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1)
제11화 위기의 초류향(2013.02.18.)
그림 속의 노인.
그가 과거에 심심풀이로 만들어놓았던 여러 가지 진법들.
그것들 중 팔문금쇄진을 조조(曹操)가 우연히 훔쳐보고는 손자병법을 운운하며 본인이 만들었다고 우기고 다니는 걸 보았을 때도 노인은 그냥 웃어 넘겼다.
그리고 그것이 후대에 조조가 창안한 진법으로 잘못 전해지게 된 것까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누가 만들었든 간에 그것은 노인 자신에게는 썩 중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조조 그놈은 진법의 요체를 정확하게 가져다가 사용했기에 나름 인정해주었다.
허나 맨 처음 초류향이라는 아이가 조기천에게 보여 주었던 진법은 여러모로 불완전한 물건이었다. 노인은 그것을 보자마자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고의적으로 누락시켰다?’제법 진법을 깊게 이해하고 있는 어린 녀석이 일부러 진법의 일부분에 구멍을 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녀석은 곧 그 구멍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메우더니 다시 완전한 진법으로 만들어냈다.
나이 어린 소년이 해냈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입이 절로 벌어질 만큼 놀랐다.
그리고 흥미진진했다.
노인이 심심풀이로 만들어 놓았다지만 여기의 가장 밑바닥에는 산법의 핵심에 근접한 이치가 들어가 있었다. 그것을 잡아내지 못한다면 이곳에서는 결코 살아나갈 수 없었다.
‘이제 나에게 보여 주어라. 네 재능이 어디까지 닿았는지.’ 초류향이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설마? 벌써?’여유가 철철 넘치는 노인과는 달리, 초류향은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터져 나오는 비명을 속으로 주워 담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무렵. 갑자기 바닥의 땅거죽이 솟구쳐 오르더니 눈앞으로 거대한 석벽이 생겨났다. 그것은 초류향의 주변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쇄(鎖:잠그다)가 벌써 발동된 건가?’이 진법의 시작은 제일 먼저 안과 밖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지금 초류향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기껏해야 한 평 정도 되는 작은 공간. 바깥에 그려 놓았던 진법 딱 그 정도 크기인 것이다.
‘망했다.’초류향은 노인을 부르는 것을 포기하고 빠르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살아날 구멍이 있나 찾아본 것이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킨 후 손을 앞으로 뻗어보았다.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눈앞에 있는 석벽이 진짜인지 아닌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앞으로 조심스럽게 뻗은 손바닥으로 석벽의 딱딱한 질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지금 눈앞에 닥친 절체절명의 위기도 잊은 채 초류향은 본인도 모르게 감탄했다. 이것은 분명 형체가 없는 환상이다. 아니 환상이어야 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뻔히 알고서도 느껴지는 이 사실감은 정말 놀랍지 않은가?
‘형체가 있다? 하하.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태어나 단 한 번도 현실에서 이런 괴이한 일이 가능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성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눈앞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본인이 만든 작품이 아닌가?
초류향은 그 대목에서 잠시 흐뭇함을 느꼈다가 동시에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너무 완벽하게 만들어진 바람에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던 탓이다.
절벽의 단면을 주먹으로 쿵쿵 때리기 시작하며 초류향은 생각했다.
‘제일 처음 진법이 움직이는 시기는 앞으로 일각(15분) 정도 이후부터다.’계산대로라면 일단 이 진법은 안에 있는 사람을 완전히 가둔 후 일각 안에 제1차 변화가 시작될 것이었다. 그 안에 무언가 그럴싸한 해결책을 내놓아야 했다. 수식에 적혀 있던 진법의 위력을 감안할 때, 1차 변화가 찾아오는 순간이 오면 결국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죽는다면 그야말로 개죽음이다.
‘그럴 순 없지.’초류향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우선 제일 처음 변화는 북쪽에서부터.’동서남북.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키는 진법의 핵심이 그곳에 있었다.
‘북쪽에서부터 불어오는 거친 물이라….’잠시 수식을 해석하고 있던 초류향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쓰여 있던 수식과 그가 풀어놓은 계산대로라면 그 위력은 감당할 수 없이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제일 처음은 현무의 조화.’동서남북을 담당하는 사신수(四神獸).
진법을 표현해 놓았던 수식들은 그것에 빗대어 해석되고 있었다.
동청룡, 서백호, 남주작, 북현무.
그것들 중 제일 처음은 북쪽을 담당하는 수신(水神).
현무가 조화를 부리니 곧 거대한 파도가 몰려올 징조였다.
문제는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전문적으로 진법을 배운 진법가들이 봤으면 상당히 의아해할 만한 일이었다. 진법의 발동순서를 이다지도 정확히 알고 있고, 심지어 발동 형태까지 파악하고 있는 상태다. 그럼 당연히 파훼법이 나와야 정상이었다.
만약에 진법을 이렇게까지 자세히 파악하고 있는 진법가가 지금 이 진법 안에 들어와 있었다고 하면, 일각도 안 돼서 진법을 파훼하고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수식이 아닌 음양오행, 즉 상생상극의 조화로 진법을 해석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초류향은 진법가가 아니었다.
애초에 진법을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었다.
초류향이 알고 있는 것은 오직 산법. 그 하나만으로 지금의 현상을 해석하고 파훼법을 찾으려고 하니 어려웠던 것이다.
‘현무가 의미하는 게 뭐지? 여기서 살아나갈 방법은 뭐야?’초류향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해대며 본인이 얼마나 궁지에 몰려 있는지 자각했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쥐어짜냈다. 그렇게 발버둥치고 있는 순간에도 삶과 죽음, 그 경계선은 착실히 초류향의 목을 조여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사방에 숨 막힐 듯한 적막감이 찾아왔다.
꿀꺽-
초류향은 그 불길한 고요함에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그 순간 주변의 공기가 무섭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웅웅웅웅-
첫 번째 변화.
그것이 지금 막 시작되려는 것이었다.
쿠그그극-
바닥이 빠르게 위로 솟구쳐 올라갔다.
쓰러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바라보니, 주변을 막아서고 있던 절벽이 아래로 내려가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보였다.
절벽으로 가로막혀 보이지 않았던 그 너머의 광경이.
“하… 하하하….”코끝을 스치는 짠 내음.
초류향은 본인도 모르게 실실 웃고 말았다.
너무 어이가 없으니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잖아?’
만경창파(萬頃蒼波: 거리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푸른 물결).
절벽 너머를 바라보는 순간, 딱 그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푸른 바다가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연이어 눈에 들어온 것은 하늘에 닿을 듯이 넘실거리는 파도였다.
바다는 지금 크게 화를 내고 있었다.
고오오오-
대기가 미칠듯이 요동치며 덮쳐오는 해일의 위력을 가늠하게 해주었다.
첫 번째 변화.
수신 현무의 진노(震怒).
즉 만경창파의 거대한 해일이 초류향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몸이 저절로 떨렸다.
두려움에 이가 딱딱 부딪치기 시작했고 엄청난 속도로 몰려오는 파도의 위력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생각해. 생각해내야 한다. 죽기 싫으면, 살고 싶으면 생각해!’안경을 고쳐 쓰며 초류향은 눈을 반짝였다.
분명히 여기 어디엔가 안전한 장소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짐작이나 예감 같은 것이 아니었다.
진법에는 생문(生門)과 사문(死門)이 있다.
정식으로 진법을 배운 것이 아니었기에 알고 있는 지식은 그것이 전부였지만 초류향에게 있어서 그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했다.
초류향은 머릿속으로 수식들을 빠르게 풀어나가며 천천히 바닥을 더듬거렸다.
‘진법의 변화를 담당하는 곳은 총 여덟 곳. 그 중에 생문은….’진법의 중추가 되는 변수는 총 여덟 개였다.
그 변수 중 하나가 지금 발동되었으니 여덟 곳 중 단 한 곳의 자리가 안전하게 비어 있다는 소리였다. 문제는 그곳이 어디인지 전혀 모른다는 것에 있었지만.
그래도 초류향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지금 초류향이 서 있는 곳은 섬이었다.
딱 한 평 크기의 작은 무인도. 사방이 바다로 가로막혀 있고, 그 가운데에 홀로 외롭게 떠 있는 작은 바위섬에서 초류향은 지금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그리고 수색 범위가 좁았던 만큼 찾던 것은 금방 발견되었다.
하지만 초류향은 한동안 망설였다.
‘정말 여기가 맞을까?’딱 어린아이 하나가 앉을 정도의 작은 공간. 주변에 있는 다른 돌덩이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넓고 평탄한 바위를 보며 초류향은 생각했다.
계산대로 답을 내보았을 때 이 바위가 있는 곳은 숫자로 오(五)를 의미했다.
즉 팔각형의 꼭짓점들 중에 가장 남쪽. 북쪽의 수신 현무의 자리와는 완전히 대칭되는 장소가 바로 저곳인 것이다.
초류향은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게다가 상황도 아주 고약했다.
잘못된 선택 한방에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최악의 상황인 것이다.
초류향은 떨리는 손으로 안경을 고쳐 쓰며 씁쓸하게 웃었다.
본래 맨 처음 했던 생각은 북쪽의 수신 현무가 발동되었으니, 그것이 발동되었던 자리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 불쑥 어떤 의심이 연이어 떠올라 맨 처음의 생각을 빠르게 따라잡아 내려누르고, 초류향의 전신을 지배했다.
그것은 아주 단순한 의심.
‘이렇게 쉬울 리가 없지.’여태까지의 진행 상황만을 놓고 보았을 때. 진법이 발동되는 것에도 아주 복잡한 수식들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변수의 존재들도 그러했고,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일들 투성이었다. 머리가 터져 버릴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그 해답이 이렇게 단순 명쾌하게 나오다니?
절대 그럴 리가 없다.
거기에 강한 의구심과 함께 반발심이 생겼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바로 이곳이다.
그런데 확신이 없었다.
처음의 생각이 맞을지, 나중의 의심이 맞을지.
‘확률은 반반. 아니, 사실 절반도 안 되는 확률 같은데.’
쿠콰콰콱-!
초류향은 코앞까지 다가온 해일을 바라보다 자신도 모르게 툴툴 웃었다.
이젠 해일에서 일어나는 새하얀 포말이 눈에 보일 정도다.
정말 선택의 순간이 온 것이다.
산법에 있어서 확률을 논한다는 것은 매우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계산법이다. 그리고 초류향이 산법에서 가장 싫어하고 피하고자하는 계산법이었다.
‘게다가….’지금 더 큰 문제는 무엇보다 확률이 더 적은 곳임을 알면서도 본능적으로 그곳을 향해 몸을 움직이는 자신이었다. 그 한심함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결국 나중에 든 의심.
즉, 산법으로는 계산되지 않았던 직감이라는 것을 믿기로 했다.
그렇게 초류향이 자리로 몸을 움직이는 순간.
거대한 해일이 초류향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
‘이상하군.’진법의 제일 바깥쪽에 진입한 조기천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턱수염을 연신 쓰다듬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진법이 발동되어 제일 첫 번째 변화에 들어선 것은 들어오자마자 알 수 있었다.
팔문금쇄진.
그것은 그가 고대의 문서상으로만 존재했던 것을 진법으로 복원해냈기 때문에 현재 천하의 그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게다가….’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살펴보면 위나라의 시조이자 난세를 주름잡았던 조조(曹操)가 나온다. 이 팔문금쇄진은 난세의 간웅으로 잘 알려진 그가 손자병법을 참고해서 직접 만들었다고 알려진 것이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조조가 만든 이 희대의 절진을 격파한 것은 유비의 모사로 유명한 서서다.
아무튼 본래 팔문금쇄진은 대규모의 병력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며 적들을 격살하기 위해 만들어진 병영진법(兵營陣法)의 한 형태였다. 조기천이 한 일은 그것을 응용하여 진법(陳法)으로 만들어 놓았을 뿐이다.
병영진법과 그냥 진법은 그 쓰임과 용도가 분명 다르다. 하지만 당연히 그 중요한 요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제 여기가 슬슬 열려야 되는 것이 분명한데….’팔문이라는 이름처럼 이 진법에는 여덟 가지의 묘리가 숨겨져 있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조기천이었기에 진법의 제일 바깥에 들어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 시각에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눈앞에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열려야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문은 고사하고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이 거대한 바위벽은 대체 무엇이라는 말인가? 손을 뻗어 만져 보니 그 질감과 단단함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 아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그가 적어준 수식으로는 절대 이 정도의 현실감을 보여줄 수가 없다. 이 정도의 사실감과 현실감이라면 현재 황실을 보호하고 있는 현령천무대진(顯靈天武大陳)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 아닌가?
‘하지만….’조기천은 바닥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견고해 보이긴 했다.
하지만 전혀 들어갈 틈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초류향에게 이 진법을 풀어 써주었던 조기천이라면 여기에 있는 치명적인 빈틈 역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러 허술하게 만들어놓은 빈틈.
그것은 고의적으로 누락시켜 놓은 것이었다.
진법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던 조기천이었기에 초류향이 돌파하기 쉽도록 일부러 만들어 놓은 빈틈.
하지만 즉석에서 생각해낸 것이라 똑똑한 초류향이 오히려 그것을 눈치 채고 빨리 돌파할까 걱정했을 만큼 허술했던 빈틈이다. 조기천은 지금 그 미세한 균열을 찾고 있었다.
‘아마 지금쯤이겠군.’훌륭한 진법이란 시시각각 자유롭게 변화하는 것이어야 했다.
그 한없이 무한한 자율성이야말로 예측 못할 변화를 만들어내고 그 엄청난 변화 속에서 진법은 비로소 완전해진다.
조기천은 바닥을 살피며 이동하다가 어떠한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셈을 하며 차분하게 기다렸다.
조기천은 손을 살며시 앞으로 뻗으며 속으로 말했다.
‘지금.’
와르륵-
정면을 막고 있던 석벽이 그의 가벼운 손길에 힘없이 무너지며 뻥 뚫린 입구를 열어 보였다.
원하던 입구가 열렸지만 조기천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전보다 더욱 심각해졌다.
‘대체 무슨 짓을 해 놓은 게냐?’
본래의 진법보다 적어도 그 위력이 열 배 이상 강력해져 있었다.
조기천의 얼굴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