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28)
제128화 수라의 칭호(2014.03.31.)
콰직-!
꼬맹이의 발에 짓밟힌 발뼈가 으스러지면서 예상을 넘어서는 고통이 척추를 타고 뒷골을 강타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통증.
하지만 도군 임제학은 멈추지 않았다.
뿌드드득-!
팔과 어깨 근육이 크게 부풀어 오르며 대각선으로 짧게 내려 긋는 칼에 어마어마한 힘이 실렸다.
일격에 가루를 내 버릴 생각이었다.
빠직-
빠지지지직-!
엄청난 무게와 힘이 제대로 실린 임제학의 칼.
그것을 초류향은 지금 상태로 절대 받아 낼 수가 없었다.
임제학의 눈동자에 살기가 번들거리고 칼이 제대로 휘둘러졌다.
하나 초류향은 그것을 보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를 높여서 더더욱 거리를 좁혀 들어 갈 뿐이다.
임제학의 눈동자가 크게 뜨여졌다.
일순간 초류향의 움직임이 지금까지보다 몇 배나 더 빠르게 움직였던 것이다.
임제학은 이를 갈았다.
이 어린 마귀가 지금까지는 고의적으로 속도를 줄이고 이동했던 모양.
진짜 속도를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당했다.’이건 뼈아픈 실책이었다.
순식간에 임제학의 품 안으로 안기듯이 파고든 초류향은 팔을 뻗었다.
그리고 고사리같이 얇고 작은 손으로 임제학의 손목을 붙잡은 초류향은 그것을 힘의 방향과 반대편으로 비틀었다.
뿌드득-!
손목이 꺾이고 곧장 임제학의 입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분노에 찬 임제학이 반대쪽 팔꿈치로 초류향의 뒤통수를 노리고 찍어 오자 초류향은 그것마저 잡아서 뒤집어 꺾었다.
우둑-
순식간에 양팔을 기형적으로 꺾어 버린 초류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잔인해질 때는 충분히 잔인하게.’이건 교훈이었다.
몸에 새겼던 필생의 교훈.
상대방을 살려 두겠다는 얄팍한 마음을 먹으면 본인이나 주변 사람이 호되게 당했다.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았던가?
적에게 관용을 베풀다가 운휘가 당했다.
그야말로 죽을 뻔한 것이다.
‘그런 일은 이제 다시없다.’초류향의 눈동자에 얼음장과 같은 서늘함이 자리 잡았다.
다음에는 절대로 자신에게 덤비지 못할 정도로 상대방을 부숴 놓아야 했다.
완벽하게.
초류향은 입에서 울컥하고 올라오는 핏물을 삼키며 무릎을 이용해서 임제학의 왼쪽 무릎 옆 부분을 강하게 찍었다.
콰지직-!
“크윽!”나무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임제학의 무릎이 꺾이고 그가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이 모든 과정들이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다.
털썩-
바닥에 쓰러진 임제학을 바라보며 초류향은 가볍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신의 두 손과 발로 사람을 이렇게까지 직접 부숴 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이다.
아찔한 떨림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이빨이 딱딱거리며 부딪칠 만큼 소름 끼치는 경험.
‘나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하나 바닥에 쓰러진 채 경련을 일으키는 임제학을 보는 초류향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렸다.
모질게 마음먹고 상대방을 망가뜨렸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혼란이 찾아온 것이다.
‘왜?’대체 왜 이렇게 마음이 복잡한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초류향의 뒤에 공손천기가 나타났다.
공손천기는 공황 상태에 빠져 있는 제자를 힐긋 보고 남들이 흔들리는 초류향을 보지 못하게 그 앞을 가리며 입을 열었다.
“둘 다 치료해 줘.”선우조덕.
그가 그림자처럼 나타나 우선 초류향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인형처럼 굳어서 식은땀만 뻘뻘 흘리는 초류향에게 약을 먹였다.
예의 불사호심단이었다.
입안에서부터 퍼지는 약 효과를 느끼며 초류향이 차츰 내부가 진정되는 것을 느끼고 있을 때.
공손천기가 그런 초류향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자야.”“…….”“제자야, 나를 똑바로 봐라.”흔들리는 초류향의 시선이 공손천기를 향했다.
그런 제자의 눈을 똑바로 직시하며 공손천기가 입을 열었다.
“너는 지금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 적이 너를 죽이려 하는데 가만히 앉아서 죽어 줄 셈이더냐?”“…….”“너는 지금 너의 힘으로 스스로를 지킨 것이다. 그것은 두려워해야 할 일도 미안해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이지.”“…….”공손천기는 초류향의 작은 양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공손천기의 양손에서 따스한 기운이 명주실처럼 뿜어져 나와 초류향의 전신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네가 가진 힘을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앞으로 네가 가진 그것으로 너의 것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니 피하지도 겁먹지도 말고 지금 이 광경을 똑바로 보아라. 그리고 오늘의 기억을 확실하게 뼈에 새겨야 한다. 이게 네가 살아가야 할 강호의 진짜 모습이니까.”떨림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하나 아직도 약간은 멍한 시선으로 초류향이 공손천기를 응시했다.
그 시선을 덤덤하게 바라보던 공손천기가 작게 말했다.
“제자야. 인간은 말이다, 누구나가 서로를 짓밟으며 살아간다. 강호가 아니라도 그렇지. 단지 강호는 다른 곳보다 약육강식의 형태가 조금 더 진솔하게 나타나는 세상일 뿐이다.”순수하게 힘을 앞세워서 자신보다 약자를 짓밟고 올라가는 세상.
그곳이 강호다.
“…….”머리로 납득했다 여긴 것이 다시 한 번 새롭게 다가왔다.
그런 초류향을 보던 공손천기가 최대한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 네 마음에 생긴 죄책감과 괴로움을 잊지 말아라. 그것이 분명 너를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초류향은 선우조덕이 치료하고 있는 도군 임제학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지금 옳은 일을 한 것입니까?”“쯧, 내가 저번에 너에게 해 준 말을 그새 잊어먹었느냐?”“…….”초류향이 고개를 옆으로 갸웃거리자 공손천기가 입을 열었다.
“강한 것은 언제나 옳다. 그 형태가 어떠하든 너는 저 영감보다 강했다. 그러니 너는 옳은 것이다.”강한 것은 옳다.
초류향의 머릿속에 공손천기의 말이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그 말이 마음속에 진하게 새겨지자 혼란스러운 감정이 차츰 정리되었다.
그때.
선우조덕이 일어서며 말했다.
“급한 대로 치료는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뼈가 어느 정도 맞춰질 때까지는 요양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그래? 그럼 데리고 가서 치료해 줘.”공손천기는 그때까지 버티다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진 임제학을 보며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저 영감에게 영약을 사다가 먹이고 싶을 만큼 고마웠다.
그동안 제자에게 가장 부족했던 것.
그것을 저 영감이 피부로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건 돈으로도 할 수 없는 경험이지.’확실히 임제학은 강했다.
공손천기가 예상했던 대로 딱딱하게 굳어 있던 초류향을 각성시키기에 ‘적당한’, 하지만 결코 모자라지 않게 강한 상대였다.
‘위험했어.’임제학이 임기응변으로 속임수까지 사용하면서 적극적으로 초류향을 죽이려 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저런 영감쟁이들의 특성상 손에 어느 정도 인정을 두고 할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탈탈 쏟아 부어서 초류향을 죽이려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무식한 영감탱이.’공손천기조차 아찔했던 장면이 몇 번 있었다.
몇 번이고 참견하려던 자신을 억제하느라 힘들 지경이었으니까.
최후의 최후까지 참고 기다린 덕분에 제자는 지금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치 있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남는 장사를 했다.’공손천기가 그렇게 흐릿하게 웃으며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저 옆에 멍청한 얼굴로 서 있는 노진녕과 운휘가 보였다.
둘 다 죽을 만큼 심각하게 부상당한 주제에 제 주인이 걱정되어서 여기까지 나온 모양이다.
기특했다.
녀석들을 보자 공손천기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주변을 힐긋 돌아보았다.
사천 분타의 대문 바깥.
아주 먼 곳에서 수많은 시선들이 느껴졌다.
정도맹을 비롯해서 천하 사패가 뿌려놓은 첩자들의 시선이었다.
그들이 사천 분타를 오래전부터 지켜보고 있음을 알면서도 공손천기는 굳이 제지하지 않았다.
언젠가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소문은 달리는 말보다 빠르지.’곧 천하에 천마신교의 소교주 초류향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갈 것이다.
그게 악명이든 혹은 두려움이든 공손천기에게 있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천천히 움직여 자리를 이동한 공손천기는 운휘와 노진녕을 보며 입을 열었다.
“봤느냐?”“……예.”“어떠하냐?”“…….”어떠했느냐고?
방금 전의 저것을 대체 어떻게 표현하라는 말인가?
운휘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 옆에 있던 노진녕이 불쑥 입을 열었다.
“멋졌습니다. 화끈했구요. 헤헤헤.”“그렇지?”“…….”운휘도 노진녕의 표현에 동의했다.
그리고 속으로 한 가지 표현을 더 붙였다.
‘처절했다.’마치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 같았다.
다른 자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운휘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게다가…….’분명히 실력은 임제학이 초류향보다도 윗줄이었다.
그것도 확실하게 윗줄.
한데도 초류향은 그것을 뒤집었다.
이건 단순히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대단한 일이다.
“네 주인은 너희들의 생각보다 약하지 않다. 게다가 지금 보았듯이 운도 좋지. 그러니 너희들도 빨리 성장해야 할 거다. 안 그러면 따라잡히니까.”“……!”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던 운휘와 노진녕의 어깨가 동시에 움찔했다.
방금까지 그저 초류향의 무공에 감탄만 했지만 따라잡힌다는 말을 듣는 순간 본능적으로 긴장한 것이다.
‘하나 아직까지는…….’그랬다.
아직까지 순수한 무공만으로 보았을 때.
초류향은 완성되지 않았다.
엄밀히 따지고 본다면 그랬다.
한데도 노진녕과 운휘는 긴장했다.
초류향의 엄청난 발전 속도를 알고 있는 탓이다.
지금의 초류향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안일한 생각이었다.
‘방심할 수 없겠다.’운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이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었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잘못하다가는 짐덩이가 될 것이다.
노진녕도 운휘와 비슷한 생각을 한 것인지 조금 전과는 달리 복잡미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 * *
“사부님.”“…….”“사부님. 괜찮으십니까?”도협 강세빈.
그는 하루 종일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임제학을 보며 안타까운 얼굴을 해 보였다.
강세빈도 보았다.
소교주라는 꼬마 아이에게 그의 하늘 같은 스승님이 무참하게 무너지던 모습을.
그 비참한 광경이 떠오르자 마음 한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자신 역시 그 되도 않는 멧돼지 같은 녀석에게 패배했지만 이건 그것과 종류부터가 달랐다.
‘상대방은 이제 고작 열두 살 된 꼬마 아이…….’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너무 충격적인 일이 아닌가?
구주십오객의 일인이자 삼황을 제외하고,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다 알려진 사람이 바로 그의 스승님이셨다.
모든 것에 당당하고 거침없었던 스승님.
상대가 제아무리 마교의 소교주라고는 하지만 꼬마 아이 아닌가?
스승님의 고고한 자존심이 열두 살 꼬마 아이에게 패배한 것을 아직까지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차라리 그때 정신을 잃으셨으면 좋았을 것을…….’뼈가 부러지고 뒤틀리면서도 그때의 임제학은 멀쩡한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육체가 망가진 것보다 자존심이 구겨지고 망가진 것이 지금의 임제학을 힘들게 했다.
“……세빈아.”“예. 사부님.”도협 강세빈은 갑작스럽게 자신을 부르는 힘없는 음성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흐릿하게 풀려 있는 시선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세빈의 마음 한구석이 찢어질 듯 아파 왔다.
“돌아가자꾸나.”“……조금 더 몸을 회복하셔야…….”“더 이상의 굴욕은…… 견딜 수가 없구나.”“…….”강세빈은 입을 다물었다.
그 역시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지만 스승님의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이만큼 저놈들의 보살핌을 받은 것도 염치없고 창피한 일이다. 그러니…… 돌아가자.”허허로운 웃음.
그 웃음을 바라보던 강세빈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사부님.”임제학이 곁에 있던 지팡이를 잡고 일어서자 강세빈이 그를 부축했다.
그들은 그렇게 조용하게 사천 분타를 빠져나왔다.
임제학과의 생사비무.
그것이 초류향에게 ‘수라’라는 별호를 붙여준 첫 번째 사건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