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23)
제123화 공손천기의 진정한 힘(2014.03.13.)
중간부터는 초류향도 보았다.
공손천기.
그의 스승님이 막수라는 괴물을 어떻게 요리하는지 가장 중요한 대목부터는 놓치지 않고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공손천기가 사용했던 붉은 눈이 막수를 집어삼켰다가 다시 뱉어내는 것까지.
초류향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 끝을 씰룩였다.
‘……이런 일까지 가능한 건가?’스승님이 강하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초류향이 정관법을 익힌 이후로 만났던 사람들 중 가장 높은 수치를 보여 주었으니까.
그런 스승님이 막수를 간단하게 제압했다?
그것도 물론 충격적인 사건이긴 했다.
하지만 어찌어찌 납득할 수 있었다.
예전에 진법 안에서 인간 형태인 편목으로 만났을 때에 비하면 지금의 막수는 놀라울 정도로 약했으니까.
그러니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 초류향이 혼란스러워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바로 공손천기.
그 자체였다.
‘숫자가 변했다.’초류향은 안경을 매만지며 당혹스러운 얼굴을 해 보였다.
본래 스승님의 이마 위에 쓰여 있던 숫자는 구십육.
그동안 수차례 확인해 보아도 그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구십칠?’공손천기 스승님의 이마에 쓰여 있는 수치가 증가한 것이다.
초류향은 진심으로 깜짝 놀랐다.
‘이 숫자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인가?’이마 위에 쓰여 있는 괴상한 숫자들.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보았을 때, 이 숫자들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천부적인 능력치.
즉, 선천적인 재능을 표시한 숫자라고 생각했었다.
한데 그것이 변할 수도 있는 수치라는 말인가?
갖가지 의문과 혼란이 초류향의 뇌리를 가득 채웠다.
그때.
[쓸데없는 문제로 고민하지 마라, 꼬마.]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음성.초류향은 눈을 번쩍 떴다.
제갈량이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조차 하지 않던 그가 갑자기 나타나 말을 걸어 오자 초류향은 일단 그의 말에 집중했다.
그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왜 대답도 해 주지 않았는지 궁금한 점은 많았지만 그런 의문들은 접어 두고 지금은 단지 제갈량이라는 이 특별한 존재가 다시 말을 걸어준 것에 기뻐했다.
[어지간하면 너의 삶에는 개입하지 않으려 했다만…… 저런 건 확실히 별난 종류니 설명이 필요하겠더군.]초류향은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제갈량의 시선이 공손천기에게 머무는 것이 느껴졌다.그렇게 공손천기를 바라보던 제갈량은 피식 웃었다.
하나 모든 의문이 풀리지는 않았다.
어째서 저런 현상이 생기는지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문을 떠올리자 제갈량이 다시 입을 열었다.
[본래도 뛰어나던 놈이 남보다 더한 노력을 하게 되면 저런 진귀한 것을 보여 줄 수 있지. 하늘이 본래 책정했던 재능. 그 한계점을 스스로의 힘, 즉, 순수한 노력으로 돌파한 결과니까. 아마도 저 녀석은 지금 이 순간 평생 동안 안고 있던 문젯거리를 완전하게 해결했을 것이다.]평생 동안 안고 있던 문젯거리?초류향은 눈을 빛냈다.
‘그렇다면 스승님께서는 무공을 완성하신 것이라 봐도 되는 것이겠군요.’[무공?]‘예. 스승님의 가장 큰 문젯거리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그동안 수라환경의 부작용으로 고생해 오던 스승님이셨다.
제갈량의 말을 듣는 순간, 스승님이 여태 그 누구도 극복하지 못했던 수라환경의 치명적인 부작용을 스스로의 힘으로 완전하게 돌파했음을 알게 된 초류향이다.
[저 녀석이 무언가를 이룬 것은 확실하다. 근데 그것이 무공인지는 모르겠군.]‘무공이 맞을 겁니다. 스승님의 평생 숙원 중의 하나였거든요.’[그렇더냐?]제갈량은 초류향이 기뻐하는 모습을 뒤로하고 잠시 기묘한 눈빛으로 공손천기를 바라보았다.그가 차마 초류향에게는 하지 못했던 말이 있었다.
지금 하지 못했던 그 말을 최대한 내부로 깊숙이 감추며 제갈량은 섭선을 만지작거렸다.
‘내가 과거에 보았던 다른 두 가지의 경우, 둘 다 그 끝이 좋지 않았다’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인과율(因果律:원인이 있으면 그에 따른 결과가 반드시 있음)이라는 거대하고 촘촘한 그물이 있었다.
누가 만들었는지, 정말로 그런 것이 존재하는지도 불확실한 이 그물은, 사실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고 빈틈이 없었다.
제갈량이 생전에 보았던 공손천기와 비슷한 징후를 보였던 두 사람.
그 두 사람의 뒷일을 제갈량은 알고 있었다.
‘내가 알기론 그 둘 모두 한계를 돌파하고 몇 년 새에 죽었다.’거기까지 생각하던 제갈량은 피식 웃었다.
들떠 있는 초류향의 모습을 보니 역시 이 이야기는 해 주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내 조언은 여기까지다, 꼬마.’본래라면 미리 경고해 주었겠지만 그런 짓은 이제 더 이상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제갈량이다.
이 꼬마 녀석의 삶에 개입하는 것은 오히려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뿐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많은 시련을 겪어라, 꼬마. 그게 너를 더욱 크게 성장시킬 테니…….’제갈량은 다시금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초류향을 보며 덤덤하게 눈을 감았다.
최대한 녀석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켜본다.
제갈량은 그렇게 방침을 정했다.
* * *
“오랜만에 즐거웠다.”공손천기는 바닥에 벌렁 누워서 숨이 넘어갈 듯 꼴딱거리고 있는 토끼를 발끝으로 툭툭 차며 히죽 웃었다.
“몸뚱이가 워낙에 질기니까 아무래도 죽이긴 어렵겠군.”그래도 굳이 하겠다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공손천기는 작게 흥얼거리며 팔찌를 착용했다.
그동안 몸 안 깊숙이 꾹꾹 눌러 쌓여 있던 것을 이 녀석을 만나 한 방에 풀었다.
힘을 이렇게 한계까지 뽑아 써 본 것이 과연 얼마 만이던가?
수라환경의 부작용을 극복하고 무공을 완전하게 새로 재정립한 이후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
기분이 날아갈 듯이 상쾌했다.
몸 안의 독소가 완전히 빠져나간 해방감이 들었다.
토끼의 양쪽 귀를 가볍게 쥐어서 들어 올린 공손천기가 입을 열었다.
“애초부터 나와 마주했을 때, 토 선생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걸 이미 알고 있었지. 그래서 더 기대가 되는구만. 토 선생이 본래의 힘을 회복하게 되면 얼마나 강할까? 꼭 다시 붙어 보고 싶어.”[…….]그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고 눈을 감은 채 쌕쌕거리면서 숨만 내뱉고 있던 막수.
녀석은 공손천기의 말을 듣고 갑자기 거친 호흡을 고르며 가늘게 눈을 떴다.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그 눈은 분명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애송이, 함부로 까불지 마라. 내가 힘을 회복하면 너 같은 놈은 한주먹감도 안 돼.]다행히 공손천기는 그 뜻을 정확하게 이해했다.그래서 잇몸이 드러나게 환히 웃으며 막수를 자신의 가슴팍 가까이에 가져다 댄 후 말했다.
“들리나, 토 선생? 내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헤어졌던 첫사랑을 다시 만나도 이렇게 설레지는 않을 것 같구만. 클클, 토 선생의 회복을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네.”공손천기가 껄껄 웃으며 이야기하자 막수는 코끝을 몇 번 찡그리다가 눈을 감았다.
이 인간 같지도 않은 괴물 놈을 밟아 주기 위해서는 정말 자신의 힘을 완벽하게 회복해야 했기 때문이다.
완벽한 상태가 아니라면 솔직히 덤빌 엄두도 나지 않는 게 사실이었으니까.
‘스승 놈이나 제자 놈이나 인간을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군.’인간들은 탐욕스럽고, 제가 가진 욕심에 비해 너무나도 무력하다.
아직까지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나 거기에 예외도 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막수가 그렇게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을 때.
멀찍한 곳에서 떨어져서 구경만 하던 안경잡이 꼬마가 다가왔다.
그리고 막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보지 마라, 애송이.’이 꼬마 괴물 놈도 아마 알아차렸을 것이다.
꿈속에서 자신과 싸웠을 때보다 유달리 힘이 약해져 있음을.
단번에 알아보았을 터.
“제가 녀석을 데려가도 되겠습니까, 스승님?”“그러려무나.”공손천기는 선선히 막수를 건네주었다.
볼일은 끝났기 때문이다.
근데 하나 궁금한 것이 있었다.
“네가 일부러 이 녀석을 아리에게 붙여 두었느냐?”“예. 호위로 쓰면 적당할 듯했습니다.”호위?
그러고 보니 이 작고 하얀 괴물을 호위로 붙여 둔 것이라면 이건 제법 괜찮은 생각이었다.
“딸아이도 아느냐? 이 녀석의 정체를.”초류향은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그냥 토끼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게 이 녀석과 저의 약속입니다.”“약속? 약속이라…….”공손천기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이해가 되는구나.”“예.”초류향은 희미하게 웃었다.
과연 그의 스승님은 단박에 모든 상황을 이해하신 모양이다.
그리고 사실 공손천기는 초류향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정확한 사정을 알고 있었다.
“확실히 이런 종류의 놈들은 약속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지. 약속을 어기게 되면 가지고 있는 힘을 잃어버리니까.”“……예?”힘을 잃는다니?
이건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저 약속을 잘 지키는 존재라고만 생각했지, 약속을 어기면 힘을 잃게 된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던 것이다.
초류향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공손천기는 황당한 얼굴을 해 보였다.
“음? 설마 몰랐느냐?”초류향은 어색하게 웃었다.
전혀 몰랐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이 녀석이 이렇게까지 약속을 지키려는 이유가 뭔지 궁금증을 가졌어야 했는데 지금까지 별생각 없이 넘어갔다.
공손천기는 그런 제자의 머리를 한 번 헝클어트리며 계속 설명해 주었다.
“제자야, 너도 이제 짐작했겠지만 이런 놈들은 힘을 잃을 위험이 있기 때문에 보통 약속이라는 것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스스로가 확실히 지킬 수 있는 부분에서만 약속을 하는 종자들이지. 그런데 너랑 약속을 했다기에 나는 이 녀석과 네가 어떤 교감을 나눈 것인 줄 알았다.”교감(交感, 서로 마음이 통함)?
저번에 이 녀석과 약속을 나누었을 때, 그게 교감이었던가?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초류향은 어색한 얼굴로 막수를 내려다보았다.
막수가 짊어지고 있는 약속의 무게가 이렇게 무거운지는 미처 몰랐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귀를 잡아 대롱대롱 들고 있던 막수에게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에 초류향은 조심스럽게 팔에 놈을 안아 들고 말했다.
“이 녀석, 확실히 처음보다 많이 약해졌습니다.”“그랬겠지.”힘을 다루는 능력을 보면 본래 가진 힘의 크기를 거의 정확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공손천기가 보기에 막수는 지금보다 최소 열 배 정도는 강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쉬운 거지만.’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공손천기는 초류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예전에 말이다. 꿈에서 어떤 괴상한 영감을 만났는데 이 세상에는 인과율이라는 게 있다더군.”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가에서 주로 쓰는 말이 아닌가?
“건방진 영감탱이였지. 뭐,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다나? 말이야 맞는 말이긴 하지. 그렇지만 세상에는 반드시 원인과 결과만 있을까?”그럼 다른 것이 있다는 말인가?
초류향이 잠자코 뒷말을 기다리고 있자 공손천기가 장난스럽게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 ‘과정’이라는 것도 들어가야 말이 되지. 세상은 단순히 원인과 결과만으로는 돌아가지 않아. 그건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과정.
초류향에게는 지금 이 순간 공손천기의 말이 매우 묵직하게 다가왔다.
“나는 무공을 완성했다. 아니, 따지고 보면 무공이야 이미 오래전에 완성했지. 단지 그동안 골치 아프게 만들었던 부작용을 이번에 잡아냈을 뿐이다.”공손천기의 말에 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 홍순원이 했던 말처럼 스승님은 이제 완전해진 것이다.
수라환경의 지독한 부작용에서 완벽하게 해방되었으니까.
“이제 이 강호에, 아니 과거와 미래까지 통틀어 단순히 무공만으로는 나를 넘어서는 자가 없을 거다. 이건 결과지.”“…….”공손천기는 자신의 두 손을 펴 보이며 흐릿하게 웃었다.
“하나 이 단순한 하나의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 지나온 과정들은 결과만으로는 쉽사리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길이었다.”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이 그동안 해 온 노력과 갖은 시행착오가 손에 잡힐 듯 뚜렷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제자야.”“예, 스승님.”“아무리 위선적이고 그릇되더라도 강하다면 그것은 언제나 옳다.”“…….”“그게 현재 네가 서 있는 강호라는 괴물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하나 나는 네가 결과도 좋지만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도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구나.”공손천기의 말에 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습니다.”“그래라. 그래야 내 제자지.”초류향은 순간 눈을 깜빡였다.
갑자기 웃고 있는 공손천기의 모습이 일순간 흐려졌다가 다시 선명해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착각인가?’초류향은 자신의 안경을 만지고 몇 번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작가의 말
내일이 3월 14일이네요? 옆 동네에서 요마전설을 연재하는 남재가 생일보다 좋아하는 날이네요. 사탕을 워낙에 좋아해서 말이죠 ^^; 우리 귀염둥이 남재에게 츄파츕스라도 하나 사줘야겠는데… 너무 멀어서 아무래도 다음 기회에…[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