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53)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53화(53/82)
예언자 프로메테우스 – (1)
지하 세계, 저승.
하데스의 성채로 들어가는 거대한 문.
“헥. 헥.” “끼이잉..”
나는 지금 내 앞에서 온갖 재롱을 피우는 개를 바라보았다.
머리가 셋인데다 침에서는 맹독이 흐르는 마수가 혀를 내밀며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이제는 조금 크게 자란 저승의 문지기,케르베로스를 바라보다가 풍요의 뿔(Cornucopia)을 꺼냈다.
두툼한 고기를 생각하며 부서진 뿔에 손을 넣으니 곧 커다란 고깃덩이 하나가 집혔다.
아드득. 찌이익.
그대로 잡아 케르베로스의 앞에 던져주자 머리 세 개가 달려들어 정신없이 뜯어먹는다.
싱싱한 고기는순식간에마수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헥헥헥.”
다시 나를 바라보며 다음 먹이를 달라는 듯, 꼬리를 흔드는 케르베로스를 보고 있자니…
꿈의 신, 모르페우스가 다가왔다.
“하데스 님. 오늘은 케르베로스에게 손수 먹이를 주시는군요. 뭔가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그냥… 별 거 아니다.”
“그 표정은 무언가 고민할 때 지으시던 얼굴 아닙니까? 혹시 또 가이아에 대해 고민하고 계시는 건가요.”
요즘 들어 가이아가 조용하다.
처음에는 기가스들을 이용해 각종 함정을 파고 우리 전력을 깎아내더니…
신들이 습격을 잘 막아내자 오이디푸스와 같은 인간 영웅을 이용해 이승에서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려 했다.
다음으로 그녀가 놓을 수는…
“슬슬 무언가 수작을 부릴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서.”
“저번처럼 인간 영웅들을 이용하거나, 단 한 번 남은 기회를 살려 기가스를 움직일 준비를 하지 않겠습니까?”
“확신할 수가 없으니 문제지.”
모르페우스의 말처럼 무언가 준비를 하는 것은 맞겠지만 그녀가어떤 수단을 사용할지 확신할 수가 없다.
1세대 신 프로토게노이의 능력, 만물에 영향을 미치는 대지의 주인.
데메테르보다 대지의 지배권에 우선권을 가지는 그녀는 심지어…
“가이아에겐 예언의 힘도 있으니까.”
“하기야, 아폴론 신을 뛰어넘는 예언 능력이 문제군요.”
대지모신 가이아는 대지와 계절, 생태계를 의인화한 존재.
그리고 강력한 예지능력을 지닌 신이기도 하다.
시간이자 농경의 신인 크로노스와 사이가 틀어졌을 때,
너 역시 네 자식들에 의해서 권좌를 빼앗길 것이라고 예언한 사실은 유명하다.
그녀에게 비견될 예지의 힘을 가진 이는 세계에서 오직 프로메테우스뿐.
아폴론도 미치지 못하는 그 예언 능력은 우리에게 큰 위험이…
“잠깐, 우리가 프로메테우스를 어떻게든 설득할 수 있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는 제우스 님에게 원한이 가득할 텐데 과연 올림포스를 도우려 하겠습니까?”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들에게 불을 전해준 대가로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 바위산에 묶여 있다.
심지어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벌을 받고 있으니 그에게 원한이 상당할 터.
“하지만 그처럼 인간을 위하는 티탄은 보지 못했어. 기가스들은 인간을 잡아먹으니, 만약 그 점을 파고들어 설득한다면…”
“일단 바위산에서 풀어줘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올림포스로 가서 제우스를 설득해 봐야지.”
어떻게든 내가 제우스를 설득해 바위산의 형벌을 취소시킨 다음,
프로메테우스의 예언 능력으로 도움을 받는다.
한가지 걸리는 부분은… 제우스가 불을 훔친 그를 용서할까?
* * *
“아무리 형님이 말해도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젠장, 역시나 이러는군.
올림포스로 오자마자 제우스를 만나 보았지만 그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거절했다.
“원래는 바위산에 묶는 것으로만 끝내려 했지만 그 벌을 선택한 것은 프로메테우스 자신이지.”
“너를 도발한 그 발언 말이냐?”
프로메테우스는 바위산에 묶일 때,
헤파이스토스에게 ‘제우스도 언젠가 크로노스, 우라노스와 똑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라는 말을 전해달라 했다.
신들의 왕에게 보내는 강도 높은 도발에 제우스는 격노하고 독수리로 매일 간을 뜯어먹게 했다.
사실 그것이 완벽한 예언이 가능한 프로메테우스가 한 말이라 그저 도발인지 예언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신의 예언 능력을 제우스가 알고 있다는 것을 이용한 프로메테우스의 도발.
항상 제우스의 마음 속에는 그 발언이 가시처럼 박혀 있을 터.
“그때 그가 한 말이 마음에 걸리는데, 네가 관용을 베풀면 활로를 알려주지 않을까?”
“그 예언일지 모르는 헛소리를…”
제우스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신들의 왕의 심기를 건드린 프로메테우스를 풀어주는 일이라 하지만,
역시나 그도 헤파이스토스가 전달한 말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나 보다.
황금 옥좌의 손잡이를 툭툭 건드리던 제우스가 입을 연다.
“만약 프로메테우스가 형님에게 설득되지 않으면 어쩔 생각이야? 헤르메스를 보내 예언을 자세히 알려준다면 형벌을 멈춰주겠다고 설득해도 비웃음만이 날아오더군.”
“그건 헤르메스를 보내니까 그렇지, 내가 직접 찾아간다면 조금 다를거야. 그리고 내게 설득되지 않는다면…”
프로메테우스는 아폴론을 뛰어넘고, 가이아에 비견되는 완벽한 예언의 신.
그는 신들에게서 불을 훔친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고 있음에도 인간에게 불을 전해줬고…
제우스를 도발하면 어떤 처벌이 따라올지 알고 있음에도 비웃음을 던졌다.
사실상 디오니소스를 뛰어넘는 진짜 광기의 신이 그가 아닌가?
만약 프로메테우스가 내게 설득되지 않는다고 다시 바위산에 묶어버리는 등 보복을 가할 생각을 가진다면,
예언의 신인 그는 분명히 나를 비웃으며 코웃음을 치겠지.
“그는 이미 충분한 처벌을 받았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럼 그냥 풀어주겠다는 거야?”
“그래, 그리고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런 그를 설득하려면 채찍이 아닌, 진심으로 다가서야 한다.
고작 불을 훔쳐서 인간들에게 전해줬다고 매일 고통받는 형벌도 이제 멈추게 하고…
“그가 불을 전해줌으로서 인간들이 우리에게 번제를 올릴 수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신들의 왕인 내 명을 무시하고 멋대로 행동했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어.”
“그래서 나 역시 네가 내린 처벌을 묵과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보는데.”
프로메테우스는 이미 굉장히 오랜 시간을 고통받았다.
신들의 왕에게는 어느 정도 권위가 필요하지만, 이 정도면 다른 신들도 납득하기에 충분한 형벌의 시간.
“여봐라, 아테나에게 내가 찾는다고 일러라!”
“알겠습니다. 제우스 님.”
제우스가 시종을 시켜 아테나를 불렀다.
그가 신뢰하는 지혜의 여신의 의견을 들어볼 생각인가 보네.
* * *
곧 언제나처럼 전신을 무장한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도착했다.
나와 제우스가 나눈 이야기를 들려주자 그녀의 얼굴이 신중하게 변한다.
“송구스럽지만, 아버지께서는 이미 화가 풀리셨지 않으셨습니까?”
“뭐라고?”
“이미 저를 불러 의견을 물어보신 것 자체가, 프로메테우스가 충분한 벌을 받았다는 생각이 드신 것 같습니다.”
“흠… 네 어머니, 메티스(Metis)를 불러와라.”
잠시 후 구름을 타고메티스가 도착했다.
그녀는 제우스의 머릿속에서 지혜의 여신을 낳은 후, 아테나가 나올 때 함께 나왔다.
비록 제우스는 예언을 경계해 메티스를 먹어버렸지만,
자신과 그녀의 사이에서 남신이 아닌 여신이 태어나자 그녀를 더 이상 붙잡아두지 않았다.
아테나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올림포스 최고의 지혜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던 메티스.
그녀는 이미 아테나의 말을 전해들은 듯, 오자마자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제우스, 가이아 님의 예언 능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프로메테우스의 힘이 필요해요.”
“하지만 그를 그렇게 쉽게 용서해도 될지 모르겠어.”
“신들의 왕으로서 관용을 조금 베푸시는 건 어때요? 당신에게 거역해도 도움이 되면 품 안으로 감싸는…”
올림포스에서 제일 지혜로운 신들의 의견이 통일되자,
제우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휘저었다.
“아. 아. 그래… 잘 알겠어. 메티스, 당신도 이만 물러가도록.”
“후훗. 여태까지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현명한 판단을 하실 거라고 믿고 있을게요.”
머리를 짚은제우스의 마음이 조금 불편해보인다.
그의 심기를 거스른 프로메테우스를 꼭 풀어줘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고심하는 모습.
굳이 재촉하지 않고 잠시 기다렸다.
여태까지 올림포스를 잘 이끌어 온 나의 형제라면 올바른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으음…”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흐르고, 결심을 마친 듯 제우스가 입을 열었다.
“나는 프로메테우스의 도움을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그를 풀어줄 생각을 하는 형님은 참으로 자비롭군, 얼마 전부터 자비의 신이라고 추앙받더니 그 때문인가?”
내가 너무 무르다고 돌려 말하는 건가.
하지만 이미 설득된 듯, 나를 강하게 힐난하기보다 적당히 투덜대는 어조였다.
이게 수긍의 의미라는 것을 알아챈 나는 씩 웃으며 제우스에게 말했다.
“자비의 신이 과한 형벌을 옹호할 수는 없지. 심지어 죄인이 가이아와의 싸움에서 열쇠를 쥐고 있는 자라면…”
“하기야 형님처럼 관대한 신도 하나쯤은 있는 게 나쁘진 않으니까…”
옥좌에서 일어난 신들의 왕이 내 눈을 마주친다.
“프로메테우스 건은… 형님의 뜻대로 해도 좋아. 하지만 놈의 사과는 받아내야겠어.”
“그 정도라면 내가 어떻게든 설득해 보겠다.”
제우스의 허가도 받았고, 이제 프로메테우스가 있는 바위산으로 찾아갈 차례.
그렇다고 냅다 찾아갈 수는 없으니.. 조금 더 준비를 해 볼까.
만약 저승에 있는 ‘그녀’를 설득한다면…
프로메테우스에게서 도움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