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60)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60화(60/82)
페르세우스의 이야기 – (2)
“올림포스에서 명성이 자자한 네 지혜로 변명이라도 해보거라.”
아테나를 바라보며 그리 말하자 그녀가 몸을 움찔거리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곧장 고개를 푹 숙이고 입을 여는 지혜의 여신.
“제가 큰아버지께 무슨 말씀을 드려도 상황을 모면할 거짓처럼 들릴 것은 압니다.”
“구태여 변명은 하지 않겠다고?”
“…앞으로 인간들을 벌할 때는 큰아버지의 말씀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겠습니다.”
스틱스 강에 맹세한 처녀성에 위협이 될 뻔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쯧.
악타이온에게 저주를 내린 아르테미스가 생각나는군.
“다음부터 그런 일이 있다면 차라리 나나 제우스에게 말해라. 경고 정도는 해주마.”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네가 포세이돈에게 강간당한 불쌍한 무녀를 희생시켰다는 사실을 기억하겠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라.”
“명심하겠습니다. 큰아버지.”
이쯤에서 끝난 것이 다행이라는 듯, 아테나가 안도하는 표정은 마음에 들지 않네.
하지만 일단 메두사에 대해 할 말은 여기까지다.
메두사는 저승의 망자가 아니라 지상의 생자이며, 아테나에게 속한 무녀이기도 했다.
내가 과하게 간섭할 수는 없겠지. 비록 저승으로 오면 편의를 봐줄 생각이지만…
“…이제 말해봐라. 왜 내 퀴네에를 빌려줘야 하는지.”
“아시다시피 페르세우스는 괴물이 된 메두사를 죽이고 영웅이 될 운명을 지닌 자입니다.”
“그래서?”
“하지만 그는 어떠한 힘도 없는 인간, 하데스 큰아버지의 신물을 받지 못한다면 반신인 메두사에게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사실 영웅이 될 운명인 페르세우스고 뭐고,
그냥 그 영웅이 죽일 괴물이 태어난 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럼 반대로, 내가 왜 어떠한 힘도 없는 인간에게 퀴네에를 빌려줘야 하지?”
“…큰아버지께서 직접 페르세우스를 만나보시고 그가 퀴네에를 받을 만한 자인지 시험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아테나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내가 직접 그를 시험해봐라?
어지간히 페르세우스가 영웅의 풍모를 갖추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답변.
지혜의 여신이 이리도 자신만만하니 호기심이 들기는 하네.
과연 어떤 인간이기에 그러는지…
“좋다. 대신 내가 페르세우스라는 인간에게 다녀올 동안 너는 저승에서 일을 해줘야겠다.”
“…알겠습니다.”
방금 메두사에 대한 건으로 추궁했을 때도 의연한 모습을 보이던 아테나.
그녀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 * *
평화로운 세라포스 섬.
자신의 어머니를 노리는폴뤼덱테스왕의 계략 때문에 죽을 위기에 처한 페르세우스는 침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 다나에의 미모에 반해 접근하는 놈 중에 왕이 있을 줄이야.
‘빌어먹을… 메두사라면 머리카락 대신 뱀이 달려있고, 그것을 바라보면 돌이 되어 죽는다는 괴물 아닌가?’
그의 마음속에서폴뤼덱테스왕에 대한 분노가 점점 커져갔다.
여자를 차지하려고 괴물의 손을 빌려 그녀의 아들을 죽여버리려 하는 쓰레기 같은 왕 같으니라고.
“페르세우스. 폐하의 명령이다. 메두사의 목을 가져오도록 해라.”
“거부한다면 왕명을 거역한 죄로 사형이다. 어쩔 테냐?”
젊은 청년, 페르세우스는 이를 악물고 검을 챙겼다.
세라포스 섬을 지배하는 왕의 명령이 떨어진 이상 어떻게든 그 괴물을 죽여야 한다.
그의 어머니와 몰래 도주하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왕의 부하들이 이곳을 감시하는데다 선박은 전부 왕의 손아귀에 있다.
메두사를 죽인다는 핑계로 도망칠 수도 없다.
페르세우스 혼자 도망친다면 그녀의 어머니인 다나에는 왕에게 끌려갈 것이 불보듯 뻔하다.
‘어쩔 수 없나…’
무장을 마치고 메두사가 있는 곳으로 향하려는 페르세우스.
그런데 그 순간,
휘이이잉-
부자연스러운 돌풍이 불어온다 싶더니 그 자리에는 음울한 인상의 검은 머리의 남자가 서 있었다.
가라앉은 눈으로 그를 천천히 살피는 남자의 눈빛.
평범한 인간인 페르세우스도 느낄 수 있는 존재감,
마치 마법과도 같은 이적… 은은한 위압감과 이 힘… 신이다!
털썩.
“…혹시 신이십니까?”
페르세우스는 즉시 한쪽 무릎을 꿇고 이름 모를 신에게 고개를 숙였다.
설마 올림포스 신이 나를 도와주기 위해 오신 것인가?
평소 존재하지 않던 신앙심이 갑자기 솟아오르려던 찰나,
신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네가 페르세우스가 맞느냐?”
“예! 제가 바로 페르세우스입니다, 신이시여!”
질문에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한 그.
하지만 신의 말은 싸늘했다.
“자발적으로 내 백성이 될 인간이 누구인지 보러 왔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나는 플루토. 저승의 신이다. 네가 메두사에게 자살하러 간다는 인간이냐?”
눈앞의 남자가 3주신, 플루토라는 점은 둘째치고…
내가 곧 죽는다는 말인가? 메두사에게?
“메두사는 보는 자를 돌로 만드는 힘을 가진 반신, 네가 대적할 수 없는 괴물이다.”
“…”
“네 죽음은 필연적이다. 이미 저승의 명부에 네 이름이 올라왔고, 나는 어떤 인간이 메두사에게 향하는지 호기심이 생겨 너를 만나러 와 보았다.”
빌어먹을! 내가 메두사에게 죽을 운명이라고?
페르세우스의 몸이 작게 떨렸다. 스스로 죽을 자리에 걸어들어가야 한다니…
“그러나 너에게 살길이 딱 하나 있구나.”
“제가 살 방법이.. 있습니까?”
“왕이 네 어머니를 탐내 너를 죽이려는 것이 분명하니, 네가 어머니와 왕의 혼례를 찬성한다면 메두사에게 죽지 않아도 될 것이다.”
“…?!”
“네 어머니는 왕비가 되고, 너도 섭섭치 않은 보답을 받을 터인데 좋은 해결책이 아니냐?”
싸늘한 어조로 말하는 플루토 신의 말이 맞다.
폴뤼덱테스왕이 메두사의 손을 빌려 자신을 죽이려는 이유는 그가 어머니와 왕의 혼인을 격렬히 반대하기 때문.
만약 그가 마음을 바꾼다면 목숨을 건질 수 있다.
어머니께서는 왕을 싫어하시지만 내가 어떻게든 설득한다면…
굳이 목숨을 버리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왕과 억지로 결혼해야 하는 어머니를 버릴 수는 없었고,
어머니와 함께 섬을 떠나 도주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
하지만 왕의 명령대로 메두사를 죽이러 가면 본인이 죽는다.
무려 저승을 다스리는 플루토 신이 확언한 운명.
‘젠장… 젠장…! 웃기지 말라고, 나 페르세우스가 여기서…’
페르세우스는 힘껏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 * *
나는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떨고 있는 페르세우스를 바라보았다.
퇴로가 없다는 절망과 왕에 대한 분노를 기반으로 온갖 감정이 요동치는 젊은 인간.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떨던 페르세우스의 몸이 그대로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는 그.
거칠게 뜯겨져 피가 흐르는 입술이 먼저 눈에 보였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하데스 신이시여!”
내게 향하는 그의 눈빛은 세차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저 안광을 어디서 보았더라. 분명…
“저는 기필코 메두사의 목을 베고, 제 목숨도 건질 것입니다!”
맞다. 테베를 세운 시조, 대영웅 카드모스가 내게 보여줬던 용맹과 흡사하다.
조금.. 조금만 더 시험해볼까.
“타나토스의 명부에는 이미 네 이름이 적혔다. 너는 곧 저승으로 와 나를 다시 만날 것이다.”
“위대하신 저승의 주인을 다시 뵈는 것은 분명 영광스러운 일이나…”
저승의 신이 확언하는 사형 선고.
항거할 수 없는 괴물인 메두사와 만나 기필코 죽는다고 한다면…
“저는 어떻게든 괴물의 목을 베고 살아남아폴뤼덱테스왕에게도 대가를 치르게 할 것입니다!”
“메두사는 평범한 괴물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반신(半神)이겠지.”
“죽는 것이 제 운명이라도 이대로 포기할 수 없습니다! 무조건 해내겠습니다!”
페르세우스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말했다.
운명을 가장해 말해보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내 말이 거짓임을 눈치채지도 못했고, 그저 시련을 담담히 받아들일 뿐.
확정된 죽음의 미래에도 용기를 내어 걸어가는 페르세우스는… 분명 영웅이 맞았다.
“…카드모스가 떠오르는군.”
“네?”
의아한 얼굴의 페르세우스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내밀었다.
운명에 도전하는 인간이라니… 제법 인상 깊구나.
“스스로에게 확신을 가지고 나아가라. 나 하데스의 축복이 너와 함께할테니.”
“…?!”
비록 비극으로 끝날 영웅담이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를 지지해주마.
* * *
순식간에 저승으로 돌아와 바쁘게 일하는 아테나에게 향했다.
영혼들을 통솔하던 전쟁과 지혜의 여신이 날 보더니 갑옷을 절그럭거리며 걸어온다.
“어떠셨습니까, 큰아버지?”
“과연 네가 자신할 만한 인간이더군. 티폰을 속여넘긴 카드모스를 보는 것만 같았다.”
아테나의 안색이 밝아진다.
“그 말씀은…”
“그래, 내 퀴네에를 빌려주겠다. 가져가라.”
“감사합니다. 큰아버지!”
검고 낡은 투명 투구, 퀴네에를 아테나의 손에 쥐어줬다.
이로써 나도 메두사를 죽이는데 한 손 거들어준 것이 되었군… 으음.
“그럼 저는 이만 페르세우스에게 무구들을 전해주러 가보겠습니다.”
“무구들?”
“예, 제 방패인 아이기스와 헤르메스의 날개 달린 신발, 헤라 님의 마법 주머니, 아레스의 검도 전해줄 생각입니다.”
내 퀴네에를 쓴 채로 몰래 접근한 다음, 아이기스의 표면에 메두사의 위치를 비춰보고,
날개 달린 신발로 빠르게 접근해 아레스의 검으로 마무리하려 하는 작전인가.
거기에 헤라의 마법 주머니, 키비시스라면 메두사의 머리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을테고…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큰아버지.”
몸을 돌려 저승을 떠나는 아테나의 뒷모습을 보니 어쩐지 씁쓸함이 밀려왔다.
정해진 운명은 제우스도 바꿀 수 없는 일이지만,
이것이 최선이였을까? 잘 모르겠지만…
곧 저승으로 오게 될 운명의 피해자에게 적절한 배상안을 준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