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78)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78화(78/82)
벨레로폰의 이야기 – (1)
영웅 지망생들이 저승에서 훈련을 받게 되면서 그들 중 내 신도가 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났다.
아무래도 페르세포네의 힘으로 중화시켰지만, 저승의 기운을 상시 접하게 되어서 그런가…
“플루토 신이시여, 지금 보고 계시다면 제발 한 줄기 자비르르르를!!! 크아아악!!”
콰아아앙!
“아니, 이아뤼토스! 자네 괜찮나!”
“이 친구. 눈이 완전히 뒤집혔는데? 이봐, 정신차리라고!”
음. 방금 목소리가 들린 인간이 새로운 신도가 되었군.
사실 신화적인 괴물에게 항상 시달리는 영웅들이 나를 연호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필멸자의 힘으로 이겨내기 힘든 괴물을 상대하다 보면 가까이 있는 신을 찾는 것이 당연하지.
다만 아무리 나를 애타게 찾아도 도와주지는 않았다.
이곳이 아닌 이승에서 부르면 모를까, 저승의 시련은 그저 훈련일 뿐이니까.
“플루토시여… 오늘도 시험에 통과한 이가 저승으로…”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승의 외곽과 연결된 이승의 사제들도 제 역할을 다해주고 있었다.
간혹 가이아가 보낸 광기에 잠식된 첩자가 발견되었지만 디오니소스의 힘이 담긴 돌로 잘 걸러냈다.
영웅들의 훈련을 내 옥좌에서 눈을 감고 지켜보는데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건 항상 듣던 스틱스 여신님의 목소리네.
“하데스. 혹시 한가하나요?”
“스틱스 여신님…? 알현실에 아무도 없긴 한데 무슨 일이십니까.”
알현실 문을 슬쩍 열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들어오는 여신님.
“이번에 새로운 영웅이 키마이라를 죽이려 한다는 이야기 들었나요?”
“키마이라… 티폰과 에키드나의 자식 말이군요.”
마수 키마이라(chimaera) 혹은 키메라.
티폰과 에키드나의 자식 중 하나로, 세 동물이 섞인 형태를 띠고 있는 괴물이다.
평범한 사자에 등에는 염소의 머리가 붙어있고, 꼬리에는 뱀이 달린 강력한 마수로서…
사자 머리에서는 불을 뿜고, 염소의 머리는 교활함을 지니며, 뱀의 이빨에서는 맹독이 떨어지기로 유명하다.
생각해보니 티폰의 자식들이 굉장히 강력하긴 하네.
당장 케르베로스도 저승의 신수이며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었고, 네메아의 골짜기에 산다는 사자나…
헤라에게 거둬졌다가 오이디푸스에게 죽어 저승으로 온 스핑크스도 그러하다.
“티폰의 자식을 영웅이 죽이는 일이니 많은 신들이 지켜보고 있겠군요.”
“올림포스에서 연락이 왔는데, 잘린 메두사의 머리에서 태어난 페가수스를 영웅에게 빌려주는 게 어떠냐고 그러던데요.”
페가수스(Pegasus).
날개가 달린 새하얀 백마로, 영웅 페르세우스가 메두사의 목을 벨 때 그 피에서 태어났다.
평범한 말들과 달리, 등에 있는 양 날개를 이용해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저번에 저승의 하급신이 된 메두사가 이승으로 올라가 그 말을 저승으로 데려왔었지…
정확히는 여신이 된 메두사가 다가가자 자신의 어머니격인 존재를 알아보는지 얌전히 따라왔다고 했었다.
그리하여 페가수스는 현재 저승에서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유유자적하며 지내고 있을 터.
“그럼 메두사를 불러 의견을 물어보도록 하죠. 아무래도 페가수스는 그녀에게서 태어났으니.”
“지금쯤 멘테 여신과 함께 있을 것 같은데 불러올까요?”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페가수스도 오랜만에 볼 겸, 제가 직접 찾아가죠.”
“지금 페가수스의 먹이를 주기 위해 엘리시온 평원에 있는 것으로 알아요.”
페가수스는 저승의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저승에 속하게 된 지 오래.
하지만 메두사의 생각이 어떤지에 따라서 영웅에게 잠시 빌려주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 * *
봄의 여신보다도 따스하고 화로의 여신보다도 안락한 기운이 감도는 곳, 엘리시움 평원에 도착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널찍한 평원에는 잔잔한 바람과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이승의 들판과 거의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엘리시움.
그런데 어느 높은 언덕에 누워서 정취를 만끽하는 남자가 있었다.
점차 가까이 다가가자 기쁜 기색을 띠며 일어나는 그.
티폰을 속여넘긴테베의 대영웅이며 엘리시온에서 거주하고 있는 카드모스였다.
그가 날 바라보더니 말했다.
“아니, 하데스 님 아니십니까? 엘리시온에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오랜만이다. 카드모스. 혹시 이곳에서 여신 둘과 날개 달린 말을 보지 못했느냐?”
“그분들이라면 아까 저쪽으로 지나가셨습니다.”
손가락을 뻗어 한쪽 방향을 가리키는 카드모스.
여신들이 데리고 간 페가수스는 지금쯤 들판의 풀을 뜯고 있겠네.
어차피 풀을 다 뜯으면 엘리시움을 나가야 하니 다시 이쪽으로 돌아오겠지.
그들을 기다리는 동안 카드모스와 담소라도 나눌까…
카드모스에게 이곳의 생활에 대해 슬쩍 질문을 던져보았다.
나름 공들여서 만든 낙원이지만 역시 입주자의 평가를 거쳐야 하는 법.
“엘리시온 생활은 어떠지? 만족하고 있느냐?”
“하하하! 제 아내인 하르모니아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습니다. 요즘에도 말이지요. 이승보다…”
이를 드러내며 웃는 카드모스.
그의 부인인 조화의 여신, 하르모니아와도 사이가 좋은 모양이다.
죽어서도 화목한 관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필멸자라…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하르모니아와 굉장히 사이가 좋구나.”
“제가 아프로디테 님은 아닙니다만… 그것이 바로 사랑 아니겠습니까?”
죽은 지 상당히 오래되었을 텐데, 그들의 사랑은 변치 않았다.
그런가. 이것이 정녕 사랑이라면… 어쩌면 나도…
“헌데 하데스 님께서 이곳까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페가수스를 이승의 영웅에게 빌려주기 위해서 메두사를 만나러 왔다.”
“이승은 아직도 편할 날이 없나 보군요… 혹시 제가 예전에 말씀드렸던 뱀 괴물들도…?”
그에게 기가스에 대한 사실과 저승에서 영웅을 양성하고 있다는 것까지 말해주었다.
이승에 남은 그의 자손들이나 테베의 주민들의 근황 역시도.
“오오… 그런 일이… 그렇다면 한가지 청을 올려도 되겠습니까?”
“내게 부탁할 것이 있느냐? 어디 말해보아라.”
“지금 제 후배 영웅들이 저승의 외곽에서 훈련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도 거기에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엘리시온에서 쉬고 있는 자를 방해할 수는 없지.”
딱 잘라 거절했지만 카드모스가 다시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곳은 낙원, 모든 이들이 꿈꾸는 평온한 공간일텐데…
“하데스 님. 뒷 세대를 올바른 길로 이끄는 것은 영웅의 의무이자 자부심입니다. 때로는 이 엘리시온에 지내는 것보다 그들을 돕는 것이 보람찬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너는 이미 주어진 과업과 의무도 마쳤고, 이승과의 모든 인연을…”
“저 말고도 다른 영웅들에게 여쭤보십시오. 그들도 진정 영웅이라면 저와 비슷한 대답을 할 것입니다.”
티폰의 힘줄을 훔쳐내 올림포스를 구한 최초의 영웅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올곧은 눈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영웅이라면, 그들의 바램이 그것이라면…
“…다른 이들에게도 권유는 해보겠다.”
“하하! 저도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제 미약한 경험이나마 후인들에게 전하고 싶으니.”
그렇게 그와 대화를 나누는데,저 먼 곳에서 한 여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드모스~ 어디 있어요?!”
“이 목소리는…! 하르모니아가 절 찾는가 봅니다.”
“그래. 나는 페가수스를 데리러 가봐야겠다. 그럼 아내와 행복한 시간 보내도록.”
“다음에도 또 오십시오! 그때는 제가 뭐라도 준비해놓겠습니다!”
* * *
발걸음을 돌린지 얼마 되지 않아, 여신들과 페가수스를 만날 수 있었다.
하얗고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페가수스가 날 보더니 푸르륵대며 메두사의 뒤로 몸을 숨겼다.
푸르륵!
“아! 하데스 님! 저 보러 오셨나요?”
“엘리시온까지 오신 겁니까?”
내게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멘테와 메두사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페가수스는 아직도 날 무서워하네.
“메두사. 페가수스를 이승의 영웅에게 빌려주는 일에 대해 너와 의논하려고 왔다.”
“예? 그것은… 그냥 제게 명령하시면…”
메두사의 물음에는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그녀 역시, 영웅에 의해 목이 베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 결과로 태어난 것이 페가수스이기 때문에…
잠시 침묵을 지키자 메두사가 곧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인다.
“아… 절 배려해주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페가수스는 저승의 주인께서 원하시는 대로 빌려가시지요.”
“…고맙다. 영웅이 티폰의 자식만 죽이고 나면 다시 네 품으로 돌려보내주마.”
푸르르륵!
영민한 동물인 페가수스는 이를 알아듣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메두사가 등을 몇 번 쓸어주자 다시 조용해졌다.
“요즘에도 네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귀찮게 하느냐?”
“후훗… 그때는 망아지 때의 일이였죠. 이제는 다 커서 그러지 않습니다. 그렇지?”
푸르륵!
“어째선지 하데스 님만 무서워하네요. 하늘을 나는 말이라서 그런가?”
멘테의 말이 맞을수도…
천공이나 바다의 속성을 가진 페가수스가 저승에 속하게 되었으니 적응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 슬슬 저승의 기운에는 익숙해지는 모습이지만, 아직 나를 꺼려하기는 하니까…
페가수스에게 손짓을 하니, 영민한 동물은 두려워하면서도 내 옆으로 움직였다.
“뭐, 일단 나는 페가수스를 데리고 가보마.”
“네에. 나중에 다시 뵈어요!”
“알겠습니다. 하데스 님.”
이제 이 말을 영웅에게 쥐어줄 시간인데.
누구에게 전달하도록 할까… 헤르메스? 아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