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16)
제116화 타오르는 불꽃(2014.02.17.)
“인간이란 참으로 나약한 존재다.”아수라멸천환락진
경.
줄여서 수라환경이라 부르는 그것을 만든 사람.
천마 홍순원은 입에 연초를 비스듬히 꼬나물고 이런 말
부터 먼저 툭 하고 던졌다.
“육체의 나약함? 이건
그것과 별개의 문제다. 정신적으로 인간은 무척이나 약
하지.”초류향은 묵묵히 들었다.
어차피 수라환경의 기본적인 운용 방식이라든가 사용법
같은 것은 머릿속에 다 들어가 있었다.
기대대로라면 천마 홍순원은 그것 외에 다른 종류의 무
언가를 가르쳐 줄 것이다.
“공손천기라고 했었나,
그 애송이.”천마 홍순원은 턱을 한 번 쓰다듬으며 묘
하게 웃었다.
“그놈 정도라면 아마
알고 있을 거다. 기본적으로 그만한 위치에 올라서야
보이는 것이니까.”천마 홍순원의 머리 위쪽에 갑자기
거대한 붉은색 눈동자가 떠올랐다.
‘저것은…….’과거에
도 본 적이 있었다.
공손천기 스승님의 머리 위에 떠 있던 눈과 같은 것이
아닌가.
잠시 그것을 멍하게 보고 있자 천마 홍순원이 입을 열
었다.
“역시 네놈에게는 보이
는군. 너에게 수라환경의 진짜 모습을 가르쳐 준다고
했지? 이것이 바로 그것이다.”초영역.
주변의 일정 범위를 완벽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범위 안의 모든 정보를 다른 감각 기관을 통해서 얻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직통으로 주입하는 것이다.
육감을 최고조로 극대화한 형태가 바로 이것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공손천기 그 애송이가 쓰는 것도 아마 이것과 비슷한
종류일 것이다. 그놈 역시 타고난 재능이 대단한 놈이
니 스스로 거기까지 깨우친 것일 터. 하지만 그놈 것은
지나치게 투박해. 게다가 이것저것 잡다한 것들이 섞여
있어서 고급스럽지 못하지. 못난 놈이다.”천마 홍순원
은 공손천기를 욕했다.
동시에 그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거대한 붉은색 눈동자
가 하늘로 둥실둥실 떠올랐다가 천천히 내려왔다.
“수라환경은 무공 자체
도 강렬하지만 초감각을 열어 영역을 다스려야 완성된
다. 그것이 완성된다면 일정 범위 안에서는 신과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거지.”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
정말 그의 말처럼 어느 특정 범위 안을 완벽하게 지배
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무서운 힘도 없을 것이다.
“육체가 아직 영글지
못해서 익힌다 하더라도 고작 흉내 내기에 그치겠지만
…… 지금으로선 어쩔 수 없지. 차츰 익숙해지길 바라
는 수밖에.”그때 천마에게 배워온 것.
그것이 초류향의 목숨을 구했다.
* * *
암살자 화령.
그녀는 주변이 컴컴해지는 순간 모든 것을 포기했다.
일을 그르쳤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녀처럼 소모품으로 이용되는 살수는 임무에 실패하고
사로잡혔을 시 자살을 해야 했다.
고문으로 그녀에게서 의뢰자의 정보를 빼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순 없지.’그녀
가 어금니에 숨겨 두었던 독단을 깨물려고 할 때.
갑자기 전신이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아무리 발버둥을 치려고 해도 털끝만큼도 움직여지지
않는 상황.
심지어 눈꺼풀조차도 감기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어둠 속에서 새하얀 손 하나가 불쑥 나타
났다.
자기 몸뚱이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어둠 속에서도 이상
하게 그 손만은 뚜렷하게 보였다.
손은 한동안 허공을 휘적거리더니 곧장 그녀의 옷소매
를 확 잡아챘다.
그녀가 힘없이 바깥으로 끌려 나옴과 동시에 누군가가
그녀의 혈도를 짚었다.
“죽이시면 안 됩니다.
소교주님.”“알고 있습
니다.”화령은 눈앞에 등장한 꼬마를 보며 절망했다.
그녀의 목표물이었던 소교주가 직접 그녀를 제압한 것
이다.
“심문은 나중에 하기로
하죠.”초류향은 그녀를 임학겸에게 인계한 후 몸을 일
으켰다.
도협 강세빈과 노진녕.
둘의 싸움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던 것이다.
쿠콰콰쾅-!
둘은 빠른 속도로 붙었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서로 붙었다가 튕겨져 나가는 거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달려드는 속도는 점차 빨라졌다.
‘여기서 밀리면 죽어.
’둘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투파파팍-!
마치 고무줄처럼 튕겼다 붙었다 하는 둘의 싸움을 바라
보던 초류향은 시선을 그 뒤쪽으로 옮겼다.
‘시작이군.’진법 전체
가 박동하고 있었다.
마치 태아의 숨소리처럼 느릿느릿하게 반응하던 진법이
어느 순간부터 천천히 그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구류마진의 변형된 형태.
오직 살생만을 위한 진법.
‘멸천화(滅天火).’초
류향이 속으로 그 단어를 떠올리고 있을 무렵.
뒤로 튕겨 난 노진녕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먹빛이
한층 진득해졌다.
동시에 그의 양쪽 주먹에 검은빛 전류처럼 일렁거리는
기운이 뭉쳐졌다.
‘승부다.’한눈에 봐도
심상치 않은 느낌.
도협 강세빈의 얼굴도 자연히 신중해졌다.
드드득-
그의 칼에서도 붉은빛이 뿜어져 나오며 가늘게 진동하
기 시작했다.
이번 일격으로 승부가 갈릴 게 분명했다.
도협 강세빈의 칼에서 붉은빛 강기가 쑤욱 뿜어져 나온
순간 노진녕이 움직였다.
오로지 직선으로 달리는 걸음.
적이 무슨 짓을 하건 말건 피하지 않고 당당하고 솔직
하게 들이닥치는 그의 걸음걸이는 초류향도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천마군림보(天魔君臨
步).’초류향은 노진녕의 보법을 살펴보며 왜 노진녕의
천마신공이 불완전한 무공인지 알 수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완전한 형태의 천마신공도 들어 있었
기 때문이다.
도협 강세빈은 노진녕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대한
위압감에 비릿하게 웃으며 칼을 두 손으로 맞잡고 그대
로 비틀며 앞으로 찔러 넣었다.
노진녕은 그 공격을 뻔히 보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헤벌쭉 웃으며 앞으로 달려드는 속도를 높였다.
도협 강세빈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푸우욱-
노진녕의 옆구리에 강세빈의 칼이 틀어박혔다.
한눈에 봐도 치명상이다.
하나 다가들고 있던 노진녕의 속도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이놈…….’이놈은 애
초부터 피할 생각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살을 주고 뼈를 친다.
’도협 강세빈의 눈가가 크게 뜨여질 때.
노진녕의 주먹이 그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뻐어어억-!
묵직한 느낌과 기분 좋은 울림.
‘컥!’입 밖으로 비명
조차 지를 수 없었다.
한순간에 눈앞이 아득해지며 두 다리에서 힘이 쭉 풀렸
다.
뿌드드득-!
척추에서 무시무시한 소리가 들리며 도협 강세빈의 허
리가 새우처럼 휘어졌다.
바닥으로 힘없이 쓰러지는 강세빈을 보며 노진녕은 입
에서 피를 뱉어 낸 후 히죽 웃었다.
“내가 아까 말했지? 척
추뼈를 뽑아 준다고. 이런 승부에서는 쫄면 뒈지는 거
야.”노진녕은 말을 하며 뿌듯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
았다.
뒤편에 있던 초류향은 피칠갑을 한 채 마치 칭찬해 달
라는 노진녕의 얼굴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 와중에도 저 사람은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훌륭했습니다.”아이
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으헤헤, 사실 별것 아니었
습니다.”노진녕은 쓰러져서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도협
강세빈을 발끝으로 톡톡 치며 기분 좋게 웃었다.
옆구리가 끊어질 듯 아파 왔지만 그런 아픔보다는 기쁨
이 더 컸다.
마무리 짓기 위해 발을 들어 올릴 때.
초류향이 나섰다.
“이자는 살려 두지요.
”“예?”무슨 이유로?
노진녕이 의아한 눈빛을 하자 초류향이 입을 열었다.
“소문을 내 줄 사람이
조금 필요하거든요.”“
소문이요?”“예, 소문.
”초류향이 안경을 만지는 순간.
진법이 흔들리면서 폭발적인 떨림이 전해졌다.
꽈드드득-!
“허엇!”모두가 놀라서
진법에서 한 걸음 더 물러서는 가운데.
초류향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겪은 공포를
전달해 줄 입이 필요합니다. 말에 무게감 있는 사람이
필요하지요.”진법 전체에서 새빨갛게 타오르는 화염이
넘실거렸다.
실제로 뜨겁지는 않았지만 시각적인 효과 때문인지 묘
하게도 진법 바깥까지 열기가 전해지는 것 같았다.
“제압당해 있는 정도맹
의 고수들을 이쪽으로 모은 후에 깨우세요. 그들도 봐
야 합니다. 일부러 진법 안의 상황이 보이게 만들었으
니까요.”초류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화궁의
고수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진법이 잘 보이는 장소로 끌고 온 정도맹의 고수들을
신체는 움직이지 못하게 구속한 채 정신만 깨운 것이다
.
잠에서 깨어난 그들은 비몽사몽인 상태로 진법의 변화
를 지켜보았다.
모두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감정.
그것은 경악과 공포였다.
진법 안에 있던 북해빙궁과 남만야수문의 고수들이 지
옥의 화염 속에서 타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초류향은 눈동자를 빛냈다.
모두가 학살을 당하는 와중에도 힘으로 진법을 돌파하
는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구휘…… 그리고 적혈
명인가?’과연 대단한 자들이었다.
진법의 파괴력이 높아진 반면 길은 한결 단순해졌기 때
문에 힘으로 돌파가 가능하긴 했다.
하나 그것도 저들 정도나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비참하게 죽어 나자빠질 가능성이 더 높
았다.
지금 진법에서 빠져나가려고 필사적인 저들만 해도 차
마 눈 뜨고 봐 줄 수 없을 정도로 처절한 몰골이었으니
까.
초류향은 그 모습을 보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정작 죽이고자 한 자들은 놓쳤지만 초류향의 표정은 잔
잔한 호수처럼 평온했다.
초류향이 걸음을 멈춘 곳은 공포로 굳어 있는 정도맹의
고수들 바로 앞이었다.
안경을 벗으며 초류향이 입을 열었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제가 천마신교의 소교주, 초류향입니다.”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유약하게 생긴 아이.
당장 닭 모가지도 비틀지 못할 것 같은 조그마한 아이
가 그들 앞에 서 있었지만 그 누구도 초류향을 향해 입
을 열 수 없었다.
이 아이가 바로 소문으로만 듣던 천마신교의 미래. 저
대단한 공손천기의 유일한 제자인 것이다.
“이곳에 안 좋은 의도
로 오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본래라면 죽이는 것이 맞
지만 오늘은 특별하게 살려드리겠습니다.”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하나 그냥 살려드린다는 것은 아닙니다. 목숨값
을 받아야겠지요.”목숨값?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애초에 그것이 값으로 매겨질 수도 있는 걸까?
모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을 때 초류향은 조용히 그들
을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들의 몸값을 소속
된 문파가 얼마나 지불할지 기대해 보겠습니다.”낮은
음성.
하나 그 말이 가져온 반향은 대단했다.
목숨값이라는 것은 대단히 추상적이었다.
소속된 문파가 이곳에 잡혀 있는 무인들의 가치를 어떻
게 보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니까.
그 사실을 깨달은 정파의 무인들은 분노했다. 자신들을
모욕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냥 죽여라. 마교의
개!”청성파의 무인 하나가 벌겋게 변한 얼굴로 소리치
자 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기를 원하신다면
죽여 드리죠.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하나 당신은
쉽게 말을 내뱉은 대가를 치러야 할 겁니다.”아이콘을
끌 수 있습니다. 끄기“대가?”초류향은 청성파의 무인
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얼음장처럼 서늘한 눈빛.
그 눈빛을 받은 청성파 소속의 일류 고수는 전신을 가
볍게 떨었다.
“당신이 죽기를 원한다
면 당신과 같은 문파 소속인 무인들 전원을 죽일 겁니
다. 애초에 하나가 죽으나 전원 다 죽으나 욕먹는 건
마찬가지니까요.”“…
…!”주변이 일순간 고요해졌다.
눈 앞에 있는 꼬마.
천마신교의 후계자는 지금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앞으로 여러분들
에게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조용히 죽어지내
십시오. 당신들 문파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그 어떠한
반항이나 항변도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급적 제 앞
에서는 숨소리도 죽이시는 게 신상에 좋을 겁니다. 지
금 솔직히 당신들을 다 죽이고 싶은 걸 억지로 참고 있
으니까요.”노골적이고 위협적인 협박.
하지만 그 누구도 발작하지 못했다.
천마신교의 소교주.
그는 자신이 내뱉은 말을 실천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강호에서 힘은 곧 법이었다.
초류향은 멀리서 사그라지는 불꽃을 보다가 작게 중얼
거렸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너무 참고만 살았다.
피를 보기 싫다는 마음에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최대
한 살생을 피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달라질 것이다.
차후 초류향이 수라왕이라는 이름을 받는 계기가 되는
첫 번째 걸음.
오늘이 그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