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72)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72화(72/82)
페르세포네의 이야기 – (7)
데메테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내게 손가락질한다.
“하데스! 네가 에로스와 작당하고 내 딸에게 화살을 맞춘 것은 아니냐!”
“정말로 맹세코 안 그랬다! 내 등 뒤로 날아온 금화살을 피했는데 그게 하필 페르세포네에게…”
“그럼 저승으로 데려가서 음식은 왜 먹였지? 너도 결국 제우스나 포세이돈이나 별반 다를 게 없구나!”
“뭐라? 그놈들과 나를 비교해?”
아무리 자기 딸이 저승으로 내려가 눈이 돌아갔어도, 그 놈들과 날 비교하는 게 말이나 되나?
후우… 아니다. 조금 진정하자.
“…차분히 생각해봐라, 내가 존재도 모르던 네 딸에게 수작을 부릴 신으로 보이나? 이건 전부 우연이다.”
“으으…! 그, 그럼 전부 에로스 때문이라는 거냐? 아무리 그래도 에로스가 감히 네게 활을 쏠 배짱은…”
신들은 서로의 영역에 간섭하지 않는다.
어떠한 잘못을 저질러 문제가 발생하거나 신의 자질이 없다 해도 신은 신.
만약 포세이돈이 실의에 빠져 모든 것을 놓는다면 바닷속 생명체들은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아레스가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필멸자의 수는 지나치게 늘어날 것이다.
아프로디테의 사랑이 너무 자유분방하다고 억제한다면, 새롭게 태어나는 필멸자는 없어질 것이다.
다른 신의 영역에 함부러 간섭하지 않는 것은 신계의 불문율.
그 탓에 신의 성격이 자유분방하면 다른 신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하지만 신격이 높을수록 그 불문율은 조금 옅어지는 법.
하나의 세계를 다스리는 3주신에게 감히 대들 수 있는 자는 많지 않다.
정의의 여신, 디케(Dike)가 높은 신격의 범죄를 지적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데메테르는 바로 그것을 말한 것이겠지.
“아마 활쏘기 연습을 하다가 실수한 듯 싶다.”
“실수라고?”
“네 딸이 화살에 맞은 직후, 주변을 전부 둘러보았는데도 에로스가 없었거든.”
“무슨… 아니 그래도 그런 우연이 있을 리가 있나… 혹시?”
가만히 서서 숨을 고르던 데메테르의 얼굴이 다시 붉어지더니 구름을 모아 어디론가 날아갔다.
설마… 지금 에로스한테 따지러 가는 건가? 아니면 제우스에게 하소연하러?
나도 황급히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 * *
“아프로디테! 네가 자식인 에로스를 시켜 화살을 쏘게 한 것은 아니냐?”
“아니, 저한테 왜 그러세요? 애초에 무슨 일로 그러시는데요!”
급히 구름을 타고 날아가자, 아프로디테의 거처에서 그녀와 말싸움 중인 데메테르가 보였다.
저번에 아프로디테에게 한 말이 먹혔구나.
그녀의 옆에는 아레스가 아닌, 헤파이스토스가 있었다.
그래,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일단은 부부니까… 적어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함께 다니는 것이 옳겠지.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헤파이스토스가 이게 무슨 일이냐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큰아버지… 에로스의 화살은 또 무슨 일입니까.”
“별거 아니다. 에로스가 내게 황금 화살을 쏘았고, 나는 피했는데, 그게 데메테르의 딸에게 맞았다.”
“네?!”
“아… 아니,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에요? 저는 처음 듣는데…”
“네가 시킨 일도 아니라고? 정말로 에로스의 독단적인…”
“만약 정말로 제가 꾸민 일이라면, 제가 하데스 앞을 지나가고 있을 때 쏘라고 했겠죠!”
헤파이스토스에게 설명한 것을 듣고, 아프로디테와 데메테르의 오해가 풀린 것 같다.
그런데 누구 앞을 누가 지나가고 있을 때 쏘라고 했을 거라고?
아프로디테를 슬쩍 째려보니, 그녀가 슬그머니 내 눈길을 피했다.
“아니… 그으…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죠…”
“시끄럽고 네 아들이나 불러와라, 정말로 우연인지 아니면 에로스의 장난인지 확실하게…”
“아, 알았어요! 한번 에로스에게 물어보면 되잖아요!”
데메테르의 재촉에 미와 사랑의 여신이 투덜대며 자신의 아들을 부르러 갔다.
팔짱을 끼고 기다리는 데메테르를 바라보는데 옆에서 헤파이스토스가 나를 불렀다.
“큰아버지, 그럼 혹시 그 페르세포네가 큰아버지에게 반했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너도 그녀를 아는구나. 어린 신으로 보이던데.”
조카는 정말로 어려보였다. 에로스가 태어난지도 얼마 되지 않았지만…
페르세포네는 아무리 많이 쳐줘야 200? 300살?
“저는 올림포스 신궁에서 생활하니까요. 연회에서 봄과 씨앗의 여신을 본 적은 없지만 소문을 들었습니다.”
“무슨 소문?”
“아버지와 어머니의 외모를 그대로 빼닮아 엄청나게 아름답다는 소문이죠.”
“그래…”
“정말로 그리 아름답습니까? 황금빛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데메테르 님의 축복을 받은 곡식 빛깔마냥 곱다고 하던데요.”
너는 아름다운 여신이면 다 좋은거냐?
아니지, 아프로디테와 제대로 사랑을 나누지 못했으니까…
“크윽.. 정말 부럽습니다. 큰아버지. 제가 장담컨데 큰아버지는 아프로디테의 축복을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조카가 내게 반한 건 좋아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
“예? 그게 뭐 어때서 그렇습니까? 당장 페르세포네의 부모님은 서로 남매이며, 올림포스 신은 대부분 친족간의 결합으로 태어난…”
내 말을 정말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
오직 의문만이 가득한 대장장이 신의 눈동자를 보아하니 정말 혼란스럽구나.
“사실 저는 가끔 아테나가 아름다워 보일 때도 있습니다. 큰아버지도 그리 생각하시지 않으십니까?”
“헤파이스토스야.”
“항상 입고 다니는 갑옷과 투구로도 가릴 수 없는 뛰어난 몸매.. 예?”
“헛소리는 여기까지만 하자.”
“…? 알겠습니다…”
물론 레테 여신님이나 스틱스 여신님도 먼 친척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페르세포네는 너무 가까운 혈족 아닌가.
신들은 근친이 죄가 아니라고 해도 이건 좀 그렇단 말이지.
* * *
에로스의 금화살은 정말 실수가 맞았다.
그가 올림포스 신궁을 벗어나 돌아다니며 날린 화살 중 하나가 운 나쁘게 이쪽으로 쏘아졌던 것.
“진짜 실수였어요. 화살이 에트나 산 방향으로 날아가긴 했어도 누군가 맞을 거라고는…”
모든 사정을 파악한 아프로디테가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로 자신의 아들을 야단쳤다. 이미 몇 대 쥐어박은 듯, 에로스의 이마는 붉게 달아올라있었다.
“내가 몇 번이고 말했잖니! 활쏘기 연습은 정해진 과녁에다 하라고!”
“…죄송해요…”
“흥! 아무리 어린 신이라지만, 내 딸을 맞춰놓고 죄송하단 말이면 다냐?”
귀엽게 생긴 활을 들고 잔뜩 풀죽은 모습의 에로스.
겉으로 보아서는 5~6살 정도 되어보이는 인간이지만, 그의 등에는 새하얀 날개가 달려있었다.
“화살은 위험하니까 항상 신중하면서도 꼭 필요할 때만 쓰라고 했는데 자꾸 이럴 거니?!”
“아.. 알았어요. 하지만 어머니도…”
“얘가 아직도! 나도 뭐?!”
“…하데스 님 앞으로 지나갈 때 금화살을 쏘라고 하셨잖아요! 왜 저한테만 그래요!”
“뭐?”
분이 풀리지 않던 데메테르도 어이를 상실한 표정으로 아프로디테를 쳐다보았다.
“하… 이제보니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였군.”
“이.. 이… 이건 오해에요!”
“피이. 오해는 무슨, 얼마 전에도 하데스 님에게 잘 좀 쏘아보라고… 으읍!”
“어머머! 얘가 왜 이런담…!”
다급히 자식의 입을 막고 어색한 웃음을 짓는 미의 여신.
아니 케스토스 히마스를 입고 오는 것도 모자라서 이젠 에로스까지 이용하는 거냐.
“…다음에 에로스의 화살이 날아온다면 무조건 네가 시킨거라고 생각하겠다.”
“이.. 이익.. 이게 다 하데스, 당신 때문이에요! 어떻게 미의 여신이 이토록 원하는데 한번을 안해줄 수가 있나요!”
얼굴을 잔뜩 붉히고 내 탓을 하기 시작한 아프로디테를 보아하니 두통이 도지는 느낌이다.
아니, 결혼도 하고 불륜남도 있는 여성이 이게 맞아?
“아무튼 다 하데스 때문이에요!”
그 한마디를 남기고 눈물이 맺힌 얼굴로 황급히 날아가는 아프로디테의 뒷모습.
지금 여기 헤파이스토스가 없어서 망정이지.
그가 보았다면 저번 예술의 축제 때 만들어진 아레스 & 아프로디테가 다르게 재현되지 않았을까?
대장장이의 신이피눈물을 흘리며가이아의 편에 붙었을지도…
점차 멀어져 가는 아프로디테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대지의 여신.
그녀가 갑자기 무언가를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하데스 네가 내 딸에게 수작을 부린건 아니군. 미의 여신의 구애를 뿌리칠 수 있는 남성이 존재하리라고는 생각지도…”
…차라리 저승에서 수많은 업무에 시달릴 때가 나았던 것 같네.
“아무튼 내가 오해한 것을 사과하겠다.”
“…그래. 이제라도 알았으니 됐다.”
다음으로 날개를 늘어뜨리고 시무룩한 표정의 에로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실수였다지만 사랑의 금화살을 함부로 쏘면 안된다는 교훈을 새겨줄 필요는 있겠지…
“어.. 저는 가봐도 될까요? 하데스 님…?”
“에로스. 활쏘기 연습을 할 장소라면 저승에서 제공해 줄 수 있다.”
“진짜요…?!”
“잠시 후에 저승으로 오면 네가 좋아하는 활쏘기를 원없이 하게 해주마.”
“와! 정말이죠? 금방 갈게요!”
에로스는 자신의 미래를 모른 채 희희낙락하며 날아갔다.
사랑의 신격은 아프로디테도 있으니 에로스가 저승에 장기간 머물러도 세계의 균형은 큰 문제가 없을 터.
드디어 밤낮으로 중죄인을 고문하는 역할을 맡은 망자들의 일을 덜어줄 수 있겠네.
다시는 화살을 함부로 쏘지 못하도록 교육해주마.
너는 설령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도 계속 활을 쏴야 할 것이다…!
* * *
“에로스의 화살에 맞아 네게 반했다고 해도 난 코레를 설득해봐야겠다.”
“그러던가. 지금 저승으로 돌아갈 생각이니 전차에 타라.”
“내 딸이 저승의 음식을 먹은 일은…”
데메테르와 함께 저승에 내려가려는데 구름을 밟으며 누군가 다가왔다.
나와 비견되는 막강한 신력, 푸른 머리의 남신.
나의 형제이자 바다의 주인인 포세이돈이 아쉬움 가득한 눈길로 우리를 바라본다.
뭔가 느낌이 쎄한데…
데메테르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포세이돈? 너는 또 무슨 일이지?”
“흠. 흠. 데메테르, 네 딸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위로해주러 왔다만…”
“그 소식은 또 어디서 들었나? 그리고 위로는 무슨 말을 하는거냐?”
“크흠! 내가 조금 늦게 온 모양이군. 쩝. 아무튼 가보겠네.”
아쉬움 가득한 눈길로 데메테르를 힐끗 바라본 포세이돈이 사라졌다.
에트나 산 인근에서 놀던 데메테르의 딸이 내 전차를 타고 저승으로 향했다는 것.
포세이돈은 그 사실을 근처 님프들에게서 들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나저나 위로라.. ‘위로’… 음.
저 난폭한 포세이돈이 설마 평범하게 대화로 위로해주지는 않았을 테고…
설마데메테르가딸을 잃어버린 슬픔에 빠졌을 거라고 생각해서 관계를 맺으려 했었나?
잠시 우리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곧 나와 똑같은 결론에 이르렀는지 주먹을 쥐고 이를 가는데메테르.
“제우스나 포세이돈이나! 으드득…! 남신들은 다들 똑같군!”
“…그건 모욕이다.”
모든 필멸자들이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신들이 사는 곳, 올림포스의 현황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