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29)
제129화 팽가호의 고민(2014.04.03.)
팽가호는 아침부터 갑자기 찾아온 손님 때문에 팅팅 부은 얼굴로 접견실로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왠지 초조한 얼굴의 남궁옥빈을 만날 수 있었다.
“여어, 형제님. 오랜만이네.”팽가호가 부스스한 얼굴로 손을 흔들며 인사하자 남궁옥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의 손목을 확 잡아채더니 어딘가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얼레?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급해?”“어? 아, 미안!”무언가에 골몰한 채 팽가호를 끌고 가던 남궁옥빈은 자신의 성급한 행동을 깨닫고 무안한 얼굴을 했다.
그는 팽가호의 손목을 놓으며 작게 말했다.
“마음이 너무 급해서 서둘렀다.”“평소에는 안 그러던 우리 형제님이 이러니 기대되긴 하네. 이번에는 뭐가 문젠데 이 바쁘신 형님을 찾아온 거야?”남궁옥빈은 팽가호의 유들유들한 태도를 살펴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역시…… 소문 못 들었어?”“무슨 소문?”“천마신교의 소교주에 관한 소문.”“아? 그 초마공자라는 놈?”“그래. 그 녀석, 누군지 알 것 같아?”“알 리가 있나. 이 형님 요새 무척 바빠. 게다가 그런 거 관심도 없어.”팽가호는 정말 외부의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지금 당장은 스스로의 무공을 높이기 위해 전력으로 수련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번 제1차 정마대전 때 너무도 많은 것을 겪어 버렸다.
그곳에서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그 아비규환의 중심 속에서 살아남았기에 무공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던 것이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절실히 필요했다.
‘후후, 다행히 성과는 있었지.’벌써부터 일류고수에서 절정을 바라볼 정도까지 성장했으니까.
원래부터 나이에 맞지 않게 우람하고 탄탄했던 팽가호의 육체는 지금 더욱더 강인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팽가호는 의자에 편하게 앉으며 앞에 놓인 찻잔에 손을 가져갔다.
자신 못지않게 무공 수련에 열중했던 남궁옥빈이다.
그 역시 느낀 바가 있었으니까.
그런 녀석이 뜬금없이 찾아와서 한다는 소리가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라니.
솔직히 기운이 빠졌다.
그때 남궁옥빈이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넌 좀 더 그 녀석에게 관심을 가져야 해, 팽가호.”“왜? 우리랑 비슷한 또래인가 보지?”비슷한 또래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 세대에 분명 어떻게든 연관이 될 테니까.
초마공자라는 녀석이 천마신교의 주인이 된다면 분명 자신들과 어떤 식으로든 엮일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그렇지만…….”어딘가 모호한 얼굴.
무언가를 말할까 말까 망설이던 남궁옥빈이 결국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초마공자라는 별호로 불리는 그 녀석, 천마신교의 소교주 이름을 들은 적 없어?”“이름? 모르겠는데. 관심이 없으니까.”팽가호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슬쩍 들어 올리자 남궁옥빈이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랬지. 그래서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이번에 그 이름을 듣고 이야기가 달라졌다.”“왜? 나도 아는 이름인가?”남궁옥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마침내 그 이름이 흘러나왔다.
“초류향.”“……응? 뭐?”“초류향이라고 하더군. 천마신교의 소교주의 이름이.”이게 뜬금없이 무슨 소리지?
유기산법무예학당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그 녀석 이름을 왜 갑자기?
팽가호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남궁옥빈이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아는 그 초류향이 현재 강호에서 초마공자라 불리는 그 녀석과 동일인물이다.”“……?”“너와 내가 기련산을 향해 가던 날, 그 녀석도 기련산을 향해 움직였다더군. 조기천 선생님과 함께.”“……너 이게 지금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정신 나간 소리도 정도껏 해. 이 형님 화낸다. 네가 말하고 있는 그 녀석은 애초에 무공을 몰라.”“그래. 바로 그래서 더 놀라운 거다.”남궁옥빈은 찻잔을 입가에 가져갔다가 떼며 충격으로 굳어 있는 팽가호에게 작게 중얼거렸다.
“현재 정도맹에서 초류향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어. 아마 천하 사패 전부가 조사하고 있겠지. 그런데 지금 조사 진행 중인 내용을 살짝 엿들어 보니…… 그 녀석은 무공을 배운 지 불과 반년이 조금 넘은 정도라고 해.”“…….”반년이 조금 넘은 정도?
그런데 천마신교의 후계자가 되었다고?
말이 되는 소리인가, 이게?
“정말 천재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지, 그 녀석.”팽가호는 잠시 멍한 얼굴을 해 보였다.
유기산법무예학당.
줄여서 유기학당이라 부르는 그곳에서 초류향과 함께 공부했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쳤기 때문이다.
‘초류향…….’팽가호는 가만히 그 녀석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늘 서가의 한 귀퉁이에 그림처럼 앉아서 미동도 없이 책만 읽던 초류향이었다.
조용했고, 말수가 적었다.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고 중요한 순간에 정말 필요한 이야기만 내뱉는 녀석.
특히나 혼자 있기를 좋아해서 주변에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팽가호는 그 녀석이 좋은 녀석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자신이 짓궂게 장난을 치면 귀찮아하면서도 곧잘 받아 주던 그 작은 아이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게 불과 반년 전의 일이다.
‘그 녀석이 천마신교의 소교주라고?’정말 황당무계한 소리였다.
아직 잠이 덜 깬 건가 싶어서 볼을 꼬집어 보니 선명한 통증이 느껴졌다.
팽가호는 심각한 얼굴을 해 보였다.
세가에서도, 그 밖의 여러 모임에서도 찾지 못했던 친구를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이해관계도, 이해득실도 따지지 않는 순수한 친구.
팽가호에게 초류향은 그런 친구였다.
“조만간 정도맹에서 널 찾아올 거야. 세가 내에서 간단하게 조사할 거니까. 별다른 심문이나 그런 것은 하지 않겠지만…… 미리 알고 있으면 여러 가지를 대비할 수 있겠지.”“대비……?”팽가호의 되물음에 남궁옥빈은 잠시 망설였다.
팽가호가 평소에 초류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말을 꺼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해야 했다.
그것 때문에 이곳까지 왔으니까.
“제2의 공손천기를 만들 순 없다는 게 어른들의 생각이거든.”“그게 무슨 말이지? 설마 그 녀석을 죽이겠다는 말이냐, 지금?”“그래. 그게 천하 사패가 내린 결론이야.”팽가호의 얼굴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지금 그 녀석이 천마신교의 소교주라는 말도 납득하기가 힘든데 죽인다는 소리까지 나오니까 절로 화가 치솟은 것이다.
혼란스러움과 분노가 동시에 뿜어져 나오니 팽가호도 당황스러웠다.
“진정해, 팽가호.”콰앙-!
팽가호는 주먹으로 탁자를 후려쳐 박살 내며 이를 갈았다.
“씨발!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남궁옥빈은 안타까운 얼굴을 해 보였다.
“흥분하지 마. 안 그러면 너도 초류향을 죽이는 데에 동참하게 될 테니까.”“뭐?”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의 팽가호를 바라보며 남궁옥빈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정도맹을 포함한 천하 사패는 지금 마음이 조급해. 이번에 한차례 천마신교에 쳐들어갔다가 일방적으로 당했거든. 인질들을 구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몸값을 지불했고.”“그래서?”“그들은 궁지에 몰렸어. 이제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라는 거야. 아마 이용할 수 있는 건 다 이용하려고 하겠지. 너와 초류향의 관계를 알게 되면 써먹으려고 할 거야, 어떻게든.”“……!”팽가호의 들끓던 피가 차갑게 식어 갔다.
소름 돋는 일이었다.
남궁옥빈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네가 생각하기에 정도맹이 너를 이용한다면 초류향은 움직일 것 같아?”팽가호는 잠시 고민했다.
평소 그 녀석의 행동이나 태도를 떠올려 본 팽가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잘 모르겠어. 난 그 녀석의 깊은 속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멍한 얼굴로 중얼거리던 팽가호는 이내 얼굴을 찡그렸다.
정말로 초류향이 어떻게 나올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팽가호가 아는 한 초류향은 생각이 깊고, 행동이 가볍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녀석은 자신을 깊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
그건 확신할 수 있었다.
‘눈을 보면 알 수 있었으니까.’녀석은 그런 감정적인 일에 약했다.
마음을 주고받는 것을 유달리 어려워했던 초류향이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사람은 한번 마음을 주면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그리고 녀석은 자신과 마음을 나눴다.
‘녀석은…… 움직일 수도 있다.’이게 결론이다.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움직일 수도 있었다.
가만히 초류향에 대해 떠올리고 있는 팽가호를 보며 남궁옥빈이 말했다.
“잘 모르겠으면 정도맹에서는 충분히 이용할 수 있지. 그들 입장에서는 밑져야 본전이니까.”“……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소리지? 어떤 모습으로, 어떤 위치에 있든지 녀석은 내 친구야. 내 일로 인해서 그 아이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남궁옥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너라면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기에 내가 여기까지 찾아온 거야.”팽가호는 남궁옥빈의 새하얀 웃음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안도했다.
생각해 보니 이 녀석 역시 좋은 녀석이었던 것이다.
* * *
“네가 팽가호냐?”“예. 어르신.”“과연 소문만큼 기골이 장대하구나. 무공도…… 음? 이거 듣던 것보다 더 좋구나.”“과찬이십니다.”팽가호는 최대한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예의를 갖췄다.
상대방의 신분은 정도맹의 대내외 감찰을 담당하는 신분인 집법당주였다.
그의 이름은 염백호(廉白虎).
현재 흔들리고 있는 정도맹의 중심을 꽉 잡고 있는 핵심인물 중 하나였다.
“팽무천 가주님께 특별히 양해를 구해서 이제부터 너와 단둘이 면담을 진행하려 하는데 괜찮겠느냐?”“예, 어르신.”염백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혹시 너는 내가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를 알고 있느냐?”“잘 모르겠습니다.”“그러하냐?”염백호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소매에서 누군가의 초상화를 꺼내어 내밀며 말했다.
“초마공자라 불리는 녀석이다. 알아보겠느냐?”팽가호는 초상화를 유심히 보았다.
그리고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 녀석이다.’역시 남궁옥빈의 말은 사실이었다.
녀석은 정말로 천마신교의 사람이 된 것이다.
마음이 복잡해졌다.
“최근 도군 임제학을 꺾어서 그 몸값이 어마어마하게 오르고 있는 놈이지.”팽가호의 눈가가 살짝 크게 뜨여졌다.
이건 처음 듣는 소식이다.
“그…… 구주십오객의 도군 임제학을 꺾었다는 말입니까? 오제와 비견된다는 그 사람을요?”“그래. 이런 꼬맹이가 도군을 아주 철저하게 짓밟아 놨지. 다시 재기하기 힘들 정도로.”“…….”“정정당당한 승부였다. 놀랍게도 그 어떤 더러운 수작도 하지 않았더군. 이 부분은 도군 임제학이 직접 증언했으니 믿을 수 있겠지.”팽가호의 얼굴이 복잡미묘해졌다.
그 얼굴을 살펴보던 염백호가 입을 열었다.
“놈을 알겠지?”“예.”염백호는 턱을 한 번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긴. 이 꼬마랑 너랑 상당히 친했다더구나. 둘도 없는 친구 사이라던데 사실이냐?”“예.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염백호가 얼굴을 찌푸렸다.
“너만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냐?”곤란하다는 표정.
확실히 남궁옥빈의 경고대로 자신을 이용해서 무언가를 꾸미려 한 모양이었다.
‘여기부터가 중요하지.’팽가호는 일부러 얼굴을 찡그리며 이야기했다.
“맨 처음에 이 녀석 머리가 워낙 좋아서 친해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비밀이 너무 많은 놈이라서…… 수상하게 생각하고는 있었습니다.”“호오? 그럼 너와 만날 때부터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다는 말이냐?”“예. 여러 가지로 이상했습니다.”이제부터 팽가호는 거짓말을 해야 했다.
절대로 들키지 않을 거짓말.
“어디가 이상했는지 말해줄 수 있겠느냐?”팽가호로서는 가장 하기 싫은 일.
가장 친한 친구를 비난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한다.’그래야 둘 다 살 수 있다.
남궁옥빈은 그렇게 팽가호를 설득했고, 오랜 고민 끝에 팽가호 역시 동의했다.
팽가호는 유기산법무예학당에서 초류향을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대단히 편파적으로 이야기했다.
약간의 각색을 가하긴 했어도 모두 사실에 기반을 둔 이야기였기에 나름대로 초류향에 대해서 차근히 조사해 온 염백호의 얼굴은 심각해졌다.
팽가호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 녀석과 초류향은 그다지 큰 친분이 없었던 것이다.
“그럼 네 말은 그 요악스러운 놈이…… 너와 만날 때부터 정파를 염탐하고 있었다는 말이더냐?”“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와 남궁옥빈, 둘 모두에게 접근하려고 했겠습니까?”“그 녀석이 남궁옥빈…… 그 아이에게도 접근했다는 거냐?”이건 새로운 정보다.
염백호의 눈이 반짝이자 팽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남궁옥빈이라는 새로운 인물을 끌어들여야 했다.
그래야 그 한 명에게 집중된 관심을 분산시킬 수 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팽가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남궁옥빈이 사전에 와서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면 정말 꼼짝없이 이용당할 뻔하지 않았는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초류향.
그 겉만 센 척하고 속은 여리여리한 녀석에게 짐 덩이가 되는 건 정말 싫었으니까.
‘나중에…… 정말 나중에 그 녀석을 만나서 물어봐야겠다.’지금 팽가호가 정말 후회되는 것은 유기산법무예학당을 떠나기 전날 밤.
초류향을 찾아가지 않은 것이었다.
그때 그 녀석을 찾아가서 기련산에 간다는 이야기를 했다면…… 그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팽가호였다.
만든이 한 마디
쩌리 팽가호 등장으로 분량 하나 날로 먹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