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82)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82화(82/82)
벨레로폰의 이야기 – (5)
영웅의 과업이 진행중이던 때, 가이아가 키마이라에게 개입해 아테나 신전을 부수고 벨레로폰을 죽였다…
비록 벨레로폰에게 키마이라가 죽는다는 운명은 바꾸지 못했지만,
내가 페르세우스에게 조언을 해주었던 것처럼 운명에 이르는 길을 선택하는 방법을 사용하다니.
“방금 보셨습니까, 레테 여신님.”
“네… 가이아는 프로메테우스와 버금가는 예언의 힘을 가졌으니까요.”
“영웅을 탄생시키고 기가스와의 전쟁에서 이겨도, 상처뿐인 승리가 될 수도 있겠군요.”
기가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티탄 신족이 풀려난다던가, 가이아에게 당한다던가.
혹은 가이아가 기가스를 이을 다른 괴물들을 탄생시킬 수도 있다.
역시 준비를 더 해야겠어…
가이아는 태초의 신 프로토게노이(Protogenoi) 중 하나.
고대의 신, 프로토게노이와 비견될 수 있는 자는 오직 같은 프로토게노이들 뿐.
최초로 존재한 전지전능한 카오스 아래에, 가이아를 비롯한 프로토게노이는 많지 않다.
어둠의 신 에레보스(Erebos)님이나 밤의 신이신 닉스(Nyx)님, 혹은 나락의 신 타르타로스(Tartaros).
지옥 그 자체인 타르타로스 님은 모든 것에 관여하지 않으시고…
에레보스 님이나 닉스 님은… 으음. 다들 세상의 일에 손을 떼신 분들인데.
깊은 상념에 빠져 있는데 옆의 레테 여신님이 내게 말하셨다.
“하데스.”
“왜 그러십니까?”
“이제 벨레로폰이 저승에 곧 도착할 텐데… 과업에 대한 보상이라도 해주실 건가요?”
타나토스의 분신이 그에게 향한지 어느 정도 시간이 되었으니…
슬슬 키마이라와 함께 죽은 벨레로폰이 저승에 도착할 때가 되었다.
비록 형제를 죽인 흠결 때문에 엘리시움에 보내지기에는 모자라지만…
과업을 달성한 이에게는 마땅히 보상이 주어져야 하는 법.
잠시 전령을 불러 일렀다.
“키마이라를 죽인 영웅이 저승으로 온다면 내 앞으로 데려와라.”
“예, 하데스 님.”
* * *
레테 여신님과 알현실에서 잠시 기다리자 곧 영웅이 도착했다.
므네모시네 여신님의 힘으로 이승의 기억을 되찾은 벨레로폰은 아직도 환상통이 느껴지는 듯, 찌푸린 얼굴이였다.
무릎을 꿇고 나를 바라본 그는 무언가를 아쉬워 하는 것 같기도 했고,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실감하듯 씁쓸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어… 저승의 주인께서 저를 어쩐 일로 찾으셨습니까?”
“너는 인간의 몸으로 티폰의 자식을 죽이는 위업을 세웠으나, 이승에서 마땅한 보상을 받지 못하였다.”
“…?!”
“혹시 따로 바라는 것이 있느냐? 네 위업에 알맞은 처우와 보상을 약속하겠다.”
목숨을 버리며 괴물을 죽인 영웅에게 어떠한 보답도 하지 않는다면 그 누가 영웅이 되려 할까.
적절한 보상이 필요없다면 그 명성이라도 널리 알리도록…
그런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예상을 넘어섰다.
“그… 그렇다면, 저는 플루토 님과 같은 신이 되고 싶습니다!”
“음?”
“구름 위의 올림포스로 올라가 그곳의 신이 되어 영생을 누리고…”
고개를 들어올리며 반짝거리는 눈으로 열변을 토하는 벨레로폰.
아니, 신은 조금 과한 것 같기도 한데…
특히 저승에 속한 하급신도 아니라 올림포스로 올라가고 싶다?
그쪽은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없는 부분일 뿐더러, 제우스를 비롯한 다른 신들의 동의도 받아야 한다.
흠. 그래도 키마이라를 목숨 바쳐 죽인 영웅이니, 고작 이 정도 무례는 봐줄 만도 하다.
일단 천천히 설득해 볼까.
손을 내저어 그의 말을 끊고 차분히 설명했다.
“…너는 신에 대해 지나친 환상을 가지고 있구나.”
“예?”
“너가 생각하는 신이란 어떤 존재지? 너는 왜 신이 되고 싶은 것이냐?”
잠시 고민하던 그가 한 대답은…
“그야말로 영원불멸하신, 그야말로 완벽하신 분들 아니십니까? 저는 늘 신이 되길 열망했습니다!”
“완벽…?”
“그 강력한 괴물을 죽였으니 부디 저도 신이 될 기회를 주십시오!”
신이 된 필멸자의 사례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메두사의 경우는 신에 의해 너무나도 큰 피해를 받았기에 신이 되었고…
디오니소스는 이승에 포도주를 전파하고 신앙을 모아 결국에 신의 자리를 쟁취했다.
하지만 위업을 세운 카드모스나 페르세우스도 신이 되지 못하는데 벨레로폰을 신으로 만들기는 조금…
심지어 그는 이승에서 신앙을 모으지도 않았고, 저승이 아닌 올림포스의 신 자리를 바랬다.
실수라지만 자신의 형제를 죽인 자였기에 흠결이 생긴 부분도 있었다.
그래도 목숨을 던져가며 키마이라를 죽인 위업을 고려하면…
“일단 너는 신이 무엇인지, 어떠한 일을 하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겠구나.”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승에서 100일간 하급신의 업무를 겪어보거라. 만약 그 이후에도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올림포스에 말은 해보마.”
“…! 감사합니다! 플루토시여!”
바닥에 넙죽 고개를 숙이며 연신 감사인사를 하는 벨레로폰.
하지만 아직 내게 감사하기에는 이른 것이 아닐까?
“정말 감사합니다!”
“글쎄…”
우리 신들의 일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른 형태일 텐데…
잠시 뒤, 벨레로폰이 희희낙락하며 물러가고 나는 옆의 레테 여신님을 보았다.
레테 여신님도 같은 생각인 것마냥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하데스…! 저 인간은 망각의 강으로 배치해주면 안될까요? 요즘 죽은 영혼들이 기억을 잃기 싫다고…”
“일단은 죄인들을 고문하는 역할을 맡은 에로스쪽으로 보낼 생각입니다. 그 다음에는…”
“아…”
자신이 맡은 구역으로 배정되지 않을 거라는 말을 들은 레테 여신님의 눈매가 슬며시 내려간다.
나는 잠시 풀 죽은 여신을 바라보다가…
스윽
그녀의 부드러운 머릿결을 쓸어내렸다.
짐짓 완벽해 보이는 아름다운 은발 가닥들이 내 손 사이로 빠져나간다.
“…히얏! 하. 하.. 하데스으?!”
“여태까지 저를 많이 도와주신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엄청나게 놀라신다. 평소 그리 다가오실 때는 언제고…
내 쪽에서 손을 먼저 뻗은 것은 이번이 처음인가?
지나칠 정도로 당황하는 레테 여신님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빼려 하길래 손목을 슬쩍 잡았다.
“조금만 더 수고해주십시오. 언젠가는 꼭…”
“네헤… 네… 알았으니까. 소.. 손 좀…”
“아.”
손을 놓아주자 은빛의 여신이 알현실 문 밖으로 호다닥 뛰어간다.
얼굴을 감싸고 달려간 그녀의 붉은 목덜미가 유난히 잘 보인다.
콩.
“아얏! 으으…”
얼마나 급하게 나가시는지 문에 머리도 박으셨다.
물론 신의 이마에 부딪힌 알현실 문은 흠집이 났고… 아, 저번에 스틱스 여신님이 발을 부딪히신 부분도 수리해야 하는데.
* * *
빠르게 알현실을 벗어난 레테 여신은 다급히 움직여 어딘가로 향했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저승의 한 집무실.
“스틱스! 스틱스! 스틱스!”
“뭐… 뭔가요?! 레테!”
“레테 여신님…?”
그곳에는 양피지 더미를 쌓아두고 업무를 보던 스틱스 여신과 멘테가 있었다.
그들은 얼굴을 붉히며 뛰어오는 레테 여신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스틱스 여신에게 따지는망각의 여신.
“며칠 전부터 하데스만 보면 기색이 이상해지던데, 그때 둘이 무슨 짓을 한 거에요?”
“아니 그런데… 왜 오늘 갑자기…?”
“하데스가 자상한 손길로 제 머리를 쓰다듬어준 건 오늘이 처음이었단 말이에요! 순순히 말해요! 저한테도 이 정도인데, 저번에 대체 뭘…”
그렇다.바로 얼마 전에 페가수스를 탄 채로…
하데스와 입을 맞추었던 스틱스 여신의 달라진 모습을 다른 신들이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여태까지 레테가 알던 저승의 주인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신들을 크게 꺼려하지 않으면서도 가까이 다가가면 한 발자국 물러나는 남신.
마치… 마음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쳐진 것과 같은 그런 행동을 보였기에,
이번에도 또 스틱스 여신 혼자 달라붙었다가 부끄러워서 그런 것이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저번에 설마… 혼자서 어디까지 나간 거에요?”
“뭐… 뭘 어디까지 나가요!”
오늘처럼 무언가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하데스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스틱스 여신과 깊은 관계라도 맺은 것은 아니겠지?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스틱스 여신이였지만… 며칠 전의 일이 다시 생각난 듯,
귀 끝이 점차 붉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부터 하데스 님이 이상한 것 같긴 했어요. 눈길이 뭐랄까… 더 상냥해진 것 같은?”
“하기야… 마음의 벽이 조금 허물어진 느낌이 들긴 했는데.”
이상함을 느낀 멘테도 한마디 말을 보탰다.
아마 이 자리에 페르세포네가 있었더라면 즉시 하데스에게 달려갈 만한 변화였지만…
그녀는 이미 이승으로 올라간 지 오래였다.
“혹시 에로스가 화살이라도 쏘고 간 것은…”
“에로스 신은 아직도 저승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 * *
한편, 신이 되고 싶은 벨레로폰은 하인의 인도를 받아 어딘가에 도착했다.
이승에서 싸웠던 키마이라의 불길보다도 더욱 뜨거운 열기가 밀려오는 듯한 이곳은…?
“으아아악!!! 그만…”
“크악! 커허억!”
“살려줘! 아니, 제발 용서해 주세요!”
타르타로스에 가기에는 조금 모자라지만, 적당한 형벌로는 죗값을 치르지 못하는 수많은 중죄인들이 그곳에서 고통받고 있었다.
온통 불바다인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바닥을 뒹구는 망자들.
“이곳에서 저기 계신 에로스 님에게 화살을 갖다주시면 됩니다.”
“아…”
슈웅- 푸욱!
“크아악!”
심지어는 날개 달린 어린 아이로 보이는 신이 위에서 계속 화살을 날리는 상황.
저기 있는 신이 에로스 신이였구나, 그런데…
“야, 거기 인간! 왔으면 빨리 화살이나 더 가져오라고!”
“아.. 예예!”
사랑을 다스리는 남신이 왜 저승에서 일을 하고 있단 말인가?
심지어 저리 바삐 움직이면서도 조금도 쉬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