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51)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51화(51/82)
헤파이스토스의 이야기 – (2)
잠시 눈물을 흘리던 헤파이스토스가 불길을 일으켜 눈물을 말렸다.
어쩐지 감정이 담긴 듯, 슬퍼 보이는 불길이네…
다른 방법이 정녕 없을까…?
신력으로 외모를 아프로디테의 취향에 맞게 바꾼다던가…
“아, 혹시 아폴론을 찾아가 보는 건 어떠냐? 의술의 신이니 외모를…”
“아폴론에게도 찾아가 보았습니다.”
헤파이스토스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외모를 아프로디테의 취향처럼 바꿔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찾아갔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불가능.
평범한 인간도 아니고 같은 올림포스 12신의 외모를 바꾸는 것은 힘들었다고…
“대장장이 일을 하기 위해 화염을 일으키면 금새 원래 얼굴로 변해버리더군요.”
“아…”
아폴론의 신력으로 아무리 잘생긴 얼굴을 고정해도,
불의 신, 헤파이스토스의 불길과 힘이 원래 모습으로 되돌렸다고 한다.
하기야 우리 신들은 태어난 그대로 외모가 유지되지…
대장장이 신이 추남에 절름발이인 이유도 렘노스 섬에 떨어져서가 아닌,
원래 태어날 때부터 그랬기 때문이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제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셔서.”
“아니 그… 미안하다.”
“괜찮습니다. 다 제가 아내를 휘어잡지 못한 탓입니다.”
그렇게 말을 마치고 나가려던 헤파이스토스의 눈에 불길이 감돌았다.
또… 또 무슨 생각이 떠오른거냐, 내 조카야?
“하지만 도저히 아레스 그 놈은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네 아내와 불륜해 하르모니아를 낳은 아레스 말이냐?”
아프로디테는 아레스와의 관계에서 조화의 여신 하르모니아를 낳을 정도로 그를 사랑한다.
하지만 사랑의 여신에게 사랑을 하지 말라고 억압해버릴 수도 없는 일…
그래도 하르모니아를 낳았으니 이제 적당히 하라고 헤라가 말했을 텐데?
“예전에 헤라가 아프로디테에게 불륜은 이제 그만하라고 했었지 않았나?”
“예,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참다 못한 헤파이스토스가 헤라에게 일러바쳤고,
렘노스 섬에 아들을 던져버린 게 미안했던 헤라는 그의 요청을 수락했다.
그렇게 신들의 여왕이 불륜을 저지른 둘을 불러 조용히 타일렀다는 소리를 들었다.
정확히는 저승에 종종 오는 헤르메스가 전해준 것이지만.
올림포스 신들은 사랑에 있어서 어느 정도 자유분방하다.
그러나 불륜으로 아이까지 보았으면 이제 좀 적당히 하라는 의미를 전달한 것이겠지.
실제로 제우스도 하룻밤의 관계를 넘어선 그 이상의 불륜은 잘 하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면 당분간은 정실 부인인 헤라의 눈치를 보며 몸을 사리던데…
“어머니께서 말씀하셔도 여전하더군요. 저번에 우연히 둘이 밀회를 즐기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레스는 전쟁의 신답게 탄탄한 근육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잘생긴 얼굴, 자신의 자식을 아끼는 성품도 가졌으니 아프로디테가 포기하기 힘들 만도 하다.
“어떻게 아이까지 낳았으면서, 심지어 그 이후에도 계속 만나고 있다는 것을 들켰음에도 뻔뻔하게!”
“으음…”
“제 아내에게도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억지로 결혼한 것을 감안해 적당히 눈감아 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조금 심하긴 하군…”
“그래도 저승에 온 덕분에 확실하게 생각이 정리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큰아버지.”
아니 대체 무슨 생각을 말하는 거지.
너는 또 뭘 시도하려고 하느냐… 조카야?
“이번에 아폴론이 올림포스에서 며칠 동안 예술의 축제를 개최한다고 하는데, 저는 거기에 큰아버지께서도 와주셨으면 합니다.”
“글쎄, 굳이 올림포스에 올라가고 싶지는…”
“올림포스로 와주신다면 스틱스 검과 바이던트, 퀴네에를 제가 한번 점검해 드리겠습니다.”
“…않지만 조카의 부탁인데 당연히 올라가야지.”
마침 스틱스 검에 녹이 약간 슬어보이는 것 같기도 했고,
투명 투구와 바이던트까지 점검해준다면 나야 좋은 일이다.
내 말을 들은 헤파이스토스가 무언가 굳은 결심을 한 듯,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마침 저도 그 축제에서 보여드릴 화려한 예술이 있습니다. 이왕이면 최대한 많은 신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으니 저승의 다른 신들도 초대…”
대체 뭘 하려고?
* * *
그렇게 되어, 올림포스에서 열릴 예술의 축제가 시작되는 날이 되었다.
예술의 신격을 가진 아폴론이 개최하는 축제니 기대되긴 하지만…
“이번 축제에는 제가 따라갈 거에요!”
“저도 가고 싶은데요… 스틱스.”
레테와 스틱스, 이 두 여신이 나를 따라 올림포스에 가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자리를 비울 수 있는 건 한 명뿐.
두 여신이 모두 저승에서 사라지면 남은 신들의 업무가 너무 과중해지기 때문에,
한 명은 저승에서 업무를 보셔야 하는…
“자꾸 이럴 거에요?”
“저번에 저 몰래 하데스랑 껴안고 있었던 적도 있었으면서…”
“그러는 스틱스야말로 그 큰 가슴으로…”
“뭐라고요?!”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 부루퉁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스틱스 여신이지만,
팔짱을 끼고 입을 내민 레테 여신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그만.. 그만 하세요.
“그냥… 저 혼자 가겠습니다…”
“그럼 저희 제비뽑기로 하죠.”
“좋은 생각이에요.”
여신들이 재빠르게 제비뽑기를 통해 내 동행자를 정하는 모습은…
어째서인지 숨막히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와! 제가 뽑혔어요! 빨리 올림포스로 가요. 하데스!”
“으으… 행운의 여신, 티케(Tyche)는 이럴 때만 저를 외면하는…!”
신이 난 스틱스 여신이 제비를 높이 들어올리고 흔들다가 나를 껴안는다.
하지만 그렇게 제 얼굴을 파묻으시면… 흡!
….#$%@%!
“이익! 하데스한테 떨어져요! 스틱스!”
“싫어요~”
저승은 오늘도 평화롭다.
* * *
그렇게 스틱스 여신과 함께 올림포스로 왔다.
올림포스 신궁 밖에서부터 떠들썩한 웃음과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리라, 키타라(Kithara), 아울로스(Aulos) 등 많은 악기들이 조화로운 화음을 낸다.
“어…? 하데스 님이시군.”
“옆에 계신 분은… 스틱스 여신님? 설마…”
“저승의 주인께서 결혼하셨다는 소식은 못 들었는데?”
지나갈 때마다 신들이 수근거리는 소리도 오랜만이네.
너희가 신력으로 소리를 막아봤자 내 귀에는 다 들린다. 어린 것들아…
“와… 하데스, 저것 좀 봐요.”
내게 달라붙어 팔짱을 낀 스틱스 여신님이 다른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그곳에는 많은 여신들이 모인 베짜기 대결이 열리고 있었다.
“오오… 다들 손놀림이 대단하시군.”
“베를 짜는 것도 지혜가 필요했나?”
“어느 여신께서 올림포스에서 제일 베를 잘 짜시는지…”
베에 아름다운 문양을 새기는 것도 예술의 일환,
참가자는… 아테나와 헤라, 헤스티아인가.
슥슥. 끼익. 덜컥.
아테나의 베에는 제우스가 황금 옥좌에 앉아 있는 모습.
티폰과 싸우는 수많은 신들, 인간들에게 은혜를 내려주는 아테나 자신의 문양 등이 새겨져 있었다.
헤라는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인간 가정의 단란한 풍경을 보여줬다.
아이를 안고 행복해하는 여성의 얼굴 묘사가 일품이였다.
헤스티아는 어두운 밤을 비추는 자신의 화로를 베에 새겨 넣었는데,
그녀의 따스한 기운이 문양에서 흘러나오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역시 헤라 님이시다…”
“아테나 님은 지혜의 여신이신데 베도 잘 짜시네요.”
“우열을 가리기 힘들지만… 아테나의 베가 제일 화려한 문양이…”
“내 생각도 같아. 지혜의 신격에 손재주도 포함이 되었나?”
완성된 세 여신의 베를 보며 주변의 신들이 한 마디씩 보탰다.
내가 봐도 아테나가 만든 베의 문양이 제일 화려하고 잘 만든 것처럼 보였다.
“아테나, 역시 대단하구나.”
“작은 재주일 뿐입니다. 헤라 님.”
“티폰과 싸우던 우리들을 잘 나타냈구나…”
티포노마키아 당시 올림포스의 신들이 새겨진 아테나의 베.
그곳에는 한 손에는 스퀴테, 다른 손에는 퀴네에를 든 내 모습도 있었다.
천천히 베를 둘러보며 감상하는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하데스 님.”
“디오니소스.”
제우스를 닮은 황금빛 곱슬머리에 짙은 포도주 향기를 풍기는 남신.
술과 광기의 신, 디오니소스였다.
그가 넥타르가 든 황금 술잔을 한번 흔들자 안의 내용물이 붉고 진한 빛깔의 포도주로 바뀌었다.
“한번 드셔보시지요. 인간들 사이에서 제일 유행하는 맛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술잔을 받아들고 천천히 목으로 넘겼다.
씁쓸하면서도 달달한 맛, 짙은 포도 내음이 혀를 즐겁게 만든다.
물론 넥타르가 더 맛있지만 디오니소스의 포도주도 별미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깔끔하게 비워진 술잔을 내려놓으니 포도주의 신이 한숨을 쉬며 말한다.
“후우… 저번의 일 때문에 테베에서 제 신앙이 크게 줄었습니다.”
“오이디푸스 왕이 미쳐버렸을 때인가.”
“신전도 불타고, 신도들도 도망치고, 테베에서는 이제 다시 제 신앙이 커지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헌데 테베는 네가 신앙을 전파할 당시,
왕까지 죽여가면서 두려움을 심어줬기 때문에 신도들의 충성심? 신앙심이 그리 깊은 것 같지는…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큰아버지.”
“어디 말해봐라.”
“가이아는 어쩔 수 없다지만 오이디푸스, 그 인간에게 더욱 강한 벌을 내려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그건 안 된다.
아무리 조카의 부탁이라도 저승의 법도를 내 멋대로 바꿀 수는 없다.
“이미 정해진 판결은 바꿀 수 없다. 그리고 나는 그 정도가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 인간이 제가 아끼는 표범도 죽였습니다.”
“네 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그 인간 역시 피해자라는 것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군.”
“역시… 예, 알겠습니다. 큰아버지.”
디오니소스가 씁쓸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물러간다.
저번에 그에 대한 처벌이 어찌 결정되었는지 잘 알려줬건만,
역시 오이디푸스에 대한 원한 때문에 미련을 떨치지 못한 모양이다.
“하데스 큰아버지께서는 여전히 인간들에게 관대하시군요. 조카의 부탁도 거절하시다니.”
“헤르메스.”
“저 그리고, 잠시 귀를…”
헤르메스가 싱글벙글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귀는 왜… 무언가 할 비밀 이야기라도 있나?
“흐흐… 사실 디오니소스가 귀여운 여자 조카가 아니라서 부탁을 거절하신 게 아닙니까?”
“헛소리는 그만 하고, 그런데 어디서 전쟁이라도 났느냐?”
“왜 그러십니까?”
“큰 축제임에도 신들 몇몇이 보이지 않아서 말이다. 아레스도 안 보이는군.”
평소 올림포스에서 열리는 축제와 같지만 아까부터 신들 몇몇이 보이지 않는다.
넥타르를 신나게 마시고 있을 아레스도 없고,
한쪽 자리에 앉아 남신들을 음흉하게 바라봐야 할 아프로디테도 없고,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헤파이스토스가 초대해서 왔는데, 정작 걔는 어디로 갔단 말이냐?”
“예? 헤파이스토스 형님이라면 렘노스 섬에 볼일이 있어 며칠 다녀온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야.
헤르메스도 어리둥절한 표정이던 그때,
널찍한 단상 위로 대장장이 신이 올라왔다.
“어라…? 헤파이스토스 님께서는 렘노스 섬에 가신 게 아니였나.”
“축제 마지막 날에 돌아오신다고 알고 있었는데.”
헤파이스토스가 제우스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의 우렁찬 목소리가 올림포스를 흔들었다.
“흠. 흠. 여러분! 나 헤파이스토스가 축제에 참여하신 신들을 위해 예술의 정점이라 할만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