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92)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92화(92/140)
민트의 여신과 테베 – (2)
“….하. 하데스니임?”
멘테가 딱딱하게 굳어버린 내 얼굴을 보고 다급히 부르지만…
나는 그녀에게 신경 쓸 수 없었다.
신성부대? 동성애가 진정한 사랑? 이건 뭔 소리냐 대체.
디오니소스가 감히 이런 짓을 할 수는 없을 테고, 이게 정말 자연스럽게 생겨난 문화인가?
제우스가 트로이의 소년, 가니메데스를 올림포스로 데려온 것이 영향을 끼친 것인가.
그도 아니면…
“잠깐, 뭐 좀 물어볼 것이 있는데.”
“앗. 혹시 외지인이신가요?”
잠시 인간들에게 모습을 드러내고 옆을 달려가던 한 소년의 팔을 붙잡았다.
그 아이는 비슷한 경험이 많은지, 외지인으로 보이는 남성이 말을 걸어와도 당황하지 않았다.
내가 다스리는 테베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번영한다는 좋은 징조였지만 일단 이 이상사태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우선.
“그래, 내가 테베를 오랜만에 와서 그런데… 저 신성부대란 것은 뭐냐?”
“신성부대요? 그야 저희 테베의 정예부대죠! 신성부대가 만들어진 적은 얼마 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내 말은… 왜 남자끼리 저러는 부대가 만들어졌지?”
지금도 서로를 향해 애정 행각을 보내는 수백 명의 남성들을 바라보지 않으려 노력함과 동시에,
나를 올려다보는 소년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야, 똑똑하신 철학자 님들께서 다들 그렇게 말씀하셨는걸요!”
“철학자?”
“네! 공터에서 사랑에 대해 몇 개월 동안 토론한 결과가 어땠는지 아세요? 바로 [남성간의 사랑은 출산의 목적이 배제된 순수한 사랑이다.]라는 결론이였어요. 에헴!”
아니… 뭔.
“어떠한 신의 신탁이라던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나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그 소년.
“네? 하지만 신들께서도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이걸?!”
“저희 테베가 다른 도시들보다 먼저 진리의 일부분을 깨달은 것이니까요. 신학자나 사제분들이 말씀하시길 신들께서도 동성끼리…”
이건 제우스의 영향이 맞는 듯 싶다…
그러고보니 신학자라는 이들도 생겨난지 오래다.
사제는 아니면서 신에 관련된 일화나 신들의 계보를 작성하는 자들.
그런 인간들도 그리 결론을 내렸다고?
“멘테… 조용한 곳으로 가자.”
“하데스 님…”
질문에 잘 대답해준 값으로 드라크마 몇 개를 받고 좋아서 달려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머리를 짚었다.
이게 인간들이 바라보는 디오니소스의 광기인가? 내가 조금 더 테베에 신경 쓸 것을 그랬다.
요즘 제법 바빠서 테베를 살펴보지 않았더니 이 모양.
신들의 권력은 이럴 때야말로 쓰라고 있는 법.
일단 멘테와의 데이트가 끝나면 테베 왕이나 대사제의 꿈에 나타나 신탁을 내려야겠어.
신성부대를 당장 해체하라거나, 동성애를 하는 자들을 타르타로스에 던져버리겠다고 하면 대혼란이 일어날테니…
플루토 신은 동성애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도의 뉘앙스만 풍겨도 알아서 멈추겠지.
생각을 그만두고 옆에서 조용히 날 바라보던 멘테의 오른손을 잡았다.
“아…!”
“미안하다. 멘테. 너를 두고 잠시 다른 생각에 빠졌구나.”
“아니에요. 다른 여신님들 생각만 하신 게 아니라면 저는 괜찮아요!”
“저쪽에서 무슨 축제라도 하는 모양인데, 저리로 가자.”
* * *
멘테의 손을 잡고 한쪽 방향으로 이동했다.
그 신성… 어쩌구하는 이상한 놈들이 보이지 않으니 한결 낫네.
역시 내 예상대로 오늘은 테베에서 무슨 축제라도 하는지 사람들이 활기찬 미소를 띠며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시민들의 머리카락에 꽂힌 것은… 민트 이파리?
“확실히 축제날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구만… 나도 민트 이파리 하나 주시오.”
“예, 여기 있습니다.”
길거리에 있는 상인에게서 민트 이파리 하나를 구입한 남성은 귀 옆에 민트를 꽂았다.
축제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면 민트를 머리에 꽂는 것 같은데,
그럼 지금 테베에서 열리는 축제는 멘테를 위한 것일까?
“오늘부터 3일간! 민트로 만든 오일을 싸게 팝니다! 목욕을 할 때 넣어도 좋고, 발라도 몸에 좋습니다!”
“올리브 오일보다 더 효험이 좋나요?”
“이게 바로 엘리시온이 눈앞에 보인다는 민트 향수, 지금이라면…”
“역시 플루토 신을 모시는 도시답게 민트 축제도 하네요.”
“그 무서운 저승의 군주를 모신다니 참 신기한 도시네…”
“쉿, 여기서 그런 말 하면 욕먹어요. 테베인들 대부분은 플루토 신자인 거 잊었어요?”
“저 먼 리디아에 있는 아폴론 신전의 사제들도 인정한 효험이 있는 민트가…”
“의술의 신인 포이보스께서도 민트 이파리에 대해 좋게 생각하신다는 뜻이로군.”
“머리를 맑게 해주고 열을 내려주는 기능이 있다는군. 그 외에도…”
이 많은 사람들이 내가 정한 상징을 놓고 떠들며, 축제까지 벌이고 있다.
모두가 신의 은혜를 찬미하며 감사를 표한다.
언제나 보아도 마음이 따듯해지고 보람이 느껴지는 광경.
손을 잡고 나를 따라오던 멘테 역시도 기분 좋은 웃음이 입가에 머물러 있다.
“헤헤… 하데스 님. 인간들이 민트를 엄청 좋아하네요!”
“다 네가 그것을 만들어준 덕분이지. 충분히 신이 될 만한 위업이였다.”
멘테가 나를 바라보며 활짝 웃는다.
이 청량한 향기는 그녀에게서 나는 것일까? 아니면 민트 축제를 즐기는 근처의 인간들에게 나는 것일까?
“저…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뭐지?”
“그때 저희가 처음 만났을 때요. 민트를 상징으로 삼는다고 하셨던 것 말이에요.”
“…?”
“잃어버린 기억… 이라고 하신 것이 무슨 뜻인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그게 뭐길래 고작 제가 만든 식물을 상징으로 삼으신 건지…”
“그래, 내가 잊어버린 기억을 되살려준 대가로 한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
멘테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하지만…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까마득한 예전, 내가 필멸자였던 시절이 있었다고 말해도 믿지 않겠지.
필멸자의 환생은 저승에 속한 여러 신들이 관리하는 것이니까.
과학이 발달한 세계에서 민트로 만들어진 여러 음식들도, 그 독특한 향을 식사 후 매일같이 맡으며 입 안을 청결하게 했었던 것도,
멘테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내 대답은…
“그 민트는 내가 원래 알던 식물이였다.”
“네? 하지만 제가 우연히 만들기 전까지는 세상에 없던 것이…”
“아주 오래전, 네가 모르는 시기에… 항상 내 곁에 존재하던 식물의 이름이 민트였거든.”
날 바라보던 멘테의 얼굴이 아련하게 변한다.
뭘 상상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말을 이어나갔다.
“그호불호가 많이 갈리는상쾌하고 독특한 향기가 코끝에 닿았을 때, 나는 네가 만든것이 그 식물이였음을 알게 되었다.”
“아…”
“그래서 민트를 내 상징으로 삼은 것이지.”
주변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인간들의 머리에 꽂힌 민트 이파리.
다른 신들이 보기에는 향이 독특한 식물에 불과하지만, 내게는 오랜 추억을 떠올리는 매개체였다.
한때는 불멸자가 아닌, 필멸자였음을 기억하게 해주는 소중한 식물.
그것이 바로 민트. 그리고 그걸 만들어준 멘테 역시도…
가만히 나를 바라보는 멘테의 볼에 손을 가져갔다.
피하지 않고 오히려 내게 몸을 기대오는 그녀의 머릿결에서 상쾌한 향이 감돈다.
“항상 네게는 고마워하고 있다. 멘테.”
“무슨 말씀을… 한낱 님프였던 제가 하데스 님께 받은 은혜는…”
“아니, 너는 내게 있어서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추억을 되살려줬다.”
힘도, 지위도, 명예도… 강력한 신격으로서 환생한 나는 어느 것 하나 아쉽지 않았다.
너무나도 오랜 세월이 지나 잘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전생에는 그런 것들을 손에 쥐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은데.
그렇기에 지금 내 손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아니, 분명히 기억하지만 물 흐르듯 빠져나가는 것은 전생의 추억.
“…나는 한번씩 좋지 못한 생각이 들곤 한다. 가끔은… 내가 혐오하던 망나니 같은 신들처럼, 필멸자를 낮춰보곤 하지.”
“인간들에게 자비의 신이라 불리시는 하데스 님… 께서도요?!”
그냥 신도 아니라 3주신, 신들의 왕인 제우스도 나를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
대부분의 신들은 나보다 어리거나 항렬이 낮은 위치.
거기에 맡은 신격은 필멸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저승.
나는 직위, 재물, 힘까지 모든 것을 갖춘 지하 세계의 군주.
오만한 마음이 조금도 생기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완벽한 신이 아니기에… 종종 필멸자들이 나를 칭송하고 두려워할 때마다 당연하다는 생각과 함께, 오만에 빠지곤 한다.”
“하데스 님…”
“위대한 저승의 주인으로서 인간들의 무례를 참지 않고, 위엄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하데스 님은 모든 신격들 중에서 제일 공정하고 자비로우신 분이라고 칭송이 자자한데요.”
“그건 노력의 결과지, 내가 타고난 성정이 아니다.”
필멸자들에게 자비의 신이라고도 불리는 나는…
얼마 전에 탄탈로스를 처벌할 때도,뇌리에 스치는 더욱 끔찍한 형벌들을 내리지 않기 위해 억눌러야 했다.
중죄인에게 변명의 기회 따위를 주지 않고 극형에 처하고 싶은 심정 역시도.
그 기반이 된 생각의 대부분은 자신의 아들을 죽여 요리로 만든 이에 대한 분노였지만,
감히 하찮은 인간따위가 신들을 기만하고 모욕하려 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도 미약하게나마 존재했다.
“그 누구보다도 공정해야 할 저승의 주인은, 사실은 이렇게 종종 흔들리는 어설픈 신이지. 나에 대한 환상이 조금 깨졌느냐, 멘테?”
“아니, 아니에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제가 아는 하데스 님은…”
씩 웃으며 멘테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의 맑은 청록빛 눈동자에 약간의 물이 맺힌 것이 보인다.
손을 내밀어 그녀의 눈가를 훔쳐주고 부드러운 뒷목에 손을 올렸다.
여신의 뽀얀 살갛을 가까이서 보니 절로 마음이 동했다. 역시 나도 그녀와 같은 생각을 품고 있구나.
“그런 나를 한번씩 붙잡아주는 것이 너다.”
“제… 가요?”
“그래, 너를 상기하며 민트 향을 기억할 때마다… 내 행동을 되돌아보게 되지.”
세월의 흐름에 점차 마모되어 필멸자에 대한 관점이 바뀌는 나를 붙잡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기억.
전생에서는 그리 특별하지 않았던, 항상 맡아왔던 향기였지만…
저승의 신인 지금은,
나도 필멸자였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되새겨주는 물건이 바로 민트.
“그리고 민트를 만들어준 네게는 항상 고맙고,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그리고요…? 또…”
“…나도 너와 같은 마음인 것 같구나.”
애처롭게 내 얼굴을 바라보던 멘테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다.
건드리면 터질 것만 같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뒷목을 잡은 손에 천천히 힘을 주어 당겼다.
자석에 철이 끌려가듯, 저항하지 않고 가까워지는 여신의 얼굴.
숨이 막힐 정도로 진한 민트 향기 속에서… 나는 그녀와 입술을 맞췄다.
“하흡…”
이 달콤하고도 상큼한 느낌은…
분명히, 박하사탕. 이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