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57)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57화(57/82)
민트의 여신, 멘테 – (1)
수줍은 듯 얼굴을 잔뜩 붉히고 알현실로 천천히 걸어들어오는 여신은 분명 멘테였다.
이제는 님프가 아니라 여신이 된 게 확실한 듯, 전신에서 뿜어지는 청량한 신력.
“큰아버지, 그럼 새로 태어난 신과 이야기를 나누시지요. 미천한 전령은 이만 올림포스로 돌아가보겠습니다. 하하!”
“하.. 헤르메스. 그래, 나중에 보도록 하자.”
상상도 못한 그녀의 등장에 당황한 내 표정을 감상하듯 살펴보고 손을 흔드는 조카.
분명히 내 반응을 기대하고 직접 멘테를 데려다준다고 지원한 게 틀림없다.
헤르메스가 떠나고 나는 아직도 내 눈을 잘 마주하지 못하는 멘테를 바라보았다.
들어야 할 설명이 굉장히 많은데, 뭐부터 시작해야 하지…
“그래서 멘…”
“핫! 네에! 하데스니임…으…”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당황하며 말을 더듬는 멘테.
나랑 처음으로 만난 것도 아니고, 사제까지 했으면서 왜 이러는 거야?
“멘테. 왜 그리 얼어붙어 있는지 몰라도 그만 부끄러워하고 천천히 경위를 말해 봐라.”
“…하. 하지만…”
“…?”
멘테의 얼굴이 더욱 붉어지더니 빠르게 말을 쏟아낸다.
“하데스 님이 지배하시는 저승으로 직접 자원한다는 것은 언제든지 제 몸을 취하셔도 받아들일 각오가…!”
“아니…”
“저번에 뵀었던 여신님들은 역시 저승의 안주인들이신가요? 하.. 하지만 저는 첩으로도 괜찮아요…!”
“그만. 그만해라…”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자 적당히 손을 내저어 말을 멈추게 했다.
묘하게 흥분해 말하던 멘테가 숨을 몰아쉬며 진정했다.
아직 젊은 나이인데… 쯧쯧. 얘는 아무래도 망상이 폭주하는 병에 걸린 것 같다.
언제 한번 아폴론에게 치료를 받게 시키던가 해야지 원.
“그래서 님프였던 네가 어떻게 신이 되었으며, 왜 저승으로 오게 되었느냐?”
“그것이… 말하면 조금 긴데요오…”
내 앞에서 수줍게 말하는 멘테의 말은 다음과 같았다.
먼저 테베를 중심으로 민트가 점차 퍼져나가며 그리스 전역에 수출되었고…
이승에서 내 상징으로 여겨지는 민트의 위상이 굉장히 높아졌다.
“으음. 플루토 신의 은혜라. 나는 그분을 믿진 않지만 감사한 일이지…”
“아무리 하데… 다른 이름이 두렵다고는 하지만 인간들을 위해 무언가 내려주신게 아닌가?”
“테베에서 온 상인의 말로는 플루토께서는 생자들에게 자비로우신 선신이라더군.”
그러자 자연스럽게 내가 공언한 민트의 창조자, 멘테의 위상도 높아졌다.
심지어 그 본인이 인간이 아닌 님프인데다가 내 사제로 활동하고 있으니 더더욱.
“플루토의 신전에 민트의 창조자라는 님프가 있다던데…”
“평범한 님프가 그런 걸 만들 수가 있나? 아마도 플루토 님의 명을 받고 이승으로 올라온 신이실지도.”
“모르겠군. 나는 아무튼 그분에게도 기도를 드리고 왔어.”
점차 인간들 사이에서 그녀가 민트의 여신으로 숭배되더니 신앙이 모이기 시작했단다.
결국 헤르메스 신이 신전에서 기도를 올리던 민테 앞에 내려와 올림포스로 데려갔다고…
“네가 인간들 사이에서 신앙을 받는 멘테라는 님프냐? 보아하니 제법 아름답…”
“아버지, 제가 듣기로는 저 님프가 하데스 큰아버지에게 총애받는다고 합니다.”
“크흠! 거, 빨리 말할 것이지… 아무튼 저승의 상징을 만들었으니, 여신으로 승격시키기에는 충분하겠군.”
그렇게 신들의 왕인 제우스가 그녀를 신으로 인정했고,
민트의 여신으로 승격한 멘테는 저승에서 근무하길 희망했다.
“헤르메스 님, 어떻게 안 될까요?”
“저승? 그쪽은 인력난.. 아니 신력난이긴 한데…”
여기까지가 새롭게 탄생한 민트의 여신이 저승으로 오게 된 계기였다.
* * *
설명을 마친 멘테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무언가를 상당히 기대하는 눈치인데.
“하데스 님! 그래서 저는 이제 무슨 일을 하면 되나요?”
“…알고 왔는지 모르겠지만 저승은 제법 바빠서 네 권한을 넘어서는 일을 맡을 때도 있다.”
“흐흥! 제가 이래봬도 사제였을 때, 그 힘들었던 신전 일에도 잘 적응했거든요!”
허리춤에 손을 올리며 가슴을 강조하듯 내미는 멘테.
그런데 테베의 신전에서 사제로 일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저승에서 잘 적응할 수 있으려나…
싱글벙글 웃고 있는 멘테에게 약간의 조언을 해줘야겠다.
“멘테, 우리 신이 왜 영원을 살아가고, 강하다고 생각하느냐?”
“네?”
그녀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내 의도를 짐작하려는 듯,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나오는 말은 예상대로였다.
“어… 태초의 신, 카오스 님의 위대한 혈통과 힘을 이어받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틀렸다.”
필멸자들이 보기에는 신들이 위대하고 강하고, 때로는 완전무결해 보이겠지.
앞일을 내다보는 예언이나 지형을 바꾸는 힘은 필멸자들이 우리를 숭배하기에 합당한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세상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넘치는 힘과 세월의 흐름에 풍화되지 않는 정신이 주어진 것이다.”
“아…”
“당장 너만 보아도 평범한 님프였다가 신이 되었지. 이게 무슨 뜻이냐면…”
세계가 잘 굴러가게 만드는 노예가 된다는 뜻… 이라고 말하면 조금 과하겠지?
내가 저승에서 일하면서 느낀 점은 그게 맞는 것 같지만..
“…그냥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을 맡았다고 생각해라.”
“역시! 숭고한 책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위대한 신들께서 강하신 것이군요!”
이제는 너도 그 위대한 신이다.
그리고 숭고한 책무는… 음. 어느 정도는 맞겠지?
“세계의 균형을 유지한다니… 딱 제가 생각하던 신격의 책임과 과업!”
“신이 강하기에 세상을 통치하는게 아닌, 세상을 통치해야 하기 때문에 강한 것이다라는 말도 있다…”
“아하!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라온다는 것이군요!”
불로불사인 신의 체력에는 수많은 일거리가 따라오기도 하는 게 맞긴 한데…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를 납득한 멘테가 다시 몸을 배배 꼬며 말한다.
“이리도 저를 걱정해주시다니… 하데스 님의 상징인 민트를 만들어낸 여신에 걸맞는 책임을 다하겠어요!”
“…? 어.. 그래. 그래라.”
아니 뭔가 대화가 통하는 것 같으면서도 어긋나는 느낌인데.
일단 저리도 자신만만하니까 일단 적당한 곳에 배정할까.
양피지를 슬쩍 뒤적거리며 어느 자리가 적당할지 고민하는데 전령이 뛰어왔다.
토가를 입은 젊은 남성 영혼병, 내가 아는 익숙한 얼굴이네.
“하데스 님! 이번에도 재판장에서…”
“미노스 3형제가 단독으로 판단하기 어려울 만한 일이겠고, 신들에 의한 예언이나 피해자가 있었나?”
“헉!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번에는 심지어…”
재판장 근처에 근무하는 발빠른 전령인 아포크레테스가 뛰어오는 일도 흔하다.
보나마나 또 신에 의한 피해자겠지. 올림포스 신들 여럿이 관여해 판단이 어려운 일인가?
나는 물론 미노스 3형제의 판단을 신뢰하지만,
높은 신격들은 자신이 벌한 자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린 미노스를 아니꼽게 보는 경우도 있었다.
죽은 인간에 불과한 미노스들이… 신인 자신의 판결을 거스르는 것 같다나 뭐라나.
당연히 내 앞에서는 그런 불만을 얘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올림포스의 소식통이자 모두의 전령, 헤르메스가 전해준 소문이였다.
그래서 미노스 형제들의 부담도 덜어주고 더욱 공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신벌을 받은 인간이나 여러 신격의 틈바구니에서 죽은 인간의 판결은 내가 나서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들만으로 판결이 어려운 중죄인의 심판에도 당연히 관여하고 있었고…
“올림포스 12신의 치정극에 엮인 필멸자가 또 나왔나?아마도 강간이나 불륜 피해자가 또 발생했겠군. 지금 간다고 미노스에게 전해라.”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물러가보도록…”
전령이 다시 떠나고 나는 멘테를 바라보았다.
“레테 여신에게 찾아가면 네가 맡을 일을 도와줄 것이다. 그럼 나는 바쁜 일이 생겨서…”
“아.. 예에!”
* * *
“감사… 감사합니다. 저승의 왕이시여…”
“그래, 생전에는 뛰어난 외모로 신에 의해 불미스러운 짓을 당했으나, 이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으흑.. 흑..”
내 앞의 아름다운 여성 영혼이 슬피 울부짖는다.
이 영혼은 생전에 한 하급신의 구애를 거절했지만, 결국 그에게 강간당한 여성이였다.
그런데 처녀신 아르테미스의 신자여서 순결을 잃자마자 여신의 저주를 받고 자살한 것이 문제였지…
그 얌전하던 아르테미스는 꼭 자기 신자들에게 엄격하다니까,
아니 본인의 의지로 순결을 버린 것도 아닌데 조금 관대함을 가질 줄도 알아야 하지 않나?
“다음은 어떤 영혼이냐, 미노스?”
“예, 이번에는 아라크네라는 동물… 인간 여성입니다.”
“아라크네? 들어오라 해라. 어느 신이 엮여있지?”
“… 문서에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 님께서 직접 그녀를 벌하셨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번에는 지혜의 여신인가?
아테나는 스틱스 강에 순결을 맹세한 여신이니 신들의 치정극은 아니겠고.
울분이 느껴지는 듯한 여성 영혼이 천천히 들어온다.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보면… 망각의 강에서도 기억을 유지한 독심을 품은 영혼.
필시 자신을 죽인 아테나를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있겠지.
그녀를 데려온 병사가 아라크네를 엎드리게 시킨다.
여성 영혼이 바닥에 털썩 엎어지듯 날 향해 고개를 조아린다.
“네 이름이 아라크네라고? 죽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거짓 없이 고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