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59)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59화(59/82)
페르세우스의 이야기 – (1)
요즘 들어서 멘테가 많이 달라졌다.
종종 저승을 돌아다니다 보면 퀭한 눈빛으로 중얼거리며 지나가지 않나…
“으으… 다시 돌아갈래.. 아니야 그래도…”
가끔은 저승 외곽에서 쪼그려 앉은 채로 발견될 때도 있었다.
왜 이러고 있냐고 말을 걸어보면…
“하데스 님… 저.. 저 이렇게는 못 살아요오… 포상! 포상이라도 주세요!”
고개를 슬쩍 들고 눈물이 맺힌 채 내게 애원한다.
…애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갑자기 안기려 드는 게 문제지만,
계속 피하다가 한번은 마음이 약해져 그냥 받아줬더니 이런 일도 발생했다.
내 품에 안겨 일이 너무 힘들다고 울던멘테의 뒤에서…
“멘테? 내가 맡긴퓌리플레게톤(Pyriphlegethon)강의 불꽃 강도는 다 확인했니?!”
“뱃사공 카론에게서 민트 향에 대한 민원이 들어왔는데… 여기서 하데스한테 꼬리칠 시간이…”
“히이이익?! 죄.. 죄송해요오!”
살벌한 신력을 내뿜는 스틱스 여신과 레테 여신이 갑자기 나타나더니,
그녀를 다시 데리고 가버렸다.
마치 저승에 오는 필멸자의 표정을 하던 멘테는 그때부터 내게 안기려 하지 않고 움찔거렸다.
그래, 무슨 교육이나 훈계라도 들은 것마냥…
자꾸 그런 일이 반복되자 나는 잠의 신, 휘프노스를 불러 물어보았다.
“혹시 여신님들이 멘테를 괴롭히는 건 아닙니까? 일에 치여 사는 모양인데요…”
“…? 내가 알기로는 스틱스 여신이 평소에 일하는 것의 절반도 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만.”
그게 정말인가 싶어서 하루는 몰래 멘테를 미행해 보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저승을 뛰어다니며 일하는 멘테였지만…
‘이 정도는 오히려 편의를 봐준 편 아닌가?’
멘테의 업무는 저승에 거주하는 신들의 평균적인 업무량보다 훨씬 적은 편에 속했다.
심지어 다른 신들은 분신까지 동원하며 그보다 몇 배는 더 바쁘게 일하는데 반면,
그녀는 분신을 만들 줄 몰라, 본체만을 움직여 돌아다니는 중이였다.
그 이후부터는 그 정도 업무량이면 금방 적응하겠지… 라고 생각해 관심을 거뒀다.
당장 멘테를 미행하던 나조차도 분신을 움직여 판결을 내리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하루하루 저승에 적응하는 멘테를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는데…
* * *
어느 날,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저승으로 찾아왔다.
“안녕하십니까, 큰아버지. 콜록. 콜록.”
“…? 왜 기침을 하느냐.”
우리 신들은 병에 걸리지 않는다.
의술의 신 아폴론도 고칠 수 없다는 권능의 영역에 있는 탈모를 제외한다면,
다른 대부분의 병마는 강건한 신의 육체를 침범하지 못한다.
그런데 올림포스 12신, 지혜의 여신이 기침을 한다고?
내 질문에 아테나가 어색한 미소를 띠며 말한다.
“아… 그것이.. 킁! 저승의 입구부터 아케론 강까지 강렬한 민트 향 때문에…”
“그렇게 심하더냐?”
“…뱃사공 카론께서도 코를 틀어막으며 거대한 나룻… 아니 강철 선박을 움직이시더군요.”
하데스의 상징이자, 죽은 자의 채취를 완화시키는 데 사용되는 민트.
원래 민트는 하데스 신전이 있는 테베 사람들의 장례식 때나 사용되었기에 부담이 적었다.
죽은 자의 영혼을 수확하는 타나토스도,
죽은 이들을 아케론 강 너머로 나르는 카론도 처음에는 그 상쾌한 향에 좋아했다.
그런데 멘테가 여신으로 모셔질 정도로 민트가 이승에 퍼졌다면…
매일 죽은 자들 중, 민트 향을 풍기는 자가 얼마나 될까?
“아차… 요즘 들어서 이승에 민트가 너무 퍼졌구나.”
“예, 영혼들이 아케론 강을 건너면 강물에 채취가 희석되지만 그 이전까지는…”
“이승에 퍼진 민트를 줄일 방도를 생각해야겠군.”
내 상징인 민트가 널리 퍼진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향기에 고통받는 신들이 있어서야…
무슨 다른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저.. 큰아버지. 제가 저승에 온 이유는..”
“아테나, 너는 좋은 생각이 있느냐? 인간들 사이에서 장례식에 사용되는 민트를 자연스럽게 줄일 방도가…”
“신탁으로 금지한다던가 그런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줄이는 것을 원하십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민트를 내려줘놓고 신탁으로 장례식 때 사용되는 민트 용량을 제한하는 것은…
너무 인간들에게 과하게 간섭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민트를 음식으로 퍼뜨리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렇다면 인간들이 귀중한 식재료인 민트를 장례식에 많이 낭비하지는…”
“…!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 그러고 보니…”
맞다. 저번에 멘테가 민트를 만든 상으로…
민트의 창조주가 그녀임을 공인하고, 민트 음식이 전 세계에 퍼지도록 하겠다고 했었지.
일이 바빠서 까먹고 있었는데, 진작 그 방법을 사용할 걸 그랬구나.
민트 향이 너무 강하니까 먹어서 없애… 는 것이 아니라.
민트를 차나 음식에 넣어 먹게 만든다면 자연스럽게 장례식 때 사용되는 민트가 줄어들겠지?
이 시대에서 식재료는 귀하기 때문에 시체와 함께 버려지는 민트 이파리의 양은 줄겠고,
더는 영혼들에게서 지독한 민트 향이 나지 않을 것이다.
“…큰아버지?”
솔직히 나는 괜찮지만 아케론 강의 카론이 고생한다니 저승의 왕으로서 도저히 두고 볼 수가 없군.
그러므로 내가 민트를 음식으로 만드는 까닭은 다 카론 덕분… 아니 때문이다.
당장 멘테를 불러 이 일을 맡기려는데 아테나가 나를 불렀다.
“제가 여기에 온 이유는 큰아버지의 퀴네에를 빌려 가고 싶어서입니다.”
* * *
퀴클롭스 3형제 중 하나, 아르게스가 만들어준 내 퀴네에를 빌려가고 싶다?
제우스의 벼락, 포세이돈의 삼지창을 빌려가는 것과 마찬가지.
자세를 바로 하고 아테나의 눈을 쳐다보았다.
“지혜의 여신이 내게 그런 말을 꺼낸 이유가 있겠지. 설명해라.”
“예. 영웅이 될 운명인 페르세우스(Perseus)라는 인간에게 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나도 들은 바가 있다. 자신의 외할아버지를 죽일 운명이라는 불쌍한 인간을 말하는 건가.”
이승에 있는 인간들의 국가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오스는 아들이 없고 딸만 있었다.
그래서 델포이 신전으로 찾아가 자식에 대한 신탁을 들었으나…
“너는 앞으로 아들을 가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딸이 낳은 자식의 손에 죽으리라.”
“뭐. 뭐라고?!”
무시무시한 예언을 들은 아크리시오스 왕은 딸인 다나에를 커다란 탑에 감금했으나,
제우스가 황금 비로 모습을 바꾸어 탑 안으로 들어가 그녀와 관계를 맺었다.
그렇게 다나에와 그녀가 낳은 제우스의 아이, 페르세우스는 아크리시오스 왕에 의해 바다에 버려졌다.
정확히는 둘을 함께 나무 상자에 실어 바다에 떠다니게 했고,
그들은 마음씨 좋은 어부에게 구출되어 세라포스 섬에서 살게 되었다.
하지만…
“페르세우스. 폐하의 명령이다. 메두사의 목을 가져오도록 해라.”
“메.. 메두사의 목을 가져오란 말이오?”
“거부한다면 왕명을 거역한 죄로 사형이다. 어쩔 테냐?”
“젠장.. 알겠소.”
세라포스 섬의 왕인폴뤼덱테스는 다나에의 미모에 반했고,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그녀의 아들인 페르세우스를 죽이려 하였다.
바로 고르곤 세 자매 중 하나이자 뱀으로 된 머리카락을 보면 돌이 되는 능력을 가진 괴물, 메두사에게 보내서!
“그 인간에 대해 알고 계셨군요. 큰아버지.”
“아무리 내가 저승에 있다 한들, 영웅이 될 운명을 가진 인간인데 모를 리가 없지.”
기가스들의 위협이 끝나지 않은 지금,
영웅이 될 운명을 타고난 인간들에 대해서는 파악하고 있었다.
특히나 페르세우스 같은 제우스의 아들이라면 더욱.
정해진 운명.
불멸자인 신들조차 감히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법칙.
예언 등으로 알아낸 운명을 바꾸는 것은 신들의 왕인 제우스조차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나는 페르세우스가 자신의 외할아버지를 죽일 운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감히 그것을 바꿀 엄두는 내지 못하였다.
“제우스의 아들이라면 내게는 조카니까 죽게 놔둘 수는 없다.”
“그렇다면 퀴네에를 빌려주시는 겁니까?”
“글쎄…”
그러나 페르세우스가 영웅이 될 인간이 맞고,
기가스와의 전쟁에서 활약할 수도 있는 영웅일지도 모르기에.
미래를 위한 투자를 겸해 퀴네에를 빌려줄 수도 있기는 하다.
그것이 운명이라면. 하지만…
“메두사를 베고 영웅이 될 인간이 페르세우스인것은 맞지. 하지만…”
내가 아테나의 말을 바로 수락하지 않는 까닭은 단 한가지.
“포세이돈에게 강간당한 피해자인 메두사를 괴물로 만든 것은 너 자신이 아니냐? 그것도 원래는 너를 모시는 무녀였던 걸로 아는데.”
메두사는 아테나를 모시는 신전의 무녀였으나,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를 노리던 포세이돈에게 신전에서 강간당했다.
그리고 아르테미스와 마찬가지로 아테나는 처녀신.
그녀의 신전에서 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엄청난 신성모독이였고,
강력한 힘을 가진 포세이돈에게 정면으로 항의할 수 없는 아테나는 대신 메두사를 괴물로 만들어버렸다.
“네 성정도 아르테미스 못지 않구나, 포세이돈에게 항의하기는 힘들 수도 있었겠지만… 조카라고 있는 것들이 인간에게 화풀이나 하고.”
“큰아버지, 그것은…”
“메두사를 강간한 포세이돈에게는 아무 말도 못하면서, 그녀를 죽일 운명인 인간 영웅에게 주려고 내 퀴네에를 빌려가겠다?”
페르세우스는 메두사를 죽이고 자신의 외할아버지도 죽일 운명이 맞다.
하지만 애초에 강간 피해자였던 메두사를 괴물로 만든 것은 아테나.
페르세우스가 죽음을 맞이하게 둘 수는 없으니 퀴네에를 빌려줄 생각이긴 하지만,
조금 더 나를 설득해야 할 거다.
“올림포스에서 명성이 자자한 네 지혜로 변명이라도 해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