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0)
작가 – 이대성(가나)
연재한 곳 – 네이버 웹소설
서장
그에게 물었다.
“권왕(拳王)과 당신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내가 질문하자 그의 오만한 얼굴에 흥미롭다는 기운이 서렸다.
“고작 그것을 물어보려 이곳까지 왔는가?”
“저에겐 중요한 일이니까요.”
“재미있군.”
그는 내 질문을 웃어넘기려는 듯했지만 이내 진지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어느 정도 희생을 각오한다면 내가 이긴다.”
“희생이라면……?”
“팔이나 다리 하나 정도는 내줘야겠지.”
“필승을 자신하나요?”
그는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한다.”
나는 지필묵을 꺼내어 종이에 하나의 획을 그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도왕(刀王)과 당신이 붙으면 누가 이기나요?”
“도왕이라…….”
그는 피식 웃으며 고민도 없이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 내가 이긴다.”
“아무 희생 없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놈은 아직 벽을 보지 못했지. 지금이라면 아무런 피해 없이 놈을 제압할 수 있다.”
“만약 벽을 보았다면?”
“그럼 마찬가지로 팔이나 다리 한쪽 정도는 내줘야겠지.”
“그래도 필승을 자신하신다는 거군요.”
“물론.”
나는 다시 종이에 다른 획을 그었다.
그리고 또 물었다.
“그럼 검왕(劍王)과 당신이 붙으면 어떻습니까?”
이번에도 그는 생각에 잠겼다.
하나 조금 전까지와는 다른 꽤나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그는 신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양패구상이다.”
나는 붓을 꺼내들려던 손을 멈칫하며 되물었다.
“천하에 무서울 것이 없다는 야수왕(野獸王)께서도 필승을 자신하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나의 도발에 그의 얼굴이 불쾌함으로 일그러졌다.
“검왕은 벽의 끝을 본 녀석이다. 나와 같지. 그럼 승부는 설령 신이라도 예측할 수 없다. 그날의 몸 상태나 마음가짐으로 승부가 갈릴 것이다.”
“상대가 최상의 몸 상태라면?”
야수왕.
구휘(嶇輝)는 내 질문에 씁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내가 죽을 확률이 높겠지.”
“알겠습니다.”
나는 종이에 이번에는 여지까지와는 다른 세로의 획을 하나 그었다.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야수왕이 입을 열었다.
“그것이 그대가 만들고 있다는 그 작품의 재료인가?”
“예. 강호를 바꿀 재료죠.”
“실로 재미있는 발상이다. 하지만 제법 흥미가 생기는군. 완성된다면 나도 한번 보여 주겠는가?”
“물론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요구할 만한 자격이 있으니까요.”
야수왕 구휘.
그의 오만한 얼굴에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나는 그 미소를 보며 기습적으로 질문했다.
“그럼 수라왕(修羅王)과의 승부는 어떤 결과가 나옵니까?”
“수라왕이라…….”
그는 이번에는 곤혹스러운 얼굴을 해 보였다.
세상에 거칠 것이 없다고 알려진 이 사나운 사내가 이런 표정을 짓게 될 줄은 나도 예상하지 못했기에 그의 얼굴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잠시 후 그가 마지못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다른 녀석들은 몰라도 그 녀석과는 싸우기 싫다. 그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군.”
그 전까지와는 다른 불명확한 대답이다.
그랬기에 다시 물었다.
“그것은 당신의 패배를 시인하는 것입니까?”
“글쎄. 아무래도 그것과는 조금 종류가 다른 것이긴 하지만…….”
그는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해도 무방하겠군.”
이번에는 내가 살짝 곤혹스러운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러자 내 표정을 보던 야수왕이 야릇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갑자기 궁금해졌다. 날 찾아오기 전에 다른 녀석들도 찾아갔겠지? 그놈들은 놈에 대해서 무어라 하던가?”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직은 외부에 공개할 때가 아니다.
“……차후에 완성된 작품을 보시면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가? 아쉽군.”
그는 예상외로 선선히 물러섰다.
중원의 예의범절을 모르는 그라면 조금 더 강짜를 부릴 줄 알았는데…….
어찌 되었든 의미를 알 수 없는 묘한 미소를 그리고 있는 야수왕을 남겨 두고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이곳 남만(南蠻)까지 온 소기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골치 아픈 문제가 남아 있었다.
‘사대천왕(四大天王)의 모두가 같은 말을 하다니…….’
나는 종이에 쓰여 있는 수라왕이라는 이름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사대천왕.
차세대 강호를 주도할 그들 모두가 수라왕에 대해서는 한결같은 대답을 했다.
싸우기 싫은 상대.
하나 굳이 승부를 결해야 된다면 자신의 패배를 시인하는 상대였다.
그 후에는 다들 야수왕과 똑같은 웃음을 입가에 그리며 되물어 보았다.
다른 자들의 의견은 어떠했느냐고.
이것은 대체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저 웃음의 뜻은 대체 뭐지?
‘그에게는 알려진 것 외에 다른 무언가가 더 있다는 건가?’
나는 살짝 짜증 섞인 얼굴로 종이에 세로의 획을 그었다.
수라왕 초류향(草流香).
이 사내 한 명 덕분에 작품의 완성이 너무 늦어져 버렸다.
나를 제일 힘들게 했던 사내.
강호에 가장 이른 나이에 등장했으나 천하를 가장 혼란스럽게 했던 사내.
“수라왕…….”
나는 그의 순위를 조정하며 종이를 덮었다.
반쯤 장난스럽게 시작했던 일이 드디어 끝이 난 것이다.
―강호서열록(江湖序列錄)의 저자 냉하영(冷夏榮).
그녀의 회고록에서 발췌.
나는 등가교환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등가교환의 뜻은 무언가를 주면 그와 상응하는 어떤 것을 얻는다는 것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거저 얻는 것이 있으면 거저 잃는 것 역시 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이 세상의 당연한 진리를 굉장히 어린 나이에 경험하게 되었던 것 같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