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24)
제124화 도군 임제학(2014.03.17.)
제2차 정마대전이 있었던 날로부터 정확히 한 달이 지나갔다.
그리고 새해가 밝았다.
“오늘은 손님이 오실 겁니다.”“그 녀석들인가?”“예. 미리 연락을 해 왔습니다.”“뭐, 새해 첫날에 데려가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 그 일은 전 호법이 알아서 처리하도록 해.”“알겠습니다.”공손천기는 그 말만 남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전박은 공손천기가 사라지고 나서도 한동안 미동 없이 있다가 천천히 움직였다.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 * *
“몸값을 지불하기 위해 왔소.”대략 백여 명 정도의 인원들.
그들은 모두 사천 지역 문파에 소속된 사람들이었다.
모두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래도 교주 공손천기.
그가 이곳에 와 있다는 사실이 상당한 압박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지 않을 수는 없었지.’위걸개는 자신의 뒤쪽에 겁먹은 사슴처럼 몰려 있는 사천 지역 고수들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이상 미루다가는 인질들의 안위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으니까.
오늘이 천마신교에서 제시한 몸값을 지불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천마신교의 고수들은 그들의 얼굴을 살펴보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오실 것이라는 연락은 받았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활짝 열려 있는 대문.
그 안으로 들어서며 사천 지역의 무인들은 모두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해 보였다.
현재 천하제일의 위용을 뽐내고 있는 천마신교였다.
당연히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뒤에 있는 우마차를 끌고 천마신교로 들어서는 사천 지역 고수들의 표정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갔다.
* * *
“금액은 정확하구먼. 좋소. 인질들을 인계하지.”전박이 눈앞에 놓인 거대한 상자들을 일일이 확인한 후 입을 열자 위걸개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바로 데려가도 되겠소?”“그러려고 온 것 아니오?”“그럼 인질들을 보여 주시오.”“좋을 대로.”전박이 손짓하자 연무장 옆에 자리한 거대한 철문이 엄청난 굉음을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크그그긍-!
쿠웅-!
철문 안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지친 얼굴로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혈도가 짚여 있지만 보시는 대로 건강 상태는 양호하오. 직접 확인하시겠소?”“그렇지 않아도 직접 확인할 생각이었소.”위걸개가 눈짓을 하자 각파의 대표들이 깃털처럼 움직여 자기 문파 사람들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각자 소속된 문파 사람들의 건강을 확인한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놀랍게도 천마신교는 정말 약속을 지켰던 것이다.
인질들은 모두 무사했다.
위걸개는 인질들의 상태를 확인받은 뒤 입을 열었다.
“돌아가도…… 되겠소?”여기서부터가 중요했다.
그들이 알고 있는 마교는 돈만 받고 그들을 몽땅 죽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천마신교가 괜히 세상 사람들에게 마교라 불리는 것이 아니니까.
위걸개가 애써 태연을 가장한 얼굴로 물어보았는데 상대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구려.”그게 끝이었다.
위걸개는 인질들과 함께 그렇게 무사하게 천마신교 사천 분타를 빠져나왔다.
천마신교.
마교의 고수들은 정말 그들을 털끝조차 건드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게 끝인가?”인질들을 인계받으러 왔던 위걸개를 비롯한 백 명의 인원들은 천마신교 사천 분타의 문 앞에서 멍청한 얼굴로 서 있었다.
‘정말…… 이게 끝이야?’그들은 혼란스러웠다.
모두가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온 것이기 때문이다.
다들 각자의 문파에 유서를 쓰고 나올 정도였으니까.
가장 전면에 서 있던 위걸개가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다들 할 말들이 많겠지만 인질들의 안전이 우선이니 각자 돌아간 후에 다시 모입시다.”“아, 알겠소.”모두가 각자의 문파로 흩어지는 것을 사천 분타의 가장 높은 망루에서 내려다보던 공손천기는 피식 웃었다.
“저놈들이 우리를 소인배들로 보고 있었구만. 기분 나쁘게.”“어리석은 놈들입니다.”“그래도 이번에는 제법 용기가 있긴 했어. 저 녀석들 입장에서는 정말 목숨을 걸고 온 것일 테니까.”“예.”“그런데 옥 호법.”“예. 교주님.”“위걸개라고 했나? 저 거지 녀석.”“예. 개방의 사천 지역 담당자입니다.”“저 녀석은 왜 왔대? 인질들 중에 개방은 없었잖아?”천마신교의 모든 정보를 담당하고 있는 옥관호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단순히 오지랖 같습니다.”“그래? 미친놈이네.”그때 조용히 공손천기와 옥관호의 대화를 듣고 있던 초류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 거지가 이곳에 대표로 와서 아무것도 얻는 것이 없는 것입니까?”“얻는 것이라…….”이 세상은 철저한 이해득실(利害得失, 얻는 것과 잃는 것)로 돌아간다.
그것이 초류향의 생각이었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정말 몇 개 없었다.
옥관호 역시 거기까지 생각한 것인지 무언가를 머릿속으로 고민하다가 손바닥을 탁하고 치면서 입을 열었다.
“저 거지가 얻는 것이 있습니다.”“뭔데?”“명성입니다.”“명성이라……. 하긴 본 교에 들어와서 멀쩡하게 살아 나간 놈은 그다지 흔하지 않으니까. 제법 이름을 알리는 데에 도움이 되겠지.”공손천기가 고개를 끄덕일 때.
옥관호가 말했다.
“게다가 조만간 개방에서는 비어 있는 장로직을 선출한다고 합니다.”“호오라? 그러니까 장로직을 위해서 목숨 걸고 도박을 했다 이건가?”“예. 그리고 아마 저 녀석은 목숨을 걸고 이곳에 온 것도 아닐 겁니다.”“응? 그건 또 무슨 말이지?”공손천기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옥관호가 흐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놈은 우리가 자신들을 해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고 이곳까지 왔다는 말입니다.”“제법…… 재미있는데, 그건?”“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답은 나오지요. 굳이 저들을 다 죽이고 돈만 빼앗을 생각이었으면 인질들도 굳이 지금까지 살려 둘 필요가 있었겠습니까?”공손천기와 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돈을 들고 온 것을 확인한 그 순간 여기 왔던 정도맹의 인원들을 몽땅 죽이면 그만이었다.
일부러 인질이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것을 보여 줄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인질들이 살아 있다는 것은 개방의 정보력을 통해 알아냈을 겁니다. 사천 분타로 들어가는 식량이라든가 물자들만 조사해도 바로 알 수 있었을테지요.”“그러니까 인질들이 아직까지 무사한 것을 보고 자신들도 무사히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왔다?”“예. 아마도 그런 계산까지 마치고 이곳까지 온 것 같습니다.”공손천기는 옥관호의 대답에 순수하게 감탄한 얼굴을 해 보였다.
“거참, 제법 똘똘한 놈이구만. 저런 놈이라면 살려 보낼 가치가 있지.”옥관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작게 우려의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저렇게 제 목숨을 담보로 무언가를 얻으려 한다면 강호에서는 그다지 오래 살지 못할 것입니다. 대다수 끝이 좋지 않았지요.”“그렇긴 하지. 결국 힘이 없으면 상대방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니까.”공손천기의 말에 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은 힘이 있어야 했다.
제아무리 머리가 좋고, 그것으로 수많은 변수를 계산해 낸다고 하더라도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다면 공허한 외침이 될 뿐이다.
“아무튼 지긋지긋했던 인질들 뒷바라지도 끝났군. 전 호법이 좋아하겠어.”“예. 큰돈을 벌었으니 전박 녀석도 기뻐하겠죠.”“그나저나 그놈은 어쩔 거야.”그놈?
옥관호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곧 누군지 알아챘다.
“도협을 말씀하시는 겁니까?”“그래, 그놈. 도군 영감의 제자라며. 그놈 몸은 좀 어때?”도협 강세빈.
그는 구주십오객의 한 명인 도군 임제학의 유일한 제자였다.
노진녕과의 승부에서 죽기 직전까지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도협 강세빈은 다른 인질들과 다르게 약방에서 따로 몸을 치료하고 있었다.
“다행히 몸은 회복기에 들어섰습니다. 조만간 자리를 털고 일어설 겁니다.”“그래? 다행이군.”잠시 뭔가 말을 꺼내길 망설이던 옥관호가 입을 열었다.
“……한데 도군이 정말 그 몸값을 들고 올까요? 다른 자들의 스무 배는 되지 않습니까?”“그 정도면 싸게 먹힌 거 아닌가? 그놈에게 들어간 약값이 얼만데?”옥관호는 씁쓸한 얼굴을 해 보였다.
“약값도 그렇고 확실히 저희 쪽에서 제시한 금액은 도협의 명성에 비하면 헐값이긴 합니다만…… 과연 도군이 이곳까지 돈을 들고 올까요? 자존심 때문에라도 오기 힘들 것 같습니다.”“그러면 제자는 포기해야지.”옥관호는 살짝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오늘 약속했던 시간까지 오지 않으면 정말로 죽이실 생각이신지요?”“물론. 한번 내뱉은 말은 지켜야지.”“… 역시 그래야겠지요?”“그 영감이 제법 강호에서 명성이 있다지만 우리가 신경 써야 할 정도는 아니야, 옥 호법.”“알겠습니다.”옥관호는 수긍한 얼굴로 한 걸음 물러섰다.
도군 임제학이 유명한 이유는 그가 다른 자들과는 달리 그 어떤 세력을 형성하지도 않고, 오로지 혼자만의 힘으로 구주십오객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그는 구주십오객의 삼황오제칠군 중.
단순히 무력만 놓고 보았을 때 칠군에서 가장 강하다 평가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강력한 무공만큼이나 임제학은 자존심이 무척이나 높았다.
개인적으로 도군은 천마신교가 포섭하려 했던 대상 중 하나였기에 옥관호는 아까웠던 것이다.
그때 공손천기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옥 호법은 그 영감이 이곳에 올 것 같아?”옥관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도군 임제학은 그 명성만큼이나 높은 자존심으로 유명했다.
돈을 들고 제자의 목숨을 흥정하러 올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말이야, 자네와는 다르게 그 영감탱이가 이곳에 올 거라고 확신하고 있어.”“예?”“그 콧대 높은 영감은 반드시 와. 내가 장담하지.”공손천기의 말을 듣고 있던 옥관호는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다가 곧 고개를 숙였다.
눈앞에 있는 공손천기가 내뱉은 말이다.
결코 틀릴 리가 없었다.
“어렵게 얻은 제자잖아? 결코 자존심이나 허명 때문에 포기하지는 않을 거야. 그런 멍청이는 세상에 그리 흔하지 않거든.”공손천기는 말을 하며 옆에 있는 초류향의 머리칼을 헝클어트린 후 툴툴 웃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니까.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이 녀석이 인질로 잡힌다면…… 나도 모든 것을 내놓고 찾아갈 거거든.”초류향은 공손천기의 직설적인 말에 자신도 모르게 벌겋게 변한 얼굴을 감추며 안경을 매만져야 했다.
그의 스승님은 늘 이런 식이었다.
‘표현이 너무 직설적이시다.’하지만 늘 진심이었기에 초류향은 공손천기의 이 낯부끄러운 표현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게 초류향이 애써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거지?”“예……. 대략 일다경 정도만 지나면 약속했던 시간입니다.”“흐음……. 그래?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겠구만.”공손천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저 먼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옥관호는 약간 안절부절못하며 그런 교주의 눈치를 살피다 생각했다.
‘교주님의 말이 틀리신걸까?’그렇게 된다면 입장이 굉장히 난처해진다.
저렇게 자신 있게 말을 내뱉었는데 교주가 틀렸다면?
옥관호가 그런 여러 가지 아찔한 상상들을 하고 있을 때.
공손천기가 다시 물었다.
“시간이 되었나?”옥관호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어색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약속된 시간입니다.”공손천기는 야릇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좋군. 그럼 도협 강세빈, 그 애송이를 이곳으로 끌고 와.”“……존명.”옥관호가 수하들에게 손짓으로 명령하는 그 순간.
저 멀리서 엄청난 먼지바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옥관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자 그 먼지바람 끝에 어떤 사람이 서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사천 분타로 다가오는 사람.
‘도군 임제학!’정말로 온 것이다.
그 자존심 강한 노인이!
옥관호가 새삼 놀랍다는 얼굴로 공손천기를 바라보고 있을 때.
공손천기가 입을 열었다.
“그럼…… 슬슬 손님 대접을 해 볼까?”“예?”“약속시간이 지났잖아? 그럼 그 애송이를 죽여야지.”“그, 그렇긴 하지만…….”옥관호는 설마 정말로 공손천기가 도협 강세빈을 죽일 생각을 하고 있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도군은 그 어떤 곳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지만 그만큼 강호에서 많은 인망을 쌓은 사람도 드물었다.
늘 약자 편에 서서 싸워 왔기 때문이다.
가급적 죽이고 싶지 않은 자였다.
“옥 호법은 그저 지켜보고만 있어. 이제부터 아주 재미있어질 테니까.”공손천기가 음흉하게 웃는 그 순간.
멀리서 엄청난 속도로 다가온 도군이 그대로 대문과 충돌했다.
콰아아앙-!
거대한 대문이 마치 종잇조각처럼 찢겨 나가며 도군 임제학이 사천 분타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그는 먼지투성이가 된 상태로 곧장 망루 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 제자를 돌려받으러 왔다.”흉흉한 기세.
전신에서 거친 야성미를 사방으로 뿜어내는 우락부락한 노인을 내려다보며 공손천기는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공손천기는 초류향을 슬쩍 보았다.
‘무슨…….’잠깐 마주친 공손천기의 그 미소가 그 어느 때보다 사악하게 느껴지는 초류향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