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21)
제121화 마륜안(2014.03.06.)
공손천기는 막수와 만나기 전에 초류향을 은밀히 찾아갔었다.
아무래도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말없이 초류향과 마주 앉아 있던 공손천기가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꽤 어설픈 마륜안이구나. 용케도 흉내 내었다.”공손천기가 말하자 초류향은 볼을 긁적거리며 입을 열었다.
“보셨습니까?”“봤지. 본래 계속 모르는 척하려 했는데 신경이 쓰여서 도저히 안 되겠더구나. 그리고 이왕이면 어설픈 것보다는 제대로 된 녀석을 가르쳐 주는 편이 나으니까.”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자신의 것은 어깨너머로 보았던 공손천기 스승님의 마륜안을 흉내 내 본 것에 불과했다.
공손천기가 정식으로 가르쳐 주지도 않은 데다가, 이상하게도 이 부분만큼은 가르치고 싶지 않은 눈치였으니까.
“마륜안은 지금 네가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단순하게 쓰면 제3의 눈동자의 역할을 하는 게 고작이지. 하지만 숙련된다면 다른 용도로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사실 그래서 이걸 너에게 별로 권하고 싶지 않았다.”다른 용도?
초류향이 궁금한 얼굴을 하자 공손천기가 입을 열었다.
“궁금하더냐?”“예.”“네가 마륜안을 아주 어설프게 열어 놓는 바람에 지금 네 주변에 이것저것 요상한 것들이 득실거린다. 문제는 너는 그것들을 보지도 못한다는 점이겠지.”“요상한 것들이 무엇입니까?”초류향의 질문에 공손천기는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예전에 내 사부가 나를 보면서 재능이 있는 놈은 피곤하다고 했던 이유를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별로 너에게 가르치고 싶던 분야가 아니었지만 네가 스스로 그 문을 열었으니 어설프게 알고 있는 건 오히려 독이 되겠지. 그놈들은 생각보다 집요하거든.”공손천기는 그렇게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자신의 마륜안을 머리 위로 띄운 후 입을 열었다.
“제자야.”“예, 스승님.”“완벽한 마륜안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 너의 상태에서 하나의 문을 더 열어야만 한다. 나는 이걸 심연의 눈이라고 부른다만 다른 녀석들은 다르게 부르더구나. 뭐, 어차피 용어는 딱히 중요한 게 아니니까.”공손천기는 천천히 손을 뻗어 초류향의 머리 위에 올렸다.
그리고 머리칼을 흐트러뜨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제자야.”“예. 스승님.”“나는 네가 차라리 이걸 몰랐으면 했다.”“……이유를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초류향의 물음에 공손천기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유는 곧 네 눈으로 보게 될 게다. 너는 그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었느냐?”공손천기의 말에 이번에는 초류향이 탁자를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은 어딘지 모르게 공손천기의 그것과 매우 닮아 있었다.
“언제는 감당할 준비가 되어야 했습니까? 그냥 오는 대로 감당하겠습니다.”공손천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핫! 아주 좋은 마음가짐이다. 내가 새삼 괜한 걱정을 했구나.”스으으-
초류향은 머리 위에 올려진 공손천기의 손이 갑자기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왠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
하나 초류향은 잠자코 기다렸다.
스승님은 결코 그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할 리 없으니까.
그런 믿음이 있기에 침착하게 호흡을 고르는 제자를 바라보며 공손천기는 히죽 웃었다.
“근데 이건 아마도 조금…… 아플 거다.”초류향이 살짝 눈가를 찌푸릴 때.
콰직-
초류향의 눈앞이 갑자기 하얗게 변했다.
‘컥!’얼음으로 만들어진 송곳 하나가 머릿속을 그대로 관통하는 느낌.
동시에 눈알이 빠져나갈 듯 아파 왔다.
그 엄청난 고통에 초류향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공손천기는 천천히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앉으며 품 안에서 연초를 꺼내 들고 입을 열었다.
“이제 눈을 뜨고 직접 보아라. 별로 보여 주고 싶은 풍경은 아니지만……. 뭐 처음에는 그런대로 신선한 재미가 있을 게다.”초류향은 화끈거리는 눈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참으며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눈을 부릅떴다.
“아…….”그것은 눈의 통증도 잊게 만들 만큼 놀라운 광경이었다.
초류향.
그의 주변에 가득히 서 있는 괴상한 형태의 ‘얼룩’들.
‘이게 뭐지?’무언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찝찝한 느낌.
동시에 호기심이 생겼다.
얼룩들을 쭉 훑어보니 사람의 형태와 비슷했다.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것들이 천천히 초류향과 눈을 마주쳤다.
얼룩들에게서 너무도 분명한 ‘시선’이 느껴진 것이다.
그 순간 초류향은 오싹하면서 전신에 소름이 쭈욱 돋았다.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초류향이 말을 더듬거렸다.
“이, 이건…… 망령들이 아닙니까?”공손천기는 빙긋 웃었다.
“제대로 보았다. 심연의 늪에 빠진 것을 축하한다, 제자야.”그때가 처음으로 초류향에게 이쪽과 저쪽의 구별이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 * *
초류향은 눈을 가리고 침상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눈을 가리고 있었지만 사방에서 너무도 분명한 시선들이 느껴졌으니까.
게다가 어둠 속에 있는 녀석들은 자기들끼리 작게 소곤거리기까지 하고 있었다.
‘이래서 스승님께서는 별로 나에게 가르치고 싶어 하지 않으셨던 거구나.’죽은 자들이 보이고 그들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굉장히 괴로운 일이었다.
특히나 무림인에게 이것은 고문과도 같았다.
자신의 손에 죽은 자들이 원한을 품고 다시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단순히 귀신이 나타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고통이었으니까.
‘차츰 무뎌질 거라고? 이게?’초류향은 스승님의 말을 곱씹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자신은 도무지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침상에서 뒹굴거리던 초류향은 어느 순간 덜컥 움직임을 멈추더니 곧 자리에서 튕기듯이 일어섰다.
키이잉-!
전신을 타고 지나가는 거대한 힘.
초류향은 그것을 느끼자마자 문 앞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그리고 얼굴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이건…….”예전에도 선명하게 겪어 본 적이 있는 종류의 힘이었다.
“막수?”그 건방진 토끼의 힘.
불안했다.
그놈이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면서까지 이렇게 노골적으로 힘을 개방하다니?
초류향이 바깥으로 무작정 뛰어나가자,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노진녕 역시 초류향을 곧장 뒤따라갔다.
그도 방금 전에 있었던 엄청난 힘의 파동을 느낀 것이다.
“소교주님, 제가 모시겠습니다.”노진녕이 초류향 앞으로 나서더니 등을 보이며 자리에 앉았다.
아마도 등에 업히라는 뜻일 터.
하지만 초류향은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 보니 자신에게는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
그동안 익숙하지 않아서 써먹지 못했던 것.
“먼저 가겠습니다.”스으으윽-!
갑자기 초류향의 몸 주변이 아지랑이처럼 흐늘거린다 싶더니 그의 신형이 곧장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꼿꼿하게 선 채로 당당하게 걷는 걸음.
그 자신만만하고 오만한 걸음걸이를 바라보던 노진녕이 눈을 부릅떴다.
“천마군림보?”자신이 익히고 있는 천마군림보와 비슷한 모양이 아닌가?
그런데 어딘가가 미묘하게 달랐다.
게다가 초류향이 펼치고 있는 천마군림보가 더 안정감이 있어 보였다.
잠시 멍하게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노진녕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허둥지둥 초류향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것인지 물어봐야 했기 때문이다.
* * *
‘한발 늦었다.’초류향은 조금 전에 막수가 기운을 뿜어낸 곳에 도착해서 얼굴을 찌푸렸다.
녀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자리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이 와 있었다.
선우초린이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초류향의 질문에 선우초린은 기묘한 눈으로 초류향을 바라보았다.
그녀도 알아본 것이다.
방금 초류향이 사용했던 무공이 천마군림보라는 것을.
‘이 꼬맹이, 천마신공까지 익혔었나?’불완전한 무공이라 알려진 천마신공이다.
어디서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알 수가 없다고 들었는데 그런 것까지 익히고 있었던 건가, 소교주는?
거기까지 생각하던 선우초린은 초류향의 뒤에서 불쑥 등장한 노진녕을 바라보며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지웠다.
“교주님께서 계시던 장소에서 갑자기 괴이한 기운이 느껴져 곧장 되돌아왔습니다.”초류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스승님이 이곳에 계셨다고?
“스승님이…… 이곳에 계셨습니까? 혹시 새하얀 토끼도 보셨습니까?”“예. 보았습니다.”“……젠장!”왜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을까?
초류향은 스승님과 막수가 마주치는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어떤 경우를 떠올려도 좋지 않은 결과로 연결되었다.
‘서둘러야 한다.’막수의 힘은 아무리 스승님이라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놈은 말 그대로 괴물이었으니까.
힘으로 찍어 누른다면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놈인 것이다.
초조한 얼굴로 고민하던 초류향이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림자 속에서 망령들이 자신을 고요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 껄끄러운 시선에 초류향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지금은 저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초류향은 억눌러 놓았던 마륜안을 발동했다.
예전보다 더욱 핏빛에 가까운 붉은빛 눈동자가 초류향의 머리 위에 맺히더니 곧 하늘 높이 올라갔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망령들이 들썩거리며 그 붉은빛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장 그것을 만들어 낸 초류향을 향해 달려들었다.
우어어어-!
썩은 시체들처럼 흐물흐물 흘러내리는 얼룩들이 초류향의 몸뚱이 이곳저곳에 달라붙었다.
그것을 뻔히 보면서도 초류향은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하지 못했다.
치덕-
가까이 다가온 망령들이 초류향의 몸뚱이에 끈적하게 들러붙었다.
그 기분 나쁜 느낌에 몸서리치면서도 초류향은 마륜안을 더 높이, 하늘 위로 올렸다.
불쾌한 기분과 함께 전신이 덜덜 떨렸다.
망령들이 그의 몸뚱이를 헤집고 파고들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초류향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지금부터가 중요해.’이 정도로 높이 마륜안을 날려 보내 본 적이 없었다.
차츰 초류향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릴 때쯤.
저 멀리서 보였다.
자신과 비슷한 붉은빛을 뿜어내는 거대한 눈동자가.
그 눈동자와 허공에서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초류향은 마륜안을 풀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전신에서 힘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이다.
“허억, 헉헉…….”“괜찮으십니까?”선우초린이 부축하려는 그때.
초류향은 그녀의 손길을 피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일단 두 손으로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쳐 냈다.
그러자 몸에 달라붙어 있던 기분 나쁜 것들이 먼저처럼 흩어졌다.
‘뭐야?’식은땀을 흘리며 초류향이 계속 자신의 몸을 털어내는 광경을 선우초린은 괴이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망령들이 보이지 않았으니 그저 이상하게만 보이는 것이다.
그때 마른침을 삼키며 그답지 않게 잠자코 초류향을 지켜보던 노진녕이 입을 열었다.
“소교주님, 괜찮으십니까?”“…….”초류향은 대답하지 않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진녕이 입을 열었다.
“제 눈이 틀린 것이 아니라면 조금 전에 소교주님이 보여 주셨던 천마군림보는 완성된 형태로 보였습니다.”초류향은 고개를 돌려 노진녕을 바라보았다.
노진녕의 눈에는 어떤 열기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도 단순한 색깔의 감정.
‘욕망.’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완성된 형태의 천마군림보입니다.”완성된 형태의 천마군림보?
그것을 익혔다는 말은 완성한 천마신공을 익혔다는 말이 아닌가?
‘그게 말이 돼?’선우초린이 불신에 가득 찬 눈빛을 할 때.
노진녕은 한 점의 의심도 없이 초류향의 손을 꼬옥 부여잡으며 간절하게 말했다.
“저, 저에게 가르쳐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선우초린은 미친놈 보듯이 노진녕을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에게 무공을 가르쳐 달라는 것은 무림에서 금기시되어 있는 행동이 아닌가?
‘스승과 제자 사이도 아니고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건가?’소교주 초류향이 정말로 완성된 형태의 천마신공을 익혔는지 아닌지는 선우초린도 모른다.
하나 완성되었든 아니든 그것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런데 초류향이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가르쳐 드리지요. 헌데 그 전에 일단 가 봐야 할 곳이 있습니다.”노진녕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겠습니다.”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
완성된 형태의 천마신공을 배울 수만 있다면 그런 기다림 정도가 어렵겠는가?
멍청한 얼굴이 된 선우초린을 내버려 둔 채 초류향은 움직였다.
초류향의 몸이 아까보다도 더욱 부드럽게 이동하며 바람처럼 사라졌다.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위기에 빠진 그의 스승님을 구하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