 신상도 많습니다!”
심지어 플루토의 신전에는 그를 제외한 다른 신들의 신상도 있었다.
죽음의 신 타나토스, 망각의 여신 레테, 이름조차 말하기 두려운 복수의 여신들까지…
병사들은 명을 거둬달라고 오이디푸스 왕께 사정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광인의 불호령.
“흥! 하데스 신이 강림한다 해도 내 칼을 맞고 저승으로 도망칠 것이다! 당장 움직여라! 명을 따르지 않는다면 모두 베어버리겠다!”
* * *
“…명을 따르지 않는다면 모두 베어버리겠다!”
미쳐버린 오이디푸스 왕은 힘으로 병사들을 움직이려고 했다.
장군을 베어버리고, 신수를 죽인 자신의 힘으로 위압한다면 모두가 따라오리라.
그러나…
“플루토의 신전을 건드리면 어차피 죽는거 아닌가?”
“아니, 죽어서도 영원히 고통받을지도 몰라.”
“젠장… 이렇게 될 바에는 차라리…”
눈앞의 칼날이 두렵다고는 해도 저승의 신보다 더 두려울 수는 없었다.
저승에서 영원히 고통받는 것은 죽음보다 더한 형벌.
병사들이 오이디푸스를 바라보는 눈빛에 불만과 원망, 그리고 살의가 섞이기 시작했다.
영웅의 영역에 발을 디딘 자라 해도, 모두가 달려들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불손한 눈빛을 눈치챈 듯, 오이디푸스 역시 기괴한 웃음을 지으며 몸을 돌렸다.
“오호.. 이놈들이… 감히 왕의 명령을 어기겠다?”
“당신에게 죽는 것보다는 플루토 신의 노여움을 사는 게 더 무섭소!”
“명령은 따를 수 없다! 지금 당장 신성모독을 그만두시오!”
“자비의 신전을 불태운다니 제정신인 겁니까!”
왕의 명령에 거역하는 병사들의 창이 오이디푸스에게 향했다.
그러나 가이아의 힘을 받은 미치광이 영웅은 그저 비웃을 뿐.
“흐흐.. 하하하! 그래, 너희들도 전부 죽어라!”
“미쳐버린 왕을 죽이고, 디오니소스께 바쳐 자비를 빌자!”
“어서 플루토 신전의 사제님들께 알려!”
“네놈 때문에 죽고 나서도 영원히 죗값을 치를 수는 없다!”
디오니소스의 신전이 불탔다는소식을 듣고 몰려온 시민들 역시 몰려들었다.
현명했던 왕이 광기에 휩싸여 플루토의 신전까지 불태우려 한다는 소문도 빠르게 퍼져나갔다.
“아니, 자비의 신께서 생자들에게 얼마나 큰 은혜를 베푸셨는데…”
“그러니까 말입니다! 저 눈을 보십시오! 마치 디오니소스의 속삭임을 들은 것마냥…”
“왕이 포도주에 취해 미쳐버린 것인가? 신전을 공격하다니 그런 정신나간 짓을!”
곧 디오니소스의 신전 앞은 수많은 병사와 시민들의 아우성으로 가득 메워졌다.
그런 아수라장의 한복판에서 칼을 마구 휘두르며 학살극을 펼치는오이디푸스 왕.
“으하하하! 다, 다 죽어라!”
서걱. 스가각.
“크아악!”
“힘이 엄청나잖아!”
병사들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속수무책.
인간을 초월한 영웅의 힘을 누가 감히 당해내리.
유혈이 낭자하고 붉은 꽃이 대지에 피어난다.
피와 광기 속에서 괴기스럽게 미소짓는 왕은 더 이상 테베를 구한 영웅이 아니였다.
한편, 오이디푸스가 테베에서 학살극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은 하데스 신전에도 전해졌다.
평소 하데스의 신도였던 병사 하나가 달려와 모든 일을 전달했다.
“…다들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디오니소스 신전도 불탔습니다!”
“병사님, 마음은 감사하지만 사제로서 신전을 버리는 짓은 할 수 없습니다.”
“그 현명하던 왕이 미쳐서 신전을 불태우고 학살극을 벌인다니… 어찌 이런 일이.”
“어제까지만 해도 역병에 시달리는 주민들을 보살피는 성군이였는데…”
하데스의 사제들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했다.
그러나 그들이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다른 병사가 급히 달려왔다.
“어서 피하십시오! 미친 왕이 자신을 가로막는 모두를 죽이며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세상에… 하데스시여.”
“자비의 신께서는 분명 이곳을 지켜보고 계실 것이네.”
입술을 깨문 사제들이 하나 둘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린다.
그러나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흉흉한 기색의 광인이 나타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붉은 피를 뒤집어 쓴 학살자, 오이디푸스였다.
자신을 가로막는 수많은 병사와 시민들을 죽이며 이곳으로 달려온 그가 숨을 몰아쉬었다.
“흐.. 흐으으.. 올림포스.. 신.. 죽어라…”
타락한 영웅이 천천히 걸어오자,신전의 모두가 공포에 휩싸인다.
아무리 신의 권능을 일부 나눠받은 사제들이지만 기본적으로 비전투직.
“어느새 이곳까지…!”
“자비의 신이시여… 도와주소서.”
* * *
지금 이 시간, 지하 세계.
저승의 군주이자 3주신 중 하나인 나는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직위가 높은 신이면 뭘 하나,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 것을.
당장 카론만 봐도 프로토게노이 중 하나, 밤의 신 닉스의 자식이면서 뱃사공 일을 하지 않는가.
그래… 지금 문 밖에서 황급히 들어오는 타나토스 신 역시 마찬가지다.
“하데스! 저번에 인간들이 이상하게 죽어나가면 얘기해달라 했지 않았나?”
“예. 분명 그랬죠. 기가스가 인간들의 나라를 습격이라도 했습니까?”
드디어 놈들이 움직인 것인가.
습격을 받은 장소가 어디지? 아테네? 델포이?
“테베에 어떤 미친 인간이 날뛰면서 학살극을 벌이고 있네. 죽어 나간 이가 벌써 수십 명이 넘어.”
“인간이, 그것도 도시에서 그런 일을 벌인다고요?”
기다리던 기가스의 습격이 아닌 인간이 난동을 피운다는 소식에 의아하던 찰나,
긴 은발머리를 찰랑이는 레테 여신이 다급하게 뛰어왔다.
“하데스! 테베의 왕이 인간들을 모조리 죽이고 있어요! 그런데 제 간섭이 통하지 않는데요…?”
“망각의 권능이 안 통하신다고요?”
이승에 강림하지도, 본신을 움직이지도 않고 적당히 사용한 권능.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인간들은 기억을 잃어버릴텐데…
“신의 축복이나 저주가 걸려있겠네요. 혹은 특수한 혈통이거나…”
“광기에 미쳐 날뛰던데 디오니소스의 힘인가?”
“그건 아닐겁니다. 일단 제가 이승을 살펴보죠.”
디오니소스가 아무리 광기의 신이라고 해도 수많은 인간들을 학살하지는 않는다.
테베는 내 신전도 있거니와 디오니소스의 신도들도 많기 때문에.
잠시 의식을 옮겨 이승을 살펴보았다.
신도의 눈과 귀를 빌리면 사제의 간절한 기도가 아니여도 이승을 살펴볼 수 있으니까.
한 광인이 칼을 휘두르며 사람들을 학살하는 모습.
“자비의 신이시여… 도와주소서.”
“오이디푸스 왕이 미쳤나이다. 제발…”
“플루토 님… 대로가 온통 시체와 핏물로…”
내게 필사적으로 기도하는 신도들의 몸이 떨린다.
이것을 올림포스의 신들이 내린 벌로 생각하는 자도 있었다.
그리고 그 광인은…
“으하하하!! 죽어라!!”
새빨갛게 붉어진 눈,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표정과 미칠듯한 광소.
마지막으로… 온 몸에서 느껴지는 대지의 신력.
가이아가 인간에게 저주를 내려 미쳐버리게 만들었구나.
굳이 테베에서 이런 일을 벌인 까닭은 나와 디오니소스의 신전이 있기 때문이겠지.
“평범한 인간들로는 상대할 수 없겠군요. 타나토스, 저 인간을 저승으로 데려올 테니 므네모시네 여신님을 불러주시죠.”
“자네가 직접? 저승의 군주가 나서지 않아도 되네. 내게 기도하는 신자도 있으니…”
“또 시시포스 때처럼 나간 김에 쉬다 오실 거 다 압니다.”
“아니… 커흠…”
타나토스 신이 또 이승으로 도주하려는 것을 막고 눈을 감았다.
제일 강림하기 좋은 몸은 역시 나를 한번 받아들인 적이 있는 여성 사제의 몸.
‘내 사제, 페네데이아야.’
“헙…! 예, 당신의 종. 페네데이아가 명을 받듭니다.”
‘저번처럼 네 몸을 잠시 빌려야겠구나.’
“영광입니다…! 주 하데스시여!”
가이아에게 사로잡힌 불쌍한 영혼이라…
차라리 빠른 죽음이 그에게는 자비가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