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67)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67화(67/82)
페르세포네의 이야기 – (2)
에트나 산 인근, 한 무리의 아름다운 님프들과 여신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는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와 신들의 왕인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여신도 존재했다.
“꺄하하하! 이리로 던져!”
“코레(Kore)님, 꽃으로 받아내시는 건 반칙이에요!”
“뭐 어때, 너희들도 능력 쓰던가!”
빛나는 황금빛 머리카락과 아름다운 외모를 갖춘 20대 초반의 외모로 보이는 여신.
마치 꽃을 연상시키는 그녀가 입을 열었다.
“하아… 어머니는 나를 너무 약하게만 보시는거 같아.”
“대지의 여신께서요?”
그녀의 정식 이름은 페르세포네(Persephone).
애칭으로는 코레(Kore)라고 불린다.
“응! 조금만 나가서 놀아도 괴물을 조심해라, 기가스를 조심해라… 어휴!”
“데메테르 님께서는 코레 님을 정말 사랑하시는 것 같아요.”
봄과 씨앗의 여신인 그녀는 수많은 님프들과 함께 놀던 도중…
갑자기 고개를 갸우뚱대며 의아한 기색을 풍겼다.
“음? 다들 무슨 소리 안 들려?”
“새가 우는 소리요?”
“숲 속의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는 소리는 들리는데요…”
다른 님프들과 하급신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제우스와 데메테르의 자식인 그녀는 알 수 있었다.
땅 밑에서 울리는 듯한 강렬한 진동을…
쿠아앙! 푸화악-
갑작스럽게 조금 떨어진 땅 밑에서 등장하는 뱀의 하반신과 인간의 상반신을 가진 괴물들.
신들의 대적, 기가스들이였다.
“꺄아아악! 갑자기 괴물들이!”
“기… 기가스?!”
“세상에… 제우스시여!”
크고 흉측한 모습을 한 괴물들의 등장에 님프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아직 당황하기에는 일렀으니,
땅 속에서 튀어나오는 기가스들은 한둘이 아니였다.
푸확. 쿠구구…
어디로든 도망치려는 님프들이였지만 곧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사방에 널린 기가스들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크하하핫! 신들의 피조물인가? 고놈들 아주 맛있게 생겼구만.”
“저 금발머리는 여신인 것 같은데 잡아서 데려가자!”
“우리 목적은 산 밑에 깔린 형제란 사실을 잊지 말라고!”
“그럼 형제들! 목격자는 전부 죽여버리고 에트나 산을 파헤치자고!”
뱀과 인간이 합쳐진 괴물들의 흉흉한 대화에 님프들은 겁에 질려 얼어붙었다.
하나하나가 하급신이나 인간 영웅에 맞먹는 강력한 괴물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자는…
“에잇!”
파스스스-
“쿨럭! 쿨럭! 독이냐?!”
“뭐냐. 콜록.. 권능인가? 저 여신부터 때려눕히…”
“큭…! 식물이 우리를 묶는…”
오직 신만이 가능하지 않을까?
날카롭게 눈을 치켜뜬 페르세포네의 손에서 노란 가루가 퍼져나오자 기가스들은 터져나오는 기침을 참지 못했다.
이어서 땅에서 꽃과 식물들이 급속도로 자라나며 그들을 묶는다.
“…코레 님!”
“제우스시여! 도와주세요!”
이것이 바로 봄의 여신의 권능.
봄과 씨앗을 관장하는 그녀의 힘은 전투에 부적합하지만,
데메테르와 제우스의 딸인 페르세포네였기에 그 신격은 상당히 높은 편.
“콜록… 독과 식물을 다루는 여신도 있었나?”
“하, 그래봤자 하나다!”
“독이 아니라 꽃가루야! 이 괴물들아!”
그러나 이곳에 모인 기가스들 역시 만만한 자들이 아니였다.
아무리 페르세포네가 올림포스 12주신 다음가는 신격이라고 해도,
이곳에 등장한 기가스만 수백 마리에…
“펠로레오스(Peloreos)! 올림포스에서 빨리 알아차리기 전에 에트나 산이나 뒤엎자고.”
“토아스(Thoas), 너는 너무 걱정이 많다.”
“크흐! 올림포스? 그놈들이 온다면 내가 다 죽여버리지!”
“제우스가 볼 수도 있으니 조심하자는 거다.팔라스(Pallas).”
올림포스 12신과 비견되거나 조금 뒤떨어지는 기가스의 지휘 개체가 4마리.
페르세포네는 절대 무사하지 못한다.
* * *
콰아아앙!
다수의 기가스들이 에트나 산을 파헤치는 동안 남은 자들은 페르세포네와 님프들을 포위했다.
천천히 가지고 놀 생각인지 비웃음과 함께 다가오는 괴물들.
“크흐흐. 네 비명소리가 듣고 싶구나.”
“어.. 어떡하죠… 꺄아악!”
“살려주세요! 데메테르 님! 아악!”
주변의 님프들이 점차 기가스에게 잡아먹히거나 찢겨 죽는다.
아무리 페르세포네가 맞서봐야 그녀는 혼자였고, 괴물들은 압도적인 다수였다.
“저 여신은 내가 맡겠다.”
“팔라스(Pallas). 너 혼자 재미보는 거냐?”
“으하하! 불만이라면 너도 내게 덤벼라.”
“하아… 치잇..”
페르세포네는 떨어진 신력을 억지로 끌어내며 이를 악물었다.
식물을 성장시켜 방해해도, 꽃가루를 날리거나 신력을 담아 후려쳐도,
팔라스라는 저 기가스는 너무 강했다.
확실히 올림포스 12주신과 비견될 수 있을 정도.
저 괴물을 제외한 다른 기가스 지휘개체가 셋.
어머니, 데메테르가 직접 온다고 해도… 이 괴물들을 다 이겨낼 수는 없어.
스으윽-
그녀를 향해 눈앞의 기가스가 손을 풀며 천천히 다가온다.
뱀의 하반신이 소름끼치게 움직이며 여신을 압박한다.
“벌써 포기한 거냐? 여신?”
“내 아버지는 제우스고, 어머니는 데메테르 여신이다! 너희들은 전부 비참하게 죽을거야! 나, 페르세포네가 확언하겠어!”
“응? 뭐냐, 저주냐?”
말 한마디로도 도시 하나를 멸망시킬 수 있는 저주도 소용없었다.
제우스와 데메테르의 딸은 생전 처음으로 무력감을 느꼈다.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그녀의 목을 잡고 들어올리는 괴물.
“이익…”
하지만 그녀는 전혀 저항할 수 없었다.
신력도 전부 소진했고,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이코르가 땅바닥을 가득 메울 정도로 탈진했기 때문에.
두두두두-
모두가 부러워하는 황금 혈통으로 태어나 아쉬움 없는 삶을 누렸던 그녀가,
이런 흉측한 괴물에게 당해야 한다니.
“보아하니 어린 신 같은데, 네 운명을 원망해라.”
후웅-
곧 다가올 고통을 견디려 눈을 질끈 감은 페르세포네의 옆구리에 묘한 감촉이 느껴진다 싶더니,
두터운 남성의 손바닥이 부드럽게 그녀를 끌어당겼다.
‘어?’
푸확-
페르세포네가 슬며시 눈을 떠 보니,
보이는 것은 처참히 머리가 터져 죽은 기가스와…
“괜찮나?”
자신이 타고 있던 전차에 그녀를 태운 흑발흑안의 남신이였다.
* * *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그녀를 구한 신이 누구인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 올림포스 12신이자 대지의 여신인 데메테르를 아득하게 뛰어넘는 막강한 기운.
어쩌면… 신들의 왕인 제우스와도 비견될 힘을 가진 흑발의 남신,
그런 자는 그녀가 알기로는 하나밖에 없었다.
‘저승의 주인, 하데스…’
동료의 죽음에 주변의 괴물들이 일제히 달려오지만,
남신의 손에서 허공을 찢고 나타난 두 갈래로 갈라진 창이 쏘아졌다.
콰아아아앙!!!
싸늘한 기운을 뿜어내는 검은 빛줄기가 공간을 가로지르고,
파괴적인 검은 기류에 걸린 기가스들은 그대로 증발하듯이 사라졌다.
쩌저적… 후우우웅-
그 끔찍한 파괴흔이 대지에 새겨지고,
천공의 구름을 반으로 갈라버리는 것을 지켜본 기가스들이 기겁한다.
“허.. 허억!”
“크아아악! 저건 무슨 신이야!”
“이 힘은…! 올림포스 12신인가? 아레스? 헤파이스토스?”
“개소리! 이런 놈이…”
페르세포네를 뒤에 태운 채, 다시 전차를 몰고 돌진하는 하데스.
하나하나가 최소한 하위 신격과 맞먹는 기가스들이 허무하게 죽어나갔다.
창을 휘두르는 순간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고, 뱀 괴물들의 공격은 어떠한 피해도 입히지 못한다.
푸히히힝! 푸르르륵!!!
전차를 모는 유령마가 돌진하여 기가스의 하반신을 밟아버리고,
뒤이어 소름끼치는 살기를 내포한 검은 창격이 날아가면 어김없이 괴물의 시체가 널부러졌다.
콰자자자작! 푸확-
“크으윽!”
“에우리토스! 협공하자!”
“네가 빈틈을 만들어라, 토아스!”
어떻게든 티폰의 몸뚱이를 꺼낼 틈을 만들기 위해 그를 붙잡아두려는 기가스들.
페르세포네가 아까 보았던 지휘 개체 셋이 모두 달려와 검은 기류가 흐르는 전차를 포위했다.
위기라고 생각한 봄의 여신의 입에서 위험하다는 말이 나오려던 찰나,
하데스의 입가에 어린 싸늘한 미소가 짙어졌다.
스윽-
두 갈래의 이지창, 바이던트가 대지에 꽂히고.
거대한 균열이 번져나가며 이승과 저승이 일시적으로 연결되었다.
대기가 무거워지며 검은 기운이 땅에서부터 분출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균열에서부터 나오는 것은 저승의 병사들.
반투명한 몸을 가진 유령 병사들이 창칼을 들고 끊임없이 나온다.
“이런 빌어먹을! 저승의 신, 하데스잖아!”
“으아아! 죽어라!”
“3주신이라고 해도 혼자다!”
“이미 뒤진 놈들이 이승으로!”
콰지직! 쿠우웅!
기가스들은 주변의 나무를 뽑아들고, 주먹을 휘두르며 저항하지만…
저승의 병사들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계속해서 불어났다.
태초에 인간이 만들어질 때부터, 계속해서 늘어난 저승의 병력.
죽음의 기운을 풍기는 반투명한 망자들의 군대가 티폰을 꺼내려던 기가스들을 성공적으로 봉쇄했다.
“펠로레오스! 하데스만 쓰러뜨리면 이긴다! 정신 똑바로 차려!”
“어머니 가이아를 위하여!”
비스듬히 휘두른 창격이 하늘로 뻗어나가며 또 다른 기가스의 상반신을 날려버렸다.
저승의 신력에 의해 몸의 절반이 통째로 날아갔는데도 재생할 수 있는 괴물은 없다.
“받- 아라!!!!”
전차 위에서 창을 회수하는 하데스의 머리로 나무 몽둥이를 내려찍는 토아스.
이번 공격에 전력을 다한 듯, 그 위력은 가히 산도 부술 만했다.
쩌어어엉!
허나 저승의 주인이 허리춤에서 검은 장검을 뽑아 한 손으로 가볍게 막았고,
막강한 힘의 충돌에굉음이 터져나오며 주변을 초토화시킨다.
쿠우우웅. 콰콰쾅!!!
이런 난장판에서도 하데스의 뒤에 탄 페르세포네의 몸은 상처 하나 없이 무사했다.
그리고 그녀는 저승의 주인이 단 한번도 유효타를 허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하나가 올림포스 신과 맞먹는 괴물들을 가지고 놀고 있어…’
올림포스 12신에는 제우스와 포세이돈이 포함되지만,그들은 하데스와 함께 3주신으로 묶인다.
그리고 황금 옥좌의 12신이 모두 덤벼도 3주신 중 하나를 당해낼 수 없다는 소문.
님프들과 웃고 떠들었던 그 이야기가 사실이였구나.
전투가 시작된 직후… 계속해서 싸늘한 웃음을 짓던 하데스의 입꼬리를 이제야 발견한 듯,
숨을 고르던 기가스의 지휘 개체 중 하나가 흥분해서 달려든다.
“젠장! 우릴 얕보지 마라, 하데스!”
“잠깐…!에우리토스!!흥분해서 달려들지…”
서걱- 푸확!
“크아아악!”
하지만 칠흑의 장검이 번뜩이자 달려들던 기가스의 양 팔이 잘려나간다.
호기롭게 덤빈 에우리토스는 땅바닥에 뒹굴며 피분수를 쏟아냈다.
“으.. 으으…”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하잖아…!”
저승의 주인, 하데스에 대해서는 그녀도 많은 소문을 들었다.
저승을 다스리니 흉측하고 끔찍하게 생겼을 거라던가… 보통 흉흉한 소문이였다.
그녀는 올림포스의 연회에도 가보지 않은 어린 신이였기에 더더욱.
인간들 사이에서 떠도는 자비의 신이니 뭐니 해도,그의 모습을 직접 보지 못했으니 하는 소리라고 여겼다.
인간들이 두려움을 신앙심으로 승화시키는 일이 보기 드문 것도 아니였고…
하지만 지금 페르세포네는 그 모든 것이 틀렸음을 알 수 있었다.
위험에 빠진 자신의 허리를 부드럽게 안아 구해주는 상냥함.
그녀의 아버지인 제우스에 비견되는 강함, 전투 내내 그녀를 보호해주는 세심한 배려심.
마지막으로 흉측한 생김새라고 상상했었건만…
저승의 주인답지 않게싸늘하고 잘생긴 그의 얼굴.
페르세포네의 입에서 홀린 듯 작은 속삭임이 흘러나온다.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