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15)
제115화 도협 강세빈(2014.02.13.)
진법 안에 있던 수많은 정도맹의 사람들 중 유일하게
멀쩡하게 버티고 있는 사람.
도협 강세빈.
콰가각-!
그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청동 거인을 흥미진진한 얼굴
로 바라보다 가볍게 썰어 버린 후 중얼거렸다.
“신기하군.”강호에서
온갖 괴이한 일들은 겪을 만큼 겪어 보았다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다.
아직도 세상은 신기한 일투성이였다.
강세빈은 허공에 칼을 한 번 휘둘러 돌가루를 털어 낸
다음 흐릿하게 웃었다.
“그나저나 같이 들어왔
던 다른 녀석들은 다 어디로 끌려 나간 거지…….”함
께 진법 안에 들어왔던 정도맹의 사람들.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단지 주기적으로 붉은빛이 번뜩일 때마다 주변에 있는
기척들의 숫자가 확실하게 줄어들었다는 사실만 기억할
뿐이다.
강세빈은 청동 거인들을 모조리 정리한 뒤 주변을 둘러
보다가 중얼거렸다.
“슬슬 시간이 되었는데
…….”과연 잠시 후.
눈앞에서 붉은빛이 번뜩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겨난 엄청난 흡인력이 강세빈의 몸
을 거세게 끌어당겼다.
“순순히 끌려가는 건
체질상 맞지 않지만…….”강세빈은 툴툴 웃으며 조용
히 전신의 힘을 풀었다.
지금으로선 별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저 안에 무엇이 있는지도 궁금했다.
슈르르륵-
강세빈이 저항을 멈추자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붉은빛
이 흘러나오는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온다, 준비해라.”붉
은빛이 번뜩이고 이화궁의 고수들은 정해진 수순처럼
뜰채를 앞으로 뻗어 넣었다.
얼마나 이 작업을 반복했을까?
서서히 바깥으로 딸려 나오는 정도맹 고수들의 숫자가
적어지더니 나중에는 붉은빛마저도 뜸해졌다.
이제는 안쪽에 사람이 없다 싶었는데 돌연 붉은빛이 번
뜩였다.
‘기껏해야 한두 명이겠
지.’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안으로 집어넣었던 뜰채가 갑자기 가벼워지는 것이 느
껴졌다.
‘응?’뭐지?
이화궁의 고수들은 의아한 얼굴로 안에 집어넣었던 뜰
채를 다 꺼내보았다.
그리고 얼굴을 굳혔다.
“조심해라. 이상한 놈
이 있는 모양이다.”뜰채의 앞부분이 모두 깨끗하게 잘
려나가 있었다.
대략 십여 개 정도가 동시에 잘린 것이다.
여태까지 이런 일은 없었다.
각 조의 조장들이 굳은 얼굴로 수하들을 관리하며 급하
게 시선을 돌려 누군가의 모습을 찾았다.
“무슨 일이냐?”선우초
린.
그녀가 피 묻은 채찍을 질질 끌며 가까이 다가오자 조
장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뜰채가 모두 잘렸습니
다.”“그래?”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예. 소교주님의 지시대로라면
안에 저희들로는 감당이 되지 않을 고수가 있는 듯해서
부궁주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선우초린은 턱을 한
번 쓰다듬었다.
소교주가 말한 대로라면 안에는 제법 강력한 고수가 있
을 터였다.
‘그게 어느 정도 수준
이냐가 중요한데…….’일단 지금까지 바깥으로 끌려
나온 놈들 중 제법 거칠게 반항하는 녀석들은 선우초린
과 그녀의 직속 부하들만으로도 처리가 가능했다.
하지만 절정 고수들인 그녀들도 감당이 되지 않는 경우
가 있는 법.
‘화경의 고수가 대기하
고 있다가 덤벼들면 곤란하지.’선우초린은 잠시 고민
했다.
비마대가 알려준 정보에 의하면 저 안에는 아직 화경의
고수가 셋이나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역시 소교주의 손을 빌리는 게 나을 것인가?
망설이다 힐긋 소교주 쪽을 바라보자 초류향이 냉정한
얼굴로 진법에 어떤 조작을 가하고 있는 게 보였다.
함부로 방해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그냥 한번 도전해 봐?
’선우초린은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최악의 경우 화경의 고수가 있다 하더라도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선우초린이 그렇게 마음먹고 움직이려는데.
갑자기 진법에서 붉은빛이 요란하게 뿜어져 나왔다.
“어?”근처에 있던 이
화궁의 고수들이 의아한 얼굴을 할 때.
푸아악-!
진법의 한 귀퉁이가 통째로 갈라져 나가며 누군가가 그
곳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칼을 비스듬히 비껴들고 흥미진진한 얼굴로 걸음을 옮
기는 사내.
‘도협 강세빈!’선우초
린의 머릿속에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그녀의 몸이 새털처럼 가볍게 움직이며 강세빈
의 전면을 막아섰다.
전신에 피 칠갑을 하고 있는 미녀.
그녀의 등장에 강세빈은 걸음을 우뚝 멈춰 섰다.
잠시 선우초린의 아래위를 살펴보던 강세빈은 칼을 칼
집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계집과는 싸우기 싫다
. 가서 네 주인을 데려와라.”강세빈의 말에 선우초린
의 눈가에 잔경련이 일어났다.
그녀가 살심이 크게 일어날 때마다 보이는 버릇이었다.
“가끔 너 같은 놈들이
있지.”그녀가 가장 꼴 보기 싫어하는 부류였다.
강함에 남녀의 구별은 없었다.
단지 어떤 재능을 가지고 얼마나 노력했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강세빈을 노려보던 선우초린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분하지만 상대방의 실력은 그녀보다 월등히 위였다.
혹시라도 그녀에게 강세빈만큼의 재능과 시간이 주어졌
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만약의 일.
현재의 승부는 너무도 결과가 뻔했다.
“싸우기 싫다고 했지
죽이지 못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계집. 까불지 마라.”
도협 강세빈이 비웃는 듯한 어투로 말했다.
그의 도발에 선우초린이 막 발작하려 할 때 누군가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안경 낀 소년.
초류향.
“그쪽이 도협 강세빈입
니까?”“그러는 네가
소교주냐?”“네, 제가
소교주 초류향입니다.”초류향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
다.
그리고 강세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불쑥 입을 열었다.
“그쪽은 오늘 운이 좋
았습니다.”“뭐?”안경
을 고쳐 쓰며 초류향이 으스스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죽을 목숨 살게 되었
으니 늘 오늘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아이콘
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돌았구나.”초류향은 도협
강세빈의 볼이 씰룩거리는 걸 보았다.
분노한 것이다.
그 순간 도협 강세빈의 칼집에서 선명한 붉은빛이 뿜어
져 나왔다.
쾅-!
초류향은 자신의 귓불을 스치고 지나가 터져 버린 강기
를 무덤덤한 시선으로 힐긋 바라보았다.
도협의 강기를 주먹으로 비켜 쳐 낸 사내.
노진녕의 얼굴에서는 평소의 장난스러움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초류향의 무사를 확인한 그는 크게 분노한 얼굴로 도협
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개뼉다구 같이
생긴 놈이 와서 지금 감히 누구에게 손을 대려 한 거냐
? 응? 이 개자식, 오늘 네놈 뼈다귀가 얼마나 단단한지
이 어르신이 한번 시험해 주마.”우두둑-
마치 동네 건달패들처럼 두 주먹의 관절들을 풀어 대며
노진녕이 인상을 쓰자, 도협 강세빈은 어이없다는 얼굴
을 해 보였다.
저런 무식해 보이는 녀석이 그의 강기를 주먹으로 아주
쉽사리 쳐 낸 것이다.
‘화경의 고수?’도협
강세빈.
그의 볼이 차츰 떨려 왔다.
이건 제법 재미있지 않은가?
화경의 고수는 그 이름의 희소성에 걸맞게 무척이나 보
기 드문 존재였다.
당연히 싸울 기회도 적었다.
늘 강자와의 싸움에 목말라 있는 도협 강세빈이었다.
그런 그에게 노진녕의 등장은 사막 한가운데에서 샘물
을 만난 것과 같았다.
“오냐, 한번 해보자.
얼간이.”도협 강세빈이 허리를 살짝 낮추며 칼끝을 등
뒤로 향하게 잡았다.
당장이라도 들이닥칠 기세.
그것을 본 순간 노진녕의 몸에서 묵직한 먹빛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사방을 내리누르는 강대한 힘.
불완전한 천마신공을 극성까지 뽑아낸 것이다.
노진녕은 킁 하고 콧바람을 내뿜으며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쿠웅-!
“네놈의 척추뼈를 뽑아
주마.”노진녕이 말과 동시에 앞으로 달려들며 강하게
주먹을 내뻗자 도협 강세빈은 잇몸이 보일 정도로 벌겋
게 웃었다.
* * *
‘기회다.’이화궁의 고
수들 사이에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여인.
어디 가나 쉽게 볼 수 있는 얼굴 덕분에 인상이 조금
흐릿했다.
여인의 이름은 ‘화령’.
그녀는 천마신교의 사대 세가에서 몰래 심어 놓은 자객
이었다.
선우초린조차도 모르게 잠입해 있던 그녀의 목적은 너
무도 분명했다.
‘초류향.’소교주 초류
향.
그의 목숨을 노리는 것이다.
화령은 맨 처음 임무를 부여받았을 때 대단히 의아했다
.
소교주니, 천마신교의 후계자니……. 대단한 직위이긴
하지만 이런 겉치장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껏해야 어린아이 아닌가?
저런 꼬맹이 하나 죽이는 게 뭐가 그리 힘들다고 사대
세가부터 시작해서 모두가 그리 난리법석을 피웠던 걸
까?
뭐, 이곳에 있는 동안 지켜보니 제법 재주는 있는 듯했
다.
‘하지만 그뿐이지.’재
주가 있는 인간이든 없는 인간이든 죽는 건 한순간이었
다.
칼로 찌르면 죽는 건 모두 똑같다.
‘죽음은 모두에게 공평
해.’화령은 조금씩조금씩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초류향
을 향해 이동했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모두 노진녕과 도협 강세빈의 싸움에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화령은 천천히 초류향 주변의 어둠 속을 살펴보았다.
‘하나, 둘…… 셋, 넷
…….’도합 스무 명 정도가 꼼꼼하게 초류향 주변에
은신해 있었다.
마라천풍대.
천마신교의 최정예라 불리는 교주 직속 호위대였다.
하나 그들도 지금 전면에서 벌어지는 위험천만한 싸움
에 신경 쓰느라 뒤쪽의 감시는 조금 소홀했다.
날아오는 파편들과 강기의 조각들을 어둠 속에서 일일
이 걷어내는 것이 눈에 또렷이 보였던 것이다.
화령은 자꾸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억눌렀
다.
‘미안해요, 소교주님.
저와 함께 가요.’소교주를 죽이든 죽이지 못하든 어차
피 그녀는 죽은 목숨이었다.
일격을 날리는 순간 소교주의 생사를 확인하기도 전에
목이 떨어질 게 분명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아.
’자신과 같은 암살자는 어차피 소모품이었다.
그래도 그녀의 목숨이 소교주라는 거물과 함께 소진된
다면 그것만으로도 제법 만족스러운 일 아니겠는가?
그렇게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며 화령은 움직였다.
최적의 기회를 발견한 것이다.
‘지금!’초류향의 뒷목
이 보였다.
화령의 신형이 빛살처럼 움직이며 소매에서 암기를 꺼
내 드는 그 순간.
초류향이 고개를 돌리고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극히 침착하고 고요한 눈빛.
‘얼레?’뭔가 이상했다
.
그녀가 예상했던 그림에는 이런 장면이 없었기 때문이
다.
문득 뒷머리가 선뜻해지며 본능이 위험을 강하게 경고
해 왔다.
소교주가 천천히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바닥에 던
진 순간, 그녀의 눈앞이 새카매지며 어둠이 찾아왔다.
“소교주님!”어둠 속에
있던 임학겸이 급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초류향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빠르게 주변을 훑으며 곤혹스러운 얼굴을 해 보
였다.
방금 분명 누군가가 이곳에 있었는데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저는 괜찮습니다, 임
대주님.”“……예에.”
임학겸이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앞으로 걸어 나
가려 하자 초류향이 입을 열었다.
“너무 그쪽으로 다가가
진 마세요. 거기에 잡아 놨으니까.”아이콘을 끌 수 있
습니다. 끄기“아!”역시 진법이었다.
임학겸은 소교주 초류향을 잠시 괴물 보듯이 바라보았
다.
자신조차 무언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낀 순간 가슴이 철
렁 내려앉았다.
전문적으로 은신과 암습을 배운 녀석이 소교주를 급습
했던 것이다.
그 빠른 움직임과 은밀함에 반응이 늦었다.
한데 소교주는 어떻게 알았는지 미리 고개를 돌리고 그
곳을 응시하고 있었지 않은가?
‘대체 정체가 뭐지……
.’아무래도 진법을 한다는 것 외에도 다른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임학겸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천천히 자신이 만들어 놓은 규진법으로 다가가던 초류
향의 머리 위로 희미한 붉은색 눈동자가 번뜩였다가 사
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