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26)
제126화 초류향의 실력(2014.03.24.)
‘두 발자국.’초류향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그는 잠시 제자리에서 멈춰 서서 고민해야 했다.
상대방의 영역과 자신의 영역이 겹치는 거리.
그 거리까지 이제 고작 두 발자국만 남았다.
한데 곤란한 것은 상대방에게서 빈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물러설 수 없겠지.’수라환경은 애초에 물러서는 방법이 없었다.
그랬기에 멈춰 서 있는 듯 보였지만 사실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미세하게 초류향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임제학이 갑자기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둘 사이에 있던 거리가 예고도 없이 좁혀지고 동시에 둘의 영역이 겹쳐졌다.
초류향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는 그 순간.
임제학과 거의 동시에 초류향이 앞으로 달려들었다.
치이이익-!
임제학의 칼집에서 칼이 뽑혀 나오며 공기가 빠르게 타들어 갔다.
그만큼 엄청난 속도로 칼을 뽑아낸 것이다.
‘발도술.’지켜보던 공손천기는 흥미로운 얼굴을 해 보였다.
저런 발도술은 사실 강호에서는 잘 쓰지 않는 방법이었다.
왜냐하면 전력을 다해 발도술을 사용하고 나면 잠시 동안 무방비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강호에서는 칼을 미리 뽑아놓은 상태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움직이며 크게 휘두르는 것만을 선호했다.
하지만…….
‘그런 건 겁쟁이들이 칼 쓰는 방법이지.’임제학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영향받은 것은 왜도법(倭刀法, 일본식의 칼쓰는 방법).
왜도법에는 곧장 칼을 뽑아 쓰지 않고 칼집에 넣어 둔 상태로 상대와 겨루는 이런 발도술이 무척이나 흔했다.
그는 화경의 경지에 들기 전부터 발도술이 장기였고, 화경에 들고서도 그는 남들과 다르게 발도술을 강하게 고집해왔다.
일도필살(一刀必殺, 한 번의 칼질로 반드시 죽인다).
필생의 각오로 칼을 뽑아 휘두르는 것이다.
그 일도를 받아낸 사람은 여태껏 단 한 명도 없었다.
초류향 역시 마찬가지였다.
임제학의 발도술에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만 했으니까.
‘빠르다.’상대방의 낮은 자세를 보고 이미 발도술을 사용할 것임을 알았다.
그렇게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군 임제학의 발도술은 정말 무시무시했다.
쐐애애액-!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하나 머릿속이 텅 빈 그 순간에도 초류향의 몸은 착실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동안 머릿속으로 수십 번, 수백 번, 아니 수천 번 수만 번 반복해 왔던 무공들.
그것들이 직접 육체를 통해 발현되는 것이다.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딘 발을 시작으로 전신의 기운이 허리를 타고 흘러 양손에 맺혔다.
동시에 초류향의 시야에 보이던 모든 사물이 느릿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고도로 집중한 탓이다.
초류향은 사선으로 쏘아져 오는 칼끝을 바라보다 두 손으로 부드럽게 덮었다.
칼을 감싼 두 손에서 화끈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참았다.
아니, 반드시 참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테니까.
초류향은 두 손으로 감싼 칼이 멈추지 않고 자신의 목을 노리며 쇄도해 오는 것을 천천히 지켜보다가 전력을 다해서 칼끝을 위쪽으로 비틀어 올렸다.
힘이 진행되는 방향을 아주 조금.
결정적인 순간에 미세하게 바꾼 것이다.
그게 초류향을 살렸다.
사아아악-!
이마 위쪽으로 지나가는 선뜻한 기척을 느끼며 초류향은 내달렸다.
강기로 덮인 칼을 맨손으로 잡았으니 초류향의 두 손은 이미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고, 강한 힘에 저항하느라 내상을 입었기에 입안에서는 비릿한 쇠붙이 맛이 느껴졌다.
하지만 망설일 수는 없었다.
‘한 방.’
초류향은 주먹을 움켜쥐고 급격하게 좁혀진 둘 사이의 거리를 보며 정권을 내질렀다.
휘오오오-!
강력한 힘이 응집된 그 한 방을 지켜보던 도군 임제학의 대응은 정말로 탁월한 것이었다.
뻐어억-!
팔꿈치.
초류향은 자신의 주먹을 막아낸 상대방의 기막힌 한 수에 감탄하며 뒤로 훌쩍 밀려 나갔다.
‘대단하다.’초류향은 입과 코에 흐르는 피를 소매로 닦아내며 눈을 빛냈다.
맨손으로 칼을 받아내는 것.
흔히 공수입백인(空手入白刃)이라고 부른다.
최상승의 무공이지만 딱히 어떻게 하라는 방법이 정해져 있지는 않았다.
하나 요점은 간단했다.
한 손을 사용하든 두 손을 사용하든 어떻게든 칼을 받아 내는 것이다.
방금 초류향은 도군 임제학의 칼을 완벽하게 받아 낼 자신이 없었다.
그랬기에 옆으로 힘의 방향만 적당히 바꿔 버린 것이다.
방법이야 어떻든 받아 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칼을 받아 내면 그다음은 맨손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니까.
칼을 받아내면 둘 사이의 거리가 급속도록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초류향은 뒤로 물러서지 않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접근했던 것이다.
‘그런데…….’분명 서로의 숨결도 느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당연히 크게 한 방 먹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짧은 순간에 임제학은 팔을 접어서 팔꿈치로 일격을 막았다.
엄청난 임기응변이었다.
‘그래도 소득은 있었다.’초류향은 자신의 작은 주먹 끝에 걸렸던 묵직한 느낌을 되새김질하며 다시 한 번 기회를 엿봤다.
팔꿈치로 막았다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완벽한 대응은 아니었기에 내부에서부터 부서지는 느낌이 전해져 왔던 것이다.
임제학은 지금 두 손으로 칼을 쥐고 있었지만 미묘하게 한쪽으로 균형이 어긋나 있었다.
초류향은 그 모습을 보며 확신했다.
‘이길 수 있다.’초류향은 자신의 두 손에서 감각이 없어져 가는 것을 애써 무시하며 주먹을 움켜쥐고 자세를 잡았다.
여리여리했던 두 손바닥의 피부는 이미 다 벗겨져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고, 내부는 용암처럼 들끓고 있었다.
그것이 임제학의 일격을 흘린 대가.
하지만 초류향은 오히려 투쟁심을 불태웠다.
이만하면 충분히 해 볼 만하다고 여긴 것이다.
뿌드득-
임제학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팔꿈치 뼈가 으스러진 느낌이었다.
‘방심했다.’굴욕적이었다.
여태껏 그의 발도술을 이렇게 쉽게 막아낸 놈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기껏해야 멀찍이 도망쳐서 피할 뿐, 지금 소교주처럼 발도술을 옆으로 흘려내고 오히려 몸 안 깊숙이 파고들어 와 일격을 날린 놈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저놈은 맨손이지 않은가?
‘위험한 놈이다.’본능이 강하게 경고해 왔다.
고작 저 나이에 이 정도의 재주를 보이는데 시간이 더 지나면 얼마나 대단한 마귀가 될지 알 수 없었다.
그 전에 죽여야 했다.
그렇게 죽이기로 강하게 마음먹은 순간 임제학이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동시에 그의 칼끝에서 붉은색 뇌전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빠직-
빠지지직-!
현재의 도군 임제학을 만들어 준 무공.
‘적뢰도천파(赤雷刀天破).’붉은색 뇌전 강기가 칼끝을 타고 흘러 초류향의 상체를 사납게 할퀴어 갔다.
초류향은 덮쳐 오는 상대방의 강한 기세를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조금 전과 그 기세가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게다가 공격 방식도 가장 단순하면서도 확실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도법.
어떤 무공에도 다 있는 태산압정(泰山押頂, 태산처럼 내리누름)의 초식이었다.
초류향은 눈을 빛냈다.
동시에 초류향의 몸에서 핏빛의 기운이 구름처럼 뿜어져 나왔다.
무공이라면 초류향 역시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수라환경 이 장 제1초식.’거꾸로 승천하는 용처럼 초류향이 몸을 사선으로 빠르게 뒤집으며 임제학의 일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머리는 아래로 향했고 쭉 뻗은 오른쪽 다리는 임제학의 턱을 노려갔다.
회피와 공격을 같이 할 수 있는 무공.
‘혈풍격(血風擊).’빠악-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임제학의 몸이 일순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와 함께 초류향은 날쌘 고양이처럼 뒤로 멀찍이 떨어져서 착지한 후에 무언가 불편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공손천기는 낮게 혀를 찼다.
“쯧, 힘이 부족했다.”우규호 호법과 주상산 호법도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초류향은 바닥에서 한쪽 다리를 살짝 들어 올린 상태로 임제학을 노려보고 있었다.
“……위험했군.”도군 임제학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최후의 순간 임제학은 기운을 모아서 턱을 당기고 단단한 이마를 앞으로 내밀어 초류향과 충돌한 것이다.
그때의 충돌로 잠시 정신이 어질어질하긴 했지만 분명한 소리를 들었다.
우득-
초류향의 발목뼈가 어긋나는 소리를 뚜렷하게 들었던 것이다.
‘경험이 부족했다.’공격을 들어가면서 초류향은 확신했었다.
이번 공격이 성공할 것이라 자신했다.
한데 아니었다.
임제학은 노련했고, 경험 또한 풍부했다.
그는 이런 위기 상황에 대처할 방법이 많았던 것이다.
“끝이군.”“…….”초류향은 퉁퉁 붓기 시작하는 발목을 바라보며 어두운 얼굴을 해 보였다.
단순히 내력이나 힘만으로는 임제학을 상대할 수 없었다.
초류향이 그나마 유리했던 점은 작은 몸을 빠르게 움직이는 속도였는데…… 이제는 그 유리함마저 없어져 버렸다.
한쪽 발로 바닥을 지탱하고 발목뼈가 뒤틀린 다른 발은 깨금발을 짚고 서서 초류향은 주춤주춤 앞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임제학은 눈가를 씰룩거렸다.
이 와중에도 저 꼬마 놈은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우습게 보이는 건가?’저런 상태의 꼬마라면 제아무리 놈이 무공의 천재라 하더라도 자신을 이길 수 없었다.
힐긋 고개를 들어 공손천기를 바라보았다.
마침 공손천기 역시 임제학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둘은 눈을 마주쳤고 공손천기는 흐릿하게 웃어 보였다.
‘말릴 생각이 없다, 이거냐?’끝을 보아야겠다면 그래 주겠다.
임제학이 그렇게 마음먹고 칼을 들어 올리자 초류향 역시 갑자기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때 망루 위에서 지켜보던 공손천기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제 장난 그만 치고 전력을 다해라, 제자야. 네 앞에 있는 영감은 그다지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마지막에는 예의를 다 해줘야지.”임제학이 얼굴을 찌푸렸다.
저 말이 무슨 뜻일까?
그동안 장난이라도 쳤다는 말인가?
자신을 상대로?
기분이 불쾌해졌다.
그때 공손천기의 말을 들은 초류향이 어깨를 움찔거렸다.
무언가 찔끔한 기색.
그러다 천천히 호흡을 고르며 두 팔을 앞으로 편하게 들어 올렸다.
‘무슨 개수작을……?’임제학이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을 때.
초류향이 서서히 양쪽 팔에 차고 있던 거무튀튀한 팔찌를 풀었다.
후욱-
팔찌를 풀었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무언가가 변했다.
그게 뭐지?
찜찜한 표정으로 임제학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초류향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임제학은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놈…….’저놈의 뭐가 어떻게 변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 꼬마 놈의 눈에는 조금 전에 없던 것이 생겨 버렸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너무도 분명한 ‘자신감’이었다.
뚜둑-
갑자기 소교주의 뒤틀려 있던 발목이 뼛소리를 내며 빠르게 맞춰지기 시작했다.
월인도법.
신체를 가장 완벽하게 통제하는 그 무공이 발동된 것이다.
월인도법의 기운이 주변의 근육들을 움직여 강제로 뼈를 맞춰갔다.
하나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임제학은 잠시 괴물 보듯이 초류향을 바라보았다.
“후우.”초류향은 깨금발을 짚고 있던 발로 바닥을 가볍게 툭툭 쳤다.
아직도 미약하게 시큰거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임시방편은 되었다.
“이번에는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도군.”도군 임제학은 트릿하게 웃었다.
“……내가 많이도 우습게 보였나 보군.”빠지지지직-
임제학의 검에 다시금 붉은 뇌전 강기가 크게 일렁거렸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엄청난 크기의 붉은 강기다.
하나 그것을 바라보는 초류향의 얼굴에서는 조금의 두려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천천히 양손을 앞으로 모았다가 뻗자 초류향의 손에서도 희미한 핏빛 강기가 일렁거렸다.
“그럼 갑니다.”팟-!
초류향의 몸이 사라지는 그 순간.
그 광경을 지켜보던 공손천기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떠올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