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139)
제139화 남주역신(2014.05.08.)
초류향은 마차 바깥으로 먼저 나갔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미소를 지었다.
‘진법이라…….’재미있었다.
환영 인사가 제법 그럴싸하지 않은가?
게다가 꽤나 공을 들인 기색이 역력했다.
사방에 돈을 바른 티가 확연했던 것이다.
초류향은 안경을 매만지며 주변을 둘러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전문가다.’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이건 전문가의 작품이었다.
그것도 초류향처럼 산법을 토대로 만든 것이 아닌, 진짜 정통의 진법가가 만든 것이다.
막 그렇게 상황 파악을 했을 무렵.
갑자기 시야가 흐릿해지며 주변이 어둠으로 가득 찼다.
“어?”“어라?”선우초린과 노진녕, 그리고 공손아리가 깜짝 놀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치 먹물을 잔뜩 풀어 놓은 듯 사방이 밤처럼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 어둠은 서서히 마차 주변을 잠식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 어어?”노진녕은 점차 다가오는 검은 구름에 찝찝함을 느끼고 가볍게 손을 뻗어 장풍을 날렸다.
콰우웅-
내력을 머금은 장풍이 검은 구름을 뚫고 지나갔지만 그 자리는 금세 다시 메워졌다.
“어쭈? 저리 안 가?”노진녕이 얼굴을 찡그리며 양손을 휘저을 때.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하게 만들어진 암행진(暗行陳)이다.’초류향은 안경을 한 번 매만지며 입맛을 다셨다.
이것은 사람을 해칠 수도 있는 진법이었다.
진법을 만든 자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었다.
‘깨부숴야 하나…….’초류향에게 있어서 이 정도의 진법을 파훼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무슨 생각인지 초류향은 피식 웃었다.
갑자기 상대방이 어느 정도의 실력자인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정통의 진법가는 처음 만나다 보니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초류향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옷소매를 잡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니 공손아리가 그의 옷소매 끝을 불안한 듯 잡고 있었다.
‘왜……?’그녀는 다가오는 어둠을 보며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초류향은 순간 가슴이 울렁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뭐지?’초류향은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가슴팍을 움켜쥐고 얼굴을 찡그렸다.
마차 안에서 공손아리와 함께 있을 때부터 느꼈던 그 울렁거림.
무언가 알싸한 고통이 가슴 부위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정체를 모르는 것은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하다.]어딘가에서 보았던 글귀가 머릿속에 떠오르자마자 초류향은 움직였다.
자신은 진법의 정체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기에 겁이 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닌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 초류향은 서둘러 바닥에 있던 조약돌 하나를 집어 올렸다.
‘일단은…… 멈춘다.’부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하나 상대방의 의도대로 움직여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니, 아예 판을 뒤집어엎을 생각이었다.
갑자기 뚜렷한 이유도 없이 가슴속에서 화가 치솟았던 것이다.
‘철저하게 망가뜨려 준다.’초류향은 조약돌을 바닥 어딘가에 박아 넣고, 그 옆에 또 다른 돌멩이 하나를 더 박아 넣었다.
그리고 정면을 응시했다.
우우웅-
스멀스멀 다가오던 어둠이 갑자기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 듯 더는 다가오지 못하고 바로 코앞에서 일렁거렸다.
“어……?”그때까지 앞에 서서 장풍을 연달아 날려 어둠을 흩트리고 있던 노진녕이 제일 먼저 그 모습을 보고 감탄을 터트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초류향을 바라보며 헤픈 웃음을 입가에 그렸다.
“헤헤…… 괜히 저 혼자 힘 빼고 있었네요?”초류향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덕분에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노진녕은 어린 주인님의 칭찬에 대단히 뿌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몸 안의 내력을 길게 늘려서 바깥으로 방출하는 장풍 같은 고급 기술은 상당히 많은 체력이 소모된다.
그것을 줄곧 쏟아내고 있었던 탓에 노진녕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선우초린은 그런 노진녕을 바라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실없는 놈.’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공도 그랬고, 이 실없는 태도도 그랬다.
게다가 더욱 불쾌한 것은 조금 전에 건안왕에게 했던 말이었다.
‘이 여자는 못 준다고? 내가 네 거냐?’이래저래 거슬렸다.
평소라면 진작 손이 나갔겠지만 그래도 그녀가 발작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눈앞에 초류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상하게 이 꼬마는 껄끄러웠다.
함부로 대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대체 너는 정체가 뭐냐?’초류향을 바라보는 선우초린의 얼굴이 차츰 복잡해졌다.
무공으로 도군을 꺾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다.
그것만 해도 못 믿을 판인데 이런 신기한 재주는 대체 어디까지 익혀 놓은 것일까?
알아 가면 알아 갈수록 더욱 알 수 없어지는 이런 요상한 기분은 그녀로서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때 그녀의 시선에 초류향의 옷소매를 조심스럽게 붙잡고 있는 공손아리가 들어왔다.
선우초린의 눈동자에 불똥이 튀었다.
바람처럼 움직여 공손아리의 옆으로 이동한 선우초린은 공손아리의 반대쪽 손을 꼬옥 잡으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괜찮으세요, 소군주님?”“응? 으응. 난 괜찮아, 링링.”공손아리는 초류향의 옷소매를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괜찮다는 얼굴을 해 보였지만 미미하게 몸이 떨리고 있었다.
솔직히 무서웠다.
이런 것은 처음 보았기에 신기함보다는 무서움이 더 컸기 때문이다.
“이제 걱정 마세요, 소군주님. 제가 옆에 계속 있을 테니까.”“정말? 고마워.”공손아리는 불안한 눈동자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이 어둠으로 가득했다.
마치 당장이라도 덮쳐들어 올 듯 어둠이 일렁거리며 주변에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선우초린이 공손아리의 손을 가볍게 쥐고 있을 때였다.
노진녕은 선우초린의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피다가 슬쩍 초류향의 옆에 바짝 붙으며 소곤거렸다.
“근데 저 위험한 계집은 왜 데려오셨습니까?”초류향은 노진녕의 말에 마차 천장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이제부터 제 일을 도와주시기로 한 사람입니다.”선우초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있는 건가?
감각을 날카롭게 다듬어 살펴보았지만 초류향이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초류향이 마차 천장을 향해 말했다.
“그만 이리로 나오세요. 오히려 그곳에 계신 게 더 불편하니까요.”초류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언가가 흐릿하게 나타나 무릎을 꿇었다.
“소교주님의 명령을 받듭니다.”갑자기 등장한 사람을 바라보던 선우초린의 눈가에 작은 경련이 일어났다.
“너는…….”초류향을 암살하려고 했던 화령이라는 살수가 아니던가?
거기까지 떠올린 선우초린은 빠르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턱-
그녀의 손을 제지하는 자그마한 손.
선우초린이 그 손의 주인을 바라보고 알 수 없다는 얼굴을 해 보였다.
“소교주님을 죽이려 했던 살수입니다. 죽여야 합니다.”초류향은 선우초린의 손을 잡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이제부터 제 사람입니다.”“살수 따위를 곁에 두려 하시는 겁니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짓입니다.”선우초린이 옅은 광기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으르렁거리자 초류향은 담담한 얼굴로 분명하게 말했다.
“살수가 아니라 제 사람입니다. 이화부궁주.”“하지만 이 계집은…….”“거기까지 하세요.”초류향은 잡고 있던 선우초린의 손을 놓아 주며 입을 열었다.
“제 사람은 제가 판단합니다. 이화부궁주는 자신의 할 일만 하시면 됩니다.”“…….”선우초린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 작고 시건방진 꼬마가 자신의 충고를 귓등으로 듣고 흘려 넘기고 있었던 것이다.
‘바보 같은 자식.’이놈은 죽을 것이다.
살수라는 것에 등을 맡기는 어리석은 놈치고 오래 사는 놈을 못 봤다.
애초에 살수는 사람을 죽이는 것에만 능숙하지 보호하고 살리는 것에는 재주가 없는 족속들이니까.
잠시 거기까지 생각하던 선우초린은 움찔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왜 이렇게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 꼬마가 멍청한 판단을 하면 그것으로 족한 거겠지. 화낼 이유가 없잖아?’그동안 너무 뛰어난 모습만 보였던 어린 소교주에게 자신도 모르게 감화되어 버린 모양이었다.
선우초린은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재빨리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 버리며 속으로 비웃었다.
장담하건대 이 꼬마는 이런 어리석은 판단을 한 것에 땅을 치며 후회할 날이 올 것이다.
선우초린이 싸늘한 얼굴로 한 걸음 물러서자 그때까지 초류향의 뒤에서 조마조마한 얼굴로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노진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안도한 이유는 참으로 기가 막혔다.
‘둘이 치고받고 싸우면 난 누구 편을 들어야 하지? 역시 소교주님이겠지? 그런데 저 예쁜 여자를 때릴 수 있을까? 어차피 내가 안 도와 드려도 소교주님이 이기실 수 있겠지?’속으로 이런 말도 안 되는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노진녕이 갑자기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소교주님, 그런데 이제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흠.”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던 초류향은 일단 그때까지도 무릎을 꿇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화령을 일으켜 세우며 입을 열었다.
“일단 기다리면 될 것 같습니다.”그랬다.
일단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시간이 지나면 바깥에서도 분명히 이상함을 느낄 테니까.
그리고 초류향의 예상처럼 바깥에서도 무언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이상하다.’변정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본래대로라면 지금쯤 진법에 무언가 변화가 있어야 했다.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진입을 해야 하니까.
한데 진법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음양반(陰陽盤, 진법의 입구와 출구를 구별할 때 쓰는 원반같이 생긴 도구)을 들여다보며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가 결국 곤혹스러운 얼굴로 옆에 있던 건안왕을 응시했다.
그 시선에 담긴 불안을 읽은 건안왕이 궁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왜? 진법이 어딘가 잘못되었나?”“예. 아무래도 무언가 사고가 생긴 것 같습니다.”사고?
건안왕이 눈을 끔뻑거리며 입을 열었다.
“여태껏 단 한 번도 실수해 본 적이 없는 자네가 그런 말을 하니 조금 놀랍군. 그래, 어디가 문제인 것 같은가?”변정훈은 음양반으로 진법의 한구석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본래대로라면 지금쯤 저쪽에서 작은 불꽃이 튀어나와야 정상적인 상태입니다. 진법 안의 세계는 본래부터 외부와는 완전히 격리되어 있는 공간. 그곳에서 음의 기운이 거세어지니 그에 대응해서 곧장 거대한 불길이 일어나야 정상이지요. 저는 바깥에서 육안으로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그런가? 그런데 변화가 없다 이건가?”변정훈은 송구스럽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왕야.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진즉 변화가 생겼어야 하는 진법이 계속해서 음의 기운으로 가득 찬 채 머물러 있습니다. 이건 무언가 안쪽에서부터 문제가 생기지 않고서야 일어날 수 없는 사태입니다.”건안왕은 그제야 이해가 된 듯 턱을 한 번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자네가 나에게 가르쳐 주었던 대로라면 진법이 한 가지 성질을 계속해서 띠고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지.”건안왕의 진법 선생이자 강남 지역을 통틀어 최고의 진법가라 손꼽히는 자가 바로 변정훈이다.
별 특색도, 강렬한 느낌도 없는 평범한 인상의 변정훈이었지만 그가 지니고 있는 능력은 실로 놀라웠다.
그는 풍수(風水)는 물론이고 역학(易學), 지리(地理), 진법 등 이 세상에서는 소위 잡기(雜技, 잡스러운 기술)라고 저평가받는 것들로 이미 일가를 이룬 사람이었던 것이다.
남주역신(南主易神).
즉, 남쪽 지방 역술의 신이라 불리는 사람이 바로 변정훈이었다.
변정훈은 사실 이쪽 계통에서는 최고의 실력을 지녔기에 가만히만 있어도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릴 수 있었다.
한데 그랬던 그가 어느 날부터인가 건안왕의 옆에 등장해서 그를 물심양면으로 도우며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것을 두고 모두가 의문스럽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변정훈은 그것에 대해 이렇다 할 이야기는 해 주지 않고, 그저 때가 되면 알 것이라고만 말해 왔을 뿐이다.
“예.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서는 계속해서 유동적으로 변해야 정상인데……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자네가 모르겠다면 이건 정말 난처한 일이군. 해결 방법은 없는 건가?”변정훈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직접 안으로 들어가 봐야겠습니다.”“역시 그 방법밖에는 없는가?”“예, 왕야.”“그럼 그리하게.”“알겠습니다.”변정훈은 품 안에 있는 보석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천천히 진법으로 다가갔다.
진법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무언가가 머리채를 잡아채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별거 아니겠지.’그는 찝찝한 기분을 애써 누르며 진법의 경계선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변정훈의 모습이 모두의 시야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오