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90)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90화(90/140)
탄탈로스의 이야기 – (2)
그대로 기절한 탄탈로스를 바닥에 내팽겨진 채, 제우스가 내게 다가왔다.
제우스의 걸음마다 불꽃과 번개가 번쩍이고 저 하늘 위에서는 계속해서 천둥이 내리치는 상황.
“미안하오. 형님. 탄탈로스 저 놈이 저럴 줄은 상상도 못했소.”
“…저 미친 인간은 타르타로스에 처박아야겠다.”
“놈이 제 자식을 죽여 음식으로 만들어버렸으니, 영원한 굶주림에 시달리게 만들면 딱 좋겠군.”
굶주림의 여신, 리모스를 불러 도와달라고 할까?
아니지… 저 정신나간 놈은 오래도록 고통을 받아야 한다. 리모스가 그리 힘을 낭비하게 할 필요도 없지.
예전에, 타나토스를 가둔 시시포스와 동시대를 살아가던 미친 인간이 하나 있었다.
에뤼시크톤(Erysichthon)이라 하는 그 인간은 데메테르가 아끼는 참나무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콰직. 쿵!
“차.. 참나무에서 피가!”
“에뤼시크톤 님, 제발 지금이라도 도끼질을 멈추십시오!”
“반드시 네게 복수하겠다… 인간.”
참나무는 베인 자리에서 피를 흘리며 복수하겠다고 말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를 베어버렸다.
그렇게 데메테르의 분노를 사게 된 에뤼시크톤은 데메테르가 보낸 한 여신의 방문을 받게 되고…
“음식! 음식을 더 가져와라! 다 팔아서 음식을 사와!”
“아버지… 벌써 60인분은 넘었는데…”
“배.. 배가 고프다! 어서!”
데메테르의 부탁을 받은 여신은 에뤼시크톤을 지독한 배고픔에 빠뜨려,
제법 부자였던 그의 재산을 모조리 탕진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자신의 몸을 잡아먹어 죽게 만들었다.
바로 그 여신이 굶주림의 신격, 리모스(Limos).
제우스가 데메테르에게 들린 인육 더미를 보며 입을 열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신들의 왕이지만 이렇게 미친 인간의 행태에는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데메테르. 운명의 세 여신, 모이라이들에게 찾아가 이 불쌍한 자를 부활시켜야겠다.”
“형태를 다시 만들면 살릴 수 있겠지.”
“…그럼 저승에 온 영혼도 금방 돌려보내야겠군.”
마침 하늘에서 펄럭거리는 날개소리가 들리고,
눈에서는 피를 흘리며… 뱀 머리카락을 지닌 세 여신이 나타났다.
청동 날개와 손에 든 횃불까지,
마침 복수의 세 여신들이 보낸 분신이 탄탈로스에게 향하는군.
“아. 버. 지. 가. 되. 서. 네. 아. 들. 을. 죽. 여?”
“영. 겁. 토. 록. 고. 통. 받. 아. 야. 할. 것. 이. 다.”
“네. 죄. 는. 절. 대. 덜. 어. 지. 지. 않. 는. 다.”
복수의 세 여신들이 보낸 분신은 오직 죄를 지은 자에게만 보이는 환영.
탄탈로스는 죽기 전까지 영원토록 그 환영에 시달릴 것이다.
가만, 죽기 전까지 환영에 시달리면… 죽고 나서는 저들에게서 해방되잖나.
포세이돈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는지 나를 바라보았다.
“하데스, 저 괘씸한 놈은 산 채로 타르타로스에 가둬버리는 거 어떤가?”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군.
* * *
탄탈로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번뜩 눈을 떴다.
그는 신들을 속인 죄로 죽은 것이 아니였나? 분명 제우스 신의 분노에 의해 왕궁이 통째로…
그렇다면 이곳은 저승일까?
탄탈로스는 몸을 움직여 일어나려 했지만, 밧줄로 꽁꽁 묶인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힘겹게 고개만을 들어올리자 보이는 것은 동굴과 비슷한 풍경.
“일어났나. 탄탈로스.”
‘플루토 신? 저승… 인가?!’
싸늘한 한기가 주변에서 맴돌았고, 어디선가 들리는 목소리를 따라가보니… 보이는 것은 검은 옥좌에 앉아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플루토 신.
주변에는 저승에서 거주하는 신으로 보이는 검은 날개의 남신이나 청록색 머리칼의 여신도 보인다.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웠으며 그나마 주변을 밝혀주는 화톳불 몇 개는 그 밝기를 잃어가는 것이 선했다.
옥좌에 앉은 플루토 신에게서 나오는검은 어둠이따뜻한 화톳불을 잡아먹는 듯한 환각이 양 눈에 들어온다.
“네. 죄. 는. 절. 대. 덜. 어. 지. 지. 않. 는. 다.”
“크으윽…”
그리고 아까부터 들리는 환청이 뇌리에 스며든다.
복수의 여신들인가, 역시 인간으로서 신을 속이는 것은 불가능했나.
신음만을 흘리던 탄탈로스의 귀로 플루토 신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플루토 신의 신격은 자비의 신이기도 하니, 어떻게든 자비를 불러일으켜야…
“그럼 이제… 손자를 죽여 할아버지와 친척들에게 권한 네 죗값을 논해보도록 하겠다.”
“제가 신을 속인 것이 그리도 잘못이란 말입니까?”
“닥쳐라! 버러지 같은 놈이!”
쿠웅!
플루토 신의 옆에 선 검은 날개를 가진 신의 노호성에,
입을 열던 탄탈로스의 고개가 바닥으로 내리꽂히며 머리를 거세게 부딪혔다.
그러나 옥좌에 앉은 저승의 주인이 손을 내젓자 항거할 수 없던 압력이 사라진다.
“음. 타나토스. 잠시만 진정하시지요. 죄인도 변명할 권리 정도는 있으니… 어디 입을 놀려 보아라.”
탄탈로스는 최선을 다해 머리를 굴렸다.
저승은 오롯이 플루토 신의 영역, 그의 아버지인 제우스 신도 간섭할 수 없다.
그러므로 옥좌에 앉은 저승의 신만 어떻게든 설득해 자비를 받는다면 희망이 보인다…!
하지만 신에게 거짓은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가 자신의 아들을 죽이고 음식으로 만들었지만, 그것을 먹은 신은 아무도 없었지 않은가?
심지어는 복수의 여신들도 그를 괴롭히고 있고…
“할 말이 없나?!”
“아.. 아닙니다! 그것이…”
그래, 동정심! 저 흑발의 남신에게서 동정심이라는 감정을 사야 한다.
내가 지은 죄는 신성 모독, 감히 신들의 음식을 훔치고 인간으로 요리를 만들어 신을 속이려 한 죄.
하지만 플루토 신에 대해 그가 들은 소문은… 그가 어느 신보다도 자비로운 선신이라는 것.
잔인하고 변덕스러운 올림포스 신들과 달리, 그나마 물러터진 자비의 신을 설득한다면…
“인간이 신을 시험해보고 싶다는 것이 그리도 큰 죄라는 말입니까?! 플루토 신이시여!”
“……”
“저는 제우스의 아들로 태어나 반신으로서 항상 의문을 가져왔습니다! 신들에 대한 일화에는 늘 미담만이 존재하지 않고, 필멸자를 괴롭히거나 실수를 저질렀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신들께서 어떠한 존재인지 작은 궁금증을 표한 것이니 부디 자비롭게 용서해주십시오!”
“……”
“저는 이미 죽음으로서 신성 모독에 대한 벌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제발 저를 불쌍히 여겨 안온한 죽음만을 맞이하도록 해주십시오! 자비의 신이시여…!”
여기까지 말하고 옥좌에 앉은 존재의 눈치를 살피는 탄탈로스.
어째서인지 주변의 신들도 조용하다. 그런 모습에 점차 불안감이 밀려오는 그.
잠시 정적이 흐르고 날카롭게 그를 바라보던 플루토 신이 웃음을 터뜨린다.
호탕한 웃음이 아니야, 비웃음…!? 신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나?
“하하하! 네가 죽었다고? 아니, 너는 지금도 살아있다. 타나토스 신이 네 영혼을 거두지 않은 덕분이지.”
“네?”
“그리고 애초에 네가 지은 제일 큰 죄는 신을 속이려 한 것도,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훔친 것도 아니다.”
“…?!”
“자신의 아들을 죽여놓고 무슨 변명을 하는지 궁금해 들어주었더니, 기껏 하는 말이 그따위냐?”
탄탈로스는 그제서야 자신이 한 실수를 깨달았다.
그가 이용하려던 플루토 신의 자비가… 그의 아들에까지 미칠 줄이야.
“그… 그것은…”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만을 훔쳤다면 저승에서 수십 년간 노역으로 끝났을 것이다. 다른 이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신을 속인 죄로 죽었다면, 이를 고려해 적당한 처벌로 끝났을 것이다.”
“아…”
“그런데 너는 단 한번도 네 아들을 죽인 것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구나. 일말의 죄책감조차 없다니… 네 판결이 결정되었다.”
탄탈로스는 다급히 변명하려 했으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무언가를 말하고자 애쓰는 탄탈로스 앞에, 저승의 군주가 담담히 판결을 말했다.
“살인은 죄다. 자신의 아들을 죽였으니 중죄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친척들을 속여 아들의 시신을 먹이려 했으니 더한 중죄다.”
“……!”
“너는 수만 년이 지나도 이 모든 잘못을 청산할 수 없다. 그러므로 너는 타르타로스에 보내질 것이며…”
“……!!!”
“절대 해소할 수 없는 영원한 굶주림에 시달리며, 주기적으로 케르베로스에게 내장을 뜯어먹히는 벌을 내린다.”
탄탈로스는 자신을 붙잡는 망자들의 손길을 떨쳐내려고 발버둥쳤다.
그러나 죄인을 압송하는 망령의 힘을 그가 뿌리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자신의 아들을 요리한 미치광이는 정당한 처벌을 받게 되었다.
* * *
나는 망자들에 의해 끌려나가는 탄탈로스의 최후를 눈에 새겼다.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뜯어먹던 독수리처럼, 케르베로스 역시 주기적으로 탄탈로스의 내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신수지만 항상 허기가 져 침을 흘리는 케르베로스에게 먹이를 공급해 줄 수 있겠네.
저승의 문지기에게 내장이 계속 뜯겨져도 탄탈로스는 죽지 못하고 재생할 것이다. 타나토스가 그의 영혼을 데려가지 않을 뿐더러, 내가 살려둘 것이니까.
그런데 암브로시아와 넥타르를 훔친 탄탈로스가 여는 연회에 왜 신들이 순순히 참석했을까? 그가 연회장에서 무례를 저지를 것을 기대하고, 아틀라스의 사위인 탄탈로스를 크게 벌할 명분을 얻기 위해 간 것일수도…
간접적인 경고 정도도 되려나? 명분도 이쪽에 있으니, 세계의 패권이 확실히 바뀌었음을 이승에 남은 티탄 신족들에게 증명하는… 제우스의 아들이기도 하니, 이쪽에서도 슬픔을 억누르며 처벌했다고 하면 되겠지.
…아니다. 괜한 생각은 하지 말자.
제우스에게 직접 물어본 것도 아니고, 괜한 내 억측일수도 있으니까.
“저런 인간은… 난생 처음 봐요.”
“너무 놀라지 말아라, 멘테. 신으로서 오랜 세월을 살다 보면 참 다양한 일을 겪게 되기 마련이니.”
멘테가 멍한 얼굴로 탄탈로스가 떠난 자리를 바라본다.
나름 충격을 받은 모양, 하기야 그녀는 원래 강에서 유유자적 살아가던 나이아데스였으니까.
내 사제였을 때는 모든 인간들이 그녀를 떠받들었겠고,여신이 되고 나서는 주로 민트를 퍼뜨리거나 서류작업에만 몰두했기에 이런 광경은 낯설었겠지.
심지어 망자들의 재판에도 많이 오지 않았으니 더욱.
그렇다고 해도 탄탈로스의 경우는 정말 미친 놈이였지만…
“저런 인간도 있다니… 인간들은 정말…”
고개를 저으며 혐오감을 내비치는 민트의 여신.
어어… 사고가 그렇게 흘러가면 좋지 못한 방향인데, 탄탈로스의 일이 그녀에게 선입견을 심어주려나.
조금 우울하게 고개를 떨구는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스틱스 여신님도, 레테 여신님과도 이승에 다녀왔으니 기분 전환이라도 할 겸 멘테와도 나갈까.
“멘테. 오랜만에 테베로 가보지 않겠느냐?”
“…?!”
“…저번에 기가스의 습격으로 못다 한 산책이다.”
그녀가 다시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들어올린다.
부담스럽게 빛나는 청록색 눈에서는 우울함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포.. 포상! 드디어 저도 스틱스 님과 레테 님처럼 단둘이…!”
“…? 네가 그걸 어떻게?”
“당연히 다 소문이 퍼졌는걸요! 요즘 저승에서는 하데스 님의 정실이 누가 될 것인지에…”
다들 내 연애사에 신경 쓰지 말아줬으면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