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65)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65화(65/82)
저승의 연회 – (2)
“””저승에 영광을!”””
황금 술잔을 높게 들어올린 모든 자들이 타나토스의 말을 따라하며 넥타르를 마셨다.
나 역시 술잔에 담겨진 신의 음료를 한껏 들이켰다.
꿀꺽꿀꺽- 꼴깍-
“흐으… 넥타르가 이 맛이군요… 엄청 맛있어요…!”
“하하하! 멘테, 신이 되었으니 금방 익숙해질 거다.”
“흐. 아주 오래전에.. 처음으로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먹었을 때가 떠오르는군.”
“휘프노스, 어린 신은 그만 놀리게.”
“이것이 넥타르…”
“암브로시아도 먹어봐라 메두사.”
민트로 만든 차나 디오니소스의 포도주는 절대 따라올 수 없는 천상의 맛.
애초에 한가지로 정해진 맛이 아니다보니 어떠한 음료도 넥타르를 따라올 수 없다.
넥타르는 단순히 맛만 좋은 것이 아니라 신들에게 정신적인 충족감을 준다.
필멸자가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먹는 동안은 늙지 않는 이유가 있는 법.
다만… 너무 많이 마시면 이렇게 된다.
“하데스으… 오랜만에 저랑 술잔을 나누죠… 헤에…”
“많이 취하셨습니다. 스틱스 여신님…”
그래, 이렇게 비틀거리며 술잔을 들고 내게 다가오는 스틱스 여신님처럼.
잔뜩 넥타르를 마신 듯, 홍조를 띠고 걸어오는 여신의 입가에 고혹적인 미소가 맺힌다.
“하데에…스으으… 에헤헤.”
사실 신력을 조금만 끌어내도 금방 풀릴 정도의 취기이기 때문에,
인간들이 마시는 포도주 같은 느낌으로 신들도 마시긴 한다만…
그. 어쩐지 일부러 취하신..
“어맛!”
포옥.
아. 이게 목적이셨나…
매우 부자연스럽게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애절한 눈빛을 보내길래 나도 모르게 잡아버렸다.
그녀의 한쪽 팔과 허리의 잡은 손을 놓고 일으켜주려는데…
“앗…”
입술을 내밀고 눈을 그대로 감아버리시는 스틱스 여신님.
내게 무언가 곤란한 것을 바라는 그런…
“이이익! 떨어져요, 스틱스! 잠깐 안 보는 사이에 또!”
“…아앗! 진짜! 정말 이럴 거에요? 레테?”
순식간에 다가온 레테 여신님이 눈을 감은 맹세의 여신을 냅다 잡고 일으켰다.
그리고 방금까지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였던 취기를 바로 풀어내고 레테 여신에게 따지는 스틱스 여신님…
술잔은 다 같이 나누시죠..
“멘테? 네 입에서 넥타르가 흐르고 있는데?”
“….예? 예에…”
“쯧쯧… 그러니까 진작 혼인하지 않고…”
“제우스나 포세이돈은 혼인도 모자라 첩의 수가 셀 수도 없다는데…”
“하데스 님은 인기가 참 많으시군요.”
크흠… 아니 그.. 하아…
발걸음을 옮겨 메두사와에리뉘에스(Erinyes) 세 자매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복수의 세 여신들은 청동 날개와 눈에서 흐르는 피, 뱀의 머리카락 등으로 꺼려지는 외형이지만…
여태까지 계속 거절했던 연회에 참석해 줄 정도가 되었으니,
연회를 주최한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 이는 하급신들과 저승의 관리들에게 보여주는 행위.
저승의 주인인 내가 이 정도로 우대하고 살피는 자들이다.
…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줘야 천대받는 일이 없겠지.
“메두사, 연회는 즐길 만 하나?”
“예. 제게 신경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흥! 바람둥이 신이 아주 어련하겠군.”
끊임없는 분노를 뜻하는 알렉토는… 왜 나를 한번 째려보더니 고개를 돌리는 것이지?
그런데 머리카락 역할을 하고 있는 뱀의 머리는 왜 이쪽으로…
쉭. 쉭.
“으… 이것들은 또 왜 이래!”
“하데스,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자꾸 그러지 말아라…”
“우움…”
자기 머리카락을 향해 역정을 부리며 얼굴을 붉히는 알렉토,
한숨을 쉬며 말하는 티시포네와 입 안 가득 암브로시아를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메가이라.
“으음… 일단 앞으로도 연회에 자주 초대하겠습니다. 와주실 거죠?”
“…흥!”
“글쎄다. 나쁘지는 않지만…”
어째서인지 저번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뭐지?
그래도 어느 정도 대화를 했으니,
앞으로 이들이 연회에서 경원시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 * *
다음으로 한쪽에 앉아 포도주를 홀짝이는 아케론 강의 뱃사공, 카론에게 다가갔다.
그는 어째서인지 넥타르는 놔둔 채, 포도주만을 들이키고 있었다.
“카론 님.”
“아, 하데스. 자네도 이 포도주 한잔하게.”
“넥타르는 안 드십니까?”
“가끔은 포도주 맛도 나쁘지 않지. 이걸 만든 신이 디오니소스라고 했었나?”
암브로시아나 풍요의 뿔에서 꺼낸 음식도 먹지 않고 포도주만을 들이키던 카론.
그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요즘 저승으로 오는 영혼들은 상당히 안심한 표정이 많더군.”
“어째서 그렇습니까? 필멸자에게 저승이란…”
“그래, 피할 수 없는 죽음과 두려움의 상징이지. 하지만 말이야… 자네를 믿는 신도들이 늘어나면서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자들이 많아졌네.”
테베와 아르고스에 있는 신전을 통해 이승에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비주류 신앙이라고 생각했건만, 카론이 느낄 정도면 제법 신도들이 많은 듯 싶다.
“이승에서 떳떳한 삶을 살고 죽은 자들은 굉장히 의연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더군.”
“그건 정말 좋은 소식이군요.”
“자네의 신도들은 사후에 정당한 심판을 받을 거라고 믿지 않나? 아무래도 그런 영향력이 이승에 퍼지다 보니…”
메두사의 일화가 테베를 중심으로 알음알음 퍼지면서,
괴물이 된 인간에게도 나의 자비가 닿는다는 소문이 점차 번져나갔다.
당장 지금 이승으로 귀를 조금만 기울여봐도…
“이대로 누명을 쓰고 돌아가셔도 괜찮으신 겁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렴… 플루토께서는 공정하신 분이니…”
“으득.. 그 쓰레기들은 반드시 저승에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네게 죄가 없다는 그 말, 플루토 신의 앞에서도 똑같이 할 수 있겠는가?”
“물론이오! 신전에서 맹세할 수도 있소!”
“…저리 자신하니 다시 조사해보도록.”
그런데 아직도 날 하데스라고 부르는 이는 많지 않구나.
아무리 내가 저승의 신격보다는 자비나 부의 신으로 불려도…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
인간들에게 제우스의 천둥번개마냥 두려운 것이 죽음이고 곧 저승이니… 으음.
그 증거로 테베에 있는 타나토스의 신상에 기도를 올리는 자는 늙은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저번에는 왕이 된 페르세우스의 귀에도 메두사의 소문이 닿았다.
그때는 그가 직접 아르고스에 있는 신전으로 찾아와 내게 기도를 올렸었지.
“저승의 주인이시여… 제가 목을 벤 메두사가 원래는 인간이였다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페르세우스의 얼굴에는 미약한 불신과 죄책감, 고민이 혼재되어 있었다.
나는 한 사제의 몸에 빙의해 그에게 답해주었고…
“그녀는운명의 장난에 의해 그런 흉측한 외모로 변한 것이 맞다.”
“으음…! 이럴 수가…”
“저승의 하급신이 된 그녀가 너를 만나고 싶어 하는데, 대화를 나눠볼 테냐.”
“…!! 부탁드립니다!”
마침 신이 된 메두사가 옆에서 요청하길래 바꿔주었다.
인간의 몸에 빙의한 메두사는 자신의 목을 벤 페르세우스를 만났어도 별다른 감정을 가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제 목을 벤 것이 당신이군요. 페르세우스.”
“그… 혹시 메두사… 십니까? 무슨 말을 드려야 할지…”
“…됐습니다. 당신도 결국 운명에 휩쓸렸을 뿐, 저는 당신을 증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페르세우스는 몹시 난처하면서도 사과하는 모양새.
영웅의 위업을 달성한 이는 그 성품 또한 나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대화가 길어지자 조용히 자리를 피해주었다.
얼마 뒤, 아르고스에 있는 내 신전 옆에 작은 신전이 건설되었고…
신전의 주인은 저승의 하급신, 메두사였다.
* * *
‘메두사의 신전에는 가끔 페르세우스 왕이 직접 방문해 기도를 올린다는 소문이 돌게 되었지…’
메두사와 페르세우스의 일화를 회상하던 나는 큰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검은 날개를 가진 죽음의 신, 타나토스가 급하게 연회장으로 뛰어들어 온 것이다.
아까 급하게 연회장 밖으로 나가더니…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러 나간 거였나?
타나토스는 언제 한번 휴가라도 줘야겠…
“케레스, 모로스, 카론, 큰일났네! 이승에 전쟁이 일어났어!”
“뭿이?! 또?”
“이런 젠장! 빨리 가자, 모로스.”
“인간놈들이 또 전쟁을 일으켰다고?”
포도주를 마구 들이키던 카론이 술잔을 내팽겨치고 급하게 일어난다.
또 다른 죽음의 신들, 모로스와 케레스도 연회장을 떠났다.
“이승에서 전쟁이…? 이번에는 영혼들이 얼마나 올까…”
“하데스님. 죄송하지만 저도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하급신이나 관리들의 절반 이상이 우르르 빠져나갔다.
미노스 3형제도 슬쩍 눈치를 보더니 재판장으로 향하는 모습.
“아니 어떻게 된 게 조금 쉬려고만 하면 대홍수에, 영웅의 난동에, 전쟁에…”
“어쩔 수 없죠. 하데스… 다시 일하러 가요.”
레테 여신님이 나를 스쳐 지나가며 한마디를 남겼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꼬리가 힘없이 쳐진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하데스님?! 원래 저승의 연회는 이런 건가요?”
“…?”
체념한 듯, 일사불란하게 연회장을 떠나는 신들과 관리의 모습에 메두사와 멘테는 얼어붙었다.
그래… 이게 저승이란다. 마음 놓고 쉬지를 못하지.
나와 눈이 마주친 멘테가 먹고 있던 암브로시아를 꿀꺽 삼키며 어색하게 말한다.
“하데스 님. 혹시 저도 일해야…”
“멘테, 아까 미처 끝내지 못한 민트 음식 개발이나 하도록 하자. 이승에 전파하는 방법도…”
이왕 이렇게 된 거 하던 일이나 끝내고 쉬어야지.
아쉽지만 연회는 여기까지다.
울상을 짓는 멘테를 데리고 집무실로 돌아가려는데,
메두사의 한마디가 귀에 들려온다.
“저승은 참… 독특한 곳이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