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91)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91화(91/140)
민트의 여신과 테베 – (1)
“하데스 님! 지금 바로 출발할까요?”
나를 조르는 멘테의 뒤편으로 강아지 꼬리가 마구 흔들리는 환각이 보인다.
저번에 기가스의 습격으로 중단된 산책이 무척 아쉬웠던 모양.
“내가 너를 신경써주지 못했구나. 미리 말을 했다면 데리고 나가줬을 텐데.”
“그게… 저도 그러고는 싶었지만…”
곤란하다는 얼굴로 난색을 표하는 민트의 여신.
“싶었지만…?”
“아, 안 돼요! 새치기를 했다가는 저주… 저주를 받고 말 거에요… 밟히고 말 거야…”
갑자기 두 손을 모으고 와들와들 떠는 그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저주에… 밟힌다는 건 뭐냐 또.
“아무튼영웅들이 훈련하는 장소를 거쳐 테베로 바로 이동하자. 나도 기분전환이나 할 겸, 이승으로 나가야겠으니.”
“네에! 하데스 님 마음에 들도록 예쁘게 꾸미고 올게요! 아, 그리고 저는…”
행복한 얼굴로 알현실을 나가려던 멘테가 갑자기 그대로 멈추더니 작게 말했다.
내게서 등을 돌린 상태라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붉게 달아오른 귀가 보였다.
“하데스 님은 그으… 저번에 저랑 처음 만나실 때 입으셧던 금실로 장식된 키톤이 제일 어울리다고 생각해요. 절대 제 취향이 아니라 그냥…”
“그게 마음에 들었다면, 그렇게 하지.”
저번에 보았던 그 옷이 멘테의 취향이였나?
당돌하기까지 한 그녀의 말에 피식 웃으며 의복을 변화시켰다.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나는 내 외모와 인기를 충분히 체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승의 왕이라는 높은 직위 때문에 나를 허물없이 대하는 신격은 찾기 힘든 법.
하물며 대부분의 필멸자들은 하데스라는 이름마저 두려워하여 플루토라고 부른다.
분명 그러할 텐데… 민트의 여신은 달랐다.
“와…! 하데스 님, 지금 엄청 멋있으세요! 헤헷… 금방 다시 올게요!”
하급신이 아닌, 물의 님프 나이아데스로서 나를 만났을 때에…
두려움보다 호기심과 설렘이 앞서던 특이한 님프.
그런 성정을 지녔기에 내 사제가 되고, 결국에는 신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지.
* * *
페르세포네의 힘이 감도는 영웅들의 훈련장으로 간 멘테와 나는 곧 케이론을 발견했다.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이는 모습으로영웅 지망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는그 켄타우로스 현자.
“활을 쏠 때에 발 간격은 어깨 너비만큼 벌리고 뒷발은…”
활시위를 매겨 과녁을 겨냥하는 케이론.
그리고 그것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영웅들이 공터에 넓게 둘러앉아 있었다.
케이론의 설명이 끝나고, 그들은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궁술 연습을 시도했다.
궁술에 그리 능통하지 않은 자들만을 모아놓았는지 어설프게 활을 당기는 모습을 보는데 케이론이 다가왔다.
영웅들에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떨어진 거리에 있었는데 그는 우릴 발견한 모양.
“언제 오셨습니까. 하데스 님? 멘테 여신께서도 오셨군요.”
“케이론, 영웅들의 육성은 잘 되는 모양이군.”
“아, 물론입니다. 얼마 전에 과업을 이룬 영웅들도 많이 보내주셨지 않으셨습니까? 그 덕분에…”
케이론이 말을 나누다 말고 고개를 돌린다.
이곳에서 한참 떨어진 공터에는 영웅들이 무기를 들고 서로에게 겨누고 있었다.
내가 아는 얼굴도 보이네, 저기 벨레로폰… 페르세우스도 있고…
콰당탕!
한 남자가 날아드는 칼을 가볍게 피하고 발을 걸어 맞은편의 남자를 넘어뜨렸다.
넘어진 남성은 억울한 듯 상대에게 하소연한다.
“페르세우스 왕! 댁 같은 대영웅이 무슨 여기서 이러고 있소!”
“그게 무슨 소리인가? 후인을 양성하는 것 또한 영웅의 의무인데?”
“아니, 그래도 국왕씩이나 되던 자가 훈련을…”
“…? 저기에는 그 카드모스 님도 계시는데 나 정도면 무명이지. 빨리 덤비게!”
자신의 과업을 완수하고 죽은 온갖 이름 높은 영웅들이 영웅 지망생들을 훈련시키는 광경.
페르세우스가 죽고 저승에 왔을 때, 제우스는 그의 아내 안드로메다와 함께 그를 별자리로 만들어주려 했었다.
하지만 테베의 영웅 훈련소에 대해 알게 된 페르세우스가 이를 거절했고,
죽어서도 후인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그의 뜻대로 하게 해준 것.
원래는 엘리시움에 보내려 했으나 외할아버지를 죽인 죄인이 갈 수 없다며 무릎을 꿇더라.
정말 여러모로 카드모스가 생각나는 영웅이였다.
“저렇게 수준 높은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저 혼자서 가르칠 때보다는 훨씬 좋습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군. 앞으로도 원하는 영웅들이 있다면 이리로 보내겠다.”
흐뭇하게 웃는 케이론을 잠시 바라보다가 멘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영웅들이 훈련하는 광경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도중이였다.
“와… 하데스 님. 저기 좀 보세요. 저게 바로 왕뱀 피톤인가요…?”
“멘테, 우리가 저들에게 모습을 보이면 괜히 소란스러워지니 조용히 지나치자.”
멘테를 재촉해 공간의 틈새 바깥으로 발을 옮겼다.
스아아아-
“무.. 무슨?! 아직 영웅들이 나올… 흡! 주 하데스시여…!”
이승으로 넘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나와 멘테를 보고 당황하는 중년의 남성 사제.
신앙심이 제법 깊은 고위 사제… 이름이 분명…
“베실레디스였던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를 올리는 그 신앙심은 가히 사제의 귀감이라 할 만하다.”
“제 이름을 기억해주시다니… 여… 영광입니다! 크흡…”
아니, 잠깐. 갑자기 바닥에 엎드려 울지 말아라…
매일같이 아침 저녁으로 기도를 올리는 것을 조금 치하했을 뿐인데.
여긴 돌바닥이라 차가울텐데, 빨리 나가야겠군.
“내 사제가 차가운 돌바닥에 엎드린 것을 계속 보고 있자니 불편하군. 일어나라.”
“하지만… 어찌…”
“명령이다.”
그제서야 조심스럽게 일어나는 사제.
“여기 있는 민트의 여신과 내가 테베로 나왔다는 사실은 비밀로 해라.”
“물론입니다! 스틱스 강에… 읍.”
“…그런 맹세까지는 필요 없다.”
스틱스 강이라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잠시 말을 할 수 없도록 막았다.
아니 무슨 바로 스틱스 강에 맹세하려 하는 건지.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신앙심이 너무 과한 것이 아니냐?
나와 멘테가 이곳에 더 있으면 기절이라도 하겠어, 빨리 지나가야겠네…
광신에 가까운 신앙을 보이는 그를 지나친 우리는 모습을 숨기고 테베에 녹아들었다.
* * *
그런데 저승과 연결된 신전을 나오자마자 보이는 것은…
“거 참, 자꾸 우길 텐가? 플루토 신의 정실부인은 스틱스 여신님이 분명하다네!”
“자네야말로 근거가 너무 부실하지 않나? 그분께서는 에로스 신의 황금 화살을 맞고 페르세포네 여신님에게…”
“그 황금 화살, 플루토 신전의 사제님들이 공언하신 것도 아닌데 억측은 그만하지?”
“레테 님의 신상이 플루토 신상 바로 옆에 있는 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요?”
내 정실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수많은 테베 사람들이였다.
진지하게 논쟁하는 사람도, 흥미로운 표정으로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만 그 수가… 신전 앞 공터를 가득 메우고도 남는 것이 문제였지.
멘테와 눈을 마주치니 그녀 역시도 당혹스러운 눈빛을 보낸다.
“민트의 여신은 원래 님프였다가 하급신이 되었는데 이것이야말로 플루토의 총애를 나타내는 것 아니겠나!”
“그것은 플루토 신의 상징인 민트를 만들어서 그런 것이지, 총애가 아니라니까!”
마침 멘테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내가 멘테를 하급신으로 만들어준 것이 그녀에 대한 총애인지… 아니면 그저 보상일 뿐이였는지에 대한..
꼬옥.
그와 함께 나는 오른손을 잡아오는 작은 손을 느꼈다.
여신의 부드러운 손길이 수줍은 듯 나를 붙잡고,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데스 님… 저.. 저도 궁금한데요.”
“멘테.”
“혹시.. 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승에 나오자마자 던지는 질문.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지만 내 눈을 바라보고 말하는 멘테.
평소부터 늘 궁금해하던 질문이구나. 눈빛에 약간의 불안감이 느껴진다.
분명 멘테를 하급신으로 만든 것은 내가 아닌 제우스가 한 일이다.
하지만 내가 멘테를 총애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하데스니임?”
윤기나게 빛나는 청록빛 머리칼과 또렷한 눈동자.
물의 님프였을 때도 여신들에게 뒤떨어지지 않는 미모를 자랑하던 그녀는 하급신이 되면서 더욱 아름다워졌다.
내가 말을 하지 않고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불안감을 느낀 듯,
멘테가 다급히 입을 연다.
“저… 저는 정실 부인은 꿈도 꾸지 않지만… 첩이라도 안…”
“멘테.”
천천히 손을 올리고,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자 그녀가 말을 멈춘다.
비록 예전이였다면 이 상황을 피할 생각이나 했겠지만, 더 이상 그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님프였던 멘테를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그녀가 사제가 되어 내 신전에서 일한 나날,
나를 좋아해 하급신이 되어 저승으로 오게 된 것과 그녀와 함께 일했던 광경이 눈 앞에 스쳐 지나갔다.
온갖 탄원과 일에 시달리면서도 저승에서 웃음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까닭…
저승에서도 발랄함을 잃어버리지 않던 민트의 여신은,어느새 내 마음속에도 깊게 들어와 있었구나.
“…그리 애원하지 않아도 된다. 나 역시 네가 싫지 않으니.”
“아…”
눈이 동그랗게 커지더니 이내 안심하며 안겨오는 멘테.
여신의 온 몸에서 나는 청량한 향기가 내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렇게 부드러운 청록빛 머리칼의 감촉을 만끽하는 와중,
멘테의 저 뒤편에 있는 무언가가 내 눈에 보였다.
“사랑한다. 멜레디포스.”
“저 역시… 마찬가지로 좋아해요. 알케이오스.”
20대 ~ 30대로 보이는 남성 두 명이 서로를 껴안고 있는 광경.
심지어 다른 시민들 역시 이상할 것은 없다는 반응.
“암. 저것이 진실된 사랑이지.”
“여자와의 사랑은 번식이 목적인 순수하지 않은 애정이긴 해.”
너무나도 황당한 광경에 빠르게 주변을 살펴보니…
통일된 병사 복장을 한수백의남성들이 한쪽 길거리에서 애정행각을 하는 중이였다.
어느 미친놈이 감히 내 테베에 독을 푼 것이지?
“….하. 하데스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