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73)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73화(73/82)
조금은 달라진 저승의 이야기 – (1)
그렇게 데메테르와 함께 전차를 타고 저승의 입구를 넘어왔다.
“말로만 들었는데, 저게 그 유명한 카론의 강철 선박인가…”
“데메테르?! 저승에는 무슨 일이지?”
아케론 강에서 팔을 휘적휘적 움직이며 영혼들을 실어 나르던 카론도 만났고…
크. 크르릉?!
“티폰의 핏줄을 이은 괴물? 이런 것도 저승에 있었나?”
“내 힘을 불어넣어 신수로 만들었으니 안전하다.”
저승의 입구를 지키던 케르베로스도 보았고…
“저기 흘러간 양피지 좀 주워주게!”
“젠장. 이번에 기가스라는 괴물의 습격으로 영혼들이 늘어났잖아.”
“주거 공간이 부족한데…”
과로에 시달리던 저승의 관리들도 본 데메테르는 한숨을 푹 내쉬며 내게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깊은 수심이 깃들어 있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코레 그 아이가 생활한다는 말이냐…”
그런 데메테르와 함께 페르세포네가 머무르는 장소로 돌아왔다.
조카는 의외로 얌전하게 있었다.
내게 보여주던 말괄량이 같은 기색과는 다르게 차분히 베를 짜고 있더라.
데메테르가 그녀를 발견하자마자 황급히 달려가 껴안았다.
“코레(Kore)야! 이 춥고 어두운 저승에서 얼마나 쓸쓸했느냐. 내가 왔으니 돌아…”
“하나도 안 쓸쓸했어요. 엄마. 저를 너무 애처럼 생각하지 말라니까요…”
“네가 이렇게 어린데 어떻게 이 어두운 저승에…”
“저 여기서 음식도 먹었고, 저승에서 하데스 삼촌이랑 살고 싶은데요.”
페르세포네가 부루퉁한 표정으로 데메테르를 슬며시 밀어냈다.
그래도 그녀는 상당한 신격인데, 데메테르의 과보호가 조금 심해보이기는 하네.
“하아… 그건 에로스의 화살 때문이야. 네가 느끼는 감정은 정상이 아니라…”
“스틱스 강에 맹세코 저는 아무것도 안 변했고, 맞기 전부터 하데스 님하고 혼인하고 싶었거든요!”
“뭐. 뭐라고?!”
“하아…”
데메테르가 고개를 휙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스틱스 강의 맹세라니, 에로스의 화살이 아무리 강력해도 없던 기억을 만들어낼 정도는 아니다.
금화살의 강력함은… 오히려 자신이 사랑에 빠진 순간이 어느 시점인지 명확하게 기억나게 한다.
그러므로… 저 말은 진실이다.
이미 사랑에 빠진 자가 황금 화살을 맞을 경우는…
아마도 그 사랑이 더욱 견고해지거나, 시간의 흐름에 식어가는 사랑도 붙잡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에로스의 화살 때문에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니지만,
잠깐의 두근거림이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으로 변한 것이겠지…!
데메테르가 억장이 무너지는 표정으로 페르세포네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조용히 자신의 어머니를 껴안았다.
“코.. 코레야.. 어쩌자고 하필 저승의 주인에게 마음을…”
“그야… 기가스한테 목을 붙잡힌 상황이였는데 구해주셨거든요.”
“기가스에게 목이 붙잡혀? 지금은 괜찮은 거니? 에트나 산이 습격당했다는 그때로구나…!”
“아이. 엄마도 참, 하데스 삼촌이 딱 위험할 때 구해줬다니까요.”
페르세포네의 몸에 신력을 불어넣어 상처를 확인하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데메테르.
일단 정리해야 할 것은 해야겠지.
“화살이고 사랑이고… 일단 너는 저승의 음식을 먹었으니 법도에 따라 이곳에 있어야 한다…”
“하데스…!”
“하지만 페르세포네, 너는 봄과 씨앗의 여신이 아니냐? 네가 여기에 계속 머무르면 세상의 순환에 불균형이 발생한다.”
저승의 법도는 애초에 세상의 균형을 지키기 위해 생긴 법칙,
사계절의 여신이 저승에 완전히 속박되어 버리면 이승이 위태롭다.
“삼촌, 제가 싫으세요? 진짜로 황금 화살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라…”
“스틱스 강에 맹세한 그 말은 진실이겠지, 이왕 음식을 먹었으니 저승에서 생활해야 하고… 그러나 이승에서 네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느냐?”
“우으… 그, 그래도요..”
“얼마 전에 내가 말한 것을 생각해봐라. 너는 사계절 중 하나와 씨앗을 관장하는 여신이다.”
그녀의 눈이 아래로 조금 쳐지며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를 낸다.
“…알았어요. 종종 이승으로 올라가면 되잖아요. 네?”
다행이네. 그런데 종종 저승으로 내려가는 게 아니라 이승으로 올라간다니…
대부분의 시간을 저승에서 보내겠다는 말이냐.
“봄의 여신으로서 이승에 필요해질 때만 올라갈게요.”
“후우… 미를 탐내는 다른 남신들보다는 차라리 하데스가 낫겠지만…”
다행히도 이승에 봄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듯하다.
* * *
올림포스 회의의 결과도 전달할 겸, 페르세포네의 일도 얘기할 겸.
저승에 있는 모든 신들을 회의실로 불러모았다.
이미 페르세포네를 보았던 신들은 많았지만, 정식으로 인사하는 과정은 거쳐야지.
“…그렇게 되어 페르세포네가 이곳에 주기적으로 머물게 되었습니다.”
“헤헤. 다시 소개할게요, 하데스 님이랑 결혼할 페르세포네에요!”
조카야…
“안 그래도 일이 바쁜데, 새로운 신은 환영이네.”
“쯧쯧… 어린 나이 같은데 저승에 묶이다니. 역시 사랑에 빠지면 눈이 돌아가는…”
“겨.. 결혼?! 누구 마음대로 결혼이죠?”
“일단 페르세포네는 그렇다치고, 올림포스 회의의 결과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이승과 저승 외곽을 연결해 케이론에게 영웅의 교육을 맡긴다는 결론을 모두에게 전달했다.
그것을 위해서 옴팔로스의 돌도 받아왔으니까…
“예언에도 부합되고, 적절한 해결책인 것 같네요.”
“영웅 후보자의 입단속을 철저하게 해야 하니 제약을 잔뜩 둬야…”
“그런데 이 일은 누가 담당하죠? 다들 시간이 있나?”
“영웅이 양성될 협곡에 결계를 치자고, 그들이 감히 저승을 돌아다닐 수 없도록.”
저승에는 죽은 괴물과 기가스들도 오게 되니, 영웅들의 훈련 상대는 차고 넘칠 것이다.
죽어도 죽지 않는 괴물들과 싸우다 보면 강한 영웅이 길러지겠지.
“그런데… 인간들이 저승의 기운을 버틸 수 있을까요?”
바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잘 단련된 영웅이라면 모를까, 영웅 지망생들이 어떻게 저승의 힘을 버티지?
평범한 필멸자가 죽음을 맞이해 육신을 버리고서야 올 수 있는 곳이 저승.
제아무리 저승의 외곽 지역이라 해도, 사방에서 나오는 죽음의 기운은 생자에게 좋지 않다.
“생자가 잠시만 있어도 피골이 상접해지는 곳이 저승 아닌가?”
“반신이나 완성된 영웅이면 모를까, 순수한 인간이라면 저승에서…”
“우리가 힘을 발휘하면 오히려 기운이 강해지기만 할테니… 이승의 신이 필요하다.”
“하데스 삼촌, 그 문제라면 제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승 일부를 분리시키는 방법까지 생각해보던 그때, 페르세포네가 말했다.
봄과 씨앗을 관장하는 여신의 힘으로 해결해보겠다고?
“네가 가능하겠느냐? 저승은 내 권역이라 힘이 제법 소모될텐데…”
“작은 협곡 하나 정도라면 괜찮아요!”
“괜찮겠어요? 페르세포네, 당신이 아무리 제우스와 데메테르의 딸이라도 올림포스 12주신급은 아니지 않나요?”
“…너처럼 어린 여신에게는 무리다.”
“다른 신의 영역을, 그것도 하데스 님의 기운을 중화시키는 것은…”
“할 수 있어요! 저승에서 놀고 먹을 수는 없죠!”
저승의 음식을 먹어서 주기적으로 이곳에 머물러야 하는 그녀가 맡아준다면 안성맞춤이지만,
지속적으로 협곡에서 힘을 발산해야 하기 때문에 피로도가 심하겠지.
올림포스에서 다른 신을 구하려고 해도…
저승에서 오래도록 머무르는 것을 좋아할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12신이면 맡고 있는 책무도 막중하니 저승에 있을 수도 없으니 더더욱.
“…일단 나와 함께 외곽으로 향하자.”
* * *
페르세포네와 영웅들을 훈련할 장소인 저승의 외곽으로 왔다.
저승 외곽에 펼쳐진 거대한 규모의 협곡에는케이론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데스 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래. 너도 알다시피 이곳에서 영웅을 육성해주길 바란다.”
“으음… 저승에서 제자들을 양성하게 될 줄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만…”
“그래서 불가능하다고?”
“오히려 더 좋은 면도 있지요, 죽음을 맞이한 과거의 괴물들을 이용한다면 좋은 교보재가 될 겁니다.”
죽음을 맞이하고 저승으로 온 괴물들은 망각의 축복을 듬뿍 받고 순한 양이 되었다.
케르베로스와 비슷한 신수가 되어 저승 곳곳을 지키는 병력이 된 괴물들도 있었고…
“아폴론이 죽인 피톤(Python)도 이곳에서 잘 지내고 있다.”
“델포이의 원래 주인이였던 거대한 뱀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왕뱀 피톤(Python).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포세이돈과 관계해 낳은 괴물 중 하나로, 델포이의 원래 주인이였다.
예지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폴론이 자신을 죽이고 자리를 차지할 것을 예감해 어린 아폴론을 죽이려 했으나 실패했다.
나중에 신으로서 장성한 아폴론이 수천발의 화살을 쏴서 피톤을 죽였고,
피톤의 아내인 피티아는 순순히 굴복했길래 죽이지 않고 델포이 신전의 무녀로 만들었다.
물론 아폴론이 가이아와 포세이돈의 자식인 피톤을 죽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포세이돈, 이제 가이아는 우리의 적이다. 그의 자식인 괴물도 물론이고…”
“으음… 죽을 운명이긴 하지만…”
“예언의 신은 우리의 편이어야 해요.”
가이아와 대립각을 세우던 신들의 묵인도 있었기에 가능했다.
“피톤을 비롯해 죽어나간 기가스도 있고, 오이디푸스가 처리한 스핑크스나 페르세우스가 죽인 바다 괴물…”
“이거, 영웅들이 너무 힘들다고 하는 게 아닌지 걱정되는군요. 하하하!”
“저기… 하데스 삼촌. 이제 시작할까요?”
슬슬 저승의 기운을 중화할 때가 되었다.
페르세포네에게 지금 시작하자고 이른 다음, 케이론을 뒤로 물렸다.
드드드드…
우선 내 힘으로 협곡을 최대한 분리시킨다.
최대한 페르세포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기운을 흐트러뜨린 다음…
페르세포네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봄과 씨앗의 여신의 몸에서 밝은 빛이 터져나온다.
화아악-
“이익…”
그와 동시에 화사하고 따뜻한 힘이 협곡을 부드럽게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페르세포네의 목덜미에서 흐르는 땀과 코에서 흘러내리는 이코르도 함께… 보였다.
“으… 으읏.”
영웅들을 육성할 장소는 완벽하게 봄의 신력으로 덮였다.
내 권역으로 느껴지던 협곡에서 무언가에 걸리는 듯, 약간의 어색함이 느껴지는 걸 보아 확실하다.
하지만 힘을 다한 페르세포네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풀썩.
서둘러 그녀에게 다가가 등을 받쳐주었다.
땀으로 범벅이 된 페르세포네의 이마를 닦아주는데 그녀가 날 바라보며 배시시 웃는다.
“괜찮느냐? 많이 무리한 것 같다만.”
“하아.. 조금 힘들지만… 괜찮아요! 쉬다 보면 금방 다시 회복될…”
스르륵-
지나치게 힘을 소비한 봄의 여신이 내 품에 쓰러지며 잠에 들었다.
완전히 무방비한 모습조차 따뜻하고 발랄한 분위기를 보이는 여신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하데스 님.”
“페르세포네가 금화살에 맞은 일은… 우리 신들에게는 다행이였다.”
페르세포네가 저승에 머물게 된 사정을 알고 있는 케이론이 조용히 다가왔다.
그녀가 잠들 정도로 힘을 과하게 소비한 까닭은 역시 내게 반했기 때문이겠지.
스틱스 강에 대고 증명했으니… 금화살 때문에 내게 마음을 품게 된 것은 아니겠지만,
만약 금화살이 없었다면 그녀를 저승에 데려올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어린 여신의 한순간의 감정이라 생각해 무시했을 터.
“…봄의 여신께서 저승에 일정 주기마다 머무르지 않으신다면 영웅의 육성은 어려웠겠죠.”
나는 애써 외면하고 있었지만…
항상 신들의 강간이나 치정극에 얽혀 피해를 본 자들만 저승에 오지는 않는다.
서로를 너무나도 사랑해 떨어지지 않으려 자살하거나, 한낱 한시에 기쁘게 죽음을 맞이한 자들도 존재했다.
“사랑이란 게 무엇인지, 참 어렵군.”
“…그 감정을 명확히 정의하는 것은 아프로디테 여신님도 힘드실 겁니다.”
잠든 페르세포네가 깨지 않도록, 조용히 등과 오금을 팔로 안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