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31)
제131화 의외의 만남(2014.04.10.)
공손아리는 눈만 드러내 놓은 새하얀 면사를 뒤집어쓰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거리를 둘러보는 그녀의 입가에는 온종일 웃음이 끊이질 않았고, 쉬지 않고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좋으세요?”“응. 너무 신기한 것투성이야. 링링도 그렇지?”“예.”“역시 강호에 나오길 참 잘한 거 같아.”선우초린은 말없이 웃으며 공손아리의 손을 잡았다.
“신기한 게 많다고 너무 멀리는 가지 마세요. 주변 정리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강호에는 위험한 것들이 아주 많으니까요. 제 곁에서 멀어지시면 안 돼요.”“응, 알겠어.”선우초린 역시 눈만 내놓은 면사를 뒤집어쓴 채 공손아리의 곁에 딱 붙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실 선우초린에게는 별반 신기할 것도, 놀라울 것도 없는 평범한 시장거리였지만 공손아리에게는 놀라움과 새로움이 연속되는 신세계인 모양이다.
길거리에서 차력을 보여주며 약을 파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린아이처럼 놀라고, 그들이 파는 만병통치약도 스스럼없이 사 와서 자랑했다.
“링링! 이것 좀 봐 봐. 이 약을 먹으면 내공이 무려 반 갑자가 생긴대. 엄청나지 않아? 어떤 병에도 걸리지 않고 피부도 고와진대.”“우와! 정말요?”선우초린은 공손아리가 사 온 약을 보면서 놀라는 시늉을 해 보였다.
공손아리가 사 온 것은 조악하기 그지없는 가짜 약이었지만 그것으로 공손아리의 기분이 좋다면 선우초린은 거기에서 만족이었다.
“근데 링링, 더 놀라운 게 있어.”“무엇이 더 놀라운데요?”공손아리가 갑자기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작게 속삭이자 선우초린 역시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숙여서 작게 대답했다.
“놀랍게도…… 이게 고작 은화 한 냥짜리라는 거야! 정말 엄청나지 않아? 본 교의 선우 호법님께서도 겨우겨우 만드시는 걸 강호에서는 이렇게 싼 가격에 쉽게 구할 수 있어!”“그렇네요.”선우초린은 속으로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참으며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선우초린이 열렬히 반응해 주자 공손아리는 기쁜 얼굴로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만세를 한 후 입을 열었다.
“강호는 정말 굉장해!”“예. 굉장하죠.”“헤헤헤, 그럼 우리 이거 몇 개만 더 사갈까? 호법 할아버지들 드리게.”“그럴까요?”“그러자.”해맑게 웃으며 속에 쥔 환약 개수를 세어 가는 공손아리.
이런 공손아리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선우초린이 그렇게 생각하며 공손아리를 불쑥 껴안았다.
“으응? 링링, 왜 그래?”“……잠깐만 이렇게 안고 있을게요, 소군주님.”공손아리는 선우초린이 왜 이러는지 몰랐기에 잠시 불편하게 안겨 있다가 곧 소매에 환약을 챙겨 놓고 두 손으로 선우초린의 등을 토닥거렸다.
따스한 체온과 함께 좋은 향기가 둘 사이에 맴돌았다.
선우초린은 잠시 동안 그렇게 공손아리를 안고 있다가 가만히 놓아 주며 빙그레 웃었다.
“이제 춥지 않죠?”“으응? 응? 정말이네?”공손아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해맑게 웃었다.
그러곤 다시 나비처럼 나풀나풀 뛰어다니며 주변을 둘러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차력사들에게서 약을 산 둘은 시장 거리를 다시 한 번 둘러본 후 사천 지역 근방의 명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이제 그만 돌아가요, 소군주님.”날이 어둑어둑해지자 선우초린이 입을 열었다.
너무 멀리 나가는 것은 좋지 않았다.
근방이라면 그래도 천마신교의 영역이니 함부로 설칠 녀석들이 없었지만 그 범위를 벗어나면 확신할 수 없었다.
가끔 겁대가리를 상실한 녀석들이 나타나곤 했으니까.
“내일도 나와도 돼?”“물론이죠. 당분간 저 한가하거든요.”사천 지역에 나와서 선우초린은 맡았던 일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그래서 특별 휴가를 받은 것이다.
물론 선우초린에게는 이 특별 휴가가 여러 가지로 찝찝했다.
뜻밖에도 초류향을 암살하려 했던 자객이 그녀가 관리하는 이화궁에 섞여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문제는 의외로 조용하게 묻혔다.
상부에서 대체 무슨 짓을 어떻게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런 문책도 내려오지 않았다.
그 부분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을 때.
문득 앞서 가던 공손아리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선우초린은 조용히 그 옆으로 다가가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낮은 담벼락 너머에 있는 정자.
그곳에 누군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를 보며 선우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양인(異樣人, 당시에 외국인을 부르는 말)이군요. 이 지역에서는 보기 힘들 텐데…….”당시에는 해금정책(海禁政策, 나라가 바다를 통한 교역 및 무역에 대한 엄중한 제한을 걸어놓은 정책)이 상당히 심했기 때문에 외국인들을 보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그나마도 숨어 지내기 바쁜 게 보통인데 이렇게 사천 성도에 버젓이 외국인이 있다니?
이것은 선우초린으로서도 상당히 의아한 일이었다.
“……저 사람 나랑 같아.”공손아리는 면사로 감춰놓은 자신의 금발 머리카락과 정자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외국인의 머리카락을 차례로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그 모습에 선우초린은 공손아리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복잡한 표정.
어딘가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공손아리를 보던 선우초린이 고개를 저었다.
“달라요.”“어째서?”‘저렇게나 똑같은데?’라는 뒷말은 굳이 내뱉지 않았다.
금발머리와 푸른 눈동자.
공손아리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자신 외의 색목인을 본 것이다.
말로는 들었지만 정말로 자신과 비슷한 용모를 지닌 사람을 보게 될 줄이야.
“소군주님은 특별해요. 교주님의 피를 이으셨잖아요?”“그건…….”그렇긴 했다.
그녀는 순수한 외국인이 아니라 혼혈인 것이다.
공손아리는 그 사실을 떠올리고 입을 다문 채 우물쭈물거렸다.
어찌 되었든 외형적으로 그녀는 동양인보다 색목인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그녀는 갑작스럽게 눈앞에 등장한 색목인에게서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먼 바다 건너.
색목인들의 나라에 대한 강한 호기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 정자에 앉아서 무언가를 읽고 있던 색목인이 고개를 돌렸다.
중후한 얼굴에 곱게 기른 수염.
거기에 금발이긴 하지만 약간은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그는 나이가 조금 많아 보이는 색목인이었다.
게다가 색목인이면서도 단정하게 차려입은 중국 전통 의상이 눈에 띄었고, 거기에 외눈 안경까지 더해지자 더욱 강한 인상을 남겼다.
“나에게 볼일이 있으시오?”외국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꽤나 유창한 한어.
공손아리와 선우초린은 동시에 화들짝 놀랐다.
“저, 저 사람 우리말을 할 줄 아나 봐.”공손아리가 더듬거리며 말하자 선우초린 역시 깜짝 놀랐다.
그녀가 알기로도 대부분의 색목인들은 그 나라만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녀들의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외국인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천천히 담벼락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말했다.
“그대들은 내가 무섭지 않으시오?”“……!”선우초린과 공손아리의 신형이 동시에 굳어졌다.
특히 공손아리의 눈동자는 숨길 수 없을 만큼 크게 흔들렸다.
당혹스러워하는 그녀들을 본 색목인이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곳에 와서 나를 겁내지 않는 사람은 처음 보는구려. 시간이 된다면 들어와서 차나 한잔 하시겠소?”“그, 그래도 되나요?”공손아리가 당장이라도 담을 넘을 기세를 보이자 옆에 있던 선우초린이 그 앞을 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너무 늦었습니다.”“아……!”그러고 보니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공손아리는 아쉬운 얼굴로 색목인을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에 색목인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시간 날 때 놀러 오시오. 나는 별다른 일이 없으면 항상 이곳에 있으니.”“정말요?”“허허, 물론이오. 나도 말동무가 생기는 것이 좋으니 가끔 와서 차라도 한잔 하고 가시오.”“알겠습니다. 꼭 내일 다시 올게요.”“그러시구려.”색목인이 흔쾌히 승낙하자 선우초린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런 정체를 모르는 자와 어울리는 것은 그다지 좋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뒤를 캐봐야겠군.’선우초린은 일단은 곱게 물러갔다.
성질 같아서는 몰래 찾아와서 처리하고 싶었지만…… 주변을 힐긋 돌아보며 선우초린은 그런 마음을 겨우 억눌렀다.
아직 이 근방은 정도맹의 영역인 것이다.
‘뭐, 그것도 조만간 아니게 되긴 하겠지만…….’마지못해 발길을 돌리는 공손아리와 함께 천마신교 사천 분타로 복귀하며 선우초린은 전음으로 근방에 은신한 채 몸을 숨기고 있던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 수상한 색목인 노인에 대한 정보를 캐려 한 것이다.
* * *
선우초린과 공손아리가 색목인을 만나고 있을 무렵.
초류향은 스승님의 부름에 이끌려 접견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곳에서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냉하영……?’흑월회의 사람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 것일까?
초류향이 잠시 우두커니 서 있자 공손천기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둘은 만난 적이 있었지?”“……예.”“그럼 따로 소개할 필요는 없겠구만. 일단 앉거라.”초류향은 재빨리 정신을 수습하며 공손천기의 옆에 앉았다.
냉하영과는 마주 보는 자리였다.
‘의외로군.’공손천기는 제자의 얼굴을 살펴보며 히죽 웃었다.
제자는 본능적으로 냉하영을 경계하고 있었다.
확실히 냉하영은 경계할 대상이긴 했다.
그녀는 아름다우면서도 지나치게 똑똑했으니까.
강호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요소들은 모두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공손천기 본인이야 그다지 상관이 없겠지만 초류향은 앞으로 한 세대를 그녀와 함께해야 했다.
그러니 쓸데없이 휘둘려서는 곤란하다.
‘그럼 어디 얼마나 대단한지 볼까?’냉하영이 똑똑하다는 사실은 이미 귀가 따갑게 듣고 있었다.
하나 이쪽 역시 만만찮았다.
초류향 역시 공손천기가 인정한 괴물이었다.
‘어느 쪽이 진짜일까?’많은 사람들을 이끄는 최고의 자리에 있으려면 이렇게 정치적인 자리에서도 그 수완을 발휘해야 했다.
당황해서도 안 되고, 상대에게 끌려가서도 안 된다.
‘너는 이 꼬마 마녀를 어떻게 상대할 작정이냐, 제자야…….’공손천기가 혼자서 초류향이 곤란해하는 모습을 생각하며 흐뭇해하고 있을 때.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냉하영이었다.
“반가워. 오랜만이네?”“그렇군.”“키가…… 좀 큰 건가?”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에 키가 부쩍 자라고 있었다.
무공을 익히고, 신체를 극단적으로 활용하다 보니 성장이 빠른 것 같았다.
“반년 만인가? 그때는 네가 설마 소교주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어. 당시에 무언가 무례하게 대했다면 사과할게. 이해해 주라.”초류향은 피식 웃었다.
“사과할 마음도 없으면서 허튼 시늉하지 마. 너답지 않아. 그리고 낯간지럽다.”“응? 왜? 어디가?”“애초에 무례를 사과할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이런 자리에서 나에게 반말은 하지 못했겠지. 가볍게 떠보려고 하지 마. 시험당하는 기분이라 불쾌하니까.”초류향의 냉정한 말에 냉하영의 입가에 웃음기가 맺혔다.
역시 그때에도 그랬지만 이 꼬마는 만만하지가 않았다.
쉽게 어떻게 다룰 수 있는 상대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재미있었다.
또래에 이런 아이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녀에게 있어서 하나의 큰 즐거움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나에게 반말한 건 그냥 서로 편하게 이야기하자는 뜻이겠지요, 소교주님?”초류향은 안경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겠지.”냉하영은 초류향의 허락이 떨어지자 대뜸 웃으며 이야기했다.
“좋아. 그럼 나도 말을 꺼내기 편해지지. 그럼 다시 한 번 인사할게. 만나서 반가워, 초류향. 여러 가지 의미로 너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었어.”“나를?”“그래. 이유는 대충 알잖아?”초류향은 잠시 이유를 생각해보다가 씁쓸하게 웃었다.
생각해 보니 너무도 뻔한 이유였던 것이다.
새롭게 소교주의 자리에 올라선 초류향은 너무도 많은 부분이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 비밀의 단면을 엿보고 싶은 것일 터.
그때 냉하영이 옆에서 히죽거리며 웃고 있는 공손천기를 보며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단둘이 이야기해도 될까요?”“으응? 헉! 설마 나보고 지금 여기서 나가 달라는 거냐?”공손천기가 크게 상처받은 얼굴을 해 보일 때.
냉하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냥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거라서…… 교주님이 약간 소외되실지도 몰라요.”“아아, 괜찮다. 어차피 난 대화에 낄 생각이 없었으니까.”냉하영이 희미하게 웃었다.
“역시. 그러신 거 같았어요. 확답을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공손천기는 냉하영의 말을 들으며 헤벌쭉 웃었다.
이 영특한 아이가 과연 사적으로 할 이야기라는 게 무엇일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초류향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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