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66)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66화(66/82)
페르세포네의 이야기 – (1)
멘테와 함께 민트 음식을 만들어 이승에 전파한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다행히 효과가 있었는지 뱃사공 카론이 정말 좋아하더라.
잠시 이승의 반응이라도 살펴볼까?
테베는 이제 완전히 내 영역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변했다.
마치 아테네의 아테나 신앙을 보는 것처럼.
디오니소스를 믿는 신도들이 내게 밀려나고 소수가 되었는데…
아무래도 자유와 방종을 쫒아 범죄를 저지르면 저승에서 심판받는다는 이야기가 퍼진 탓이 아닐까?
그래서 잠깐만 귀를 기울여보면 테베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온다.
내 신전 부근, 민트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본다면…
“장례식에 사용되는 민트를 약간 조절해야겠어.”
“플루토의 은혜를 받은 식물을 먹을 수도 있겠군.”
“물만 뿌려도 잘 자라는데, 그냥 대량으로 재배하는 건 어떤가요?”
“허브와 같은 향신료로 쓰는 것이 주된 용도이니 밭에 대량으로 키울 것까지야…”
“사제 아저씨, 플루토 님의 사제가 되려면 민트를 잘 먹어야 한다는데 사실인가요?”
“하하하! 플루토 님의 상징이 민트인 것은 맞아. 그런데 그분께서 신탁으로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아니?”
“신탁이요? 뭔데요?”
“개인의 취향은 모두 다르니, 그분의 상징을 꺼려하는 이들을 차별하지 말라고 하셨단다.”
“와! 그럼 민트를 싫어해도 사제가 될 수 있겠네요!”
민트차, 민트와 벌꿀을 섞은 간식거리 등.
민트로 여러 음식을 해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이승에 알려지자 장례식에 사용되는 민트의 양이 줄어들었다.
양피지에 꼼꼼히 요약되어 있는 민트 음식 전파 추이를 보다가 멘테에게 말했다.
그녀는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야 이 양피지는 그녀가 작성한 거니까…
“멘테, 이제는 보고서 쓰는 것도 익숙해졌구나.”
“정말요? 매일같이 쓰다 보니까… 헤헤…”
저승의 일에 서투르던 멘테도 이제는 슬슬 적응하는 게 눈에 보인다.
이 정도면 슬슬 일을 늘려도 되겠구나.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 고개를 드는데…
어딘가 기쁜 일이 있는 듯,실실대는 멘테와 눈이 마주쳤다.
“하데스 님. 이제 이승에 민트 음식도 많이 퍼졌으니이… 그으… 저번에 말씀하신 포상은…”
음. 그러네. 그녀와 약속한 것이 있었다.
분명 이번 일을 잘 마무리하면 에트나 산 인근으로 순찰을 갈 때 함께 나간다고 했었지.
“분명 저하고만…”
“그래. 요즘 일도 잘해주고 있으니 함께 나가도록 하자.”
“와아아! 감사합니다!”
포옥.
아니 잠깐만, 그렇다고 갑자기 껴안지는 말아라.
“헤헤…”
내게 달라붙은 민트의 여신에게서 나는 청량한 향기가 내 코끝을 간지럽혔다.
* * *
멘테와 함께 나온 이승.
우리는 곧 에트나 산 부근에 도착했다.
역시나 넓은 초원과 동물들, 수많은 님프들이 날 반긴다.
유령마가 끄는 전차를 몰고 에트나 산을 한 바퀴 돌아 티폰의 상태를 점검했다.
잠시 경치를 구경하는데 조금 떨어진 숲을 바라보고 손을 흔드는 멘테.
“어! 델리아스! 이피제니아!”
“멘테?!”
“하데스 님의 사제가 되었다는…”
“아니야, 이제는 신이 되었다고 했지 않았어?”
그곳에는 멘테와 같은 님프였던 나이아데스 몇몇이 놀고 있었다.
멘테를 보고 기쁜 기색이던 그들은 전차에 탄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허… 헉?! 시.. 신님?”
“멘테가 저승의 하급신이 되었다는데… 그럼 설마…”
“흑발 흑안에 유령마… 저승의 주인?”
순식간에 얼굴이 창백해지고 황급히 그 자리에서 내게 엎드려 절했다.
자리를 떠날 생각도 못하는 그들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나는 아무 짓도 안했는데 벌써 두려워하는 거냐.
하긴, 저승을 누가 친근하게 받아들일까… 첫 만남에서 나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던 멘테가 특이한 것이겠지.
“멘테. 나는 다른 곳을 둘러볼테니 친구들과 놀아도 된다.”
“으으…네에, 감사합니다. 다들 편견이 너무 심한 것 같아요…”
울상이 된 멘테가 전차에서 훌쩍 뛰어내려 친구들에게 뛰어가는 모습을 보고 자리를 피했다.
조금 뒤에 다시 그녀에게 돌아가야지.
“세상에… 멘테 너, 무섭지는 않아?!”
“저승에 속한 하급신이라니…”
“신이 된 건 축하할 일이지만 지하에서…”
“이익… 저승도 좋거든!”
거기서 말해도 다 들린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는 멘테가 내렸던 자리로 향했다.
이만하면 적당히 친구들과 회포를 풀었으리라.
마침 멘테가 나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하아… 다들 너무 저승에 대해 편견이 많은 것 같아요오..”
“어쩔 수 없지. 필멸자의 종착점이며 죽은 자들의 세상이니까.”
다시 전차에 올라탄 멘테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저승에 대해 말하는 걸 보자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이승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온 멘테도 이젠 저승 토박이가 다 됐구나.
“지하 세계도 막상 겪어보면 즐거운데 말이죠. 이제는 영혼들이 귀엽게 보일 지경이라니까요?”
“하하… 네가 특이한 님프라서 그런건 아니고?”
“네에에? 저는 평범한 나이아데스인데요? 그리고 지금은 신이에요!”
“내 눈에 보이는 너는, 아직도 그때의 이상한 님프다.”
“우… 저는 이상하지 않거든요…”
무슨 소리냐. 너 같은 님프가 또 어디 있다고…
어느 미친 님프가 저승의 군주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하는지.
그때의 추억을 되새기며, 입가에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돌아보는데…
“음?”
무언가 기시감이 들었다.
이 이상한 느낌… 북쪽인가. 힘의 유동, 빠르게 이동하는 다수.
한둘이 아니야. 최소한 수백 이상.
인간도, 님프도, 신도 아니라…
“하데스 님?!”
스아아아-
이승에 오느라 억눌렀던 신력을 더욱 끌어올린다.
주변의 동식물이 죽어가고 나무의 요정인 드라이어드들이 비명을 지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손을 내밀어 샅샅히 주변을 수색했다.
땅 밑,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움직이는 수많은 기척….
쿠구구구…
이 느낌은 분명히 기가스.
우리 신들의 증오스러운 대적(大敵).
그것도 최소한 수백 마리 이상이 동원된 공격.
어째서 올림포스나 인간들의 대도시가 아닌, 여기에 나타나는…
아. 그렇군.
이곳은 에트나 산, 티폰의 몸뚱이가 묻힌 곳이다.
산을 파내고 강력했던 괴물인 티폰의 몸뚱이를 가이아가 손에 넣는다면,
정말로 많은 일을 벌일 수 있겠지.
타르타로스에 있는 티폰의 의식을 불러오거나, 몸뚱이를 제물 삼아 다른 괴물을 만들수도 있겠고…
최악의 경우에는 티폰이 부활한다던가…
제일 최선의 경우에도 몸뚱이가 날뛰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올림포스 신 다수가 나서지 않는다면 풀려난 몸뚱이가 주변을 초토화시키겠지.
“하데스 님? 무슨 일이라도…”
“기가스가 습격했으니저승으로 돌아가라, 멘테.”
프로메테우스가 말한 단 한번의 일격이 이거였나?
확실히, 티폰의 몸뚱이를 탈취당한다면 신들에게는 엄청난 손실이다.
“아무리 잘 대비해 봤자… 신들은 가이아의 일격에 당하고 말거야, 내가 미리 알려줘도 마찬가지.”
“한번은 무조건 당한다는 말입니까?”
“물론, 자네들의 계획에 제법 뼈아픈 타격이 될 거야.”
하지만 프로메테우스, 이번만큼은 당신의 예언이 틀린 것 같습니다.
이 하데스가 이곳에 있으니까요.
* * *
민트의 여신, 멘테는 기분이 좋았다.
민트 음식을 이승에 전파하라는 하데스의 명령을 잘 수행했기도 하고,
그가 저번에 한 약속을 지켜 그녀를 에트나 산 순찰에 데려와 주었기 때문이다.
이승에서 친하게 지내던 다른 님프 친구들도 만나며 회포도 풀었으니…
이제 잘생긴 하데스 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예정이였다.
항상 스틱스 여신님과 레테 여신님의 눈초리가 무서워 진도를 나갈 수 없었지만,
이승에 단 둘이 나왔으니 오늘은 기필코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리라!
…라고 생각하던 멘테였지만.
“음?”
이쪽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미소짓던 하데스가 얼굴을 굳히며 침음을 흘렸다.
그의 몸에서부터 천천히 새어나오는 검은 신력.
“하데스 님?!”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받은 듯, 그가 오른손을 내밀어 신력을 끌어낸다.
저승을 지배하는 3주신의 막강한 힘이 개방되며 주변의 동식물이 죽음을 맞이한다.
평소 이승의 생명들을 보살피며, 그들을 위해 힘을 억누르던 자비의 신답지 않은 면모.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왜 이러시는…
스아아아-
하데스가 끌어내는 힘이 점차 강해진다. 조금씩… 더… 더…
저승의 모든 신격을 다 합쳐도 지금의 그보다 강렬한 위압감을 뿜어낼 수 있을까?
푸히히힝! 푸르륵-
그의 감정을 반영하듯, 유령마들의 눈에 푸른 귀화가 감돌고 발굽에서는 지옥의 불길이 솟구친다.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냉소하는 망령들은 곧 다가올 살육의 시간을 기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방금까지 평범했던 전차에서 소름끼치는 귀기가 감돌고 비명지르는 망자의 형상이 새겨진다.
전차는 어느새저승의 군주가 타고 다닐 만한 끔찍한 외형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점차 검은 형상으로 뒤덮이는 하데스를 바라보며 두려움에 떨었다.
“하데스 님? 무슨 일이라도…”
“기가스가 습격했으니저승으로 돌아가라, 멘테.”
기가스(Gigas).
하데스를 비롯한 저승의 다른 신들이 그렇게 경계하던 적.
예언에 따르면 인간 영웅이 없다면 신들이 승리할 수 없다는 괴물들.
그렇다면 신이 된 자신도 하데스 님을 도와 싸워야 하지 않을까?
그런 위험한 적들을 그 혼자 상대한다고?
“하데스 님… 저도, 저도 싸울 수…”
여신의 긴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두툼한 손.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과도 같은 검은 눈동자.
항상 곤란하면서도 난처한 기색으로 그녀와의 신체 접촉을 피하던 이전과는 달리,
그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멘테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명령이다. 민트의 여신.”
항상 억울한 망자들을 보살피며 신성 모독에도 덤덤하던 자비의 신, 플루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는 자는 모든 이들이 두려워하는 저승의 왕, 하데스.
“네… 다른 신들을 불러올게요. 부디 조심하세요.”
멘테는 도저히 그 말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