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25)
제125화 생사비무(2014.03.20.)
“내 제자를 돌려받으러 왔다.”흉흉한 기세.
도군 임제학은 과연 소문처럼 야성미가 철철 흘러넘치는 노인이었다.
그런 임제학을 바라보던 공손천기는 음흉하게 웃으며 툭 내뱉었다.
“누구 맘대로?”“……뭐?”“누구 맘대로 제자를 돌려받으러 온 거야?”임제학의 눈가에 잔경련이 일어날 때.
공손천기는 난간에 몸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이곳이 그쪽이 원하면 뭐든지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곳으로 보이나 보지? 본 교가 그리 우습게 보이나?”
임제학은 분노로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으면서도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다.
그는 천천히 거칠어지는 호흡을 고르며 소매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어 앞에 던지며 말했다.
툭-
“너희들이 원하는 몸값이다. 가져가라.”공손천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제 필요 없어. 돈 따위는 이미 벌 만큼 벌었거든.”상대방은 그를 무시하고 있었다.
임제학은 그 사실을 알았지만 감히 발작하지 못했다.
스스로의 목숨이 아까워서?
아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보다 잡혀 있는 제자의 목숨을 염려했다.
그랬기에 함부로 죽어 줄 수도 없었던 것이다.
끼이익-
그때 옆에 있던 작은 쪽문이 열리고 그곳에서 마교의 무사들이 무언가를 들것에 들고 다가왔다.
그리고 들것에 실려 있는 것을 바라보는 순간 임제학의 몸이 가늘게 떨려왔다.
들것에 실려 있는 사람은 그의 하나뿐인 제자였던 것이다.
“걱정하지 마. 죽지는 않았어. 아직은. 하지만 곧 죽겠지.”공손천기의 친절한 설명에 임제학은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
“네가 마교의 교주인 공손천기인가?”“그래. 우리는 초면이지?”초면이지만 대문을 들어오는 순간부터 서로가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 것이냐? 교주.”임제학의 대답을 듣는 순간 공손천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상대방에게서 원하는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원래대로라면 자네의 제자를 죽였어도 그쪽은 딱히 할 말이 없었을 거야. 맨 처음 우리 쪽에서 제시했던 시간을 지키지 못했으니까.”“……!”임제학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그의 입장에서는 정말 어쩔 수 없이 늦은 것이다.
돈을 모으는 데 시간이 걸렸으니까.
소속 문파도 없고, 소속된 가문도 없는 임제학이었기에 갑작스럽게 큰 금액을 모으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자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지. 도군.”임제학은 공손천기를 바라보며 자신의 칼 손잡이를 가볍게 매만졌다.
‘기회?’불길한 단어였다.
지금 저 괴물과 싸우면 반드시 죽는다.
도저히 저 얄미운 괴물을 이길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마주해 본 천하제일마 공손천기는 듣던 것 이상이었으니까.
대체 얼마나 대단한 수준에 이르러 있는지 임제학으로서도 감히 짐작이 되지 않을 정도의 상대다.
그때 공손천기가 손가락 관절을 시원하게 풀며 입을 열었다.
우두둑-
“여기까지 온 김에 생사비무나 한번 하지.”“……뭐?”생사비무.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뜻이다.
임제학의 눈동자가 크게 뜨여졌다.
천하제일이라 불리는 공손천기와 생사비무라니…….
붙는다면 필패였다.
하나 상대방이 저렇게 노골적으로 제의한 것을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
임제학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질 때 공손천기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겁먹지 마. 자네 상대는 내가 아니라 이 아이니까.”툭-
초류향은 자신의 몸을 가볍게 앞으로 밀어내는 공손천기를 보며 잠시 멍한 얼굴을 해 보였다.
갑자기 이게 무슨 행동일까?
자신에게는 사전에 아무런 이야기도 해 주지 않았는데?
초류향의 표정을 힐긋 본 공손천기의 입가에 걸린 웃음이 더더욱 짙어졌다.
“어때? 이 정도면 해 볼 만하겠지?”“…….”임제학의 표정도 처음에는 초류향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당황스럽고 어처구니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던 것이다.
그리고 연이어 떠오르는 것은 선명한 분노였다.
“……모욕적이군.”이건 대단한 모욕이었다.
임제학.
그가 누군가?
화경의 경지에 들어서 삼황을 제외하고는 적수가 없다고 알려져 있지 않던가?
오제(불제, 검제, 도제, 창제, 권제)의 다섯 명.
그들도 감히 도군 임제학과의 승부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임제학이 구주십오객에서 그 위치가 가장 낮은 칠군으로 불리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가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공손천기는 임제학의 이런 반응을 예상했는지 시종일관 느긋했다.
“자네가 이기면 몸값도 받지 않고 자네 제자를 돌려주지.”임제학은 칼 손잡이를 만지며 눈을 가늘게 떴다.
모욕을 받았으면 분노하면 된다.
그리고 그 분노는 이제 가야 할 곳을 정했다.
스릉-
콰카카칵-!
칼이 언제 뽑혔는지도 모르게 바닥에 깊고 기다란 선이 그려졌다.
“내가 이기면 네 제자의 목숨은 없다.”임제학이 씹어 내뱉듯이 말을 하자 공손천기는 웃었다.
“가능하면 그렇게 해도 좋아.”공손천기는 상대방을 일부러 도발했다.
임제학이 분노해서 진심으로 화를 내길 원했던 것이다.
공손천기는 어느새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자를 바라보며 소곤거렸다.
“봤지? 이제부터 저 영감탱이가 죽일 듯이 달려들 거야.”“…….”“너는 이번에 순수한 무공만으로 상대하거라.”이건 진법을 사용하지 말라는 뜻이다.
하나 초류향은 이제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스승님의 숨겨진 의도가 무엇인지 아직도 잘은 모르겠지만 상관없었다.
‘그래, 하라면 하면 되는 거다.’생각해 보니 딱히 그 의도를 파악할 필요가 없었다.
괴로워할 필요도, 자신에게 이런 일을 시키는 이유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스승님은 그에게 해가 될 행동은 ‘절대’ 하지 않았다.
지금 이렇게 갑작스럽게 지시를 했다면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라도 믿어야지…….’초류향은 속으로 그렇게 작게 투덜거리며 망루의 난간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가볍게 아래로 뛰어내렸다.
턱-
지면에 착지했는데 실제로는 전혀 소리가 나지 않았다.
임제학은 그런 초류향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너는 죽는 게 무섭지도 않느냐?”초류향을 보는 순간 임제학은 알았다.
이 녀석은 자신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저 녀석이 취해야 할 행동은 한 가지였다.
그의 스승인 교주를 설득해서 지금의 이 생사비무를 취소하는 것.
한데…… 이 꼬마 놈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냥 덤덤한 얼굴로 앞으로 걸어 나오는 것이다.
“죽는 게 무섭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까?”“내가 보기엔 네가 그렇다.”“전 죽는 게 무섭습니다.”“그럼 너는 네 스승을 설득해 이 싸움을 취소하는 게 좋을 게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너를 죽일 테니까.”“무섭군요.”초류향은 희미하게 웃었다.
눈앞에 있는 노인이 얼마나 강직한 성격인지 방금의 한마디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강호에는 어울리지 않는 친절함이다.
그 친절함에 초류향이 해 줄 말은 한 가지뿐이다.
“기회가 온다면 망설이지 마십시오. 망설인다면 죽는 건 그쪽이 될 겁니다.”“……!”도군 임제학의 눈동자에 떠올라 있던 측은함이 곧 뜨거운 분노로 바뀌었다.
순간적으로 이런 어린아이를 베는 것이 싫어서 기회를 준 것인데 되레 모욕을 받은 것이다.
“오늘 마교의 미래를 꺾어 주지.”지금 여기서 천마신교의 소교주를 죽이게 되면 자신은 물론 그의 제자도 살아 나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교주가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이런 모욕을 받고도 가만히 있는다면 살아있어도 산 것이 아니다.
“가능하면 그렇게 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겁니다.”“너는…… 무척이나 오만하구나.”버릇을 고쳐줘야 했다.
크게 훈계를 내려줄 생각인 것이다.
임제학이 화가 난 얼굴로 칼 손잡이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줄 때.
초류향 역시 진지한 얼굴로 양쪽 소매를 한 번 말아 올렸다.
‘진법을 쓰지 말라고?’그동안 가장 자연스럽게 써 오던 진법을 이번에는 쓸 수 없었다.
순수하게 무공만으로 상대방을 제압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부족하진 않지.’초류향은 흐릿하게 웃었다.
머릿속에 이미 수십 가지 무공들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역시 지금 눈앞에 있는 상대와 겨루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무공만이 필요했다.
‘수라환경.’그것이면 족했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야 했다.
상대방은 정말이지 만만치 않았으니까.
천천히, 하지만 느리지는 않게 초류향이 몸을 움직였다.
그 기묘한 움직임을 가만히 지켜보던 임제학의 눈동자에 의혹의 빛이 떠올랐다.
동시에 분노로 부들부들 떨리던 그의 손이 천천히 침착해졌다.
‘이 꼬마 녀석…….’심상치 않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공손천기가 미친 것인 줄 알았다.
제자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것은 좋다.
하지만 애초에 이게 말이나 되는 승부인가?
결과가 뻔한 승부에서 헛소리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한데…….
‘과연 천마신교라 이건가?’고수는 상대방의 발걸음, 숨소리, 눈빛만 봐도 그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임제학은 맨 처음 분노로 눈이 흐려져 초류향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니, 공손천기에게 너무 신경이 집중되어 있어서 초류향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터.
‘새끼 호랑이……. 아니, 벌써 사냥에 나설 수 있을 정도로 자란 호랑이인가?’임제학은 초류향의 움직임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칼손잡이를 쥐고 있던 손에서 천천히 힘을 뺐다.
이런 건 분노의 힘으로 상대해선 안 된다.
쓸데없는 힘을 빼고 집중해서 한 번에 결정을 지어야 하는 것이다.
임제학이 호흡을 길게 잡아가자 초류향 역시 천천히 움직이며 더더욱 느리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공손천기는 망루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턱을 난간에 괴었다.
“저걸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 호법님들께서는?”“말려야 하지 않겠습니까?”어느새 나타난 선우조덕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하자 주상산과 우규호.
갑작스럽게 등장한 두 호법이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할 만하다.”“뭐?”“약쟁이, 네가 아직 보는 눈이 없어서 잘 모르나 본데…….”주상산은 턱을 쓰다듬으며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초류향을 바라보았다.
“소교주님께서는 지금 놀랍도록 대응을 잘하고 계신 거다.”“그런가? 하긴 식충이 영감들이 무공 쪽으로는 나보다는 나으니까.”식충이라는 말에 우규호가 움찔했지만 곁에 있는 공손천기를 보며 화를 가라앉혔다.
그리고 작게 투덜거리듯이 입을 열었다.
“문제는 도군이야.”우규호는 얼굴을 찡그리며 도군 임제학을 바라보았다.
“저놈은 이제 전혀 방심하지 않고 있어. 우리 소교주님 입장에서는 일이 아주 힘들게 된 거다.”방심하지 않고 진지하게 상대를 바라본다.
단순한 마음가짐의 변화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초류향은 엄청난 압박감을 느껴야 했다.
초류향의 전진하는 속도가 눈에 띄게 더뎌졌다.
이제는 거의 제자리에 멈춰 있는 수준.
공손천기는 그 모습을 보며 흐릿하게 웃었다.
‘수라환경은 본래부터 후퇴를 모르는 무공이지.’천마신공에서 파생되어 나왔지만 본래 천마신공이 가지고 있던 장점만을 극대화한 것이 수라환경이다.
덕분에 수라환경은 그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부분에서 그 어떤 무공보다도 뛰어났다.
달리 천하제일의 무공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다.
‘이제 너는 어떻게 저 영감을 처리할 거냐?’방심하지 않는 임제학.
그는 제자리에 서서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지만 움직이지 않기에 철벽보다 견고해 보였다.
공손천기는 점차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초류향을 내려다보았다.
임제학과 마주하고 있는 그의 제자.
초류향이 그동안 진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적들을 격퇴해 온 것은 여러 번의 보고서를 통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문제는 너무 진법에만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공손천기가 보기엔 그다지 좋지 않은 모습이었다.
자신의 제자가 진법에 엄청난 소질이 있고, 잘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무공에도 대단한 소질이 있지 않은가?
이제는 그것을 보여 줘야 할 시점이다.
무공으로도 충분히 난관을 돌파할 수 있음을 스스로가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제자야, 네가 익힌 무공을 나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너 스스로에게 보여 주고 증명하라고 이런 자리를 만든 거다. 그러니 망설이지 마라.’공손천기가 그렇게 생각할 때쯤.
변화가 생겼다.
임제학이 앞으로 성큼 걸음을 옮긴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초류향과 임제학이 서로를 향해 날카롭게 달려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