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69)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69화(69/82)
페르세포네의 이야기 – (4)
“어라?”
그제서야 페르세포네가 자신의 가슴팍에 꽂힌 황금 화살을 눈치챈 듯, 화살을 뽑아낸다.
여신의 손길이 닿자 목적을 완수한 황금 화살은 공기로 녹아들어 사라졌다.
“이건… 에로스의 황금 화살?”
사랑의 신, 에로스는 활과 화살을 든 어린아이의 형상.
그는 사랑의 황금 화살과 증오의 납 화살을 가지고 있었다.
황금 화살은 맞은 이가 처음으로 다른 자를 보면 그를 미친듯이 사랑하게 되고,
납 화살은 맞은 이가 처음으로 다른 자를 보면 그를 미친듯이 증오하게 되는 효과를 지닌다.
사랑의 특성인지 은밀하고 빠른 화살이였기 때문에,
지속된 전투에 지치고 탈진한 페르세포네는 피할 수 없었고…
“황금 화살이… 맞네요?”
“하아…”
그런데 방금 황금 화살을 맞은 페르세포네가 나를 보았으니.
이제 나는 조카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이걸 어쩐다.
허탈한 얼굴로 에로스의 화살이 날아왔던 방향을 보고 있자니 페르세포네가 말했다.
“그런데 저는 멀쩡한데요? 잘못 쏜 게 아닐까요? 헤헤.”
“…그 화살에 맞으면 제우스라 해도 사랑에 빠진다.”
지금 나를 바라보며 헤헤 웃는 여신은, 아닌 척 해도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감정이 넘칠 것이다.
에로스의 화살을 맞은 걸 뻔히 봤으니 모른 척할 수도 없다. 이걸 대체 어떻게 수습하지?
아버지는 신들의 왕인 제우스에, 어머니는 대지의 여신인 데메테르라…
뭔가 실수하면 정말로 전쟁이 일어나겠는데.
“하지만… 저는 진짜 멀쩡한데요. 그나저나 이제 저승으로 돌아가실 예정인가요?”
“잠시만 이 근처를 수습하고 돌아갈 생각이다.”
기가스들과 싸운 여파로 근처는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렸다.
마치 제우스의 벼락이나 포세이돈의 삼지창이라도 꽂힌 듯,
보이는 모든 곳의 땅이 뒤집어지고 갈라진 균열은 셀 수도 없었다.
티폰을 봉인해놓은 에트나 산의 봉우리는 내 공격의 여파에 휩쓸려 날아갔고,
아름다웠던 평원의 숲과 들판, 시냇물은 흉하게 박살난 채로 널부러져 있었다.
그 많던 님프들은 대부분 죽거나 도망쳤는지 보이지도 않았고…
자연의 신, 판이 기겁할 만한 자연 파괴의 흔적을 둘러보는데 조카가 손을 뻗었다.
그와 함께 느껴지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신력.
“하데스 삼촌! 저도 같이 해요. 저는 봄과 씨앗의 여신이라 이런 것도 되거든요.”
스아아아-
페르세포네의 손에서 녹색 물결이 퍼져나오며 대지를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쓰러진 나무 옆에서 풀이 자라고, 황량했던 평야가색채를 되찾는다.
하기야. 저승을 다스리는 나보다는 봄의 여신이 수습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판이나 데메테르가 여기 있었다면 훨씬 편했겠지만…
“어때요? 저 잘했죠? 평소에는 님프들과 놀 때나 사용했었는데, 역시 이럴…”
“…그래. 잘했다.”
나를 바라보며 칭찬을 바라듯 재잘재는 조카는 정말 귀여웠다.
모두가 아름다운 올림포스의 여신들 사이에 있어도 단연 두각을 드러낼 빼어난 미모.
그녀의 아버지, 제우스를 닮은 황금빛 동공과 머리카락. 나올 곳은 나오고 들어갈 곳은 들어간 몸매.
호색한 남신이라면 이런 여신이 자신에게 반한 사실을 두 팔 벌려 환영하겠지.
“가만히 서서 무슨 생각 하세요? 저도 알려줘요!”
하지만 얘는 조카잖아…
* * *
“후… 다 끝냈다. 전부 정리했어요.”
내가 주변을 샅샅히 뒤지며 기가스의 흔적을 찾고 추적하는 동안,
페르세포네가 망가진 대지를 어느 정도 복구해놓았다.
“수고했다.”
“헤헤… 이제는 정말 저승으로 돌아가실 거죠? 저도 가볼래요!”
나는 활짝 피어난 꽃과 같이 미소짓는 페르세포네의 입에서 나온 말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래 바로 이게 문제야…
에로스의 황금 화살에 맞은 대상은 절대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다.
제우스나 나, 포세이돈도 거부할 수 없는 감정의 권능.
저승에 온 망자들 중, 생전 에로스의 화살을 맞은 자들도 많았기에 그 위력은 잘 알고 있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한쪽이 받아주면 행복한 결말로 끝나지만,
만약 한쪽이 끝까지 거부하거나 신분의 차이 등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면…
무기를 들고 자신의 사랑을 방해하는 이들을 베어버리거나, 슬피 울다가 자살하거나,
터질듯한 가슴을 붙잡고 신을 원망하며 미쳐버린 자도 있었지.
그야말로 ‘사랑에 눈이 멀었다’ 라는 표현을 사용하기에 적합하다.
만약 내가 단칼에 조카를 거부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보면…
“너는 에로스의 화살 때문에 내가 좋게 보이겠지만, 그건 거짓된 감정이다. 저승에 데려가 줄 수는 없는 노릇…”
“예… 예에에…? 흑… 흐윽… 흐아아앙!!!”
“그렇게 울어도 저승에 데려가 줄 수는…”
“죽.. 죽으면 저승에 갈 수 있잖아요! 죽어서라도…”
그래, 당장 여신의 자살 소동이 일어나겠지.
그것도 제우스와 데메테르의 딸인 봄과 씨앗의 여신이 저승의 입구에서 자살하겠다고 한다면…
“폐하! 큰일입니다! 어제까지 눈이 내리는 날씨였는데, 오늘은 태양이 뜨겁게…”
“봄이라는 계절이 사라졌단 말인가! 신들께서 노하신 것이 틀림없어!”
“씨앗이 자라질 않는 괴현상이 일어나다니… 올림포스 신들께 무언가 일이 생기셨나?”
일단 자신의 일을 내팽겨친 봄과 씨앗의 여신 때문에 온 세상이 난리가 날 것이다.
그럼 당연히 그녀의 어머니인 데메테르는…
“뭐라고?! 내 딸이 저승에 가고 싶다고 자살을 시도… 뭐? 황금 화살을 맞고 하데스에게 반했는데 거절당해서 그렇다고?”
“땅이 모조리 말라버렸습니다!”
“델포이에 신탁을 받아보니 데메테르 여신께서 크게 진노하신 탓이라고…”
“더 이상 대지에서 곡식이 자라질 않는다니, 제우스시여…”
데메테르도 분명 무슨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녀는 헤스티아 같은 선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아르테미스와 비슷한 부류.
그녀의 감정이 요동치면 대지는 모조리 마를 것이고, 저승에 오는 인간들만 늘어나겠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신들의 왕인 제우스.
“하데스 형님이… 페르세포네를 거절했고, 그 탓에 저승에 가겠다고 자살을 하려…”
“예. 아버지. 제가 데메테르 님께 여쭤본 결과…”
“데메테르가 일을 내팽겨친 것도 다 그것 때문이다?”
“예…”
“…아무리 하데스 형님이라 해도 조금 너무하시는군. 아무래도 조금 이야기를 해봐야겠어.”
저승에 온갖 항의 문서가 빗발치고, 굶어 죽은 영혼들이 밀려오며.
필멸자와 불멸자들 모두 저승을 성토할 것이다.
방금까지 내 머릿속에서만 일어난 이 모든 재앙은…
지금 눈앞에서 실없이 웃고 있는 아름다운 조카를 저승에 데려가지 않으면 발생할 수도 있는 일.
“하데스 삼촌? 그래서 저도 가도 되나요? 헤헤… 저승은 어떤 풍경일지 늘 궁금했는데요.”
비록 지금은 내 얼굴을 바라보며 행복하다는 듯 웃고 있지만…
잘못해서 그녀를 심하게 자극하면 세상에 혼돈이 찾아온다.
“그.. 그렇게 빤히 보시면 조금 부끄러운데요. 히히…”
이런 제우스 맙소사.
차라리 아버지 크로노스와 한번 더 싸우는 편이 낫겠군.
* * *
어쩔 수 없다.
일단 저승에 데려간 다음 적당히 살살 달래던가 해야지.
“…그래. 구경 정도는 시켜 줄 수 있겠지. 날 따라와라.”
“와아! 감사해요. 삼촌!”
팔을 벌리고 내게 안기는 페르세포네.
이걸 받아줘야 하나? 받아주지 않는다면 본인이 싫은 거냐고 울 수도…
포옥.
가슴팍에서 느껴지는 볼륨감과 싱그러운 봄의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히지만…
“에헤헤…”
정말 정신이 나갈 것 같다.
아니 이게 맞아? 에로스의 화살에 맞은 조카를 저승에 데려가게 되다니.
“이제 그만 붙고 전차에 타라…”
“헤에… 가슴팍이 굉장히 넓… 이대로 가면 안 되나요?”
“…그럼 불편하니 옆에 타라.”
“네!”
나는 해맑게 웃는 페르세포네를 태우고 저승의 입구로 향했다.
“와! 이 말들 귀여워요!”
푸..푸르륵?!
열심히 달리는 유령마 갈기를 쓰다듬지 말아라…
자기들과 정 반대되는 기운을 가진 여신이 갑자기 뒤에서 쓰다듬으면 당황한다…
어떻게 그녀를 데리고 저승에 도착했다.
어두운 저승의 풍경에도 전혀 겁먹지 않고 신기하다는 것처럼 둘러보는 페르세포네.
“와, 여기 귀여운 강아지도 있네?”
“티폰의 자식인 케르베로스다. 내가 데려와서 저승의 신수로 만들었지.”
크.. 크르릉?! 크릉?
처음 보는 여신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자 당황하는 삼두견을 페르세포네가 마구 쓰다듬었다.
갑작스러운 애정 공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케르베로스.
무시무시한 저승의 문지기는 나와 페르세포네의 관계를 가늠하려는 듯,
눈알을 바삐 움직이다가 결국 배를 보이고 벌렁 드러누웠다.
헥헥! 헤엑!
“하데스 삼촌! 이거 보세요. 정말 부드러워요. 히히!”
아니, 그렇게 보여도 나름 강력한 괴물이다.
아마 기가스 한둘 정도는 물어뜯어버릴 수 있을걸?
“일단 나는 업무가 바쁘니 이쪽 방에서 잠시 머무르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시종에게 말해라.”
“네에! …오오. 이런 것도 할 줄 아니?”
케르릉?! 헥헥!
기가스에 대한 걸 다른 신들과 논의해야겠으니, 잠깐 시종에게 맡겨두고 다시 돌아와야겠다.
내가 이승에 있었을 때, 밀린 재판과 저승의 근황도 살펴야…
“하데스 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직접 결재받아야 할 사안이 있어서…”
“모르페우스. 이번에도 망자들의 문제인가?”
“아, 이쪽을 보신다면…”
“이 문제는 다른 신들과도 의논을 해봐야…”
나를 발견한 모르페우스와 잠시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서류를 결재했다.
그는 인간들에게 꿈을 전해주러 갈 시간이 되었다면서 황급히 돌아가더라.
이제 방 안에 있는 페르세포네를 데리러 가기 위해 움직였다.
오도독. 냠냠.
그리고 작은 그릇에 놓여진 석류를 먹고 있는 귀여운 조카를 발견했다.
누가 이 방 안에 석류를 갖다놓은 거야?여기가 원래 다른 신들이 머무르던 휴식 공간이였나?
잠깐…저승의 법도에 따르면 저승의 음식을 먹은 자는…
“에헤헤… 하데스 삼촌! 삼촌도 이거 드셔보세요! 저승인데도 과일이 신선하네요?”
입가에 붉은 석류의 즙이 흐르는 조카를 바라보다가 머리를 짚었다.
…이런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