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of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97)
저승의 왕은 피곤하다 97화(97/140)
예언의 영웅, 헤라클레스
“그게 정말이냐, 헤르메스?”
“예. 다행히 포세이돈 큰아버지는 가이아의 제안을 거절하셨지만…”
“이제는 신들을 회유하려 한단 말이지.”
저승으로 돌아가고 이틀 후, 이곳에 헤르메스가 찾아왔다.
신들의 전령인 그가 가지고 온 소식은 가이아가 포세이돈을 회유하려 했다는 것.
이런 소식을 전한 헤르메스가 살짝 불안한 눈길로 내게 말한다.
“그런데, 혹시 포세이돈 큰아버지가 흔들리실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헤르메스. 너는 아직도 포세이돈을 잘 모르는구나.”
다소 자존심이 높고 난폭한 성정을 가졌지만, 그는 절대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그야, 나를 비롯한 크로노스의 자식들은 모두…
“하지만 이번에 아레스 형님과 크게 다투고… 심지어 재판까지 열렸지 않았습니까. 혹여나 마음이 상하셨다면…”
“물론 기분은 좋지 않겠지. 아레스에게 주어진 형벌은 포세이돈의 직위를 고려한 것이기도 하니.”
불로불사인 신들에게 있어서 시간 관념은 인간과 조금 다르다.
연 단위의 시간도 잠깐이라고 생각되는 신들에게 2개월의 형벌이란 매우 가벼운 것.
포세이돈이 이를 모를리가 없다.
그럼에도 그가 적당히 넘어간 까닭은 그 자신도 아들의 행동이 잘못이라고 여긴 부분도 있었고,
아테나를 견제하기 위해 아들을 보낸 그의 행동을 내가 알고 있었기 때문.
명목상이지만 일단 아레스가 처벌을 받았으니 자신의 면도 어느 정도 세워졌을 거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네.
“하지만 아레스에게 아니꼬운 눈길을 보낼지언정, 외부의 적과 손잡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 자가 포세이돈이다.”
“그렇… 군요.”
“제우스에게도 이 일을 전했을 거 아니냐. 네 아버지는 뭐라고 했느냐?”
“…그냥 포세이돈 큰아버지에게 전령을 보내 가이아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아줘서 고맙다는 서신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신들의 왕 자리에 그토록 민감하시던 아버지가 의심조차 하지 않으시고…”
그것 봐라. 제우스도 바보가 아니니 포세이돈이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겠지.
설령 반란을 일으킬지라도 그 반란에 외부의 적을 끌어들이지는 않는 게 포세이돈이니까.
“내게 전하려던 말이 그것뿐이냐?”
“아, 한가지 더 있습니다. 잠시 후에 무지개의 여신인 이리스가 이곳으로 올 거라고 전하라 하시더군요…”
“이리스가 여긴 또 왜?”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하데스 큰아버지를 올림포스로 또 초대하시려는 것은 아닐까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여 그를 내보냈다.
이리스나 헤르메스가 둘 다 저승으로 온다고? 보통 할 말이 있다면 하나만 보내지 않나.
* * *
헤르메스의 말대로 조금 기다리자, 전령이 알현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하데스 님, 저승의 입구에 무지개의 여신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들여보내라.”
“그런데… 웬 인간 갓난아이 하나를 안고 계셨습니다.”
“…?”
그렇게 오랜만에 보게 된 무지개의 여신은 굉장히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 그녀의 품에 들린 갓난아기 때문이겠지.
“안녕하십니까. 하데스 님. 제우스 님께서 이 서신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그래, 그런데 네가 안고 있는 갓난아이는 뭐냐.”
“그것이… 일단 서신을…”
이리스가 품을 뒤적거리더니 양피지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런데 이 양피지에 담긴 힘이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다른 누군가가 이것을 보지 못하도록 봉해놓은 것처럼.
파지직-
양피지를 펼치자 내재된 벼락이 손을 간지럽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내용을 읽어나갔다.
“하데스 형님. 나 제우스요. 형님의 도움을 빌리지 않으려 했지만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었군.”
내게 무언가 부탁이 있나?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가 데리고 있는 갓난아이가 궁금하겠지. 그 아이를 한 달 정도만 헤라에게서 숨겨줄 수는 없나? 산 자를 저승에서 지내게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지만 헤라가 그 아이를 죽이려고 독사를…”
또 제우스가 몰래 바람을 피워 낳은 아들인가 보네.
그런데 내게 부탁할 정도면 헤라의 분노가 엄청난 모양.
하기야… 이 서신을 보면 산이나 동굴, 다른 신의 거처에도 숨겼으나 헤라가 어떻게든 찾아냈다고 적혀있다. 이승은 헤라의 눈을 피할 수가 없으니 아예 다른 세상인 저승에 숨길 생각이라…
한 달.. 한 달만 아이를 저승에서 보호해주면 어떻게든 헤라의 눈길을 피할 곳이나 마음을 조금 바꿔놓을 자신이 있다는 말일까.
그녀의 분노가 잠잠해질 때까지 이곳저곳에 숨기려는 생각일지도. 하지만 자기 사생아를 내게 숨겨달라 하다니, 대체 어떤 자식이기에…
“그 아이는 내 아들이고, 이름은 헤라클레스(= 헤라의 영광)라고 지었어. 분명 이 아이는 기가스와의 싸움을 이기게 해줄 예언의 영웅이 틀림없으니, 저승의 법도가 지엄해도…”
잠깐, 이 아이의 이름이…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 입 안에서 몇 번 발음해보자 역시 낯설지 않았다.
어디선가… 굉장히 많이 들어보았다. 분명 나는 이 이름을 알고 있다.
내가 에로스의 화살을 맞는다는 것보다 더 깊게 박힌 기억… 그것은 바로…
“스틱스 여신님께 전해 이 갓난아기를 스틱스 강에 담그라 일러라.”
“…하데스 님?”
그리스 신화에서 제일 유명한, 영웅 중의 영웅.
미래에 기가스와의 싸움에서 활약할 대영웅 헤라클레스.
우리가 이겼다.
* * *
“…네?! 스틱스 강에… 말씀이십니까?”
“그래. 연약한 인간의 몸도 스틱스 강물에 빠지면 조금 났겠지.”
이리스가 크게 당황하며 나를 바라보지만 결심에는 변함이 없었다. 산 자가 저승에 오면 안된다는 법도고 뭐고 이건 허용해야지.
뇌리에서 번뜩이던 전생의 기억. 그것은 바로 헤라클레스가 예언의 영웅이라는 사실.
살아있는 자가 스틱스 강의 힘을 견뎌내면… 웬만한 무기로는 생채기도 나지 않는 단단한 몸을 지니게 된다.
온 몸을 담근다면 예언의 영웅이 비명횡사할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 아이는 헤라 님의 미움을 받는 인간입니다…”
“그런데 왜 네가 제우스의 부탁을 받고 이곳까지 온 것인… 아니다. 만약 헤라가 알아채면 내 부탁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해라.”
헤라의 시종인 이리스가 이 아이를 데리고 온 이유는 제우스가 부탁했기 때문인가.
헤르메스에게 아이를 딸려보내면, 헤라가 의심할까 봐 일부러 이리스를 설득한 거일지도.
헤라의 심복을 통해서, 그녀몰래 사생아를 저승으로 전달하다니…
대체 무엇으로 무지개의 여신을 회유한 것이냐. 제우스.
종종 이리스에게 눈독 들이던 것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스틱스 강에 맹세라도 했나?
“네… 알겠습니다.”
“좋아. 스틱스 여신님께 꼭 아이의 몸을 전부 담그라고 일러라. 기억해라.”
혹시나 발뒤꿈치를 담그지 못한다던가 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단단히 당부했다.
그렇게 떨떠름한 얼굴로 스틱스 여신에게 향하는 이리스의 뒷모습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우리 신들을 위협하던 걱정거리 하나가 반쯤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저 헤라클레스를 잘 성장시켜 대영웅으로 만든다면… 기가스들은 전부 죽은 목숨.
곧 알현실로 스틱스 여신님이 들어오셨다.
그녀의 손에 든 아이에게선 스틱스 강의 기운이 감돌며 몸을 변화시키는 것이 보이네.
역시 제우스의 아들답게 스틱스 강물의 힘을 잘 버텨냈구나.
옆에 있는 시녀의 손에 헤라클레스를 맡긴 스틱스 여신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한다.
“하데스. 일단 제우스의 아들이며 영웅이 될 재목이라기에 강물에 담갔는데요. 강물의 힘을 받은 인간을 이승에 자꾸 풀어놓으면…”
“음. 저도 압니다. 스틱스 강의 힘을 받은 영웅들이 돌아다니면 이승의 균형이 무너지겠지요.”
다시 이승으로 올라갈 이 아이도 나중에 장성하면 케이론의 문하로 들어가겠지?
혹여나 헤라클레스가 저승의 훈련소로 온다면, 케이론에게 말해 인성교육을 제대로 시키라고 해야겠다.
스틱스 강에 몸도 담근 강력한 영웅으로 성장할 것이니…
함부로 남을 해치지 못하도록 제대로 교육해야지.
“물론 나중에 케이론의 문하에서 제대로 교육시킬 예정입니다. 당연히 스틱스 강에 몸을 담군 영웅들 다수를 양성하지도 않을 거고요.”
“그럼 다행이지만요. 그나저나 수많은 영웅들을 보았으면서도 왜 이 아이에게만 특별 대우를 해주는 건가요?”
당연히 전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헤라클레스가 기가스를 때려잡을 미래를 알고 있습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여기 제우스가 보내온 서신을 보시면… 헤라의 젖을 먹은 데다가, 독사 두 마리를 태어난 직후에 죽였다는군요.”
“독사요..? 어쩌다가…”
“헤라가 보냈을거라고 추측됩니다. 사생아인지라 어쩔 수 없죠.”
“아…”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흑발의 여신.
헤라클레스를 보며 혀를 차는 그녀에게 설명을 조금 더 덧붙였다.
“이 아이를 데려온 자는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고, 제우스가 번개를 담은 서신으로 제게 부탁하더군요.”
“아마도 헤라 여신이 자는 틈에 몰래 젖을 먹였겠네요. 그녀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겠어요.”
“그렇죠. 그리 순탄치 못한 삶을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괴물의 시체와 인간들의 질투심으로 가득찬…”
나는 시녀의 손에 들린 아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헤라클레스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짐작하지 못한 채, 편안한 얼굴로 잠자고 있었다.
사실… 신들의 승리를 위해 제우스가 의도적으로 낳은 아이가 바로 이 헤라클레스.
태어날 때부터 헤라의 젖을 먹이고, 독사를 죽일 정도로 강한 것은 확실하지만…
힘든 운명에 너를 빠뜨린 것이 아닌가 싶구나.
그래도 스틱스 강에 몸을 담갔으니 그 운명을 헤쳐나가는 것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응애! 으아아앙!”
“아니…!”
“아앗! 하데스! 잠시만 눈길을 돌려요. 시선에 담긴 힘을 버티지 못하고 울고 있어요!”
스틱스 여신님의 당황한 목소리에 황급히 시선을 떼고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내가 너무 뚫어져라 쳐다보았나. 가끔씩 이런 실수를 하네…
한 달 동안 저승의 음식을 먹일 수는 없으니 유모를 구하던가 이승의 음식을 들여오는 방법을 취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