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83)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83화(83/140)
벨레로폰의 이야기 – (6)
저승의 왕, 하데스의 제안에 따라 하급신의 업무를 체험하게 된 벨레로폰.
이승에서 티폰의 자식을 죽이고, 저승의 왕 앞에서는 당당히 신의 자리를 노리던 그는…
“헥… 헥… 야! 화살 좀 빨리 가져와! 아니 왜 하데스 님은 저런 굼뜬 인간을…”
“…죄송합니다!”
지금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중죄인들에게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화살을 퍼붓는 날개 달린 신, 에로스.
사랑의 남신은 인상을 잔뜩 찌푸려가며 쉴 새 없이 활을 쏘아댔고…
잔뜩 갖다놓은 화살통은 빠르게 비워졌다.
그럼 그 화살통을 나르는 역할을 하는 벨레로폰은 당연히 에로스에게 혼났다.
“너 때문에 중죄인들이 쉬고 있으면 감독관들이 하데스 님한테 보고한다고!”
빠악!
“죄송합니… 어억!”
잔뜩 짜증를 내며 활대로 벨레로폰의 머리를 후려치는 에로스.
하지만 벨레로폰은 감히 그에게 대들 수 없었다.
일단 그를 후려친 에로스 신이 이쪽을 바라보지도 않은 채 계속해서 팔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둘째치고…
“그래도 저 인간,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잘 적응하는군.”
“우리 하급신의 일을 겪어본다고 했었지. 하데스 님께 보고할 때 잘 말씀드려야겠어.”
“음. 저놈이 이곳에 계속 있는다면 일이 얼마나 줄어들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무언가를 조작하거나 감독하는 하급신들이 그를 좋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자신에게 내려진 시련이거나 악질적인 장난이 아니란 사실이 벨레로폰의 정신을 흔들었다.
높은 신격에게 갈굼당하고, 하루 종일 바쁜 일에 시달리는데…
이게 비정상적인 일이 아니라 하급신이 평소 일하는 상황이라고?
신들은 유유자적하며 가끔 인간이나 도와주고 마는 것이 아니였던가?
퓨슝- 푸욱.
“크아아악!”
“제… 제발…”
유독 다른 곳에 비해 저승이 훨씬 심한 면, 그곳도 중죄인을 고문하는 신들이 더욱 힘든 부분이 있지만…
저승에 처음 와본 벨레로폰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이, 인간. 이제는 내 차례다.”
“교.. 교대입니까?”
이마에 작은 두 개의 뿔이 달리고 붉은 몸을 가진 하급 신이 그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벨레로폰은 감사인사와 함께 그대로 바닥에 널부러졌다.
아무리 죽은 망자라고 해도, 정신적인 피로는 어쩔 수 없는 법.
주기적으로 에로스 신의 날카로운 짜증이 들려온다면 더욱 그렇다.
“정말 수고했다. 너는 내가 하데스 님께 잘 말씀드려주지.”
“예…? 무엇을…”
“하급신이 되고 싶어서 우리 일을 겪어본다고 한 것이 아니였나? 네가 신이 된다면 제법 든든하군.”
흡족한 얼굴로 자신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하급신의 말에 벨레로폰은 멍하니 생각했다.
아니… 신들이 마냥 놀고 먹지는 않아도 분명 즐길 거리가 있을 것이다.
“혹시 신들께서는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먹는다는데 저도 구경할 수 있을까요…?”
“아, 그러고 보니 하데스께서 하급신의 일을 겪으라 하셨으니 음식도 먹어보긴 해야지. 날 따라와라.”
“신들의 음식을 저도 먹어볼 수 있는…!”
벨레로폰의 얼굴에서 활기가 돌았다.
내가 신들의 음식을 먹어볼 수 있다니, 역시 자비로운 저승의 군주시다!
* * *
하급신은 벨레로폰을 어딘가 먼 장소로 인도했다.
이승에서 인간들이 만든 성과 같은 거대한 건물, 이곳은 어디인가?
“저기… 신이시여, 이곳은 어디입니까?”
“저승의 1253번째 창고다. 그리고 여긴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보관하는 창고 중 3번째로 규모가…”
벨레로폰은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보기에 바빳다.
검은 벽돌과 재질을 알 수 없는 검은 돌로 뒤덮인 성, 망자들이 바삐 움직이며 무언가를 나르고 있는 모습.
영혼병들의 삼엄한 검문을 지나치니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넥타르와 암브로시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으로 잘 정리된 수많은 자재들.
‘저승의 군주의 다른 이름은 부의 신, 이런 규모의 창고가 수천은 넘게 있다니…’
잠시 생각에 빠진 그에게 하급신이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자, 이게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다. 영광으로 알고 먹어라, 인간.”
“허엇! 감사합니다!”
우물우물…
생전 처음으로 먹어본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는 과연 천상의 맛.
역시나 신들의 음식이라 말할 정도로 황홀했다.
지상의 어느 음식을 가져와도 조금도 비교가 되지 않았고, 심지어 여인을 안는 등의 어떠한 쾌락에도…
“음. 다 먹고 마셨으면 이제 일어나라.”
“…?”
“뭘 그리 바라보지? 하급신의 일에는 넥타르와 암브로시아 관리도 있다.”
다시 일하기 시작한 벨레로폰.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는 먹는 동안에만 필멸자를 불멸로 만들지, 인간이 원래 손대기는커녕 볼 수조차 없는 것이다.”
“아… 플루토 신께는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비록 네가 먹고 마시기는 했지만… 혹여나 이상한 마음을 품는다면…”
하급신의 얼굴이 괴기스럽게 일그러진다. 아무리 저승의 잡일을 담당하는 하위 신격이라도 신은 신.
음산한 기운이 벨레로폰의 주변에서 휘몰아치며 끔찍한 환청이 그를 덮친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기절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키마이라 앞에서 물러서지 않은 영웅이였기 때문.
벨레로폰의 얼굴이 창백해지자 하급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래도 너는 제법 성실한 인간으로 보이니 그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
“무… 물론입니다!
그로부터 벨레로폰은 수많은 상자에서 암브로시아를 꺼내 지시에 따라 나르고, 쌓아 올렸다.
다음으로 병에 담긴 넥타르들이 깨지지 않도록 조심히 관리하며 정해진 대로 분류했으며…
창고 안에 있는 음식의 숫자를 세고, 양피지에 적어 나갔다.
물론 옆에 있는 하급신이 능숙하게 그를 도와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였다.
그런데 이런 하찮은 정리는 창고 관리인이나 서기, 일꾼등이나 하는 일이 아닌가?
왜 신이 이런 것도 해야 하지?
한참 동안 작업에 몰두한 끝에 그는 드디어 쉴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간 궁금했던 질문을 쏟아냈다. 어째서 신이 하인들이나 할만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수고했다. 과연 영웅 출신이라 그런지 힘깨나 쓰는군.”
“그런데 어째서 신이 이런 일을 하시는 겁니까?”
“이런 중요한 일을 어떻게 필멸자에게 맡기지? 일반적인 재물이나 금은보화라면 몰라도 신의 음식을 관리하는 일을?”
벨레로폰의 의문에 하급신은 더한 의문을 내비쳤다.
“하지만 위대하신 신들께서 어찌 이런 헛드레일을 계속…”
“애초에 망자들이 이런 일을 오래도록 할 수 있을 것 같나? 다 불멸자인 신이니까 버틸 수 있는 것이다.”
신들은육체뿐만 아니라정신 또한 영원불변.
일반적인 인간이 수천 년간 살아간다면 아마 미쳐버릴 터.
하지만 불멸의 힘과 신력을 지닌 신들이기에 그 정신성을 유지할 수 있다.
수천, 수만년은 살아왔을 노신(老神)들은 항상 근엄한 모습만을 보이지 않는다.
때로는 아이보다 천진난만하기도 하고, 때로는 늙은 노인마냥 고리타분하기도 하고…
가끔 이성보다는 감성을, 의무보다는 욕구에 충실한 행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정신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신력의 작용.
신의 증거는 강력한 힘도, 영원불멸한 불로불사의 육체도 아니라… 무너지지 않는 정신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너무 겁먹을 것 없다. 신이 된다면 일을 조금 한다고 몸이나 정신이 망가지지는 않아.”
‘이것이… 조금?’
벨레로폰은 신이 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벨레로폰이 알현실에서 떠나간 지 30일 정도 지났다.
나는 사실 그를 까맣게 있고 있었는데, 전령 하나가 와서 벨레로폰의 소식을 전했다.
“하데스 님, 저번에 키마이라를 죽인 그 영웅이 다시 하데스 님을 뵙길 원하고 있습니다.”
“일단 데려와라.”
내게 비척비척 다가온 그는 퀭한 눈동자와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미 죽은 망자들은 생전과 달리 피로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 몰골은…
옥좌 앞에 엎드린 영웅이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신의 자리는 제게 너무 과분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저승의 군주시여…”
“그래서, 포기하겠다?”
“네엡… 부디 제게 다른 것을… 맡겨주시거나…”
손을 내저어 한쪽에 쌓인 양피지 중 하나를 골라냈다.
여태까지 그를 감시한 경황이 적힌 보고서가 자연스럽게 날아온다.
“다들 너에 대해 호평이더구나. ‘하급신이 되어 마땅한 인재다…’ 라고 하는군.”
“네에?! 제가 어찌…?!”
“이 정도 평가면… 제우스도 유능한 인간이라고 생각할 만하군.”
양피지에는 오직 좋은 평가만이 적혀있었다.
필멸자답지 않게 성실하다, 영웅이라서 그런지 끈기가 보인다, 계속 파견해달라…
“하.. 하지만! 저는 신들께서 하시는 일이…!”
“별거 아닌 줄 알았다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새파랗게 질린 벨레로폰이 변명하려 하지만… 결국 하는 일이 많아서 싫다는 것 아닌가.
그래도 내가 이것을 의도하고 그에게 신의 업무를 체험시킨 것은 맞으니까.
벨레로폰처럼 생각하는 필멸자들은 적지 않다.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 알겠다. 그럼…”
“신이 되지 않아도 저승에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다른 일을 맡겨주십시오!”
“…? 키마이라를 죽인 보상은 받고 싶지 않는가?”
“아닙니다! 그저 제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땅바닥에 고개를 바짝 처박고 떠는 영웅.
아… 내 앞에서 감히 신성을 모독하는 발언을 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대충 신경 쓰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여도 안심하지 않겠지.
그리스 신들이란 원체 제멋대로니까.
“무례는 용서하마. 그럼 뭐… 네 경험을 후인들에게 나눠주는 일이라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무슨 일이든지 시키신대로 하겠습니다!”
“언제든지 그만둬도 상관없고,너무 부담 가질 필요도 없다. 테베에서 온 영웅들을…”
마침 케이론이 훈련 교관이 필요하다고 했었지.
키마이라를 죽인 영웅이라면 전혀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안식을 취해야 하는 영웅에게 일만 시키는 것 같아 미안한데…
그가 원한다면 다른 편의를… 벨레로폰이 실수로 죽인 그의 형제와 화해라도 주선해봐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