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63)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63화(63/82)
페르세우스의 이야기 – (5)
메두사를 죽인 뒤, 페르세우스는 에티오피아 인근을 지나던 중… 바다 괴물의 제물로 바쳐진 여인을 발견했다.
그 여인의 이름은 안드로메다로, 페르세우스는 바다 괴물을 돌로 만들어 공주였던 그녀를 구출하고 에티오피아 왕인 케페우스의 사위가 되었다.
그런데 안드로메다 공주와 그가 결혼식을 올리려던 도중, 누군가가 병사들을 데리고 난입했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이 내 자리를 뺏는 것이냐! 안드로메다의 원래 약혼자는 나란 말이다!”
“장인어른…? 이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약혼자라니요.”
“하! 신경 쓸 것 없네, 페르세우스. 저 놈은 내 딸을 제물로 바치는 데에 찬성했던 놈이야.”
“그렇습니까. 바다 괴물의 위협에는 도망쳤다가 뒤늦게 와서 권력을 탐내는 비겁자로군요.”
그렇게 페르세우스는 주머니 안에 있는 메두사의 머리를 쥔 채,
당장이라도 꺼낼 준비를 하고 소리쳤다.
“내 편인 자들은 모두 눈을 감으시오!!!”
“으하하! 뭔 개수작…”
“어엇..?!”
신격에 도달하지 못한 필멸자를 모두 석화시키는 메두사의 머리가 장내에 드러나자.
눈을 감지 않은 이들은 모조리 석화되었다.
그러나…
“아.. 아버지! 어머니…”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크윽.. 죄송합니다…”
미처 눈을 늦게 감은 에티오피아 왕과 왕비가 석화되어 죽음을 맞이했고,
크게 상심한 페르세우스는 세라포스 섬으로 돌아가 어머니 다나에를 협박하던 폴뤼덱테스 왕을 발견했다.
메두사에게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페르세우스가 돌아오자 폴뤼덱티스 왕은 기겁했다.
“무슨…! 메두사에게 살아돌아왔다고? 거짓말하지 마라!”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아닌지 똑똑히 보시오!”
그렇게 여색에 미친 왕이 돌이 되어 죽음을 맞이하자페르세우스는 어머니 다나에를 데려왔다.
“페르세우스… 비록 신탁 때문에 네 외할아버지가 널 버렸지만, 여전히 그리워하실 거란다.”
“예, 어머니. 아르고스에 서신을 보내고 그분을 만나보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외할아버지인 아크리시오스는 밤을 틈타 아르고스 왕위를 버리고 야반도주했다.
페르세우스는 안드로메다를 왕비로 삼아 에티오피아와 아르고스의 왕이 되었다.
그렇게 왕이 된 페르세우스가신들에게 빌렸던 무구를 반납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내게 도움을 주신 올림포스 신들의 신전에 왕실의 이름으로 후원하겠다. 아테나 님과 헤르메스 님, 그리고…”
“폐하. 하오나 플루토 신의 신전은 저희 아르고스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신전을 만들면 될 거 아니오?”
무구를 빌려준 신들에게 은혜를 갚는 일이였다.
* * *
이곳은 나, 하데스가 다스리는 저승.
메두사가 새로운 저승의 신이 되었으니 새로운 신상을 만들라고 신도들에게 명을 내렸다.
그리고 며칠 후 이승에 귀를 기울여보자…
“메두사는 괴물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플루토 신의 사제님들이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시더군.”
“원래는 인간이였지만 불운한 운명 때문에 괴물이 되어 죽었다고…?”
“그게 진실이라고요? 저도 그냥 괴물로만 알고 있었는데.”
“나도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플루토 신께서 어디 보통 신이신가, 아마 진상을 파악하고 명예를 되찾아 주신 게 분명해.”
“하기야… 저승의 신께서 거짓을 말씀하실 이유는 없으니까요.”
“슬프고 불행한 자는 저승에서라도 보답을 받는 것인가… 자비의 신이시여…”
메두사가 자신의 사연을 조금 각색해 이승에 전달한 모양이다.
직접적으로 아테나와 포세이돈을 욕하면 내게 피해가 갈 거라고 생각했을까?
아무튼 내 신도들은 반신반의하며 가끔 메두사의 신상에도 기도를 올리는 추세.
3주신이라는 지위가 이럴 때는 도움이 많이 되는군.
올림포스에서 메두사를 신으로 만든 것은 조금 그렇지 않냐는 답변이 날아왔지만…
전령신 헤르메스를 통해 내 의견을 잘 전달했다. 아마도.
“제우스한테전해라.저승의 일에 신경 쓰지 말고 강간이나 그만 하라고.”
“어… 하데스 큰아버지.. 그. 그대로 전해야 합니까?”
“…네가 알아서 해라.”
아무튼 그렇게 메두사의 일이 끝나가는데,
테베가 아닌 이승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토 신이시여…”
이승에 신경 쓰지 않을 때의 나에게 의지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없는데…
아르고스 쪽인가? 이건 페르세우스?
이제는 왕이 된 페르세우스가 거대한 제단을 쌓고 내게 제물을 바치며 말을 건네고 있었다.
두 나라의 왕이라고, 불타는 제물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플루토 신이시여! 제게 퀴네에를 빌려주신 은혜를 갚으러 신전을 건설했으니, 부디 당신의 사제를 보내주소서!”
나무로 쌓아진 높은 단상 위에서 페르세우스가 직접 번제를 주관했다.
그가 부릴 수 있는 하인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영웅은 스스로 의식을 올렸다.
“폐하. 이것은 저희가…”
“아아, 됐네. 내가 알아서 하지.”
왕이 되었음에도 겸손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중, 마침 페르세우스에 대한 예언이 기억났다.
그가 자신의 외할아버지를 죽일 것이라는 끔찍한 예언이지만,
두루뭉실한 예언에는 허점이 굉장히 많으니 그의 예정된 비극을 완화시킬 수 있다면…
작은 조언 정도는 내려줄 수 있다.
“휘프노스와 모르페우스 신에게 내가 찾는다고 일러라.”
“옙! 알겠습니다!”
* * *
저승에 있는 플루토 신에게 번제를 올리던 페르세우스는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정신이 순간 몽롱해지나 싶더니, 눈앞에 날개 달린 청년 하나가 서 있는 광경.
“나는 모르페우스. 꿈의 신이다. 지금부터 네게 하데스 님의 전언을 전해주겠다.”
“…!! 영광입니다!”
무릎을 꿇은 페르세우스에게 눈앞의 신은 신비로운 기색을 풍기며 말했다.
“예언은 바꿀 수 없지만, 그 결과에 이르는 길은 네가 선택할 수도 있다.”
“…?”
아리송한 말을 남기고 사라지는 모르페우스.
예언은 바꿀 수 없지만, 과정에 이르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 예언은 신들조차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운명이 아닌가?
플루토 신께서는 대체 어떤 말씀을 하고 싶으셨던 것이지.
설마… 외할아버지를 죽인다는 그 예언 때문인가?
“폐하! 폐하! 괜찮으십니까?”
“으음?! 무슨 일이냐?”
“예? 폐하께서 방금 선 채로 잠드셨습니다!”
페르세우스가 주변을 둘러보자 번제를 구경하던 시민들과 하인들은 웅성거리고 있었다.
자신들의 왕에게 방금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당황한 것으로 보였다.
그는 빠르게 생각을 가다듬었다.
영웅의 영민한 머리가 판단을 가속시켰고,
이를 올림포스에서 바라보던 제우스가 행운의 여신 티케(Tyche)를 불러 작은 축복을 내려주었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도 상황을 파악하고 그녀의 지혜를 잠깐 나눠주었다.
“…아르고스의 백성들이여!”
그리고… 가만히 선 채로 고민하던 영웅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비극의 운명을 최대한 완화시키기 위해.
“그대들은 왜 전대 왕이신아크리시오스께서 왕위를 내려놓으셨는지 아실 것이오!”
이곳에 모인 수많은 백성들이 수근거렸다.
페르세우스와 아크리시오스가 엮인 예언은 매우 유명했기에 많은 자들이 알고 있었다.
“아시다시피 내게는 외할아버지를 죽일 것이라는 신탁이 존재하오, 하지만 방금 나는 저승의 주인이신 플루토 신에게도 신탁을 받았소!”
“그럼 폐하께서 방금 잠드신 것이…”
“하데… 플루토께서 신전을 세운 보답을 내려주신 건가?”
“그 끔찍한 예언에 대해…?”
장내가 소란스러워졌지만, 왕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예언은 피할 수 없지만, 그 과정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신의 말씀!”
모두가 왕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나의 외할아버지 아크리시오스가 정해진 수명에 따른 임종을 맞이하시기 전까지 정중히 대접할 것이며, 그분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내 손으로 편안한 안식을 맞이하도록 도울 것을스틱스 강에 맹세하겠소!”
!!!!
마치 신벌이라도 내려진 것처럼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떠들었다.
즉위한지 얼마 되지 않은 페르세우스 왕의 맹세라니!
저 드높은 올림포스의 신들조차 어길 수 없는 절대적인 스틱스 강의 맹세.
이를 어기면 인간은 사후, 타르타로스로 끌려가게 된다.
과연 이것으로, 예언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잠깐만… 그런데 왕이 맹세를 지키지 못한다면…?!
“자.. 잠깐! 아.. 안 된다!”
소란스러운 좌중에서 누군가 등장했다.
그는 추레한 노인이였지만, 어쩐지 익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함부로 스틱스 강에 맹세를 하다니…! 그러다가 맹세를 지키지 못하면 어쩌려고…”
“어? 페르세우스야! 저분이 바로 네 외할아버지다…!”
“어머니, 그것이 정말입니까?”
“잠깐.. 저분은!”
“전대 왕이셨던… 아크리시오스 폐하?!”
아크리시오스는 그의 외손자의 얼굴이 궁금해 몰래 이곳으로 돌아왔고,
마침 스틱스 강에 맹세하는 외손자의 말을 듣자마자 앞으로 나선 것이였다.
“제.. 제 외할아버지가 맞으십니까?”
“…내가 잘못을 저지른 다나에와 정말 꼭 닮았구나.. 예언은… 아니, 애초에 왜 스틱스 강에 함부로 맹세를…”
“어머니의 말씀도 있고, 저를 이리도 걱정해주시는 모습을 보니…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외할아버지.”
“내가 미안하구나… 페르세우스야…”
그들은 서로 부둥켜안으며 재회의 기쁨을 만끽했다.
이를 바라보던 다나에는 눈물을 터뜨렸고, 백성들은 이 광경을 보고 기도를 올렸다.
“두 분이 서로 만났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면… 이건 설마!”
“절대적인 예언이… 스틱스 강의 힘으로 약간 변화한 것인가?”
“아아.. 신들께서는 자비로우시구나. 이런 광경을 보게 되다니…”
아크리시오스는페르세우스의 손에 죽음을 맞는 것이 확실하지만,
이제 그는 천수를 누리며 편안하게 살다 하데스의 품으로 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