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50)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50화(50/82)
헤파이스토스의 이야기 – (1)
얼마 전, 테베에서 미쳐 날뛴 오이디푸스 왕에 대한 뒤처리가 끝나고…
나는 새롭게 내 사제가 된 이들에게 권능을 나눠주고 있었다.
“하데스의 축복이 그대에게 깃들기를…”
“테베의 수호신이시여…”
내 신전이 오이디푸스에 의해 소멸할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음에도,
신수만을 보냈던 디오니소스와 달리 직접 강림한 나에 대한 믿음이 견고해진 걸까?
“디오니소스께서는 신수를 보내셨지만 저승의 주인께서는 직접 오셨다니까?”
“우리 테베 사람들 중에서 그분의 신도가 아닌 이가 거의 없긴 하지.”
“당연한 소리를, 테베에 살면서 플루토의 은혜를 입지 않은 자가 얼마나 되겠나?”
그 덕분에 신전의 사제들만 바빠졌다.
매일 오는 사람들을 관리하고, 새롭게 사제가 되겠다는 이들을 검증하고…
이전에 있던 사람이 물러나 새롭게 대사제가 된 페네데이아 역시 피로를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 새롭게 사제가 된 이들 중…
굉장히 낯익은 이가 보였다.
“헤헤… 잘생기고 전능하신 하데스니임…”
밝고 옅은 청록색의 머리에… 물의 님프 나이아데스.
저번에 에트나 산 근처에서 만났던 멘테?
그녀는 내게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놀랍게도 신앙심은 확실한지 그녀의 몸으로 강림이 가능할 정도.
“멘테, 네가 어떻게 내 사제가 된 것이냐?”
“하앗! 하데스 님!”
슬쩍 머릿속으로 말을 걸어보니 멘테가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런 멘테의 반응을 본 다른 신도들의 시선이 모인다.
“하데스 님께 말씀을 들었나요?”
“역시 민트를 만드신 분…”
“주 하데스께 총애받고 계시는구나…”
잠시 조용한 곳으로 이동한 나이아데스가 싱글벙글 웃으며 다시 손을 모았다.
“테베에 하데스 님의 신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여기까지 왔어요!”
“너는 에트나 산 근처의 님프가 아니냐? 어떻게 테베까지…,”
님프는 자연이나 물건에 깃든 요정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
그 자신이 깃든 곳이 파괴된다면 님프 역시 사망한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님프들은 자신이 깃든 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것이 보통인데…
“그야 하데스 님을 모시고 싶어서요! 여신님들이 계시긴 하지만 이승에서라도…”
민트를 널리 퍼뜨리고 내 상징으로 삼은 것 때문에 이러는 것일까.
그건 정당한 보상이고 네가 받아 마땅한 대우인데.
“네 근원을 지키지 못하면 언제 갑자기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저는 괜찮아요! 다른 님프들한테 부탁도 했거든요!”
근처에 사는 친한 님프들에게 근원을 지켜달라고 부탁했어도 그렇지,
인간으로 따지면 심장을 놓고 멀리 떠나는 게 아닌가?
어이가 없어 말문을 잇지 못하는데 멘테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으… 하데스 님께서 종종 사제의 몸에 강림하신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그렇다만…?”
“그럼 만약 제 몸에 강림하신다면 하데스 님과 하나가 되는… 꺄아악!”
멘테의 얼굴에서 순간 제우스의 편린이 보였다.
역시 그리스 요정 아니랄까봐 얘도 조금 머리가 이상해…
“다음에 강림하실 때는 부디 제 몸에…!”
내가 무섭지도 않나…?
다른 님프들은 물론이고 신들조차 나를 보면 벌벌 떠는데…
하기야 에트나 산에서 내 정체를 밝혔을 때도 포상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달라고 했었지…
테베에 퍼진 이야기인 자비의 신, 플루토라는 소문을 들어서 더 그런가.
뭐, 나름 귀여우니 됐다.
* * *
이승으로의 연결을 끊고 잠시 업무를 보는 시간을 가졌다.
테베의 영웅인 오이디푸스 왕을 가이아가 타락시켰다는 이야기는 이미 올림포스에 전달했다.
디오니소스에게는 가이아 때문에 그리 된 거라고 잘 얘기했고…
타르타로스나 에트나 산 순찰도 저번에 끝났다.
미노스 선에서 판결을 내리기 어려운 중죄인은 이제 없고…
드디어 조금 쉴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옥좌에 편히 기대려던 찰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맹세의 여신.
“하데스. 혹시 지금 한가한가요?”
스틱스 여신님?
“무슨 일이십니까? 또 타나토스 신이 도망이라도…”
“저승의 입구에 헤파이스토스가 와서 상담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하는데요.”
“헤파이스토스가 말입니까? 일단 들여보내주시죠.”
헤파이스토스가 내게 무슨 상담을?
죽은 영혼들 중에 헤파이스토스가 아끼는 인간이라도 있는 것인가?
잠시 기다리자 곧 순박한 얼굴의 절름발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들어왔다.
세계 최고의 대장장이 신인 그는 어째서인지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하데스 큰아버지, 바쁘실 텐데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이던트를 만들어준 너라면 언제든지 저승에 와도 좋다.”
시녀를 불러 넥타르를 내와 헤파이스토스에게 권했다.
그가 황금 술잔을 단번에 비우더니 내게 말한다.
“아프로디테가 저에게 너무 차갑습니다… 큰아버지…”
“아…”
아프로디테는 헤파이스토스와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남신들과 관계를 맺는 것으로 유명하다.
헤파이스토스도 이 사실은 알고 있을…
“미의 여신의 마음을 사기 위해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도 관심조차 주지 않는군요. 결혼 이후 잠자리 한 번을 못해봤다면 믿으시겠습니까?”
* * *
단 한번도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고?
세상에… 그 정도였냐…
마법이 담긴 매혹의 허리띠인 케스토스 히마스도 선물하고,
아프로디테가 만들어 달라는 물건을 전부 만들어 준 걸로 아는데.
“그런데 왜 내게 이런 상담을 하는 것이냐? 인기가 많은 남신이라면 아폴론이나 다른 신들도 있을 텐데?”
헤파이스토스가 내 옆의 스틱스 여신을 힐끔 보고 말했다.
“그것이… 큰아버지께서는 밤낮으로 바쁘시지만 여신들에게 많은 인기를 누리시지 않으십니까?”
“어…”
“올림포스에도 하데스 큰아버지에게 한번 안기고 싶어하는 여신들이 많습니다.”
전부 조카에, 손자뻘에 그런 어린애들을 말하는 건가?
사실 3주신이라는 직위 때문에 꼬이는 여신들도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
“제 아내가 저승으로 내려오면서까지 큰아버지와 하룻밤을 보내고 싶어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물론 저는 큰아버지를 믿습니다만…”
헤파이스토스의 근육질 몸과 동글동글한 눈매가 우울하게 쳐졌다.
걱정하지 마라… 나는 신들의 왕인 누구와는 달리 불륜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래, 나를 믿어준다니 고맙구나. 나는 스틱스 강에 맹세코 네 아내와 관계를 맺지 않았다.”
“과연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역시 신계에서 이름 높은 철벽의…”
철벽의… 뭐…?
황당한 얼굴로 헤파이스토스를 째려보자 그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크흠. 죄송합니다. 고고하게 존재하시는 저승의 군주라고…”
“자꾸 이상한 소리는 그만하고, 아무튼 조언을 받고 싶다는 것이 아니냐?
“예. 맞습니다.”
왜 아프로디테가 헤파이스토스를 싫어하는지 생각해보자.
일단… 아무래도 외모가 문제겠지.
헤파이스토스는 헤라와 제우스의 아들로 태어났을 적,
추남과 절름발이의 모습으로 태어나 실망한 헤라가 구름 밑으로 던져버렸을 정도.
그 이후 9일간 떨어져 렘노스 섬에 추락한 헤파이스토스가 나중에 헤라에게 복수를 하고 화해하게 되지만…
아무튼 쟁쟁한 다른 신들에 비해서 외모가 경쟁력이 되지 못한다.
가만히 생각을 정리하자니 헤파이스토스의 눈에 점점 실망감이 깃든다.
점점 고개가 숙여지더니 이제는 우울함의 신격을 얻을 것만 같은 모습이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축 처지길래 무슨 말이라도…
아…!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니… 그.. 다른 방법을 시도해보는 것은 어떠냐?”
“네…?”
“오히려 아프로디테 쪽에서 너를 소홀히 대한 것을 후회하게 만들고 네게 집착하게 한다던지…”
헤파이스토스는 아내와 사이가 나쁘면서도 그녀를 사랑한다.
그래서 만들어달라는 물건은 다 만들어주고, 케스토스 히마스도 줬었지.
“그러니까 앞으로 아프로디테의 부탁을 거절하면서 그녀에게 무관심한 태도를 취한다면…!”
여기까지 말했을 때,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스틱스 여신님이 내 말을 끊었다.
“하데스! 그럼 안 돼요!”
“그럼 여신님은 헤파이스토스의 가정을 화목하게 만들 다른 방법이 있으십니까?”
“어… 일단 그 방법은 안 돼요! 그러면 아프로디테 여신은 오히려 좋아서 남신들을 더욱 만나고 다니지 않겠어요?”
오히려 좋아할 거라니, 이 무슨…
그래도 부부인데 설마 그 정도의 정도 없으려나…?
스틱스 여신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앞으로 나선다.
나와 다르게 아프로디테와 같은 여신이니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헤라 님은 가정의 여신이니, 도움을 청해 보시는 건 어때요?”
“스틱스 님… 저도 당연히 그 방법은 시도해 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럼 케스토스 히마스처럼 여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물건을 만들어 보는…”
“이미 제 대장간에 그와 비슷한 물건이 수십 개는 있습니다…”
“그.. 그럼!”
“아니요. 더는 말씀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방법이 없군요…”
우직한 대장장이 신이 슬피 눈물을 흘린다.
올림포스 12신의 직위에 세계 최고의 대장장이라는 명성도 있건만,
“제 못생긴 얼굴이… 절름발이가… 아프로디테의 취향이 아닌가 봅니다…”
“아…”
지금은 사랑하는 여신 하나의 마음을 얻지 못한 불쌍한 남자일 뿐.
나와 스틱스 여신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