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88)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88화(88/140)
사랑과 불 – (3)
“…그러니까 헤파이스토스와 아프로디테를 이혼시키고, 새로운 짝을 지어주려고 한다고요?”
“그렇지, 네가 도와준다면 제우스를 설득하기 한결 수월할 거 아니냐?”
차분히 설명하자 반란이 아닌 것을 빠르게 납득한 헤라.
신들의 여왕으로서 여유로움을 되찾은 그녀가 의자에 몸을 늘어뜨리며 팔짱을 낀다.
“가정의 여신에게 한 가정을 파탄내는 것을 도와달라고 오다니, 이게 맞다고 생각하나요. 하데스?”
“하지만 애초부터 누더기와 같은, 불안한 결혼이였음을 알고 있지 않나?”
헤라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그들에게 화목한 새 가정을 찾아주는 것이야말로 가정의 여신이 해야 할 의무는 아닌가?”
“흐응…그렇게도 볼 수도 있겠네요.”
“헤파이스토스 역시 아프로디테를 포기했다. 네가 새 가정을 찾아준다면 어머니의 은혜에 감사하며 눈물을 흘릴 터.”
헤파이스토스는 태어나자마자 헤라에 의해 렘노스 섬에 떨어졌었지.
지금은 그에 대해 많이 반성하고 있으니 다행이지만.
“헤파이스토스와 아테나 사이에 일어난 일의 근본적인 이유는 다 아프로디테와의 관계가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가이아와의 사이에서 자식도 생겨버렸으니… 만약 가이아가 아름답게 차려입고 헤파이스토스 앞에 나타난다면…”
“미모에 넘어갈 수도 있다고요?”
“배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보를 누설하거나 사소한 부탁 정도라면 혹시 모르지 않을까?”
헤라는 아테나를 제법 총애하기 때문에 이번 사건이 꽤나 충격이였을 것이다.
조금만 더 설득하면…
“그리고 제우스가가니메데스(Ganymedes)라는 소년을 데려왔다는데…”
“으드득! 이제는 남자한테까지 손을 대더군요! 이제는 제가 남자한테도 밀려야 하나요?!”
느긋했던 낯빛이 싹 달라지며 역정을 내는 가정의 여신.
설마 진짜 외모 때문에 올림포스로 데려온 거였냐…
“으흠. 아무튼… 제우스 자신은 사랑… 아무튼 외모 때문에 동성한테까지 손을 대는데, 정작 아프로디테와 아레스의 사랑을 억압하고 있지 않나?”
“확실히 그렇긴 하죠.”
“그리고 이번에 네가 나를 돕는다면 아프로디테도 아레스와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보답을 할 수도 있다. 그 말인즉슨 사랑의 여신이 네게…”
“그 인간 꼬맹이한테서 제우스의 관심을 되찾아 올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 수도 있다고요?”
“바로 그거지. 만약 일이 잘 된다면 사랑의 여신에게 네 도움이 컷다고 말해주마.”
아프로디테가 자신의 마법의 허리띠인 케스토스 히마스를 빌려주든…
아니면 사랑을 다스리는 신으로서 조언을 해주든, 헤라에게는 이득.
“알았어요. 저도 의견을 보태죠.”
“말이 나온 김에 바로 가지.”
그렇게 포세이돈과 헤라와 함께 제우스에게로 향하자, 넓은 침실에 드러누워 낮잠을 자던 신들의 왕이 보였다.
포세이돈이 스윽 다가가 제우스를 깨우려 말을 건다.
“일어나 봐라, 제우스.”
“으음..?!”
그런데 눈을 뜨자마자 포세이돈을 본 제우스는…
“누구… 포세이돈, 헤라 당신까지?”
누워있던 자세에서 바로 번개를 들고 일어서는 천공의 신.
순식간에 거대한 건물이 터져나가고 맹렬한 전격이 그의 손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번쩍-쿠르르릉!!!
“…또 반란인가!!! 포세이돈, 한번 더 내게 도전할 생각이라면 어서 덤벼라!”
“아니, 오해다…”
“하아… 네가 생각하는 거 아니다. 제우스.”
“…어, 하데스 형님? 그럼 반란이 아니…”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신력의 폭풍 속에서, 나는 이마를 짚었다.
* * *
“…헤파이스토스와 아프로디테의 이혼?”
“그래, 그러니까 그 벼락 좀 내려놓아라. 내가 반란하러 왔으면 퀴네에를 쓰고 왔겠지!”
그제서야 트리아이나를 꺼내지 않고 불퉁한 표정인 포세이돈, 어이없어하는 헤라,
그들의 뒤에서 머리를 짚고 있는 나를 본 제우스가 슬며시 벼락을 사라지게 만든다.
“아니.. 으흠! 내가 자던 중에 포세이돈이 왔는데 어찌 반란이라 생각하지 않겠나?”
“물론 오해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아프로디테의 일이기 때문에 우리끼리 의견을 조금 모았다.”
통째로 날아간 건물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기분이 이상하다.
주변의 신들이 수군거리고 저쪽에서 헤르메스가 다급히 날아오는 것이 보이는데…
“하아… 일단 자리부터 옮기자.”
“…그러는 게 좋겠군.”
그리하여 조용한 방 안으로 들어왔다.
포세이돈과 나, 헤라와 제우스가 둥근 탁자에 둘러앉은 상황.
나는 제우스에게 헤파이스토스와 아프로디테의 이혼에 대한 근거를 열심히 설명했다.
헤파이스토스가 아테나를 강간하려 할 정도로 몰려 있었다, 이대로면 가이아가 차려입고 나타났을 때 넘어가는 것이 아니냐…
저번에 예술의 축제에서 아레스와의 외도를 폭로했을 정도니 오죽하겠냐…
미의 여신이 아레스와의 사이에서 하르모니아도 낳았고, 이제는 헤파이스토스도 아프로디테를 포기했다…
한참을 생각하던 제우스가 나를 바라보며 질문했다.
“그런데 그 둘의 일에 어찌 형님이 이토록 개입하는 것이지?”
“…보고 있자니 딱해서 그렇다. 여태 조카가 내게 만들어준 것이 많기도 하고.”
“그 바이던트라는 것이 좀 날카롭긴 했지…”
포세이돈이 바이던트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지, 그 어떠한 무기도 바이던트 하나를 따라오지는 못했으니까…
“헤파이스토스도 미의 여신을 포기했다면… 도의적으로는 그들을 이혼시키는 게 맞을지도 몰라. 하지만…”
“다른 남신들이 그녀를 놓고 싸울 것이 걱정되어서 그런가?”
“그게 걱정이지, 내가 정한 결정을 번복하고 말을 바꾼다면…”
신들의 왕이 말하는 발언의 무게감이 떨어진다.
바로 그것 때문에 여태까지 둘을 이혼시키지 않은 것.
물론 헤파이스토스의 공을 생각한 것도 있겠고, 언젠가는 외도를 멈추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겠고…
여러가지 사정이 섞인 탓도 있다.
“그럼 우리가 조금 도와주면 되겠군. 그렇지, 포세이돈?”
“뭐, 적당히 동의하는 모습 정도면…”
“저도 허락하지요. 그들이 행복한 가정생활을 보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으니…”
제우스가 다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고민한다.
“수많은 남신들의 반발을, 과연 잠재울 수 있을까?”
“…불만이 심한 놈은 저승으로 보내라. 여신에 미쳐 눈이 돌아간 놈은 잘 교육시켜주지.”
“그래도 되겠어? 저승에 너무 일을 떠넘기는 것은…”
“일을 떠넘기다니? 오히려 줄여주는 것인데?”
사실 그런 놈은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된다.
나와 제우스, 포세이돈에 헤라까지 엄포를 놓는데 그 누가 감히 대놓고 불만을 표할까?
“…좋아. 그렇게 해야겠군. 그럼 저승에 있는 헤파이스토스를 잠시 불러줘, 올림포스의 신들도 소집할 테니.”
“그래, 잘 생각했다.”
* * *
“…그렇게 심사숙고한 결과, 헤파이스토스와 아프로디테의 연을 이쯤에서 끊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소.”
대부분의 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제우스가 그들의 이혼을 선포했다.
어디보자… 아프로디테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의 기색, 헤파이스토스는 한숨을 내쉬고는 묵묵히 서 있었다.
“헤파이스토스, 네게는 새로운 아내를 소개해주겠다. 광휘의 여신, 아글라이아(Aglaea)가 어떠냐?”
“예. 아버지의 뜻대로 따르겠습니다…”
광휘의 여신 아글라이아(Aglaea).
대양을 다스리는 티탄 신족, 오케아노스의 딸인 에우리노메와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세 여신 중 하나다.
아주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청록색 머리의 여신이 헤파이스토스에게 손을 흔든다.
대장장이의 신도 그녀의 얼굴을 보더니 적당히 만족하는 기색.
비록 아프로디테에 미치지는 못해도 그녀 역시 매우 아름다우니까…
아글라이아가 슬쩍 신들을 헤치고 나와 헤파이스토스의 팔짱을 끼고 웃는다.
“헤파이스토스님!”
“음. 그래…”
“저번에 만들어주신 목걸이, 정말 예쁘더라고요!”
헤파이스토스는 대장장이의 신이지만 불과 화산의 신격도 있기 때문에 굉장히 높은 신격을 지녔다.
아무리 얼굴이 못생겼다 한들…올림포스 12신이면서 제우스의 적장자인 남신이 수요가 없을 리가 없지.
아프로디테와 아레스는 오히려 기뻐하고 있었고…
문제는 역시나 남신들. 그 시작은 헤르메스의 질문이였다.
“저..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께서 저번에 말씀하셨지 않으셨습니까? 아프로디테의 남편은 헤파이스토스 형님이라…”
그 말에 제우스가 인상을 사납게 구기며 아레스와 아프로디테를 째려본다.
“저놈들이 아주 죽고 못사는 관계이니… 쯧! 저것들이 하르모니아랑 에로스도 낳았잖은가?”
제우스의 눈초리에도 아레스와 아프로디테는 기분 나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 정도 비난은 감수하겠다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이는 모습.
“강제로 원치 않는 사랑을 강요하는 것은 내 실책이었소! 허나, 아프로디테에게 허튼 수작을 부리느라 과한 다툼을 일으킨다면 누구든지 이 제우스의 벼락을 맞아야 할 것이다!”
쿠르르릉!
제우스의 강한 엄포, 그리고 옆에는 포세이돈과 나, 헤라가 신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제 하급신들은 아프로디테를 차지하려 싸우는 일은 없겠지.
아프로디테에게 남신들을 유혹하는 것은 적당히 하라고 해야겠다…
비록 아레스는 어쩔 수 없어도 분란의 씨앗은 조절해야 할 터.
그러나 역시… 사랑의 여신의 미모에 눈이 돌아간 몇몇 고위 신격들이 문제.
“아프로디테, 혹시 아레스가 질린다면…”
“헤르메스. 네가 강제로 관계를 맺은 미노스의 손녀, 아페모시네가 저승에 있는데… 어디 데려와볼까?”
“네?! 아니 그것이…”
“으흠, 하데스 큰아버지. 저는 헤르메스와는 달리 아프로디테를 행복하게…”
“아폴론, 너 때문에 나무가 된 다프네가 저승에서 통곡하겠군.”
“그건 에로스의 화살 때문… 아닙니다.”
포세이돈은 포기했고… 또 눈초리가 심상치 않은 놈이..
그래, 저기 디오니소스가 있군.
부릅-
…::;;
눈을 치켜뜨며 무언의 신호를 보내자, 내게서 슬쩍 고개를 돌리는 디오니소스.
오냐… 네 광기의 축제 때문에 미쳐서 죽어나간 이들이 저승에 한가득이다.
“아하하…”
아레스는… 애초에 자식들도 낳았으니 그냥 넘어가고… 다른 신들을 마지막으로 둘러보았다.
어디보자, 바람의 신들, 아니면 강의 신이나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 휘하에 있는…
잠깐, 이것들 대부분이 자기 좋을대로 하는 망나니들 아닌가?
애초에 신들의 왕인 제우스부터가…
“…험. 험! 이것으로 일단 회의를 마치겠소! 헤파이스토스와 아글라이아의 결혼식은 올림포스의…”
올림포스 신들은 이리도 많은데, 왜 정상적인 신은 거의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