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89)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89화(89/140)
탄탈로스의 이야기- (1)
일단 대장장이 신이 저승에서 벌을 마저 받고 난 다음에야 결혼을 허락하겠다는 제우스의 말.
그리하여 헤파이스토스와 아글라이아의 결혼식은 아쉽게도 뒤로 미뤄졌다.
다시 시무룩해진 헤파이스토스는 저승으로 돌아갔고,
나는 아프로디테에게 경고하는 중이였다.
“다시 말하지만 네가 남신 하나를 유혹할 때마다 올림포스에 균열 하나가 생긴다고 생각…”
“예… 예… 알았어요. 원치 않은 결혼도 물려주셨으니 제 나름대로 노력해보면 되잖아요?”
살짝 부루퉁한 표정으로 투덜대는 미의 여신.
그리고 그런 어머니의 옆에 서서 활을 만지작거리는 에로스.
저승에 있어야 할 에로스가 왜 여기 있냐면…
이만하면 충분히 반성했다 싶어서 헤파이스토스와 교대시켰기 때문이다.
“이제 절대로 화살을 마구 날리지 않을게요…”
“사랑의 신에게 사랑을 전파하지 말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허공에 마구 쏘는 일은 삼가라.”
이제 활쏘기 연습은 정해진 과녁에다 하겠지.
한번만 더 허공에다가 화살을 마구 쏜다면…
“히익!”
아프로디테의 뒤로 날아가 숨는 에로스.
진짜 한번만 더 그런다면 볼기짝이라도 두들겨야 하나.
자신의 등 뒤에 숨은 에로스의 머리를 쓰다듬던 미와 사랑의 여신이 날 바라보며 웃는다.
그녀가 항상 짓던 매혹적이고 교태 어린 웃음이 아니다, 이건…
“제우스를 설득해줘서 진심으로 고마워요. 하데스.”
“…사랑의 여신이 마음껏 사랑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을 뿐이다.”
진심어린 마음에서 우러나온 듯한 눈빛과 태도.
그리도 헤파이스토스가 싫었느냐. 하기야 강제로 결혼했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대충 둘러대고 이번 일에 헤라가 큰 힘이 되었다고 말한 다음 등을 돌렸다.
이제 올림포스에서 내려가 봐야지…
“하데스 형님.”
“제우스. 내게 볼일이라도 있나?”
그렇게 저승으로 돌아가려는데 제우스가 말을 걸었다.
기색으로 보아 또 식사자리나 연회, 아니면 헤파이스토스의 결혼식 때 와달라는 이야기려나.
“마침 우리 신들을 큰 연회에 초대하고 싶다는 인간이 있는데, 형님도 함께 가지 않겠어?”
“그런 연회에 내가 가면 분위기만 나빠지지 않을까?”
“우리를 대접하고 싶다는 이가 내 아들이거든. 리디아의 왕이기도 해. 신들을 섬기는 자세도 아주 바람직한 인간이라서 안면이라도 트게 하고 싶어.”
아, 제우스의 아들이였군.
그렇다면 나를 연회에 초대하고픈 제우스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자신의 아들인데다, 신들을 깍듯이 모시는 인간이 사후 저승에서도 어느 정도 편의를 받길 원하는구나.
제우스의 아들이면 내 조카기도 하지.
리디아의 왕이니 연회 자리가 심심하지는 않을테고… 그럼 나도 잠시 들를까.
“신들에게 공손하다고 사후에 좋은 자리를 만들어주기는 힘들지만… 나도 참석하지.”
“음. 좋은 생각이야. 형님도 내 아들을 만나보면 제법 귀여워할걸?”
갑자기 얼굴을 굳히며 진지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 제우스.
“여기까지가 형님을 초대하는 표면적인 이유고…”
진의가 따로 있다고?
* * *
리디아의 왕이자 제우스의 아들을 만나러 가는 신들은 총 일곱.
나와 제우스, 헤르메스와 디오니소스, 데메테르와 포세이돈, 헤라였다.
듣기로는 올림포스의 12주신을 모두 초대했다지만…
아테나는 저번에 키마이라에 의해 무너진 자신의 신전을 재건하느라 힘을 쏟고 있었고,
헤파이스토스는 저승에 있느라, 아프로디테와 아레스는 신나게 사랑을 나누느라 오지 않았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남매는… 어딘가에서 사냥이라도 하고 있겠지.
그들과 구름을 타고 조금 날아가 이승에 있는 한 왕궁에 도착했다.
금실로 장식된 화려한 옷과 왕관, 저자가 제우스의 아들이자 리디아의 왕인가?
“위대하신 존재들께서 직접 와주셔서 크나큰 영광입니다!”
“탄탈로스, 오늘 연회는 기대해도 좋겠지?”
“물론입니다. 제우스 님. 올림포스의 신들께 최고의 요리를 선보이겠습니다!”
탄탈로스라는 이름의 조카가 각각의 신들에게 모두 인사를 올린다.
과연 제우스의 말대로 언행이 심상치 않기는 하네.
“오. 위대하신 신들의 여왕을 찬미하라. 헤라 님 덕분에 디오네와는 늘 화목합니다.”
“흐음…”
헤라가 제우스의 사생아에게 고작 기분 나쁘다는 눈초리로 끝나다니,
확실히 제우스의 총애가 두터우긴 했나 보군.
“바다의 주인이시여, 저희 리디아의 해상 무역이 발달한 것은 다 포세이돈 님의 은혜입니다.”
“오냐.”
다음으로 내게 눈길을 돌린 탄탈로스가 공손히 말했다.
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여 눈을 마주치지 않는 모습이 신들을 대함에 있어 퍽 익숙해보였다.
“저… 혹시 어느 신이신지 그 존함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플루토다.”
“…! 죽은 자들의 아버지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플루토 신이시여.”
그가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늘어놓는다.
리디아에도 부의 축복을 내려주신 덕분에 백성들이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등,
내 상징인 민트가 이곳 리디아에도 많이 퍼졌다느니…
너무 과하지 않게 딱 적당한 선에서 찬양을 마친 그가 허리를 숙여 우릴 안내한다.
“이쪽으로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신들께 어울리는 음식은 준비중이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음. 들어가볼까.”
그렇게 앞장서는 제우스의 뒤를 따라 리디아의 왕궁 안으로 들어갔다.
적당히 넓은 방으로 우릴 안내하는 시종과 하녀들.
“방문 앞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언제든지 저희를 부르신다면…”
곧 신들을 남겨두고 다른 시종들이 모두 나가고,
나는 잠시 제우스의 말을 회상했다.
“놈이 신들도 깍듯이 잘 모시고, 예의도 바르기에 올림포스에 데려와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맛보게 해주었더니… 감히 신들의 음식을 조금 가져가지 뭔가?”
“…탄탈로스가?”
“음. 놈이 이번 연회에 우릴 초대한 이유가 그것에 대한 사죄를 하기 위해서일수도. 굳이 형님도 부른 이유는…”
그거야 뭐, 뻔한 이유 아닌가?
“네 아들이니까 저승에서의 죗값을 덜어달라고? 감히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훔친 놈에게? 이런 일에는 가차없는 것이 너 아닌가, 제우스.”
“그래도 여태까지 신들을 잘 모셨고… 놈의 아내가 티탄 신족 아틀라스의 딸이기도 하니까 이번 대접을 보고 처분을 결정할거야. 놈이 모든 것을 밝히고 무릎 꿇고 사죄한다면 적당한 처벌로 용서하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그 강력했던 아틀라스의 딸과 결혼했다라…
아틀라스는 티타노마키아 때,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저항하던 강대한 힘을 가진 티탄.
지금은 영원히 천구를 떠받치는 처벌을 받고 있는 그 거신이 얌전히 있는 이유는… 그가 아끼는 딸과 자식들에게는 죄를 묻지 않았기 때문.
제우스는 지금 괜히 탄탈로스를 벌했다가 그의 아내인 아틀라스의 딸을 거쳐 아틀라스의 반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가이아의 위협이 끝나지 않은 지금, 아틀라스가 떠받치던 천구를 내던지고 우리와 싸우려 하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단 한번,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조금 훔쳤다는 명분만으로는 아틀라스의 사위에게 큰 처벌을 내리기에는 부담이 있어. 심지어 제우스 자신의 아들이기도 하니 혈육의 정도 있겠지.
예를 들어서 3주신 모두를 모욕한다던지 하는,
더욱 확실한 무례
를 저지른다면모를까…
잠시 기다리자 탄탈로스가 다시 들어왔다.
그는 시종들을 시켜 큰 대접에 스튜를 담으며 우리에게 고개를 숙였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신들이시여. 진귀한 고기를 넣은 스튜가 이제 완성되었으니 마음껏 드시옵소서.”
틀린 말이 아닌 듯, 스튜에서는 좋은 향이 감돌았다.
온갖 약초와 향신료 등이 스튜에서 잘 혼합되어 고운 빛깔을 띤다.
그런데…
“이걸 우리더러 먹으라고?”
“……”
스튜에 들어간 저 고기는 인육인데?
* * *
인육이 담긴 스튜를 눈치채지 못하는 신은 이 자리에 없었다.
하급신이 와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먹지 않을 터, 하물며 이 자리의 신들은 최고위의 신격을 지닌 자들.
신들을 대접하겠다면서 인육을 주는 이가 정상적인 인간은 아니겠지.
의심을 담아 디오니소스를 바라보니,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눈이 돌아가기 일보 직전이였다.
광기의 신이 발작하기 직전에 보이는 표정.
그럼 디오니소스의 광기에 당한 것도 아니고…
다른 신들 역시 스튜에는 손을 대지 않은 채, 화를 참아내고 있었다.
신들의 왕, 제우스가 스튜를 보자마자 눈을 감아버렸기에.
누구도 음식을 먹으려 들지 않고 탄탈로스에게 싸늘한 표정을 보내자 그가 천연덕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정도로 정신이 돌아버린 인간은 내 수천, 수만년의 신생(神生)동안 처음이다.
“신들이시여, 어이하여 드시지 않습…”
“네 이놈! 탄탈로스! 네놈이 정녕 돌아버렸느냐!!!”
번쩍- 쿠르르릉! 콰콰쾅!!!
마치 놀리는 듯한 탄탈로스의 말을 끊고, 제우스가 분노에 가득 찬 노호성을 지른다.
그의 분노에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왕궁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쿠구구구… 후두둑.
거대한 왕궁은 단번에 폐허가 되었고 수많은 인간들이 잔해에 깔려 신음한다.
죽은 영혼들도 제법 보이는 것으로 보아 여파에 휘말린 자들이 수두룩하구나.
“끄으윽…”
“이게 무슨 일이지… 시.. 신?!”
“폐하…?!”
사방에서 신음하는 인간들이 가득하지만 제우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허공에 스튜를 띄웠다.
인간의 고깃조각들이 허공을 날아다녀 모여들고, 그는 그것을 데메테르에게 잠시 맡겼다.
인육이 된 인간을 나중에 부활이라도 시키려나 보네.
자기 아버지에게 죽어 요리가 되고, 할아버지에게 먹힐 뻔한 불쌍한 인간은… 저승의 기억만을 지우고 살려줘야겠다.
아무리 저승의 법도가 지엄하다지만 이번만큼은 예외로 해야겠어.
곧 분노를 억지로 가라앉힌 제우스가 손짓을 하자…
피투성이가 되어 널부러진 탄탈로스가 무언가에 잡힌 것처럼 목을 감싸쥔 채 바둥거리며 끌려왔다.
“커.. 컥!”
“네놈이 감히 인간으로 요리를 만들어 우리에게 먹이려 들어? 죽은 인간은 누구고 왜 이런 짓을 벌였느냐.”
“커…”
“대답해라.”
제우스의 눈에 번개가 튀며 강한 압박감을 뿜어낸다.
주신의 분노 앞에서, 미약한 필멸자는 오직 진실만을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놈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상상을 초월했다.
“신들께서… 지혜로운지… 저것은 제 아들…”
신들이 지혜로운지 시험하기 위해…
자기 아들을 죽이고 요리로 만들어 대접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