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74)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74화(74/82)
조금은 달라진 저승의 이야기 – (2)
터벅터벅.
페르세포네를 안아들어 성채로 돌아가는데 품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이제 의식이 돌아올 정도로 회복된 건가?
“으음… 여기는… 핫!”
“일어났냐. 금방 옮겨줄 테니 기다려라.”
다른 신의 영역을 자신의 힘으로 덧칠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가이아가 내 신도들이 넘치는 테베에 수작을 부리기 어려운 것도 그 이치.
3주신인 나도 아테네나 델포이를 내 힘으로 뒤덮는 것은 그리 녹록치 않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제법 기운이 빠진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3주신인 내 영역을 올림포스 12신에도 미치지 못하는 신격이 건드린다?
제아무리 저승의 일부만을 조정했어도 절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나마 제우스와 데메테르의 혈통인페르세포네여서가능한 일.
만약 내 조카가 저승에 없었다면 올림포스 12신이 직접 저승의 기운을 중화해야겠지.
“하데스 삼촌… 이렇게 다정하게 안아주시다니… 드디어 저와 결혼하시기로 한 건가요?”
“그냥 내려놓기 전에 조용히 하고 힘이나 회복하도록.”
내게 안긴 여신이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농을 던지지만 얼굴이 창백하다.
지금은 아마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정도겠지.
그녀가 중화시킨 저승의 기운과 힘을 확인했을 때…
“이건 단발성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6개월에 한번 정도는 계속 힘을 불어넣어야 유지가 가능하다.”
“그럼 6개월에 한번씩은 하데스 삼촌에게 안길 수 있는 거네요?”
“…네가 해준 일이 있으니 얼마든지.”
페르세포네가 불어넣은 봄의 기운은 계속해서 유지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저승의 기운에 다시 침식되고, 결국엔 원래대로 돌아간다.
“헤.. 헤헤…”
“뭘 그리 실실 웃는거지? 당분간은 신력도 사용하기 힘든 몸일텐데.”
“그냥 지금이 좋아서요…”
“하…”
나를 올려다보며 배시시 웃는 페르세포네를 보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 것일까.
내 품에 안긴 조카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올려다본다.
“어?! 방금 웃으신 거 아니에요?”
“…네가 잘못 본거다.”
* * *
적당한 방에 페르세포네를 내려놓고 옥좌로 돌아와 눈을 감았다.
이제부터 이승에 신탁을 내리고 영웅을 육성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에.
며칠 후부터 테베의 왕에게 제우스가 직접 신탁을 내린다며 모르페우스를 데려갔으니…
내 신전의 사제들에게도 미리 말을 해놓아야지.
각종 훈련 도구들이나 물건도 협곡에 가져다 놓아야 하고…
영웅들이 먹을 음식은 저승이 아닌 이승에서 충당해야 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것도…
당분간 이승의 사제들이 고생하겠네.
“지금 대사제는 너인가? 전할 말이 있어서 불렀다.”
“이.. 이건! 저승의 주인이시여..! 명하십시오!”
지금의 대사제는 늙은 노인이였다.
내가 알던 필멸자의 얼굴과 직위가 바뀌는 것을 보고 있자면 세월의 흐름이 무상하지만…
“내 신전을 기점으로, 저승과 이승을 연결할 것이다.”
“예.. 옙?!”
지금은 그런 감상에 빠져있을 때는 아니다.
갑작스럽게 내밀어진 본론에 대사제가 당황하지만, 그를 무시하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뱀 괴물, 기가스에 대한 것… 영웅의 양성과 관리, 스틱스 강에 대고 함구하는 맹세와…
“…여기까지다. 자세한 사항은 며칠 후, 제우스의 신탁을 받을 테베의 왕과 상의하고 결정해라.”
“명하신 대로 받들겠습니다. 자비의 신, 플루토시여!”
“아 그리고… 봄과 씨앗의 여신이며 데메테르와 제우스의 딸인 페르세포네의 신상을 세워라.”
“봄의 여신께서… 저승에 거주하신다는 말씀이신지…?!”
“어쩌다보니 그리 되었다. 그녀는 이제 저승에 속한 여신이다.”
테베에 있는 그에게 적당히 제한된 정보를 전달하고 전언을 끊었다.
아무리 내 신전의 대사제라지만, 신들의 모든 사정을 세세하게 알려줄 필요는 없으니까.
그런데 이번 대사제는 신앙심이 정말 강한 모양이네.
이승과의 연결이나 내 뜻을 전달하기가 굉장히 수월하다.
어쩐지 세월이 흐를수록 점차 신도들의 신앙심이 늘어나는 것 같기도…
“하데스 님! 데메테르 여신께서 페르세포네 여신께 보내는 편지입니다!”
“…내게 가져올 필요는 없으니 페르세포네에게 곧장 전달해라.”
옥좌에 가만히 앉아 있자니 처리해야 할 일이 쏟아지는군.
“다음으로는 강한 원한으로 기억을 가지고 저승에 온 자들이 신에 대한 불손한 언행과…”
“망각의 여신, 레테 님께 이 사실을 알려라.”
“저승의 중죄인을 처벌하는 역할을 맡은 에로스 신이 이제 활을 그만 당기고 싶다고 탄원을…”
“제발 내보내달라고 사정하더냐?”
“어… 그러지는 않으셨습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당분간 에로스의 말은 전달하지 말아라.”
“또한 바다의 지배자이신 포세이돈 님의 적자, 트리톤 신이 도착해 안부 인사를 전하는…”
“알현실로 안내하고, 넥타르를 내와라.”
전령이 가져오는 일거리를 하나하나 처리하며 생각했다.
이제야 평소의 저승답다고.
* * *
이승에 올림포스 신들의 신탁이 내려왔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도, 아르고스의 아테나 신전에도…
올림포스 신들이 입을 모아 하계에 전달한 내용은 단 한가지.
영웅이 되고 싶은 이는 테베로 향하라.
단 한마디의 짧은 신탁이였지만 이는 모든 영웅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가슴을 크게 격동시켰다.
널리 알려진 영웅들의 스승, 케이론이 죽음을 당한 뒤부터는 영웅이 되는 일은 힘들 줄 알았는데…
얼마 전 뱀의 하반신을 한 거대한 괴물들의 난동이 그리스 전역을 휩쓸었기 때문인지,
영웅이 되고 싶은 이들은 차고 넘쳤다.
“그곳에서 힘을 길러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아폴론 신께서 케이론 님을 죽인 그 뱀 괴물들의 이름이 기가스라고 하셨어.”
“아테네에서 아테나 여신께서 강림해 기가스를 죽이셨다면서?”
“영웅만이 상대할 수 있다는 괴물이라… 좋아! 그 정도는 되야지!”
심지어 모든 신들이 신탁으로 말했다면 결론은 명확했다.
“테베로 가면 신의 눈에 들 수 있다!”
“그곳에서 선택받은 자들은 축복과 무구를 받고 영웅이 되는 거구나!”
“나도 아르고스의 페르세우스 왕처럼…!”
테베에 매일 수십명의 영웅 지망생들이 모여들었다.
성별도, 나이도, 특기도 모두 제각각인 자들이 도시에 모여들자 테베는 때아닌 호황을 맞이했다.
“폐하, 오늘만 해도 성문을 통과한 이들의 숫자가…”
“도시의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상업 구역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어 조금 확장해야 할 필요성이…”
지나친 인구의 급증으로 필수품과 시설이 부족할 것 같지만,
이곳은 부의 신이기도 한 플루토의 축복이 내린 도시.
테베 왕실의 곳간은 항상 가득 차 있었으며, 배를 곯는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특산품이자 명물인 민트는 이곳을 거치는 상인들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거, 이것이 민트로군. 플루토 신의 은혜다… 이 말이오?
“찻잎으로도 아주 제격이고, 죽은 자의 장례식에 올려놓는다면 시취를 막을 수 있네.”
“두통이나 코가 막힐 때도 쓸만한 잎이지… 플루토께서 필멸자에게 내려주신 자비라고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어.”
자연스럽게 테베에 존재하는 플루토 신전에도 신도들이 몰려들었다.
신도들은 신전의 웅장함에 놀랐고, 저승에 속한 온갖 신들의 신상에 다시 한번 놀랐고, 마지막으로…
“아니, 플루토 신의 신전에 봄의 여신의 신상은 왜 있단 말입니까?”
“아, 이것 말인가?”
“페르세포네 님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님과 제우스 님의 따님이 아니시오?”
“껄껄. 그것은 말이지… 플루토께서 그만 에로스 신의 화살을 맞아 저승으로 데려오셨기 때문이네!”
“뭐요?! 에로스 신의 화살을?”
“그러지 않고서야 고고하게 존재하시던 저승의 주인께서 갑자기 봄의 여신에게 반하실 일이 없지 않겠는가?”
페르세포네를 플루토가 납치했다는 오해 역시도 퍼져나가고 있었다.
저승의 신전이 처음 생길 때부터 존재하지 않던 저승의 안주인에 대한 의혹은 점차 커져나갔다.
“하기야, 그 자비의 신께서 저승으로 봄의 여신을 데려올 정도면 에로스 신의 화살이 아니면 불가능하네.”
“지하 세계의 제우스가 플루토 신이니, 데메테르 여신이 아무리 애써봐야 소용없었을지도…”
“동성끼리의 감정도 불러일으키는 것이 에로스 신의 금화살 아닌가?”
원래부터 저승에 속한 신이 아닌, 새롭게 저승으로 오게 된 여신을 숭배하는 신도들 역시 생겨났다.
플루토가 너무나도 페르세포네를 사랑해 저승으로 데려왔다는 설을 믿는 자들이였다.
“플루토의 총애를 받는 명계의 헤라시여, 올해 농사가 잘 되도록…”
“그래도 사계절이 정상적인걸 보니, 종종 이승으로 올라오시는 것 아니겠나?”
“역시 플루토 신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 틀림없으시군.”
하지만 저승의 안주인으로 페르세포네를 생각하던 자들은 곧 거센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원래부터 신전에 존재하던 수많은 여신상들은 대체 무엇이냐는 신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니, 페르세포네 여신님은 그저 플루토 신의 변덕일 뿐이라니까!”
“이곳에 있는 여신상만 해도 망각의 여신인 레테 님, 스틱스 강을 다스리는 스틱스 님이나…”
“그럼 민트를 만들고, 플루토의 사제가 되었으며, 끝내는 저승에 속한 여신이 된 멘테 님은 뭐라고 말할 텐가?”
“제우스 님의 정실이 헤라 님이고, 포세이돈 님의 정실부인이 암피트리테 님이시듯, 저승의 안주인은…”
“사실 정실부인 같은 건 없는 것이 아니오? 그냥 우리들의 생각이 아닌지…”
“에잇! 그거야말로 허튼소리! 한 세계를 다스리는 이의 옆자리에 어떻게 아무도 없단 말이오!”
“그도 그렇네만, 워낙 플루토께서는 공사다망하신 분이라..”
참으로 쓸데없는 것을 토론하길 좋아하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특성이 발휘된 것.
결국 하데스 신전의 앞, 넓은 공터는…
매일같이 저승의 신도들이 모여 플루토의 정실부인에 관해 토론하는 곳으로 변모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