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62)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62화(62/82)
페르세우스의 이야기 – (4)
“그래, 그리고 두 번째는…”
메두사의 시선이내 입으로 향한다.
“앞으로의 네 운명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주겠다.”
“그 말씀은…?”
“만약 환생하지 않고 저승에 남기를 원한다면 최고의 편의를 봐주겠다. 환생을 원한다면 네 신분을 비롯한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겠다.”
만약 그녀가 원한다면, 망각의 축복도 조절해줄 생각.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마지막으로… 네가 원한다면 너는 저승에 속한 하급신이 될 수도 있다.”
…!!!
메두사의 눈이 크게 떠진다.
하지만 그리 놀랄 일도 아닌데… 원래부터 반신인데다 네 언니들은 이미 신이잖느냐.
그녀에게 주어질 배상은 이 정도가 제일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옆에 있는 미노스 형제들은 미리 언질을 주고 의논했기 때문인지 담담한 표정이지만,
망자를 데려온 타나토스는 심히 당황한 모양이다.
“왜 저한테 이리 해주시는 건가요?”
메두사가 아연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그녀의 눈에는 의문만이 가득했다.
“아무리 자비의 신이시라도 영웅에게 토벌당한 괴물을 신으로 만든다는 이야기는…”
“너는 괴물이 아니다. 그저 운명의 피해자일 뿐이지.”
그녀의 말을 끊고 대답했다.
“이유는 많다. 아무리 운명 때문이라지만 네 죽음에는 나도 관여했기도 하고, 내가 필멸자의 종착점인 저승을 다스리는 신인 것도 있겠지…”
이승에서 불행을 겪은 자에게는 안식을.
지나친 죄를 범한 이에게는 처벌을.
그것이 세상의 순환과 균형을 유지하는 저승의 왕이 가져야 할 책임.
그리고…
“하지만 제일 큰 이유는, 신에 의해 너 정도로 큰 피해를 입은 자는 여태까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항거할 수 없는 재앙과도 같은 포세이돈에게 강간당했다.
순결을 잃은 것도 서러운데, 그녀가 모시던 아테나에게 버림받아 괴물이 되었다.
다른 이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작은 섬에서 언니들과 조용히 살아가려는데, 영웅의 위업을 위한 발판으로 쓰였다.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파에톤도, 오이디푸스도, 카드모스나 수많은 인간들까지 생각해봐도,
그녀보다 신에 의해 많은 피해를 본 자는 없을 것이다.
“저승은 올림포스와 별개의 세상이기도 하고…내가 제우스는 아니지만, 하급신 하나 정도는 승격시킬 권한은 있다.”
“아… 당신은 자비의 신이 맞으시군요.”
나는 자비의 신이라고 불리는 것이 조금은 탐탁지 않았다.
얼마나 패악질을 부리는 신들이 많으면, 받은 만큼만 돌려줘도 자비라는 말인지…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면 잠시 자비의 신이 되어도 나쁘지는 않겠네.
그걸로 위안을 얻고, 안도감을 느낀다면야 상관없다.
어두운 동굴 속, 한 줄기 빛을 만난 것처럼…
메두사의 눈에 기대와 희망이 감돈다.
“제가 만약 신이 된다면, 언젠가는 언니들과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아예 이승에 거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종종 만나러 가는 것은 허락하겠다.”
내 말을 들은 그녀의 고개가 슬쩍 움직였다.
“언니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예, 저를 신으로 만들어주세요.”
메두사의 고개가 끄덕여지고, 나는 손을 휘저었다.
검은 신력이 내 앞에 있는 메두사를 향해 밀려든다.
스아아아-
필멸자의 인지를 초월하는 힘이 그녀의 격을 강제로 확장시킨다.
반신의 영혼이 검은 불꽃에 휘감겨 타오르고,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것을 축복하듯 빛이 터져나온다.
화악-
나는 저승 전역이 새로운 하급신의 탄생을 반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애초부터 티탄 신들의 핏줄이며 반신의 격을 갖춘 메두사였기에 승격은 어렵지 않았다.
필멸자였던 그녀를 감싼 검은 불꽃이 사라지고,
이제는 저승의 수많은 신들 중 하나라고 불릴 모습이 드러난다.
망자가 되기 전, 육체가 입고 있었던 옷은 사라지고 탄생의 순간으로 돌아간 몸.
녹색의 아름다운 머릿결과 모난 곳 없는 부드러운 몸매가 미노스 형제들에게 탄성을 불러일으킨다.
“너는 이제부터 저승에 속한 하급신, 메두사다.”
메두사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등, 자신의 달라진 몸을 살펴보다가 비명을 내질렀다.
“꺄아악!”
손으로 몸의 급소를 가리려 노력하던 메두사가 잔뜩 홍조를 띤 얼굴로 한마디를 내뱉는다…
“저… 죄송하지만 옷을 좀…”
아차.
* * *
이제는 하급신이 된 메두사를 보내고 옥좌에 기대니 스틱스 여신님이 다가오신다.
여신님은… 오늘도 복장이 정말 과감하시네요.
“하데스. 메두사가 이제 하급 신이 되었는데, 일은 어떻게 배분할까요?
“그녀가 겪은 일에 동정을 느끼십니까?”
“후유… 당연하죠. 그녀의 사정을 듣고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는 신은 거의 없을거에요.”
일단 신이 된 이상,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책무는 다해야 한다.
하지만 겪은 일에 대한 배상의 개념으로 신으로 만들어 주었으니…
“간단한 것들만 맡기시죠. 저는 일을 시키려고 그녀를 신으로 만든 게 아닙니다.”
“네에. 그렇게 할게요.”
“그리고 멘테를 잠시 불러주십시오.”
스틱스 여신님이 나가고, 곧 초췌해보이는 멘테가 내게로 왔다.
그녀는 방금까지 업무를 보고 있었는지 손에 서류를 들고 있었다.
“하데스 니임… 저는 왜 부르셨나요?”
“멘테, 네가 노력해 준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이승에 민트가 상당히 많이 퍼졌구나. 정말 수고했다.”
“네헤에?! 그 말씀은…”
그녀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한번 보더니 화색이 되어 내게 말한다.
아니, 그렇게 가까이 붙지 않아도 네 목소리는 잘 들린다..
“이제 더 이상 이승에 민트를 전파하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요?! 제발 그렇다고 말해주세요!”
“어… 그렇지. 내 상징으로 널리 알려졌으니 그만 해도…”
“와아아! 드.. 드디어…!”
저런, 그녀가 할 일은 또 생겼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멘테의 기분이 좋아보이니 가만히 있었다.
잠깐의 해방감 정도야, 누려도 상관없겠지.
“헤.. 헤헤… 그런데 저는 왜 부르셨나요? 설마 포상으로 단둘이 이승 구경이라도…”
“…그게 아니라 민트를 음식으로 만들어 먹는 방법에 대해 의논하려고 불렀다.”
“혹시 그 방법을 제가 이승에 전파해야 하나요?”
고개를 끄덕이자 방금까지 님프였을 때의 기력을 되찾은 듯 했던 멘테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척 보아도 엄청나게 실망하는 얼굴. 그야말로 좌절의 여신.
“영혼들에게 묻어나오는 민트 향이 너무 강해 카론이 고생한다는구나.”
“네에…”
“그래서 민트를 음식으로 만들어 인간들에게 먹게 한다면 장례식 때 사용되는 민트의 양이 줄어들…”
양피지를 보며 그녀에게 설명하는데 축 늘어진 멘테가 안타깝게 보인다.
그래도 이 정도면 적은 편인데… 님프였을 때는 일도 하지 않고 편하게 쉬었을 테니 어쩔 수가 없겠지.
“만약 이번 일을 잘 마무리한다면 내가 에트나 산 인근으로 순찰을 나갈 때 데려가주마.”
“….!!! 정말요? 스틱스 님이나 레테 여신님이 아닌, 저하고만 가시는 거죠?”
내가 말을 잘못 꺼냈나?
저 초롱초롱한 눈을 보니… 이게 아닌 느낌이 드는데.
“두 여신님은 저번에도 가셨으니 아마…”
“방금 저하고만 가신다고 말씀하신 거죠?! 이히히히…”
멘테는… 귀엽긴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어쩐지 아프로디테 비스무레한 느낌이 나는 거 같단 말이지.
“알았으니 일단 민트차와 민트 이파리 요리부터 인간들에게…”
“이히히.. 네에… 흐흐…”
눈이 갈수록 끈적해지는 멘테에게서 억지로 시선을 돌렸다.
흠. 흠. 자꾸 그렇게 바라보지 마라.
* * *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베었으니 그에게 빌려준 퀴네에가 내게 돌아올 때가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올림포스의 전령신 헤르메스가 저승으로 찾아왔다.
“하데스 큰아버지, 저 헤르메스가 다시 왔습니다!”
“퀴네에는?”
“아,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페르세우스가 확실히 예의는 바르더군요.”
예의? 자신에게 무구를 빌려줬다고 성의라도 표시했나.
일단 그가 내미는 퀴네에를 받아 옥좌 옆에 놓았다.
“빌려준 무구를 다시 반납하는 김에 메두사의 머리도 아테나 누님에게 바쳤습니다.”
“음. 그거 저승으로 가져와라.”
“네?”
헤르메스가 이상한 얼굴로 날 쳐다보다가 말한다.
“어… 큰아버지께서 달라고 하시면 아테나 누님도 주실겁니다. 그런데 혹시 무슨 일로 사용하시려는지…”
“메두사는 이제 저승에 속한 신이다. 신이 이승에 남긴 육체니 회수해야지.”
“신이요?!”
그대로 굳은 전령신이 입을 벌리고 내게 더듬거렸다.
“아… 큰아버지…? 페르세우스가 위업으로 벤 괴물을 신으로 만드셨…”
“괴물이 아니라 포세이돈에게 강간당하고 아테나에게 화풀이를 당한 불쌍한 여인이지.”
“하지만 아버지와 아테나 누님이 아마 항의하실 것 같습니…”
“뭐 어쩌라는 거냐? 메두사의 머리를 가져오기나 해라. 만약 돌려주지 않는다면 내가 찾아가겠다고 덧붙이고.”
“예엡…”
허리를 숙인 헤르메스가 골치아프다는 표정을 지으며 올림포스로 돌아갔다.
그 이후, 메두사가 이승에 있을 때의 머리는 원래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수많은 뱀 머리카락과 함께 눈을 감고 있는 괴물의 머리.
그것을 메두사에게 넘기자 그녀가 조금 떨떠름해하며 고개를 숙였다.
“…아무튼 그렇게 되어 내가 네 머리를 돌려받았다.”
“으음.. 감사합니다. 정말이지…”
“네 머리… 음. 필멸자였을 때의 신체이니 처분은 네가 알아서 해라.”
그렇게 말을 남기고 등을 돌리려는데 옷깃을 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음?”
뒤를 돌아보자 그녀가 잠시 우물쭈물거리더니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죽음을 맞이한 괴물을 신으로 만들어주시는 그 은혜,허락해주신다면 이승의 인간들에게 널리 알리겠습니다.”
“…그런 것 정도는 네가 원하는 대로 해도 좋다. 하지만 나 역시도…”
그녀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
내가 빌려준 퀴네에가 없었다면 메두사 대신 페르세우스가 죽었겠지.
“하지만 다른 신들과 달리, 사과를 해 주셨죠.”
“……”
“심지어 제가 새로운 삶을 살도록 신으로 만들어 주셨으니… 그 은혜를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모시던 여신에게 버림받고 새로운 신앙으로 날 선택한 것인가?
은혜로 교화된 신앙이라기보다, 마음의 상처를 가리기 위한 버팀목이라는 느낌이 든다.
“…알겠다.”
그럼에도 차마 거절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