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70)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70화(70/82)
페르세포네의 이야기 – (5)
“…페르세포네, 저승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나?”
“앗?! 먹으면 안 되나요? 죄송해요…”
급격히 시무룩한 기색으로 변하는 페르세포네.
저승은 이승과 전혀 다른 세계이기 때문에 별도의 규칙이 존재한다.
이를 정리한 내용은 신력을 불어넣은 양피지에 잘 보관되어 있는데…
저승의 법칙.
제 1조 1항, 한번 죽은 자는 다시 살아날 수 없다.
제 1조 2항, 모든 망자들은 이승에서의 업보를 청산하는 재판을 받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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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조 2항, …..
제 5조 3항, 저승의 음식을 한번이라도 먹은 자는 그 누구라도 이곳에서 살아야만 한다.
페르세포네에게 해당되는 사례는… 바로 저 5조 3항이 문제다.
아예 이승에 나갈 수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적어도 거주지를 저승으로 옮겨야 한다는 뜻.
설령 신이라도 통용되는 법칙이기에 저승에 잠시 파견된 신들이 음식에 전혀 손을 대지 않은 것.
아테나도, 아레스도, 아프로디테도 저승에서 어떠한 음식도 먹지 않았다.
“후우… 그 누구라도 저승의 음식을 먹으면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
“어어? 그런가요? 그럼 이제 삼촌이랑 사는 거에요?”
에로스의 금화살을 맞은페르세포네였기에 나쁘지 않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데메테르나 제우스는 어떻게 생각할까?
아니.. 잠깐만, 아무리 300여년도 살지 않은 어린 여신이라지만,
저승의 법도를 모를 수가 있나, 이거 일부러 먹은 거 아니야?
저승의 안주인 자리는 자연스럽게 권력과 힘이 따라오는 높은 직위, 황금 화살을 맞은 페르세포네라면 더더욱…
“…일단 나를 따라와라. 내 눈 밖으로 나가지 말고.”
“네에!”
그냥 내가 데리고 다니는 게 낫겠네.
* * *
그렇게 잠시 그녀를 데리고 다니며 업무를 처리했다.
“순결을 잃어버린 대가로 아르테미스의 신자들 사이에서 쫓겨나 죽음을 맞이한 네게는…”
“…자비의 신께 영광 있으리라… 감사합니다. 플루토시여.”
억울한 영혼들의 사정을 잠시 들어보며 어떻게든 공정한 판단을 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는 동안,
페르세포네는 의문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밀린 재판을 다 끝내자, 그녀가 다가온다.
“하데스 삼촌. 그런데 왜 인간들에게 저리 관대하시나요?”
“관대?”
“예. 신을 모욕하거나 건방진 행동을 한 인간들에게도 자비를 보이시는 거 같아서요.”
비꼬거나 불만이 아니라 순수한 의문이 가득한 눈동자.
딱 높은 신격 밑에서 태어나 아쉬움 없이 자란어린 신이 할 만한 생각이다.
막강한 힘인 신력과 권능, 세계의 균형을 이루는 일을 맡는다는 자부심, 나약한 인간들과는 다르다는 우월감.
이건 페르세포네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신들은 이처럼 생각하겠지만…
“…그런 생각은 버리는 편이 좋을 것이다.”
“예..? 예?!”
“저승은 필멸자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곳이며 종착점이다. 그런데 내가 그들에게 가혹한다면 어떡하겠나?”
“하지만 우리 신들은 그들에게 섬김 받는 존재가 아닌가요? 당장 제가 봄의 권능만 사용하지 않는다면 인간들은…”
어린 신들은 그 천진난만함에 비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때로는 인간들에게 가혹하면서도 변덕스러운 존재로 비춰질 수도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추앙받고, 그럴 능력도, 혈통도 있는 페르세포네라면 더욱 그러하겠지.
데메테르나 제우스도 인간들에게 종종 가혹한 모습을 보이는데… 부모님의 성격을 제법 닮은 모양.
“…사계절 중 하나를 관장하는 여신답구나.”
“저는 봄과 씨앗의 여신인데요…?”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그저… 네 사소한 행동이 인간들에게는 자연재해로 비춰질 것이라는 말이였다.”
의문으로 가득찬 페르세포네의 눈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저승에서 보고 느낀 점이 네게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 신들은 절대 완전무결한 존재가 아니다. 제우스나 아테나라도 실수를 할 수 있지.”
“아버지나 지혜의 여신님도요?”
“완벽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한순간의 변덕과 짧은 생각으로 권능을 쓰는 일은 자중하거라.”
“3주신이신 하데스 삼촌은… 후회하신 적이 있나요?”
“…셀 수 없을 만큼 많았지.”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어찌 완벽한 모습만을 보여줄 수 있을까.
아무리 자비의 신이니, 공명정대한 저승의 주인이니 뭐니 해도…
“실수로 판결을 잘못 내려 후회한 적도, 순간의 감정에 휩싸인 적도 있었다.”
“아…”
“네가 분노했을 때, 그 여파로 죽어나가는 필멸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
“그들에게는 그것이 항거할 수 없는 재앙임을 기억해라. 그렇게 죽어나간 억울한 자들이 저승으로 오는 것이고.”
내 말을 곰곰히 생각하던 페르세포네의 자유분방한 신력이 크게 요동친다.
역할에 대한 깨달음, 자신이 맡은 권역에 대한 책임감이라도 깨우친 걸까?
“항상 그럴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노력해야 하는 것이 우리 신들이다.”
“…이런 말은 어머니한테서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바닥을 바라보며 조용히 중얼거리는 페르세포네.
나는 지금, 그녀가 미약하게 성장한 것을 느꼈다.
발랄하고 활기차던 페르세포네의 힘이 차분하게 정돈되는 느낌.
사계절 중 하나인 봄은 조금 더 안정되고, 대지에 뿌려진 씨앗은 잘 자라날 것이다.
“일단 임시 거처를 배정해 주겠다. 그리고 네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하데스, 큰일났어요! 지금 저승에…”
문을 열고 황급히 뛰어오는 스틱스 여신님이 나를 찾는다.
기가스의 습격이라도 또 일어난 것일까?
“저승에… 죽은 케이론의 영혼이 와 있다고요!”
* * *
케이론.
상반신은 인간이고 하반신은 말인 켄타우로스 족의 현자.
온갖 기술에 능통하고 지식도 많지만 그의 제일 큰 장점은 교육에 있었다.
그는 이승에서 수많은 영웅들을 길러내는 역할을 맡은 이.
케이론이 죽었다면 기가스를 물리칠 수 있는 예언의 영웅을 길러내기 어려워진다.
“지금 당장 그를 만나러 가겠습니다. 그런데 그는 불멸의 존재인데…”
“그것이… 갑자기 쳐들어온 기가스들에게 고문당하고 스스로 불사성을 포기했다네요!”
“이런…”
에트나 산의 티폰을 노리러 온 기가스들은 고작 수백 마리뿐이였지.
그렇다고 전력을 분산시켜 케이론을 죽여버리는 수법을 쓸 줄이야…
저번에 오이디푸스를 타락시켰을 때고 그렇고, 가이아가 영웅들을 노리는 건가?
설마 우리 신들이 알고 있던 예언을 가이아가 알아챘을 수도…
아니야, 확실하게 파악했다면 즉시 전면전을 걸어왔겠지.
분명 영웅이 기가스와 관련 있다는 사실 정도는 짐작하고 있으나,
반신반의하는 정도라고 봐야 하나?
모든 미래 전부를 내다보는 능력이 아니여서 다행이군.
뭐. 그런 능력은 프로메테우스도 없지만…
일단 페르세포네, 스틱스 여신과 함께 서둘러 케이론을 만나러 이동했다.
그래 조카야, 너는 차라리 내 눈에 보이는 곳에 있어라.
곧 반투명한 영혼의 모습을 하고 있는 케이론이 보였다.
정말로 죽어서 저승에 오다니…
“케이론.”
“하데스 님. 오랜만입니다. 이렇게 뵙게 된 것은 유감이지만요.”
말을 걸자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켄타우로스.
“기가스들이 너를 고문했다고 들었다. 이곳에서는 편히 쉬어라.”
“…영웅을 양성하는 일을 잘 해내지 못하고 죽음으로 도망친 듯 싶어 죄책감이 드는군요.”
“신과 비견되는 괴물들이 작정하고 고문한다면 그 누가 버티겠는가.”
“감사합니다. 저승의 주인이시여. 그들이… 제가 가르치던 학생들도…”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케이론의 명성 덕분에,
그가 있는 곳은 늘 영웅이 되고 싶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런데 갑자기 쳐들어온 기가스들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다.
케이론과 그의 제자들은 저항했지만, 하나하나가 하급 신격에 맞먹는 괴물들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많은 제자들이 학살당하거나 도망쳤다고.
“저승에 와서야 알았지만, 다행히도 디오니소스 신과 아레스 신께서 강림하시어 놈들을 몰아냈다고 하시더군요.”
“음… 자네가 이승에 있었을 때, 코린토스와 아테네도 습격당했네.”
“그 외에도 온갖 곳에 나타난 모양이에요.”
“올림포스 신들이 강림해 기가스를 죽였지만 피해도 만만치 않아서…”
“평범한 인간들을 죽이기보다 신전을 부수고 필멸자와 신과의 연결을 끊으려고 했습니다. 영웅이나 반신이 보이면 달려들었고요.”
케이론의 말이 끝나고 타나토스를 비롯한 신들이 부연 설명을 더했다.
코린토스와 아테네를 비롯한 인간들의 도시를 습격했다라…
“이번에 많은 영웅이 죽었습니다.”
“급하게 아테나가 하계로 내려갔지만 그녀의 신전이 반파되었다는군요.”
“이번 일에 대해 올림포스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나누는 신들을 손짓으로 멈추게 만들었다.
“무지개의 여신이 내려와 올림포스 신궁으로 절 부르겠죠. 일단 그때까지는 평소대로의 경계를 유지하겠습니다.”
“그래도 조금은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데메테르가 있잖습니까.”
“아… 대지의 여신이 옴팔로스의 돌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제 기가스의 근거지를 파악했겠군!”
기가스의 마지막 습격은 무려 케이론을 죽이는 성과를 달성했으나,
반대로 우리에게 근거지를 드러낸 꼴이 되었다.
분명 데메테르는 제우스에게 알렸을 것이고,
지금도 수많은 신들이 기가스의 근거지를 예의주시하고 있겠지.
이제 기가스는 절대 신들의 눈을 피해서 습격할 수 없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전면전이나 가이아의 계략뿐.
* * *
아까부터 페르세포네는 전혀 끼어들지 않고 눈빛만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도 일할 때는 방해하지 않네. 아까의 말이 그녀의 심경에 영향을 주었나?
레테 여신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페르세포네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데스, 그런데 아까부터 있던 저 여신은 누구에요? 하급 신격은 아닌가본데…”
“아, 저는 페르세포네라고 해요!”
괜히 여신 하나를 속여 저승으로 데려왔다는 누명은 쓰기 싫으니 미리 말해놔야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쓸데없는 오해를 사기 마련이다.
“에트나 산 근처에서 만난 데메테르와 제우스의 딸입니다. 참고로 에로스의 금화살을 맞고 저를 보았고, 저승의 음식도 먹었습니다.”
“네에?!”
“에로스의 금화살을… 아니 그러면…”
“데메테르도 이 일을 알고 있나요?”
“조금 있다가 올림포스에 올라가 직접 설명할 생각입니다.”
이 자리에 모인 수많은 신들의 표정이 변화했다.
그렇게 절 보아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에트나 산 이외에도 기가스가 습격했는지 급히 보고받아야 해서 잠시 데려온 것이라…
“저는 금화살을 맞아도 멀쩡했다니까요!”
“그래. 그래.”
“우으.. 진짜에요! 금화살에 맞기 전에 저를 구해주셨으니 책임지세요!”
“…뭐?”
“아니… 하데스.. 왜 자꾸 나갈 때마다 여신을 늘리시는 거에요.”
“더 이상 늘어나기 전에…”
좌중이 황급히 고개를 돌려 스틱스 여신과 레테 여신을 보았다.
그리고 집무실 문을 열고 뒤늦게 등장한 멘테가 굳어버린 것도 보인다.
모두가 얼어붙자 페르세포네가 갑자기 울먹이며 말했다.
“하데스 님, 그때 저를 부드럽게 만져주셨잖아요! 몰라요! 책임져 주세요오!”
“무.. 뭐라고?”
“잠깐,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귀가 이상해졌나? 아폴론한테 들러야 하나…”
“누가 뭘 만져?”
“하데스…! 뭘 한거에요!”
아니, 다들 왜 저한테 그러십니까.
이거 오해입니다…
페르세포네야, 여신으로서 진일보해도 발랄한 봄과 같은 성격은 그대로구나…!
“조카야… 기가스한테 목이 졸리고 있던 상황에서 옆구리를 안아 전차에 내려놓은 걸로 이상한 소리를…”
“그.. 그게 그거잖아요! 저 하데스 님이랑 결혼할래요!”
“하데스. 정말로 전차에 내려놓은 거 빼고 손대지는 않았나요?”
“지금 기가스가 문제가 아니잖아요! 빨리 다 이야기해요…”
“하.. 하데스 님… 저는 첩으로도 괜찮지만 너무 많아지면…”
저승은 원래도 온갖 일이 생겼지만,
요즘 들어서 특히나 더 그런 것 같단 말이야. 무슨 가이아의 저주라도 내렸나?
“하데스 님.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가 찾아왔습니다. 아마 기가스에 대한 일로 올림포스에서 파견된….”
“…! 당장 들라 해라.”
올림포스 신궁에서 있을 회의에 날 초대하기 위해 왔겠네.
기가스에 대한 것도 의논해야 하고, 데메테르에게는 뭐라고 설명해야 하려나?
저승이 시끄러운 가운데,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가 도착했다.
“저승의 주인을 뵙습…”
들어오던 이리스가 말을 멈추더니 주변의 상황을 살펴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이리스를 보고 필연적인 죽음의 신, 모로스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는 아까부터 집무실 한쪽 벽에서 팔짱을 끼고 기대고 있었다.
“아. 이리스, 당황하지 말게. 언제나와 같은 저승의 풍경이니까.”
“모로스 님, 이게 무슨 일인지…”
“정말로 별거 아니야. 그냥 데메테르와 제우스의 딸이 에로스의 금화살을 맞고 하데스를 보았고, 저승의 음식도 먹었으며, 지금 하데스를 좋아하는 세 여신들과 다투고 있는 광경이니까.”
“네? 누.. 누구의 딸이요?”
무지개의 여신의 낯빛이 창백해지며,
그녀가 항상 내뿜던 등 뒤의 일곱 빛깔 후광이 사그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